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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7:55

대비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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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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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해숙
중전의 시어머니 / ‘극강’하신 상대 : 왕의 엄마
<colbgcolor=#574539><colcolor=#fff> 드라마 파일:tvN 로고.svg 토일 드라마 파일:슈룹 로고.png
신분 조선파일:조선 어기.svg 후궁[1]->조선파일:조선 어기.svg 왕비파일:왕비 오조룡보.png[2]->조선파일:조선 어기.svg 왕대비파일:왕비 오조룡보.png
가족 배우자 선대왕 이○[3]
며느리 임화령 외 여러 후궁들
아들 이호
손자 세자(사망), 성남대군, 무안대군, 계성대군, 일영대군외 후궁 소생들
손자며느리 민휘빈, 세자빈 윤씨(윤청하), 초월
증손자 원손
증손녀 율희군주[4], 아라현주[5]
사돈 병조판서 윤수광, 고씨부인[6], 영의정 황원형[7]

1. 개요2. 작중 행적3. 평가 및 특징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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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소개 : 서울대 보낸 엄마보다 위대한, 아들을 왕으로 만든 엄마. 제왕 육성 비법을 지닌 내명부 실세.

드라마 슈룹의 주요 등장인물.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진 최종보스이자 만악의 근원.

2.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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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재 왕세자의 권위가 흔들리게 된 상황의 큰 원흉이다. 세자와 중전의 권위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흔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내명부뿐만 아니라 왕실을 분열시키는 위험한 행위다. 시대착오 항목에서도 의성군과 같이 비판이 거론되고 있다. 세자를 독살했다는 의혹이 있다.

1화부터 임화령을 상대로 임화령의 자식들을 깎아내리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세자의 건강이 나빠지자 세자를 썩은 나무에 비유하며 세자가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고귀인에게 계성대군의 여장 취미에 관해서 전해받자, 고귀인에게 확실히 본 것이냐고 물었고, 고귀인이 확답을 내놓지 못하자 확실히 본 것이 아니라면 그 사실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사자후를 날린다.

그리고 곧바로 계성대군이 여장을 즐겼던 장소로 찾아가, 증거 자료들을 모두 확보한 뒤, 이호를 그곳으로 유인해 계성대군의 취미에 대해 폭로하고자 한다. 하지만 임화령이 그 전각을 불태워버린 덕에 증거는 모두 날아간 상태였다. 이후 대비는 임화령을 찾아가 반드시 계성대군의 추악함을 알리고 말겠다는 말을 하며, 그녀를 겁박한다.

중전 임화령이 폐비 윤씨를 찾아갔을 당시, 대비의 과거가 밝혀지게 되는데, 대비는 후궁이었던 조귀인 시절, 자신의 아들이었던 이호를 세자로 만들기 위해 황원형과 함께 역모를 꾸몄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이 때, 황원형은 다소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던 반면, 대비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역모도 성공하면 역사가 되는 법이라는 말을 하며 황원형을 부추긴다.

이후 세자의 건강이 악화되자 황원형이 대소신료들을 모두 동원해 세자를 폐할 것을 요구하였고, 대비 또한 이에 동조해 지금의 세자를 폐한 뒤, 택현을 통해 세자를 올리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호는 대비와 신료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때부터 조금씩 이호와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세자의 죽음 직후에는 황원형과 함께 임화령을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이 때, 황원형에게 탈탈 털린 임화령에게 임화령이 폐비 윤씨를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역적 폐비를 만난 사실을 인정하기 싫으면 외부 약재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라고 겁박한다.[8]

날이 갈수록 중전을 폐하라는 신하들의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하였고, 대비는 여전히 이를 이용하여 이호를 겁박하는데, 이 때, 대비가 뭐가 그리 무섭냐며 으름장을 놓는다. 대비의 말에 이호는 어마마마도 이 더럽혀진 용상도 모두 무섭다고 답하자 "너도 원했잖아!"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태인세자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이 때, 서통 왕자 시절의 이호는 혈통에 대한 열등감을 대비에게 털어놓았고, 이에 마음이 아팠던 대비는 태인세자를 살해하는 역모를 꾸미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 추국일 때, 황원형과 함께 임화령을 폐위시키려고 몰아가나, 임화령은 세자빈에게 누명을 씌웠고[9], 사건 자체는 세자빈과 원손을 폐서인으로 강등시키는 선에서 끝나게 된다.

이후 폐비 윤씨를 만난 사실을 인정한 임화령은 대비가 폐비 윤씨를 상대로 시전했던 인성질에 대한 이야기[10]까지 모두 전해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대비를 옥죄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임화령이 택현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화령에게 며느리인 세자빈까지 팽하고 자기만 살 심산이냐며 비꼰다. 그리고 택현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하자 그동안 황원형과 결탁하여 의성군을 밀어주려던 것과는 달리, 보검군을 따로 불러내어 보검군을 밀어줄 것을 약조한다.[11]

8화에선 왕자들의 택현 과정이 중점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별다른 비중은 없었다. 하지만 8화 마지막 부분에서 성남대군을 암살하려고 했던 배후가 대비였음이 밝혀지게 되면서 화령에게 협박을 받게 된다. 그와중에 화령에게 지지 않고 썩소를 날리는 것이 포인트. 이후 9화 예고편에서 기세가 기울어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이대로 무너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대사를 날리는 것이 포인트.

9화에서 화령이 준 천남성을 명목으로 임금의 추궁에서는 벗어나지만, 화령의 계략으로 영의정 • 황귀인 일파와 완전히 척을 지게 되고 강적을 또 하나 만들어버린다.

또 태소용의 순진함을 이용하여 도성 게시판에 성남대군이 임금의 친자가 아니라는 모함의 벽보를 붙이게 하며 태소용과 보검군을 단순히 밀어주는 게 아니라 이용해 먹을 계획이었음이 밝혀졌다.

10화에서는 임화령의 회상씬에서 잠깐 등장하는데, 성남대군이 상중에 임신한 아이였다는 이유로 갓난아기였던 성남대군을 궁 밖으로 내쫓아버린 적이 있었음이 밝혀진다.[12]

성남대군을 모함하는 벽보를 붙인 배후가 대비임을 알아차린 임화령이 대비전의 지밀상궁인 남상궁의 필체를 모방하여 계성대군의 거짓 유서를 쓴 뒤, 남상궁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리고 누명을 쓴 남상궁이 신상궁에게 얻어맞는 도중, 중궁전으로 찾아와 무슨 짓이냐고 따진다. 하지만 역으로 임화령에게 성남대군의 정통성에 흠집낸 것에 대해 트집을 잡힌다.

11화 초반부에서는 대비가 대놓고 태소용과 함께 보검군을 밀어주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황원형 일가의 모략으로 인해 의성군이 세자 경합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왕실 기록을 유출시켜 의성군의 범죄 행각들을 유생들에게 폭로한다.

왕실 기록 유출로 인해 유생들의 표심이 의성군을 버리고 보검군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황원형과 황숙원은 대비전으로 찾아와 자신들이 잘못했으니 제발 의성군을 밀어달라며 도게자를 시전한다. 황원형과 황숙원이 대비전을 떠나자 곧바로 태소용과 보검군을 불러들여 세자 경합을 포기하게끔 유도한다. 태소용 모자가 납득하지 못하며 항변하는 모습을 보이자, 태소용에게는 이전에 한 약조[13]를 언급하며 자신의 명령을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하고. 보검군이 자신이 왜 왕세자가 될 수 없냐며 항변하자 곧바로 정색을 하며 "넌 처음부터 왕세자로 세울 마음 따윈 없었어ㅋ"라는 말로 보검군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이후, 대비의 회상에 의해 대비가 의성군을 세자로 밀어주려던 이유가 밝혀지게 되는데, 황원형과 황숙원이 대비에게 의성군을 세자로 밀어준다면 육조의 인사권에 관련된 권한내명부 인사권에 관련된 권한 모두를 갖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웠고, 어마무시한 권력을 갖기 위해 태소용 모자를 팽하고 황원형 일가를 밀어주게 된 것이다.[14]

이후 성남대군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문제가 터지자 이호의 자식들과 함께 불려나오게 된다. 임화령이 이호의 귓볼 뒷편의 돌기는 이호의 자식들에게 유전되는 중요한 신체적 특징임을 언급하며 대비에게 성남대군을 포함한 다른 대군들과 기타 군들까지 모두 확인해보라고 요구한다. 이에 자신이 직접 성남대군의 귓볼 뒷편에 돌기가 있음을 확인시켜주는가 한편, 의성군의 귓볼 뒷편을 확인하자 잠깐 멈칫하더니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버린다. 하지만 곧바로 의성군의 귓볼 뒷편에도 돌기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왕자들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문제를 마무리 짓는다.[15]

성남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오른 날 곧바로 대비전을 찾아가 당찬 포부를 밝히며 문후를 여쭙자, 가장 싫어하던 손자가 세자가 된 것이 어지간히 아니꼬웠는지 웃는 표정으로 엄청나게 살벌한 기싸움을 벌인다(...). 왕세자의 상징인 사조룡과 임금의 상징인 오조룡을 들먹이며 발톱 하나의 차이지만 끝내 그 발톱 하나를 얻지 못하고 스러져간 인물들이 꽤 많다면서, 은유적으로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 인물들이 많다는 것을 언급하며 전임 세자와 태인세자에 대한 간접적인 고인드립을 치는 건 덤. 세자가 자리를 떠나자 황귀인을 접견하게 되는데, 출궁을 앞둔 의성군에게 출생의 비밀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앞으로 잘 지켜보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윤수광에게 가문의 여식들 중 한명을 세자빈으로 간택하겠다는 명목으로 윤수광의 집에 찾아와 그의 차녀, 삼녀와 접견하게 된다. 그러다 만월도에서 만난 성남대군이 이번에 세자에 오른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된 윤청하가 윤수광에게 세자빈 간택에 참여시켜 달라고 떼를 쓰자 세자를 견제할만한 최악의 신부감으로 여겨 청하를 세자빈으로 간택 후보로 정하게 된다.

윤수광이 곧바로 청하를 세자빈으로 올리려는 목적이 현 세자를 끌어내리려는 것 아니냐고 따지자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병판께서는 남은 여식들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남은 여식들이 있으니 그 때 다시 도전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다. 당연히 윤수광은 그동안 수족으로서 충성을 다해왔음에도 자신의 딸마저 쓰고 버릴 장기말로 대하는 대비에게 반감을 갖게 되고, 결국 자신이 성남대군의 방패막이 되어준다면 본인도 청하의 방패막이 되어주겠다고 설득하는 임화령에게 감화되어 그녀를 지지하게 된다.

이후 세자빈 간택에서 임화령이 청하에게 의도적으로 유리한 질문을 던지자, 불리한 질문인 줄 알고 트집을 잡으면서도 딱히 반대는 하지 않는다.

14화에서 세자가 된 성남대군의성군을 동시에 견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15화에서는 권의관의 진짜 정체가 이익현이며 의성군 또한 그의 친자고 이제껏 이호의 아들로 탁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불쾌해하며 이익현을 모살한다. 그 방법이 참으로 비정한데 의성군이 이익현의 아들임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이익현을 직접 죽이는 것만이 주상에게 용서받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득해서 의성군이 본인의 손으로 생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게 만들었다. 정작 조정 내에서 의성군을 죽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을 때 의성군을 전혀 보호해주지 않는다. 즉, 보검군과 태소용 모자 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의성군을 이용하고 버린 것. 오히려 모든 혐의를 의성군에게 뒤집어 씌우고 여차하면 이익현과 관련된 출생의 비밀까지 폭로하여, 의성군과 황귀인 모자를 나란히 역모죄로 죽여서 자신의 개입이나 의심받을 만한 고리를 싹 끊어버리려고 한 듯.

16화에서는 결국 태인세자 독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몰락하고, 아들 이호에게마저 버림받아 대비전에 유폐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고 그 누구도 자신을 벌할 순 없다며 조선 왕비가 가례를 치를 때 입는 적의와 대수머리를 쓰고 자결하여 자신의 처소에서 앉아있는 채로 숨을 거둔다.

여기서 사실 대비는 후궁 출신에서 왕대비가 된 것이 아니라 윤씨기 폐위된 후, 계비로 낙점되어 선왕과 가례를 치렀지만 국혼 하루만에 부군이 죽어버린 일일왕비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임화령을 그토록 싫어한 이유도 공식적인 절차상으로는 왕비에서 왕대비까지 된 왕실의 최고 어른이 맞지만 정작 왕비로서의 삶과 권위는 단 하루밖에 누리지 못했고 자신을 향한 주변의 시선도 여전히 후궁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런 자신과 정반대로 처음부터 이호의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이후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르면서 왕가로 시집온 내명부 여인의 적통 루트를 그대로 따른 화령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이 매우 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16][17]

3. 평가 및 특징

▮ 내 아들이 왕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이라고는 허락되지 않는 얼음장 눈빛과 본새. 아직도 들끓는 자식에 대한 욕망과 열정!! 여전히 외모를 가꾸는, 때로는 중전보다 더 주목 받고픈 여인. 아들 사랑은 지극하지만, 며느리에겐 매우 엄격하다. 그녀의 자랑은 왕, 성군이라 칭송 받는 나의 아들, 아들임에도 존경스러운 그! 손자들보다 내 아들이 최고!!

▮ 반전엔 반전으로 맞서는 여자.
한 번 해봤는데 두 번은 못 하겠는가?

갑작스런 궁중의 정세변동. 역시나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대비. 곧장 태세를 바꿔 나만의 빅 픽처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기회에 눈엣가시인 중전과 애물단지 대군들을 몰아내리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기 시작한다... 내 아들의 나라를 더 굳건하게 만들고 말 거다!

한 번 해봤는데 두 번은 못 하겠는가?

겉으로는 조선과 왕실을 사랑하는 자애로운 대비 마마이지만 실체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혈육부터 자신이 속한 왕실마저 무너뜨리고도 남는 이 드라마 최고의 악녀. 슈룹의 다른 악인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정당한 이유가 있거나 변호해줄 면모라도 있지만 대비만큼은 그럴 변명거리마저 전혀 없을 정도로 진정한 악인이자 최종 빌런이라고 볼 수 있다. 음모를 꾸미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그런 행동을 저지르는 사고 방식의 근간은 “그냥 중전인 임화령이 싫고 그녀가 낳은 자신의 손자들인 대군들도 싫다.”라는 비합리적이고 치졸하기 그지없는 이유 때문이다. 정작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자행하는 음모와 악행마저 자신의 권력 유지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다.

일단 자신이 살해하려고 했던 성남대군계성대군은 아들 이호의 혈통을 물려받은 친손자로 직계후손인지라 두 사람의 입지가 강해지면 효를 극도로 중시하는 조선 사회상 대비의 입지 역시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질 일은 없다. 그러나 대비는 작중 내내 아들이자 임금인 이호와 더불어 자신의 지지 기반이 될 수 있는 반석을 스스로 무너트리려 하는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만일 이호가 대비의 친자가 아니라 양자였다던가 성남대군과 계성대군이 이호의 친자가 아니라 양자였다면 이러한 행적이 좀 더 합리적으로 보였을테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일부 시청자들은 아예 작가진이 대비 조씨가 노화 내지 치매 때문에 판단력이 떨어진 것을 의도적으로 묘사한 게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한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황원형이 대비를 보고 “노욕이 지나치면 추해진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다만 위의 주장은 드라마의 상황을 제대로 보면 그리 말할 수 없는 게 이호의 혈통을 물려받은 대비의 친손자가 왕이 된다고 해서 대비의 지지기반이 더욱 굳건해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대비가 궁 내에서 파워가 막강하긴 하지만 중전 임화령 소생의 대군들이 할머니와 어머니가 대립했을 때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답이 뻔히 나온다. 당장 임화령 소생의 손자들을 다 싫어하는 대비도 인정하고 아끼는 세자조차 친모인 임화령에게 지극정성을 다한다. 게다가 후궁 소생의 서자로 정통성과 지지기반이 미약해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성군과는 달리, 대군들은 임금 다음의 힘을 가진 중전을 친모로 둔데다 그 중전도 멀쩡히 살아있기에 대비에게 의존할 이유도 없고 그녀의 권력에 휘둘릴 이유도 없다.[18][19]

게다가 모든 왕자들을 통틀어 세자 다음으로 높은 존재이자 대군들 중에는 서열 1위인 성남대군은 애초에 성격 자체가 누군가를 쉽게 맹목적으로 따르는 성격이 아니기에 대비의 사람이 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임화령 소생의 대군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화령에 대한 악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입맞에 따라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싫어하고 경계하는 것에 가깝다.

아들 이호에 대한 사랑도 공식 소개가 무색하게 많이 의문스럽다. 누가 보더라도 왕권이 약화되는 일(세자 폐위, 세자 경합, 가족관계 증명 등)에 스스로 앞장서며 화룡점정을 찍어 주거나, 본인이 직접 정승판서를 거머쥘 욕심을 내비치는 등, 나라의 기강이 흔들릴만한 일들만 골라서 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속내를 대놓고 발설하고 암투 과정에 있어 지원세력을 밥먹듯이 배신하며 갈아타는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여 대비와 손을 잡으려는 이들에게 되려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하는 의심만 심는다. 즉, 평판이나 신뢰가 단 한 톨도 쌓지 못하는 인물. 여러모로 적대세력의 사람마저 인품과 선행으로 감화시켜 아군으로 만드는 임화령과 정반대된다. 이렇게 되면 여차저차해서 대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도 결국 그녀 손에 쥐어지는 건 허울 뿐이 되는데 이런 점을 미루어 보면 음모를 꾸미는 데만 능하지 그 이후의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도 않아 보인다.

대비가 왜 이런 행보를 보이는지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드라마가 연출을 잘 못했을 뿐 대비의 행동 원리에 대해서는 꾸준히 이야기가 나왔다. 대비가 중전 임화령을 싫어한 이유는 자신이 중전이였을 적 내명부를 한번도 관리해보지 못한 열등감과 화령이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는 불만감 때문이였다. 일부는 대비가 화령의 장남 왕세자를 죽였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비는 중전에게 유일하게 볼만했던 게 왕세자라고 했던만큼 자신의 장손인 왕세자에게는 별 다른 감정이 없었다. 와병 중인 왕세자를 이용해 중전을 압박하려고 했을 뿐 죽일 생각은 없었으며 왕세자를 죽인 건 복수에 눈이 먼 권의관이었다.

대비가 세자를 제외한 중전 소생의 대군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초반에 확실하게 나오는데 그들이 하나같이 사고뭉치들로 궁 내에서 유명한데다 그중 한 놈은 자신에게 뻑하면 대들고 있으니 궁중 법도를 중요시 여기는 대비 입장에선 안그래도 싫어하는 중전의 자식들이 허구헌날 사고만 치고 다닌다고 여겨 좋아할 수가 없었다. 대비는 작중 내내 꾸준히 내정에 간섭하며 아들이자 임금인 이호에게 호통을 치는데 그만큼 권력욕이 강하다는 의미이니, 장손인 왕세자가 죽은 김에 자기에게 고분고분하게 굴 인물을 새 왕세자로 세워 궁중 전체를 장악하고자 중전 세력을 공격한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대비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휘두른 케이스가 존재하는 만큼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대비의 모습이 그리 이상한 건 아니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정통성이 누구보다 뛰어나고 본인한테도 효를 다한 장손자인 세자를 병이 났다고 냉정하게 바로 내치려하고, 증장손자인 원손조차 위협할정도로 실제 역사에서의 대비[20]보다 더 악독한 것도 사실인지라 평면적 악역에 더 가깝기도 하다.

4. 여담


[1] 종1품 귀인[2]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직후, 바로 임금이 승하해 왕비 역할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였다.[3] 국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는 상국에 보내는 국서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사용해서는 안 되었고, 이를 왕 또한 알고 있었기에 일상생활에서 절대 쓰일 일 없는 한자 하나만을 택하여 썼다.[4] 4-5화 기준 세자빈 민씨가 둘째인 딸을 낳았으며, 왕세자의 적통 딸, 즉 세자빈이 낳은 딸을 군주라고 한다. 또한 왕세자의 후궁이 낳은 딸은 현주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사도세자와 세자빈인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낳은 두 딸들이자 정조의 여동생들인 청연군주, 청선군주가 있다.[5] 작중에서 화령이 아라현주라고 언급한다. 조선 초기 ~ 중기까지 현주는 왕세자의 서녀나 대군의 적서녀를 뜻하는 말이었고, 이후 대군의 딸은 향주로 개칭되었다.[6] 12회 기준으로 세자가 된 손자 성남대군의 장인과 장모.[7] 아들 이호의 장인.[8] 이때, 경악한 임화령이 자신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대비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난 네가 중전인 게 싫거든?"이라는 말을 남기는데, 배우 김해숙의 연기와 역광을 이용하여 배우의 얼굴을 다소 어둡게 한 연출 덕에 대비의 사악함과 섬뜩함이 배로 느껴진다.[9] 사실 이는 임화령이 세자빈과 미리 출궁을 조건으로 거래를 한 계획이었다. 세자빈은 이미 세자의 죽음 이후 원손의 건강마저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에 궁궐 자체에 대해 두려움과 환멸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만두에 독이 들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원손과 함께 출궁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임화령의 앞에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세자빈은 외부 약재와 관련된 사실에 대한 누명을 쓰는 대신 폐서인으로 강등되는 것을 통해 원손과 함께 출궁하는 것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룬 것. 뿐만 아니라 화령의 덕에 안전한 장소로 피신하는 것까지 완벽히 성공한 상태였다.[10] 폐비 윤씨가 중전의 자리에서 폐위된 이후, 귀양을 갈 당시에 폐비 윤씨에게 "내가 니 아들을 죽였어. 그런데 증거 있어?ㅋ"라고 귓속말을 남겼다고 한다.[11] 이로 인해 의성군은 택현을 통해서도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게 되었다.[12] 이때 제 아이를 돌려달라고 울부짖는 화령에게 "태어나서는 안될 아이였습니다. 세상에 없는 아이였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가관.[13] 대비는 견제 도구를 만들기 위해 태소용을 불러들여 왕실 교육법이 적힌 서책을 보여주며, 서책을 넘겨주는 대신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때, 태소용은 자신의 아들인 보검군을 세자로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대비의 조건을 무작정 받아들였던 것.[14] 내명부의 인사권이야 원래는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왕실의 웃어른이자 중전의 시어머니가 되는 대비가 인사권에 첨언하거나 간섭하는 건 별로 이상할 게 없는 부분이나 육조에 대한 인사권은 이야기가 다르다. 한 예로 고려 시기의 천추태후나 조선 시기의 문정왕후 역시 왕의 모후이자 왕실 최고어른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자기 측근의 세를 키워 정권을 좌지우지 하는 방식을 사용했지 직접적인 인사권을 직접 가지진 않았다. 즉, 극 중에서 대비가 의성군을 밀어주는 조건으로 육조의 인사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왕의 권력' 중 일부를 대비가 직접 쥐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유학을 숭상하는 조선에서는 '대역무도'에 해당되며 아무리 영의정 가문과 결탁했다 해도 다른 종친들과 대신들, 그리고 유생들이 가만 두고 볼 리가 없다. 이러한 점은 이 드라마가 비록 가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대 배경이 조선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얼마나 사실성이 떨어지게 묘사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는 중국에서나 가능한 설정이다. 중국에선 실제로 태후가 육조의 권한을 가지는 것을 넘어서, 황제를 끌어내리고 본인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사례까지 있다. 이 드라마에 중국 냄새가 나는 것이 한둘이 아니라 문화공정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고, 대비가 육조의 권한을 가지려는 것도 이 논란과 일맥상통하다.[15] 이때 대비는 의성군이 이호의 친자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자신의 손주들을 손쉽게 죽이려 들고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대비의 성향상 의성군에 대한 동정심은 절대 아니고 황숙원의 약점으로 쥐고 후일 황씨 일가와 틀어질 경우 써먹기 위해 덮어두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16] 중국에서는 성모황태후라는 작호로 황제의 친모를 황태후로 책봉했고 고려 역시 국왕의 친모에게 태후의 작호를 올렸으나 조선의 왕대비는 현 왕의 생모가 아니라 오로지 선왕의 정실 왕후만이 중전 자리를 며느리에게 물려준 후 오르는 자리이다. 인수대비 역시 성종의 생모라서가 아니라 남편인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었기 때문에 대비 자리에 오른 것이다. 역사나 내명부 계급에 대해 아는 사람은 대비가 왜 저렇게 중전에게 열폭하는 것인지 이상하게 여겼을 텐데(현 대비가 중전업무는 안해봐서 모른다고 하는 상황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우므로) 마지막 화에 떡밥을 회수한 것이다.[17] 다만 화령에 대한 열등감은 화령이 세자빈 시절 아직 그 당시 선왕의 왕비이자 세자시절의 이호의 법적인 어머니였던 윤왕후만 자신의 시어머니로 떠받들고 아직 후궁이었던 대비를 생까기도 한 탓에 생긴 것으로도 보인다.[18] 작중에 대비 조씨처럼 불안정하게 왕대비가 된 경우는 대왕대비까지 되지 않는한 권력이 무소불위 급이 아니며 엄청난 견제 대상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현종의 어머니 인선왕후 장씨는 조선왕실에 몇 안되는 임금의 생모+대비의 지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인 효종의 정통성이 불안정하여 조정 대신들의 견제로 정치적으로 거의 나서지를 못했다. 며느리인 명성왕후조차 중전 시절에는 똑같은 이유로 정치적으로 못 나서다가 왕대비가 되고, 자신의 시어머니 인선왕후가 사망한 상태였기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19] 게다가 대비 조씨는 나이도 많은데 중년인 자신의 아들은 아직 건강하기에 조선 왕실 여인의 최고 지위인 대왕대비까지 오르는 건 매우 어렵다.[20] 실제 역사의 대비들은 적어도 본인의 핏줄이 섞여있으면 아무리 권력욕이 강하더라도 아끼곤 했다. 권력의 화신이자 아들인 명종을 사적으로도 어느정도 압박한 행적이 보이는 문정왕후조차 손자이자 적장자이자 세자인 순회세자를 예뻐했다. 실제로도 순회세자가 죽은지 불과 1년 뒤에 문정왕후도 그 충격도 받은 상황에서 불공을 무리하게 하다가 더 몸이 쇠약해져 사망한 것이다.[21] 소용 조씨는 소현세자를 독살하는데 가담했으며 이후 소현세자의 가족들인 민회빈 강씨와 원손까지 죽이는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대비는 태인세자를 죽인 뒤 폐비 윤씨와 절름발이 아들 한 명을 남겨두고 윤씨의 자식들을 모두 죽였다.[22] 다만 대비와는 달리 귀인 조씨는 인조의 두 중전을 몰아내거나 폐위시킨 적은 없다. 인조의 정비 인열왕후는 폐위도 독살도 뭣도 아닌 산후통으로 병사했고 계비 장렬왕후는 인조의 총애도 못 받고, 병치레 때문에 경희궁에 살며 사실상 별거하긴 했지만 중전 자리를 무사히 지켜 대왕대비까지 되었다.[23] 실제 역사의 귀인 조씨는 장남 숭선군의 아내 영풍군부인 신씨가 장렬왕후의 조카라는 이유로 탐탁지 않아 해서 딸 효명옹주의 여종인 영이를 숭선군의 첩으로 들였는데 영풍군부인이 이모인 장렬왕후에게 이에 대해 하소연했고, 분노한 장렬왕후가 영이를 문초하자 지레 겁을 먹은 영이가 귀인 조씨와 효명옹주가 장렬왕후와 효종을 저주한다고 자백하면서 대대적인 수사가 이어졌고 결국 조씨는 폐서인이 된 뒤 자살했고 그녀의 자식들도 죄다 폐서인이 되어 유배를 갔다. 슈룹의 대비 조씨도 며느리인 임화령을 시시때때로 괴롭히며 그녀의 아들들까지 위협하다가 그대로 역풍을 맞아 완전히 몰락해서 자살했다.[24]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면 소용 조씨가 왕위에 오른 봉림대군에 의해 목숨까지 잃었듯이, 대비 또한 성남대군의 손에 의해 몰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25] 또한 후궁 출신으로 다수의 자손들이 조선 왕실의 대를 잇게 된 점은 인빈 김씨와도 닮았다.[26] 다만 옹주들에 한해서는 왕실 예법을 엄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영조의 딸들 중 한명인 화유옹주가 좁은 방에서 의도치 않게 상석에 앉자 인원왕후가 엄하게 지적하였고, 손자며느리인 혜경궁 홍씨도 인원왕후에 대해 한중록에서 "궁중 예법을 잘 지킨 사람"이라고 적었다.[27] 만약 영조가 인원왕후보다 먼저 사망했더라면 사도세자의 정신건강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왕 역할도 어느정도 가능하거나 그게 안되더라도 비참하게 죽지않고 아들인 정조에게 자리를 물려주어 상왕 노릇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인원왕후는 당시로서는 매우 장수한 70대의 나이로 사망했고 그때 당시의 영조도 이미 언제 죽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었으며 현대 기준으로도 단명 내지 요절은 아니기 때문에 이 기대가 무리는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영조는 그런 인원왕후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도 인원왕후 사후에도 사도세자를 계속 괴롭혔고 이는 임오화변으로 이어진다.[28] 후궁 소생의 서손자들도 이용하다가 쓸모없으면 버리는 장기말로 취급하고 적자인 세자와 대군들도 경멸하며 적증손자인 원손의 권위와 목숨까지 짓밟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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