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E30A17 50%, #E30A17 50%)"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지방(Bölge) | 도(İl) |
중앙아나톨리아 | <colbgcolor=#fff,#1c1d1f> | |
마르마라 | ||
에게해 | ||
지중해 | ||
동남아나톨리아 | ||
흑해 | ||
동아나톨리아 | }}}}}}}}} |
카라만 성채의 모습. 로마시대 원형극장 유적의 기반을 이용해 세워져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어, 영어: Karaman.
1. 개요
터키 중남부 카라만 도의 중심지. 콘야에서 남쪽으로 80km,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200km, 아다나에서 서쪽으로 170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약 20만명이다. 과거 카라만 후국의 수도였고, 그로부터 지명이 유래하였다. 지금도 당시 건축물이 상당수 남아있다. 시가지 동부에는 카라만오을루 메흐메트 베이 대학교가 있고, 동북쪽 외곽에는 산업단지가 있다. 대체적으로 도시의 북쪽에는 농경지, 남쪽에는 황무지가 펼쳐진다. 시내의 볼거리로는 카라만 성채, 카라만 고고학 박물관, 악테케 모스크, 카라만 이브라힘 베이 모스크 & 영묘, 하투니예 마드라사 등이 있다.2. 역사
1382년에 세워진 하투니예 마드라사 | 카라만 왕조 시대에 지어진 성벽. 2개의 문과 40개의 성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일부만 잔존한다 |
옛 지명은 라란다(그리스어: Λάρανδα)였고 이사브리아 인들이 거주하였다. 이후 로마 제국에 속했다가 11세기 말엽 룸 셀주크령이 되었다. 1190년 3차 십자군을 이끈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가 지나갔다. 13세기 초에는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령이 되었으나 1256년 카라만 후국의 카라만오을루 메흐메트 베이가 점령하고 기존 라란다에서 왕가 이름인 카라만으로 개칭하였다. 1275년부터 도시는 카라만 후국의 수도가 되었다. 한편 그 무렵 수피 성직자 바하에딘 벨레드가 카라만에 정착하였다. 그는 게브헤르 하툰과 결혼하여 잘랄루딘 루미를 낳았는데, 후자는 멜라바 종단의 교주가 된다. 이후 루미의 가족은 콘야로 이주하지만, 게브헤르 하툰은 그 전에 카라만에서 사망하였다. 따라서 1370년 그녀를 기리는 악테케 모스크가 세워졌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에 정복된 이후로도 카라만은 남부 행정의 거점으로 중시되었다.
20세기 초까지 카라만인(καραμανλιδες)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특이하게도 정교회를 믿는 튀르크인들이었다. 이들의 언어는 튀르크어였지만 글자는 그리스 문자로 표기했고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차용어들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었는데 로잔 조약이후 모두 그리스인으로 간주되어 현재는 모두 그리스로 보내졌다. 하지만 여전히 카라만 터키어를 사용하는 마을들이 그리스에 남아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