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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21:18:51

뉴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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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뉴리더.jpg
다케시타 노보루 아베 신타로 미야자와 기이치


1. 개요

(ニューリーダー)는 다나카 가쿠에이 시대가 저문 80년대 중후반,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 말기에 그의 총리, 총재 자리를 노렸던 다케시타 노보루, 미야자와 기이치, 아베 신타로 3명과 그들의 측근들을 일컷는 말이다. 정치권에서는 그리스어로 '새로운'이라는 뜻을 가진 '네오'를 붙여 네오 뉴리더(ネオ·ニューリーダー)라고도 불린다.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이 수립되면서 삼각대복중[1]이 자민당 내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다케시타, 아베, 고사카 도쿠사부로 등은 이미 장래의 총재 후보로 꼽혀왔는데 이들을 당시 안치쿠쇼(安竹小)라고 불렀다. 하지만 고사카는 목요회(다나카파) 소속이긴 했어도 무파벌 출신이었으며 운수대신을 역임할 때 국철 개혁의 일환인 국철분할민영화에 소극적이란 이유로 도코 도시오 등 재계로부터의 지원을 잃었다. 특히 국철분할민영화는 나카소네가 추진했던 것인데 고사카가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나카소네의 분노를 샀고 정계에서의 영향력도 함께 줄어들었다. 결국 고사카를 대신하여 스즈키 젠코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지낸 미야자와가 뉴리더로 불리게 되었고 안치쿠쇼도 안치쿠구로 대체되었다.

1987년 나카소네가 총재직에서 물러날 당시 다케시타, 미야자와, 아베는 이미 파벌을 계승받은 명실상부한 차기 리더로 자리잡았으며 나카소네를 뒤를 이을 후임 총재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도 뉴리더 세 명뿐이었다. 하지만 도량이 작다, 세 명 사이에 두드러진 차이가 없다라며 삼각대복중과 자주 비교되곤 했다. 이토 마사요시는 뉴리더를 긴타로 아메(金太郎飴)[2]에 비유했으며 고토다 마사하루는 "다케시타는 총재 100점·총리 0점, 미야자와는 총재 0점·총리 100점, 아베는 총재 50점·총리 50점"이라며 다소 빈정거리며 평했다.

2. 주요 인물

2.1. 다케시타파

2.2. 미야자와파

2.3. 아베파

2.4. 그 외

2.4.1. 나카소네파

2.4.2. 고모토파

3. 여담


[1] 다나카 가쿠에이, 후쿠다 다케오, 미키 다케오, 오히라 마사요시, 나카소네 야스히로[2] 어디를 잘라도 똑같은 모습이 나오는 일본의 전통 사탕이다. # 즉 뉴리더 3명 모두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고 애둘러 얘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