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06:43:52

차카(반란자)

파일:차카 베이.jpg
이름 차카
(영어:Tzachas, 그리스어: Τζαχᾶς)
출생 미상
사망 1093년
직위 프로토빌리시모스
반란 대상 알렉시오스 1세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의 반란자. 알렉시오스 1세에게 지위를 잃게 되자 반란을 일으켜 오랫동안 항전했으나 사위였던 클르츠 아르슬란 1세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었다.

2. 생애

그에 대한 기록은 오직 안나 콤니니의 <알렉시아드>에서만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그는 원래 동로마 제국을 수시로 침범하던 투르크 약탈자였으나, 니키포로스 3세 시기에 동로마군에게 붙들린 뒤 귀순하여 프로토빌리시무스라는 칭호뫄 풍부한 선물을 받는 등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081년 알렉시오스 1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니키포로스 3세를 폐위한 뒤, 그는 지위를 상실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도망쳤다. 이후 스미르니의 투르크 에미르가 된 그는 1088년부터 동로마 제국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기독교를 신봉하는 장인들을 고용하여 1092년까지 상당한 규모의 함대를 건립했다.

그는 이 함대를 이끌고 포카이아와 레스보스, 사모스, 키오스, 로도스 섬을 잇달아 공략했다. 니키타스 카스타몬티스 장군이 이끄는 제국군 함대가 이를 막으려 했지만, 이들을 어렵지 않게 격파했다. 비슷한 시이에 니케아의 에미르 이불 카심이 비티니아와 니코미디아를 약탈하고 해적 선단을 조직하여 마르마라 해에 약탈을 자행했는데, 그도 이들과 협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로마 제국에 반기를 든 키프로스의 랍소마티스, 크레타의 카리키스와도 모종의 협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알렉시오스 1세는 키프로스와 크레타의 반란군을 가볍게 제압했고 이불 카심도 격퇴했지만, 그와의 전쟁에는 애를 먹었다.

스미르니에 이어 에페소스까지 공략한 뒤, 장차 제위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품었다. 1090년 또는 1091년 콘스탄티노스 달라시노스가 키오스 섬을 탈환하자, 자신을 황제라고 자칭하고 페체네그와 연합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협공하려 했다. 1092년 달라시노스와 요안니스 두카스가 이끄는 제국 해군이 레스보스 섬의 미틸렌 요새를 공격했다. 요새를 구하기 위해 출격하여 3개월간 해전을 벌였지만, 결국 요새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수비대가 귀환하도록 허락하는 조건으로 요새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스미르나로 귀환하던 중, 달라시노스가 기습 공격을 가해왔고, 투르크 함대는 큰 타격을 입었다.

1093년 봄, 일전의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함대를 재건한 뒤 마르마라 해의 아비도스 항구를 습격했다. 알렉시오스 1세는 룸 술탄국의 클르츠 아르슬란 1세에게 그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르슬란은 그의 딸 아이셰 하툰과 결혼했지만, 동로마 제국에 협조하기로 하고 그를 연회에 초대한 뒤 기회를 틈타 살해했다. 그 후 그의 아들이 스미르니를 여전히 점거했지만, 1097년 요안니스 두카스가 이끄는 동로마군에게 빼앗겼다.

오늘날 튀르키예 해군은 이 인물을 자신들의 시조로서 추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