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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미의 고전게임에 대한 내용은 아미다(게임) 문서 참고하십시오.디야르바크르 성벽[1] | 옛 성당에서 개조된 대모스크 |
디야르바크르 (튀르키예) Diyarbakır | ||
튀르키예어: Diyarbakır (디야르바크르)[2]
쿠르드어: Amed (아메드), Diyarbêkir (디야르베키르)
라틴어: Amida (아미다)
1. 개요
튀르키예 남동부 지방에 속하는 도로 서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을 경계로 아드야만도와 말라티야도, 북서쪽으로는 엘라즈으도, 북동쪽으로는 빈괼도, 동쪽으로는 바트만도, 남서쪽으로는 샨르우르파도, 동쪽으로는 마르딘도와 접해있다. 쿠르드족의 수도라 불릴만큼 쿠르드 인구가 많은 곳이며 쿠르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3] 총 14개 시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15,272 km2로 강원도보다 조금 더 크다. 도 한가운데에 티그리스 강(튀르키예어로 '
2. 행정구역
도 중심지는 디야르바크르 시로 그 외에 췬귀스(Çüngüs)군, 체르미크(Çermik)군, 에르가니(Ergani)군, 디질레(Dicle)군, 에글리(Egli)군, 츠나르(Çınar)군, 비스밀(Bismil)군, 코자쾨이(Kocaköy)군, 하즈로(Hazro)군, 하니(Hani)군, 리제(Lice)군, 쿨프(Kulp)군 총 14개 시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4년 통계로 도 전체 인구는 1,635,048명이다.인구의 다수는 쿠르만지인(쿠르드어: Kurmanc / 튀르키예어: Kurmançlar)을 비롯한 쿠르드인이지만, 도 북쪽에는 자자인(Zaza / Zazalar)도 거주하고 있으며, 디야르바크르 시에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상업활동을 해온 소수의 아르메니아인도 거주하고 있다. 튀르키예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튀르키예화된 쿠르드족과 외지에서 온 튀르키예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지방 출신은 아니다. 이 지방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쿠르드인들은 부족체제 내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디야르바크르에 존재하는 서로 이질적인 쿠르드 부족의 수는 총 52개에 달한다.
3. 역사
내성 일대
이 도를 흐르는 티그리스강 일대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취락지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후 히타이트부터 시작해 수많은 문명들이 이곳을 정복했으며, 로마시대에는 아미다(Amida)라고 불리었다. 현재 쿠르드어로 디야르바크르를 의미하는 아메드(Amed)가 여기서 비롯된 단어이다. 아미다는 로마 제국 동방의 주요 요새 도시 중 하나였고, 콘스탄티우스 2세 시기에 오늘날과 같은 육중한 성벽이 둘러졌다.
3.1. 로마 제국의 요새
3세기에 세워진 성 마리아 성당. 시리아 정교회의 주교좌가 있다.
359년, 샤푸르 2세 휘하 10만의 사산 제국군이 2만의 로마군이 수비하는 아미다를 포위했다. 로마군은 수적 열세에도 야습을 통해 포위를 뚫으려 하는 등 격렬히 저항했고, 성벽이 붕괴한 후에도 최후까지 싸우다가 전멸했다. 샤푸르 2세는 도시를 약탈하고 살아남은 로마 장교들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등 가혹히 보복하였다. 다만 무려 3만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은 사산 제국군은 겨울이 다가오자 포로가 된 주민들을 끌고 철수했다.
502년 가을에는 테오도시오폴리스, 마르티로폴리스 (마야파리킨)를 함락한 카바드 1세가 아미다를 포위했다. 군대가 배치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주민들은 식량이 떨어지자 인육을 먹을 정도로 결사 저항하며 무려 3개월간 버텼으나, 사신 제국군은 축제날 취약한 부분에 야습을 가하여 함락하였다. 이후 도시는 3일 밤낮으로 약탈과 학살을 겪었고, 주민들은 후제스탄으로 압송되어 아르잔이란 도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아미다 함락으로 인해 벌어진 아나스타시우스 전쟁의 결과, 동로마 제국은 505년에야 11만 파운드의 금을 납부한 후에야 아미다를 수복할 수 있었다
3.2. 중세
1091년경 셀주크 제국 술탄 말리크샤 1세가 세운 대모스크
602년, 호스로 2세가 재차 정복하여 20년 이상 사산 제국령으로 남았다가 628년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수복하였다. 헤라클리우스는 이듬해 아미다에 성 토마스 성당을 세웠다. 하지만 639년 이야드 빈 가늠이 이끄는 이슬람 제국군이 정복했다. 이후 아랍계 바크르 부족에게 영지로 주어졌다 하여 디야르바크르 지역명이 붙여졌고, 그 주도인 아미다는 점차 그냥 디야르바크르라 불리게 되었다. 9세기 후반, 압바스 왕조가 쇠퇴하자 바누 샤이반이 일대에서 자립했다가 899년 칼리파 알 무타디드가 수복했으나 10세기 중반 함단 왕조에 이어 부이 왕조령이 되었다.
11세기 들어서는 쿠르드계 마르완 왕조의 수도가 되어 번영하였고, 1085년 셀주크 제국이 정복한 후 다수의 튀르크인이 정착하였다. 뒤이어 셀주크 제국이 분열되자 아르투크 왕조가 일대에서 자립했다가, 1183년 살라흐 앗 딘 유수프가 정복하여 아이유브 왕조령이 되었다. 1259년 일 칸국이 함락한 후 14세기 하산케이프의 아이유브 왕조가 점령했다가, 1394년 티무르가 정복하였다. 15세기 들어서는 1468년에 우준 하산이 타브리즈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한때 백양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16세기 초엽 일대는 사파비 왕조령이었다가, 이후 1514년 브이으클르 메흐메트 파샤(Bıyıklı Mehmet Paşa)가 이곳을 정복한 이후로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축출된 사파비측 총독 모하마드 칸 우스타즐루는 뒤이은 찰디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3.3. 오스만 제국기
쉴레이만 1세의 화공 마트락츠 나수흐 에펜디가 묘사한 디야르바크르
오스만 시기 디야르베크르 에얄라트가 설치되었고, 그 영역은 오늘날의 북쿠르디스탄과 거의 일치했다. 16-18세기 디야르바크르는 사파비 조를 견제하는 오스만 제국의 주요 군사 기지이자 수공업 도시로 기능했다. 특히 금속, 유리 공예가 발달하여 콘야의 루미 영묘의 문과 바그다드의 아부 하니파 영묘의 금/은제 문이 디야르바크르에서 제작되었다.
19세기 초엽, 자치를 유지하던 쿠르드 공국들을 토벌한 오스만 조정은 디야르베크르 에얄레트를 쿠르디스탄 에얄레트로 전환했다가 1867년 디야르베크르 빌라예트로 전환했다. 본래 기독교도가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던 디야르바크르는 1895년 2만에 달히는 아르메니아-아시리아인에 학살되고, 1915년에는 1만 5천의 아르메니아 주민이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되며 거의 무슬림만이 남게 되었다.
3.4. 현대
디야르바크르의 전통복장으로, 전형적인 쿠르드 양식이다. 사진속 왼쪽과 오른쪽 끝의 남녀가 입은 복장은 쿠르드 농민들의 흔한 작업복이었지만 PKK 반란군이 제복으로 채택한 복장이기도 해서 이 옷을 입고 공개적으로 돌아다니면 반군으로 오인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일상적으로 입는 사람이 많지 않다.
현대 튀르키예사에서 디야르바크르가 가장 큰 족적을 남긴것은 이 도에 위치한 리제(Lice)군에서 1978년 11월 27일에 PKK가 탄생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후 디야르바크르는 쿠르드 독립을 주장하는 강경 무장테러단체인 PKK (쿠르드 노동자당) 반란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PKK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이 1999년 체포된 이후 분리독립주의노선을 폐기하고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2019년 현재까지도 도심에 군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현재 PKK 소탕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캬리도 예실오바군, 시으르낙도 지즈레군 및 일부 지역들을 제외하곤 결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헌병군이라면 모를까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도 중심지는 디야르바크르가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된다.
일부 지역은 튀르키예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서 수도세나 전기세를 걷으러 공무원이 들어가면 며칠 뒤 시체가 되어 발견되는 흉흉한 동네들도 있다. 치안 상황도 별로 좋지 않은데다가 튀르키예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의 경우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문맹률이 일부 지역은 60%에 달할 정도로 높다. 물론 튀르키예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는 지역에서는 정상적으로 의무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화국 시기 이후 오랫동안 디야르바크르는 동부의 한적한 중소도시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서부 지방에 비해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고, 현지 부족들 또한 튀르키예 정부의 중앙집권화에 반발해 오랫동안 대립해왔기 때문에 많은 부족들이 튀르키예 정부와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다.
한편 1970년대, 마지막 남은 수백의 아르메니아인 공동체가 떠난 후 방치되던 중동의 최대 규모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당인 성 기라고스 성당이 2022년 복원되었다. 이는 유럽의 환심을 사고 현지 쿠르드 정체성을 약화시키려는 튀르키예 정부의 의도로 보인다.
4. 기후
인근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륙성 기후를 보이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덕분에 겨울철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습윤한 편이다. 여름철에는 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며, 평균 낮최고기온은 30-35도 사이이다.5. 관광
디야르바크르 관광지도
디야르바크르 구시가지 관광지도
5.1. 디야르바크르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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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위치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디야르바크르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1488 | ||
등재연도 | 2015년 | ||
등재기준 | (ⅳ)[4] | }}} |
케치 성탑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디야르바크르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Diyarbakır Surları)이 가장 유명하다. 최초의 기단은 기원전 3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이 성벽은 로마시대때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으며, 평균 높이가 10미터 이상에 최고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하고 육중한 성벽이 압도적이다. 성벽 위에 올라가면 멀리 티그리스 강을 비롯해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장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도 내에 흔한 현무암을 이용해서 성을 쌓았기 때문에 벽의 색깔이 거무스름하며, 성곽 내의 오래된 건물들 또한 현무암을 써서 도시 전체가 검다는 느낌이 드는게 특징이다.
총 4개의 문이 있으며, 남서쪽의 마르딘 문(Mardin kapı), 서쪽의 우르파 문(Urfa kapı), 북쪽의 산 문(Dağ kapı), 북동쪽의 새 문(Yeni kapı)이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내성(İçkale)으로 통한다. 내성은 한때 성주가 거주하던 궁전 들이 있었으나 공화국 시기에 들어서 감옥, 군대주둔지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다.
디야르바크르는 티그리스강가에 있고, 유프라테스강과의 사이에 존재하여 비옥한 토지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많은 외부 침략을 받아 성의 주인이 수도없이 바뀌었다. 성의 주인이 바뀔때마다 부서진 성벽을 자기네 방식으로 보수하다보니, 기이한 형태의 성벽이 많아진데다 축조방식이 제각각인 형태가 보존되어 있어, 성벽 축조방식의 백화점으로 불리운다.
대사원
성 내에는 오래된 모스크와 교회와 대상들의 숙소가 있어 과거의 번영했던 모습을 머릿속으로 재현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낙후된 경제상황과 PKK의 준동으로 인해 혼란스러우며 특히 2015년 9월자로 디야르바크르 성벽 내 거주주민의 외출입이 전면 차단되고 주요 관문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는 등 통제되고 있다. 성벽 내 외출입 금지는 9월 19일자로 해지되었으나 PKK와 군경의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현재 적어도 디야르바크르 중심지 내의 PKK는 소탕된 상태이며 관광지와 전통시장들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있다.
[clearfix]
6. 음식과 특산품
맵고 향이 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샨르우르파, 아드야만 등과 달리 이 지방의 음식은 담백하며 고기를 많이 사용한다. 육류를 선호한다는 점은 튀르키예 남동부지방의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이중에서도 디야르바크르와 가지안테프는 양대 최고봉이다. 주로 양고기를 사용하며, 내장부터 뼈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위를 다 사용한다.카부르가 돌마(Kaburga dolması)가 유명한데, 양 갈비짝 양쪽의 빈 속에다가 양념한 밥을 채워넣고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불에 구운 요리이다. 양갈비 자체가 꽤 크기때문에 한번에 12인분씩 나오며 이것만 파는 식당에서 먹거나, 결혼식같은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 취급을 받고 있다. 닭을 똑같이 요리한 닭 버전 카부르가 돌마도 있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사도취급 받는중(...)
겁나게 큰 수박이 특산품이다. 디야르바크르의 상징이 수박일 정도이며, 지름이 1m에 무게는 30kg에 달하는 놈들이 주렁주렁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여름철 무더운 햇볕 버프를 받아서 한국 수박은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달고 시원하다.
7. 유명인
디야르바크르 출신의 유명인으로는 현대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만들어낸 사회학자 지야 괵알프(Ziya Gökalp)와 이의 대척점에 선 PKK의 리더인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이 있다. '튀르키예 공화국 내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들은 그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막론하고 튀르키예 국민이며, 튀르키예 민족이다.' 를 골자로 하는 튀르키예 민족주의를 창안한 지야 괵알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자족 출신이다. 2015년 현재 디야르바크르의 도지사인 귈탄 크샤낙(Gültan Kışanak)도 1980년 케난 에브렌 정권시절 PKK에 투신했다가 오랜 수감생활과 고문을 겪다가 온건평화주의 노선을 채택해 PKK와 갈라선 인민민주당(HDP)에 참여한 유명 정치인이다. 참고로 여자다. 또한 튀르키예 문학의 거장중 하나인 아흐메트 아리프(Ahmet Arif)도 이곳 출신으로 디야르바크르 구 시가지내에 그의 생가 박물관이 있다. 또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명문구단 페네르바흐체 SK의 전 회장이자 튀르키예 건설업계의 거물 아지즈 이을드름(Aziz Yıldırım)도 이곳출신이다.8. 스포츠
과거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에 디야르바크르스포르가 있었다. 쿠르드족의 대표격(?)이라서 그런지 지지도 엄청났고 갈라타사라이, 베식타스 JK, 페네르바흐체나 부르사스포르[5]를 이기는날에는 그야말로 디야르바크르시 전체가 축제분위기였다. 허나 재정난으로 2013년에 파산하고 클럽이 문을 닫는다(....). 현재 디야르바크르에서 프로레벨 축구팀은 2.리그 아메드 SK[6], 3.리그 디야르베키르(....)스포르[7]가 있다.[1] 2022년 기준으로 성벽 둘레를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 사진에서 보이는, 성벽에 가까이 있는 집들은 모두 철거되었다.[2] 당장 나오는 구글지도도 그렇고 ı를 i로 혼동해 읽는바람에 '디야르바키르', 심지어 외교부에서는 디야르바커로 오기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된 발음은 디야르바크르이다.[3] 대략 52개의 서로 우호적이고 적대적인 쿠르만지 부족이 거주하고있으며 이 부족들의 관계가 지역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쿠르만지 이외에도 자자족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튀르키예 민족주의 지지성향[6] 디야르바크르 뷰육셰히르 벨레디예스포르에서 2015년 명칭변경. 아메드는 쿠르드족이 디야르바크르를 부를때 쓰는 이름이다.[7] 원래 예니 디야르바크르스포르였다가 2015년 명칭변경. 참고로 디야르베키르는 위에 나와있다시피 쿠르드어식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