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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동지중해의 세력도.
1. 개요
튀르키예어 : Karamanoğlu / Karamanoğulları, Karamanoğulları Beyliği영어 : karaman Dynasty
카라만 왕조 또는 카라만 베이라고 불리는데, 현재의 아나톨리아 반도 남부를 중심으로 한 왕조이다.
13~14세기동안 난립했던 튀르크계 국가들인 아나톨리아 베이국들 중 하나로, 당시 가장 세력이 강했던 베이국은 오스만이 아니라 이 카라만이었다. 그러나 발칸 반도로 진출하여 세력을 급성장시킨 오스만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여, 결국 오랜 충돌 끝에 오스만 제국에 흡수되고 만다.
현 튀르키예 카라만도 지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2. 역사
수도였던 카라만 (라렌데)의 성채
오스만과 마찬가지로 13세기 초엽 몽골 침공을 피해 아나톨리아로 이주한 튀르크 무슬림들이 세운 아나톨리아 베이국이다. 시조인 호자 사드렛틴과 누레 수피 베이 부자는 1230년경 캅카스의 아란 지역에서 시바스로 이주하였다. 1240년 룸 술탄국을 뒤흔든 바바 이스학의 반란 후 그들은 타르수스 산맥 서부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1243년 쾨세다으 전투 후의 혼란을 틈타 누레 수피 베이의 아들 케리멧틴 카라만 베이는 옛 룸 술탄 카이쿠바드 1세가 영지를 부여했다며 일대를 장악하는데 성공하였다. 13세기 중반 카라만 베이는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을 공격하여 해안을 장악하였다. 공격에 시달리다 못한 아르메니아 왕국은 일 칸국에 복속하고 그 보호 하에 연명할 수 있었다. 동시에 룸 술탄국의 내전에 개입한 카라만 베이는 1260년경 라렌데를 얻을 수 있었다.
1262년 카라만 베이의 사후 그를 계승한 솀셋틴 메흐메트 1세는 1277년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의 아나톨리아 원정 시에 그와 동맹하여 룸 셀주크의 수도 콘야를 기습 점령하고 꼭두각시 술탄을 옹립하였다. 그러나 일 칸국의 반격에 콘야를 버리고 도주하던 메흐메트는 몽골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하였다. (1278년) 비록 이로써 아나톨리아 중남부 방면의 팽창은 저지되었으나 카라만 조는 맘루크 술탄들의 지원을 받으며 사실상의 독립을 유지하였고, 14세기 초엽에도 기습적으로 콘야를 2차례 점령하였다.[1] 다만 일 칸국과 룸 셀주크가 붕괴된 후 카라만 조는 기어코 콘야를 점령하며 아나톨리아 남부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하였다. 그러던 14세기 중반 카라만 조는 신흥 오스만 조와 접경하고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오스만 조가 발칸에서 원정하면 (예를 들어 니코폴리스 전투) 카라만 조는 그 배후를 공격했는데, 이에 분노한 바예지트 1세가 두 차례에 걸친 원정에 나선 끝에 1398년에 1차로 멸망하였다.
1402년 앙카라 전투 후 티무르의 분열 정책에 따라 카라만 조는 부활하였고, 오스만 술탄국의 부흥을 경계하던 유럽 세력 및 백양 왕조와 연대하여 그에 맞섰다. 그러나 킬리키아를 공격한 맘루크 군에게 타르수스를 빼앗기고 콘야를 습격당하는 등 이미 국력은 쇠락한 상태였다. 1444년 바르나 전투 당시 반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술탄국이 십자군과 맞서던 틈에 카라만 군은 앙카라와 쿼타히야를 습격하였다. 역시 분노한 술탄 무라트 2세는 바르나 전투 후 아나톨리아로 귀환, 카라만 조의 공격을 이슬람에 대한 배신이라 선언하며 공격하였다. 겁에 질린 카라만 조의 이브라힘 베이는 모든 조건을 수락하고 오스만 술탄국의 제후국이 되었다. 이렇게 연명하던 카라만 조는 1470년경 우준 하산의 도움으로 자치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반격에 나선 메흐메트 2세가 오틀룩벨리 전투에서 승리하며 국운이
3. 국기
깃발이 특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현대 이슬람 국가들에 있어 공공의 적 수준인 이스라엘 국기와 유사하여 그렇다. 다만 다윗의 별은 솔로몬의 인장이라 하여 이슬람권에서도 전통적으로 썼던 상징이고, 북아프리카와 아나톨리아 일대에서는 장식으로 곧잘 활용되었다. 카라만 왕조 외에 잔다르, 테케 베이국 등도 다윗의 별을 국기에 사용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일반인이 봤을 때에는 과연 이슬람 왕조가 맞았는지 의심이 들만 하다.
[1] 두 차례 모두 일 칸국의 아나톨리아 총독에 의해 축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