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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8 12:57:52

노르망디-니에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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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0000> 노르망디-니에멘 전투비행연대
Régiment de Chasse Normandie-Niémen[1]
Нормандия-Неман[2]
파일:노르망디-니에멘 엠블럼.svg
창설일 1942년
소속 프랑스 항공우주군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
위치 몽 드 마르산 기지

1. 개요2. 역사
2.1. 프랑스는 모든 곳에서 싸운다2.2. 이국 땅에서의 실전2.3. 영광의 개선
3. 상징
3.1. 도색3.2. 군복
4.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 목록5. 운용 기종6. 전후
6.1. 프랑스6.2. 소련/러시아
7. 여담8.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파일:Normandy-Niemen.jpg
노르망디-니에멘 연대 단체 사진

독소전쟁 당시 자유 프랑스 소속으로 소련 공군에 편입되어 독일 공군과 싸운 전투기 부대이다. 제2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에서 소련 공군과 공동 작전을 펼치며 여러 격전지에서 눈에 띄게 활약했다. 소속은 소련 공군이 아닌 자유 프랑스 공군의 전투비행대대였으며, 후에 지휘 통제상의 편의를 위해 소련 공군식으로 전투비행연대로 재편성되었다. 노르망디-니에멘은 영국 공군의 제151비행단[3]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싸운 서방 연합국 2개 부대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제151비행단과 달리 유럽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련군과 함께 싸운 유일한 공군 부대였다.

2. 역사

2.1. 프랑스는 모든 곳에서 싸운다

프랑스 항복 이후, 자유 프랑스군의 지도자가 된 샤를 드골 장군은 프랑스 군인이 모든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노르망디 전투비행대대를 편성해 소련에 원조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4] 자유 프랑스군은 1942년 3월에 나치 독일의 거센 공세를 힙겹게 막아내고 있던 소련 정부에 자유 프랑스군 소속 조종사와 정비병으로 구성된 비행부대를 파견하게 해줄 것을 제안했지만,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곧 전황이 더욱 어려워져 비행기를 몰 수 있다고 한다면 조종사로 징집해서 최전선에 내보낼 지경이 되자, 파일럿들이라면 잡히는 대로 써야하던 소련은 드골의 요청을 떠올리고는 11월 25일에 협정을 조인하고 곧바로 부대 편성에 들어갔다.

1차 파견 병력은 프랑스인 출신의 전투기 조종사는 14명 뿐이었고 정비사가 52명이어서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초대 지휘관 장 튤란 소령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공군의 제3전투비행대대(Groupe de Chasse 3)로 조직되어 1943년 3월 22일부터 1945년 5월 9일까지 소련 공군 소속으로 강력한 독일 공군을 비롯한 추축군 조종사들과 싸웠다. 부대의 명칭은 프랑스 행정구역의 이름을 딴다는 원칙에 따라 '노르망디'로 정해졌다.[5]

이들은 추축군의 점령지를 피해서 머나먼 소련까지 가기 위해 시리아와 이란을 거쳐 11월 28일에야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이바노보 비행장에 도착했고 12월 4일에 부대 편성이 완료되었으나 소련이 제공한 야크 전투기 등의 숙달과 훈련을 위해 바로 전투에 나설 수는 없었다.
노르망디 부대 1기 조종사 14명
<colbgcolor=#fff,#191919> 이름 생몰일 비고
1 이브 비지앵 1920.11.30 - 1943.4.13 실종
2 레몽 데르비유 1914.2.27 - 1943.4.13 실종
3 앙드레 포즈난스키 1921.6.30 - 1943.4.13 전사
4 노엘 카스텔랭 1917. 5.30 - 1943.7.16 실종
5 알베르 리톨프 1911.10.31 - 1943.7.16 부지휘관
전사
6 장 튤란 1912.11.27 - 1943.7.17 지휘관
실종
7 알베르 프레지오시 1915.7.25 - 1943.7.28 실종
8 알베르 듀랑 1918.9.16 - 1943.9.1 실종
9 마르셀 르페브르 1918.3.17 - 1944.6.5 소비에트 연방 영웅[6]
10 디디에 베강 1918.12.14 - 1944.11.26
11 이브 마에 1919.11.21 - 1962.3.29 격추되어 포로로 잡힘
12 조제프 리소 1920.1.23 - 2005.11.24
13 마르셀 알베르 1917.11.25 - 2010.8.23 소비에트 연방 영웅
14 롤랑 드 라 푸아프 1920.7.28 - 2012.10.23 소비에트 연방 영웅

2.2. 이국 땅에서의 실전

야크 숙달을 마친 노르망디 부대는 마침내 1943년 3월 22일 제204폭격항공사단 소속으로 전선에 배치되어 폭격기 호위 임무등을 하며 실전 연습을 했다.

이후 본격적인 전투 임무를 위해 1943년 4월 소련 제1항공군 제303전투항공사단 제18근위전투항공연대에 소속되어 임무를 시작다다. 원래부터 제303전투항공사단 휘하에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해빙 때문에 비행장 상태가 엉망이라 당장 외국인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단장 자하로프의 판단에 따라 ‘적응 기간’ 명목으로 제204폭격항공사단과 함께 주둔했다. 그러나 폭격기와 전투기가 함께 비행장에 있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폭격기들은 전투기보다 후방에 머무르기 때문에 임무를 위해 전선으로 노르망디 대원들이 연료 부족으로 비행장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추락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게다가 거리 때문에 제303사단의 전투기 조종사들과 교류하고 전술을 논의하기도 어려웠다. 얼마 후, 제1항공군 사령관 후댜코프가 자하로프에게 노르망디 대원들을 다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4월 5일에 영광스러운 첫 격추 기록을 세우지만 불과 8일 뒤인 4월 13일 조종사 3명이 한꺼번에 전사하면서 손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1943년 7월에 2차 파견 병력이 도착해 인원이 늘어 노르망디는 7월 5일 제303전투항공사단의 제1독립전투항공연대 '노르망디'로 독립했다. 노르망디의 주요 도시 루앙, 르아브르의 이름을 따 2개 비행대대가 편제되었다.[7]

동시에 7월부터 쿠르스크 전투가 시작됐고 제303전투항공사단도 쿠르스크 전투에 참여해 밤낮없이 출격하게 된다. 독소전쟁의 흐름을 바꾼 격렬한 전투였던 만큼 공군도 쉴틈없이 싸웠고, 노르망디 연대도 4일동안 112회 출격 횟수를 기록할만큼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끝도 없이 출격했다. 연료와 탄약이 떨어지면 돌아왔다가 보충되자마자 몇분만에 다시 출격하는 지옥의 뺑뺑이였다.

덕분에 빠르게 격추 전과도 쌓았지만, 7월 16일에 알베르 리톨프, 노엘 카스텔랭, 아드리앵 베르나봉이 돌아오지 못했다. 지휘관 튤란 소령은 친구들을 위해 복수할 생각으로 다음날 새벽부터 쉬지 않고 출격을 감행했다.[8] 그날의 다섯 번째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제18근위연대가 여섯 번째로 출격했다는 연락을 받은 튤란은 우리도 출격해야 한다고 짧은 재정비 후 비행기에 올라 대원들을 이끌었다. 하지만 튤란은 교전 중 실종되었고, 2차 파견 병력과 함께 와서 부지휘관을 지내던 피에르 푸야드 소령이 지휘관 자리를 이어받았다.

튤란의 전사 소식을 들은 사단장 자하로프는 노르망디 연대를 방문해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며 앞으로 노르망디 특유의 개별 전투는 그만두고 협동 공격을 하라고 다그쳤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골치 아프던 루프트바페를 상대로 괄목할 만한 무공을 세우고 있던 노르망디 연대의 전과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특히 연대가 1944년 네만(Neman) 강 도하 작전에서 [9] 큰 전과를 올리자 이를 기념해 이 강을 지칭하는 네만(프랑스어로는 니에멘/Niémen)을 연대 이름 뒤에 붙이도록 했다. 그렇게 1944년 11월 28일 노르망디 연대는 노르망디-니에멘 연대로 개칭되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프랑스 파일럿들이 소련군에 편입되어 동부전선에 참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이들이 포로로 잡히면 전쟁포로로 인정하지 말고 즉시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2.3. 영광의 개선

독소전쟁동안 총 96명의 프랑스 조종사들이 노르망디 연대에 소속됐고 이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42명이 전사했다.

마르셀 알베르(23기 격추)와 마르셀 르페브르(14기 격추), 자크 앙드레(17기 격추), 롤랑 드 라 푸아프(18기 격추) 4명의 에이스 파일럿들은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과 혁혁한 무공으로 프랑스인 최초로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 되었다. 이 부대는 브랸스크, 오룔, 엘리니야, 스몰렌스크, 쾨니히스베르크와 같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에서 종군하면서 전투 명예훈장과 적기 훈장이 여럿 수여되었다. 프랑스로부터는 레종 도뇌르 훈장, 끌로드 라 리베라시옹 훈장을 비롯한 6개의 훈장을 서훈받았다.

노르망디-니에멘은 종전을 맞이할 때까지 확인 격추 273대 / 미확인 격추 37대의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지만 87대의 기체를 잃고 42명의 조종사가 전사했다. 합계 출격 횟수는 5,240회로 그중에서 869회의 공중전을 치르었으며 30명이 에이스 칭호를 얻었으나 그중에서도 전사자는 있었다. 이들은 공중전에서 거둔 전과 외에도 27량의 열차, 22량의 기관차, 2척의 고속정, 132대의 트럭, 24대의 장갑 차량을 격파했다.

스탈린은 러시아 땅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프랑스 파일럿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이들이 몰았던 Yak-3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들은 러시아를 출발해 돌아가서 그대로 편제를 유지한 채 프랑스 공군으로 다시 편입되어 계속 부대의 전통을 이어갔다. 본국으로 돌아올 때 우정의 증표로 주어진 Yak-3 전투기는 프랑스 공군에서 10개월간 더 현역으로 쓰이다가 모두 퇴역했다. 그중에 한 대만이 현재 르부르제 항공우주 박물관의 노르망디-니에멘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3. 상징

3.1. 도색

동체에 제303사단을 상징하는 꺾인 흰색 화살표를, 프로펠러에 프랑스 국기의 청백적을 칠해 노르망디 소속 전투기임을 표시했다. 독일 공군 조종사들은 상공에서 노르망디 대원들이 탄 야크와 마주치면 흰색 번개(Weiße Blitze)가 나타났다고 소리쳤다.
파일:Normandy-Niemen-paint.jpg
소비에트 연방 영웅 자크 앙드레의 Yak-3.
파일:Normandy-Niemen-paint-yak3.jpg
소비에트 연방 영웅 마르셀 알베르의 Yak-3.
파일:Normandy-Niemen-RolanddelaPoype-yak1b.jpg
1943년 롤랑 드 라 푸아프의 Yak-1b 도색. 초기에는 미군을 따라 상어입 노즈 아트를 그리기도 했다.[10]

3.2. 군복

파일:Normandy-Niemen-1943-06.jpg
1943년 6월의 노르망디 조종사들.
(조제프 리소, 알베르 듀랑, 노엘 카스텔랭)
파일:Normandy-Niemen-1944.jpg
1944년 루앙 대대.
파일:Normandy-Niemen-2.jpg
1945년 동프로이센의 노르망디 조종사들.

상반신은 프랑스 군복, 하반신은 소련 군복으로 구성한 혼합 군복이 특징이었다. 복장 규정이 있었다기보다는, 프랑스에서 챙겨 온 군복이 전부 여름옷이라 러시아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서 따뜻한 소련 군복 바지와 부츠를 착용한 것이다. 개중에는 다시 받기 어려운 프랑스 군복이 상할까봐 소련 군복만 입은 조종사들도 있었다. 조종사들에게는 개털로 된 부츠도 지급되었으나 정비사들은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노르망디 연대가 싸우는 전선의 지상군 부대에는 매번 상의는 프랑스 군복, 하의는 소련 군복을 입었으며 프랑스군 휘장을 단 프랑스 조종사들이 우리와 함께 싸울 예정이니 추락한 조종사를 발견하면 체포, 사살 대신 잘 보살펴서 부대로 돌려보내 주라는 명령서가 전달되었다.
파일:Normandy-Niemen-liberation.png
영화 유럽의 해방에 묘사된 노르망디-니에멘.
왼쪽은 혼합 군복을, 오른쪽의 연대장 푸야드는 프랑스 정복을 입고 있다.

4.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 목록


===# 조종사 #===
노르망디 니에멘 연대 조종사 목록
<colbgcolor=#fff,#191919> 이름 합류시기 생몰일
1 이브 비지앵†
Yves Bizien
1942.11.28 1920.11.30 - 1943.4.13
영국 공군 제123비행대대 출신. 격추되어 추락한 후 스파스-데미엔스크에서 독일군 포로로 잡혀 총살되었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2 레이몽 데르비유[실종]
Raymond Derville
1942.11.28 1914.02.27 - 1943.04.13
자유 프랑스 공군 알자스 전투비행대대 출신. 격추되어 추락한 후 스파스-데미엔스크에서 독일군 포로로 잡혀 총살되었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3 앙드레 포즈난스키†
André Poznanski
1942.11.28 1921.06.30 - 1943.04.13
자유 프랑스 공군 알자스 전투비행대대 출신. 스파스-데미엔스크에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4 노엘 카스텔랭[실종]
Noël Castelain
1942.11.28 1917.05.30 - 1943.07.16
자유 프랑스 공군 알자스 전투비행대대 출신. 노르망디 대대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부터 알베르 리톨프의 윙메이트였다. 1943년 7월 16일, 쿠르스크 전투 중 크라스니코보 상공에서 리톨프와 함께 사라졌다.[13]
전쟁 중 총 7기 격추.
5 알베르 리톨프†
Albert Littolff
1942.11.28 1911.10.31 - 1943.07.16
노르망디 초대 부지휘관. 자유 프랑스 공군 알자스 전투비행대대 출신. 쿠르스크 전투 중인 1943년 7월 16일에 크라스니코보 상공에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14기 격추.
6 장 튤란[실종]
Jean Tulasne
1942.11.28 1912.11.27 - 1943.07.17
노르망디 전투비행대대 1대 지휘관. 자유 프랑스 공군 알자스 전투비행대대 출신. 대원들에게 튜튜(Tutu)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1943년 7월 17일 오룔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전쟁 중 총 4기 격추.
7 알베르 프레지오시[실종]
Albert Préziosi
1942.11.28 1915.07.25 - 1943.07.28
자유 프랑스 공군 알자스 전투비행대대 출신. 쿠르스크 전투 중 오룔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전쟁 중 총 4기 격추.
8 알베르 듀랑[실종]
Albert Durand
1942.11.28 1918.09.16 - 1943.09.01
영국 공군 제340비행대대 출신. 옐냐 지역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전쟁 중 총 10기 격추.
9 마르셀 르페브르†[소비에트연방영웅]
Marcel Lefèvre
1942.11.28 1918.03.17 - 1944.06.05
영국 공군 제81비행대대 출신으로, 1942년 11월 28일부터 노르망디에서 복무했다. 항공기 결함 때문에 발생한 사고에서 심한 화상을 입고 후방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했다. 노르망디 주 출신으로 노르망디에서 복무한 그의 사망 날짜는 공교롭게도 1944년 6월 5일. 사후 소비에트 연방 영웅으로 추서되었다.
전쟁 중 총 11기 격추.
10 디디에 베강†
Didier Béguin
1942.11.28 1918.12.14 - 1944.11.26
영국 공군 제253비행대대 출신. 전사했다.
전쟁 중 총 8기 격추.
11 이브 마에
Yves Mahé
1942.11.28 1919.11.21 - 1962.03.29
영국 공군 제253비행대대 출신. 영국 본토 항공전 때의 활약으로 명예 요크 시민으로 인정받았다. 스파스-데미엔스크에서 독일군 포로로 잡힌 뒤 여러번의 탈출 시도 끝에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수용소 동료들의 협력 덕분에 무려 9개월동안 수용소에서 몰래 숨어지냈다.[18] 수용소가 해방된 뒤 1945년 8월에서야 노르망디 니에멘 연대로 복귀했다.
주사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영국에서 노르망디 집결지로 향하는 길에 군의관이 각종 전염병에 대한 예방 접종을 실시하자 기절했으며, 그날 오후 다른 주사를 또 놓으려고 하자 바늘이 몸에 닿기도 전에 다시 기절해버린 적이 있다.
전쟁 중 총 2기 격추.
12 조제프 리소
Joseph Risso
1942.11.28 1920.01.23 - 2005.11.24
영국 공군 제253비행대대 출신. 노르망디 대대가 연대로 개편된 후 제1대대 '르아브르'의 지휘관을 맡았다. 이후 공군 장성까지 진급했다.
전쟁 중 총 11기 격추.
13 마르셀 알베르[소비에트연방영웅]
Marcel Albert
1942.11.28 1917.11.25 - 2010.08.23
영국 공군 제340비행대대 '일드프랑스' 출신. 노르망디 대대가 연대로 개편된 후 제1대대 '루앙'의 지휘관을 맡았다. 노르망디 대원들의 별명은 대부분 알베르가 지은 것이다.작명소
전쟁 중 총 23기 격추.
14 롤랑 드 라 푸아프[소비에트연방영웅]
Roland de la Poype
1942.11.28 1920.07.28 - 2012.10.23
영국 공군 제602비행대대 출신. 빨간 머리, 주근깨, 껑충한 체형이 특징적이었다. 이름에서 보이듯 귀족으로, 백작 가문 출신이다. 알베르에게는 '후작'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행동이 서툴러 물건을 엎어뜨리는 사고를 자주 치는 바람에 '라 푸아스'라는 별명도 얻었다.[21][22]
전쟁 중 총 15기 격추.
15 미셸 시크
Michel Schick
1942.11.28 1918.05.24 - 1995.09.26
통역장교 및 연락장교.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기 때문에 노르망디 '(전투기)조종사 목록'에 빠질 때가 많다. 전투기를 타고 싶었는데, 소련에 가서 통역 일을 하며 연락기를 몰고 있으면 나중에 전투기도 타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바로 소련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훗날 전투기도 조종하게 된다.
16 장 드 팡주
Jean de Pange
1942.11.28 1917.03.29 - 1999.10.06
연락장교. 전투기 조종사가 아니기 때문에 노르망디 '(전투기)조종사 목록'에 빠질 때가 많다. 서류 작업을 몹시 싫어한 튤란이 떠넘긴 부대 일지 작성 등의 업무도 도맡아야 했다.
17 아드리앵 베르나봉†
Adrien Bernavon
1943.05.10 1912.12.11 - 1943.07.16
피에르 푸야드의 절친한 친구. 1943년 7월 16일에 오룔 상공에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3기 격추.
18 모리스 봉†
Maurice Bon
1943.05.13 1920.02.10 - 1943.10.13
전쟁 중 총 6기 격추.
19 알렉상드르 로랑
Alexandre Laurant
1943.05.18 1918.12.10 - 1957.06.11
동료들에게 '사샤'라고 불렸다.
전쟁 중 총 2기 격추.
20 장 드 테데스코[실종]
Jean de Tedesco
1943.06.09 1920.03.28 - 1943.07.14
오룔 상공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2기 격추.
21 피르맹 베르멜[실종]
Firmin Vermeil
1943.06.09 1914.09.24 - 1943.07.17
오룔 상공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22 폴 드 포르주[실종]
Paul de Forges
1943.06.09 1912.06.28 - 1943.08.31
부지휘관을 맡았다. 옐냐 상공에서 공중전 중 실종됐다.
전쟁 중 총 3기 격추.
23 제랄드 레옹†
Gérald Léon
1943.06.09 1919.10.22 - 1943.09.04
옐나 상공에서 포격으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4기 격추.
24 앙드레 발쿠†
André Balcou
1943.06.09 1920.03.11 - 1943.09.20
옐냐 상공에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25 레오 바르비에†
Léo Barbier
1943.06.09 1908.08.18 - 1943.10.15
스몰렌스크 상공에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3기 격추.
26 자크 마티†
Jaques Mathis
1943.06.09 1914.12.28 - 1944.08.31
옐냐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1943년 9월 6일에 동부전선을 떠났다. 이후 서부전선에 투입되었다가 1944년 8월 31일에 영국에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4기 격추.
27 앙리 부베
Henri Boube
1943.06.09 1906.05.19 - 1960.04.09
28 피에르 푸야드
Pierre Pouyade
1943.06.09 1911.07.25 - 1979.09.05
비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탈출해 우여곡절 끝에 소련의 노르망디 대원들과 합류했다. 1대 지휘관 튤란의 생시르 사관학교 동기였다. 도착 후 리톨프 대신 노르망디 부지휘관 역할을 맡았으며, 튤란과 리톨프가 모두 전사한 후 2대 노르망디 지휘관이 되었다. 대원들에게 페피토(Pépito)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전쟁 중 총 6기 격추.
29 앙드레 라르고[실종]
André Largeau
1943.07.30 1916.09.19 - 1943.09.14
스몰렌스크 상공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4기 격추.
30 장 레†
Jean Rey
1943.08.03 1920.07.09 - 1943.08.28
옐냐 상공에서 대공포에 맞고 전사했다.
31 장 드 시부르[실종]
Jean de Sibour
1943.08.03 1922.01.29 - 1943.08.31
옐냐 상공에서 공중전 중 실종됐다.
32 로제 드니†
Roger Denis
1943.08.03 1917.12.06 - 1943.10.13
스몰렌스크 상공에서 전사했다.
전쟁 중 총 2기 격추.
33 루이 아스티에
Louis Astier
1943.08.03 1909.08.13 - 1949.10.30
1943년 10월 19일에 중동으로 전출되었다.
34 앙리 푸코†
Henri Foucaud
1943.08.03 1908.12.17 - 1944.04.21
툴라에서 비행 사고로 사망했다.
전쟁 중 총 8기 격추.
35 피에르 자넬
Pierre Jeannel
1943.08.03 1920.08.01 - 1948.08.28
1943년 9월 24일 스몰레스크 상공에서 부상을 입고 6개월간에 치료를 받은 후 연대에 재합류했다.
전쟁 중 총 2기 격추.
36 이브 포루
Yves Fauroux
1943.08.03 1918.11.11 - 1978.10
전쟁 중 총 1기 격추.
37 자크 드 생팔
Jaques de Saint-Phalle
1943.08.03 1917.06.30 - 2010.06.15
전쟁 중 총 1기 격추.
38 이브 모리에
Yves Mourier
1943.09.14 1912.09.30 - 1948.04.01
1944년 12월 12일에 중동으로 전출되었다. 전후 훈련 중 사고사.
전쟁 중 총 9기 격추.
39 쥘 주아르†
Jules Joire
1943.10.12 1914.08.29 - 1944.03.18
툴라에서 모리스 부르디유의 비행기와의 공중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전쟁 중 총 6기 격추.
40 장 베르트랑[실종]
Jean Bertrand
1943.12.22 1907.10.04 - 1944.08.26
동프로이센에서 전사. 당시 그와 함께 비행한 로베르 마르시의 말에 의하면 고속 급강하 중 베르트랑의 전투기 날개가 뜯겨져나가 땅에 곤두박질쳤다. 시신과 기체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전쟁 중 총 3기 격추.
41 자크 카사뇌브[실종]
Jaques Casaneuve
1943.12.22 1918.03.11 - 1944.10.13
동프로이센에서 전투 중 실종됐다.
전쟁 중 총 3기 격추.
42 모리스 아마르제
Maurice Amarger
1943.12.22 1911.01.24 - 1946.03.19
1944년 12월 20일에 전출되었다. 전후 곡예 비행 중 사고로 사망했다.
전쟁 중 총 8기 격추.
43 자크 앙드레[소비에트연방영웅]
Jaques André
1943.12.22 1919.02.25 - 1988.04.02
전쟁 중 총 16기 격추.
44 콘스탄틴 펠드제
Constantin Feldzer
1943.12.22 1909.10.12 - 1988.12.29
키이우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출신으로 1920년에 가족이 다같이 프랑스로 이민갔다. 덕분에 러시아어를 잘 구사했다고 한다. 1944년 8월 1일에 동프로이센에서 포로로 잡혀 장 베사드와 함께 수용소에 수감되었으나[31] 1945년 3월 6일 소련 장교 두 명과 함께 탈출에 성공한 뒤 미군진영을 넘어 파리에 도착했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45 레옹 퀴포
Léon Cuffaut
1943.12.22 1911.01.20 - 2002.09.18
1944년 10월 30일에 전출되었다.
전쟁 중 총 13기 격추.
46 이브 카르봉
Yves Carbon
1943.12.30 1911.04.03 - 1949.10.25
전쟁 중 총 9기 격추. 전후에 사고로 사망했다.
47 브뤼노 드 팔탕†
Bruno de Faletans
1944.01.07 1917.06.12 - 1944.06.30
자신의 정비사를 태우고 비행장으로 이동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사망했다. 같이 죽은 정비사와 함께 모스크바 브베덴스코예 묘지에 마련된 노르망디-니에멘 연대 합동 묘지에 안장되었다.
48 모리스 드 센†
Maurice de Seynes
1944.01.07 1914.08.07 - 1944.07.15
자신의 정비사를 태우고 비행장으로 이동 중 연료 누출로 인해 시야를 잃었지만 낙하산이 없는 자신의 정비사를 위해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49 마크 베르디에[실종]
Marc Verdier
1944.01.07 1916.08.24 - 1944.09.22
동프로이센 상공에서 전투 중 실종됐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50 로제 펜베르느[실종]
Roger Penverne
1944.01.07 1918.03.31 - 1945.02.05
동료들에게 팡팡(Pan-pa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동프로이센 상공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4기 격추.
51 로베르 마르시
Robert Marchi
1944.01.07 1919.07.26 - 1946.07.17
곡예비행 실력이 뛰어났으며, 종전 직후 노르망디 대원들을 환영하는 행사에서 곡예 비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국 곡예비행을 하다 사고로 사망했다.
전쟁 중 총 13기 격추.
52 가브리엘 메르지센
Gabriel Mertzisen
1944.01.07 1914.05.28 - 1951.09.30
전쟁 중 총 8기 격추.
53 피에르 드샤네
Pierre Dechanet
1944.01.07 1911.10.16 - 1966.02.06
전쟁 중 총 7기 격추.
54 프랑수아 드 조프르
François de Geoffre
1944.01.07 1917.08.08 - 1970.07.17
전쟁 중 총 7기 격추.
55 로제 소바주
Roger Sauvage
1944.01.07 1917.03.26 - 1977.09.26
전쟁 중 총 16기 격추.
56 르네 마르탱
René Martin
1944.01.07 1916.06.05 - 1982.01.04
전쟁 중 총 9기 격추.
57 가스통 드 생마르소
Gaston de Saint-Marceaux
1944.01.07 1914.08.02 - 1986.05.02
전쟁 중 총 1기 격추.
58 로베르 들랭
Robert Delin
1944.01.07 1916.08.09 - 2004.10.05
전쟁 중 총 3기 격추.
59 피에르 두아르
Pierre Douarre
1944.01.07 1914.04.10 - 2009.11.30
전쟁 중 총 2기 격추.
60 장 소바주
Jean Sauvage
1944.01.07 1917.04.08 - 2014.08.20
전쟁 중 총 5기 격추.
61 페르낭 피에로
Fernand Pierrot
1944.01.26 1920.04.24 - 1964.04.05
전쟁 중 총 2기 격추.
62 에마누엘 브리에
Emmanuel Brihaye
1944.01.26 1913.09.30 - 2004.06.22
전쟁 중 총 1기 격추.
63 모리스 부르디유†
Maurice Bourdieu
1944.02.06 1918.11.27 - 1944.03.18
툴라에서 쥘 주아르의 비행기와의 공중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64 로베르 이리바른[실종]
Robert Iribarne
1944.02.06 1918.09.27 - 1945.02.11
동프로이센 상공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7기 격추.
65 에밀 르 마르텔로
Émile le Martelot
1944.02.06 1911.06.02 - 1952.06.18
전쟁 중 총 2기 격추.
66 자크 바녜르
Jaques Bagnères
1944.02.06 1916.11.19 - 1981.12.28
67 앙드레 무아네
André Moynet
1944.02.06 1921.07.19 - 1993.05.02
1944년 12월 12일에 전출되었다.
전쟁 중 총 8기 격추.
68 알베르 르브라
Albert Lebras
1944.02.06 1918.05.23 - 2010.07.30
전쟁 중 총 3기 격추.
69 마크 샤라
Marc Charras
1944.02.24 1916.05.24 - 1949.07.30
전쟁 중 총 7기 격추.
70 샤를 모니에
Charles Monier
1944.02.24 1920.01.03 - 1953.03.03
전쟁 중 총 3기 격추.
71 조제프 쇤도르프
Joseph Schoendorff
1944.02.24 1919.09.18 - 1970.11.21
전쟁 중 총 2기 격추.
72 로베르 카스탱
Robert Castin
1944.02.24 1918.08.25 - 1979.07.26
전쟁 중 총 10기 격추.
73 루이 델피노
Louis Delfino
1944.02.28 1912.10.05 - 1968.06.11
노르망디 지휘관을 지낸 튤란, 푸야드와 생시르 사관학교 동기였다. 1944년 12월 12일부터 푸야드의 뒤를 이어 노르망디 3대 지휘관이 되었다. 비시 프랑스에서 복무했으며, 영국군과 교전 끝에 영국 전투기를 격추한 적도 있었던 탓에 몇몇 노르망디 대원은 그를 매우 싫어했다. 푸야드가 파리로 가게 되는 바람에 델피노가 지휘관이 되자 그 밑에서 복무할 수 없다고 하는 대원들도 있었을 정도. 알베르는 델피노가 기체에 그려 놓은 철십자 모양 킬마크를 보고 '우리 삼색기도 한두 개 들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빈정거린 적도 있었다. 전후 장성까지 진급했다.
전쟁 중 총 16기 격추.
74 자크 가스통†
Jaques Gaston
1944.03.18 1920.12.05 - 1944.06.26
오르샤 상공에서 전사했다.
75 로제 피농†
Roger Pinon
1944.03.18 1915.04.29 - 1944.08.01
동프로이센에서 전투 중 실종됐다. 이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격추당해 착륙한 피농을 독일군이 즉결 처형했음이 밝혀졌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76 장 망소†
Jean Manceau
1944.03.18 1918.03.22 - 1944.11.02
리투아니아에서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전쟁 중 총 6기 격추.
77 루이 케른[실종]
Louis Querne
1944.03.18 1920.04.24 - 1944.09.25
동프로이센에서 전투 중 실종됐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78 샤를 미켈[실종]
Charles Miquel
1944.03.18 1920.12.04 - 1945.01.16
동프로이센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7기 격추.
79 피에르 제네[실종]
Pierre Génès
1944.03.18 1916.06.28 - 1945.01.18
동프로이센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4기 격추.
80 리오넬 므뉘[실종]
Lionel Menut
1944.03.18 1916.11.25 - 1945.01.29
동프로이센에서 실종됐다.
전쟁 중 총 1기 격추.
81 모리스 샬[실종]
Maurice Challe
1944.03.18 1911.06.18 - 1945.03.27
르네 샬과 형제. 같은 사단 소속 18연대의 소련 전투기를 독일기로 착각해 격추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사단장 자하로프는 샬에게 징계를 내리는 대신 노르망디에 남아 전공으로 죗값을 씻을 기회를 주었다. 사건 이후 샬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죽기를 원하는 사람처럼 가장 위험한 공중전에 몇 번이고 뛰어들었지만 매번 격추당하는 대신 적기를 격추했으며, 전공을 인정받아 적기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종전을 얼마 남기지 않고 교전 중 실종되었다.
전쟁 중 총 10기 격추.
82 조르주 르마르
Georges Lemare
1944.03.18 1917.11.16 - 1948.01.26
전쟁 중 총 13기 격추.[40]
83 장 에모네
Jean Émonet
1944.03.18 1914.10.31 - 1949.10.20
84 마르셀 페린
Marcel Perrin
1944.03.18 1919.08.18 - 1957.04.27
전쟁 중 총 13기 격추.
85 르네 샬
René Challe
1944.03.18 1913.06.06 - 2006.04.04
모리스 샬과 형제.
전쟁 중 총 8기 격추.
86 가엘 타뷔레
Gaël Taburet
1944.04.03 1919.11.12 - 2017.02.12
노르망디 니에멘 연대 조종사 중 제일 오래 살았다.
전쟁 중 총 5기 격추.
87 로제 베르시니
Roger Versini
1944.05.08 1919.11.28 - 1966.12.11
전쟁 중 총 3기 격추.
88 샤를 드 라 살
Charles de la Salle
1944.05.08 1914.08.21 - 1969.08.08
전쟁 중 총 4기 격추.
89 장 베사드
Jean Bayssade
1944.05.08 1913.07.02 - 1983.02.14
1944년 7월 30일에 격추되어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갔다가 콘스탄틴 펠드제를 만나 잠깐 같이 지냈다. 이후 탈출에 성공했다가 다시 잡혀버린 뒤 1945년 4월 21일 미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됨에 따라 풀려났다.
90 피에르 마트라
Pierre Matras
1944.05.08 1914.08.29 - 1998.03.22
전쟁 중 총 9기 격추.
91 피에르 로릴롱
Pierre Lorillon
1944.05.08 1918.05.13 - 2013.02.17
전쟁 중 총 8기 격추.
92 장 피케노[실종]
Jean Piquenot
1944.10.17 1918.04.06 - 1945.01.17
동프로이센에서 실종됐다.
93 모리스 몽제[실종]
Maurice Monge
1944.10.17 1918.07.25 - 1945.03.26
동프로이센에서 실종됐다.
94 조르주 앙리†
Georges Henri
1944.10.17 1920.06.01 - 1945.04.12
동프로이센 지상에서 포격으로 인해 튄 파편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노르망디-니에멘 연대의 마지막 전사자다.
전쟁 중 총 5기 격추.
95 레옹 우글로프
Léon Ougloff
1944.10.17 1919.10.04 - 1947.07.24
첼랴빈스크 출신 러시아인으로 본명은 로스티슬라프. 1920년에 가족이 다같이 프랑스로 이민을 갔고 1933년에 귀화할 때 아버지의 이름인 레프에서 딴 프랑스 이름 레옹으로 개명했다.
전쟁 중 총 5기 격추.
96 샤를 르베르숑
Charles Reverchon
1944.10.17 1920.02.29 - 1975.10.01
1945년 1월 18일 동프로이센에서 대공포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97 모리스 기도
Maurice Guido
1944.10.17 1915.02.01 - 1983.07.31
전쟁 중 총 4기 격추.
98 피에르 블레통
Pierre Bleton
1944.10.17 1919.10.13 - 1996.04.05
독일 에이스 요아힘 브렌델에게 격추되어 포로로 잡혔다. 블레통을 인계받은 독일 '묄더스' 비행단은 게슈타포로부터 처형당하지 않게 블레통을 보호했다. 블레통은 이후 심문을 받으면서 본 로베르 이리바른의 유품을 훔쳐 탈출에 성공하고 1945년 5월 9일 부대로 복귀했다.
전쟁 중 총 7기 격추.
===# 행정 및 정비 인원 #===
노르망디 니에멘 연대 행정 및 정비 인원 목록
<colbgcolor=#fff,#191919> 이름 합류 시기 생몰일 보직
1 루이 뒤프라
Louis Duprat
1942.11.28 - 수석 정비사
2 알렉스 미셸
Alex Michel
1942.11.28 - 정비사
3 이브 자키에
Yves Jacquier
1942.11.28 - 정비사
4 피에르 갈레
Pierre Galley
1942.11.28 - 정비사
5 기 르루
Guy Leloup
1942.11.28 - 정비사
6 조르주 마르셀랭
Georges Marcelin
1942.11.28 - 정비사
7 기 주하노비치
Guy Zukhanovitch
1942.11.28 - 정비사
8 로제 투브레
Roger Touvrey
1942.11.28 - 정비사
9 다니엘 아비추
Daniel Abichou
1942.11.28 - 정비사
10 장 오디베르
Jean Audibert
1942.11.28 - 정비사
11 피에르 구베르너
Pierre Gouverneur
1942.11.28 - 정비사
12 로제 모리송
Roger Morrison
1942.11.28 - 정비사
13 장 칼로베
Jean Calorbe
1942.11.28 - 정비사
14 로랑 지오방칼리
Laurent Giovancarli
1942.11.28 - 정비사
15 위베르 드 기앙-페밀라
Hubert de Guilhem-Pemillat
1942.11.28 - 정비사
16 조르주 무니에
Georges Mounier
1942.11.28 - 정비사
17 다니엘 굴랭
Daniel Goulin
1942.11.28 - 정비사
18 로베르 카르메
Robert Carme
1942.11.28 - 정비사
19 제라르 웨일
Gérard Weill
1942.11.28 - 정비사
20 장 투르코
Jean Turcaud
1942.11.28 - 정비사
21 알베르 앙리
Albert Henry
1942.11.28 - 정비사
22 에두아르 젤랭
Edouard Gelin
1942.11.28 - 정비사
23 조르주 마쥐렐
Georges Mazurel
1942.11.28 - 정비사
24 로제 투르텔리에
Roger Tourtelier
1942.11.28 - 정비사
25 프랑수아 샹발루
François Chamballu
1942.11.28 - 정비사
26 앙드레 르페브르
André Lefèbvre
1942.11.28 - 정비사
27 레이몽 트롤레
Raymond Trollier
1942.11.28 - 정비사
28 모리스 비달
Maurice Vidal
1942.11.28 - 정비사
29 브누아 살리바
Benoît Saliba
1942.11.28 - 정비사
30 아르망 랑브로소
Armand Lumbroso
1942.11.28 - 정비사
31 장 다를레노
Jeam Darlenot
1942.11.28 - 정비사
32 조아킴 아바드
Joachim Abad
1942.11.28 - 정비사
33 앙드레 페로니
André Peyronnie
1942.11.28 - 정비사
34 조르주 레비딘스키
Georges Lebiedinsky
1942.11.28 - 군의관
35 아르망 카렐
Armand Carrel
1942.11.28 - 정비사
36 앙투안 롱샹
Antoine Longchamp
1942.11.28 - 정비사
37 로제 에델
Roger Eidel
1942.11.28 - 정비사
38 알렉상드르 스타호비치
Alexandre Stakhovitch
1942.11.28 - 통역
39 앙드레 살리바
André Saliba
1942.11.28 - 정비사
40 앙드레 라리베
André Larrivet
1942.11.28 - 정비사
41 마르셀 하노
Marcel Hannaux
1942.11.28 - 정비사
마르셀 르페브르의 담당 정비사. 비행기를 완벽하게 정비하라고 깐깐하게 요구하는 르페브르에게 참다 못해 성질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르페브르는 같이 화를 내거나 징계 운운하는 대신 자신도 예전에 정비사 일을 했다며, 일이 너무 많으면 도와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 하노는 르페브르를 진심으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이른 봄에 연못에 빠지는 바람에 얼어 죽을 뻔했을 때 알베르 리톨프의 도움으로 죽다 살아났다. 그날부로 리톨프도 엄청나게 존경하기 시작했다.
42 에메 노엘
Aimé Noel
1942.11.28 - 정비사
43 앙드레 트루코
André Truco
1942.11.28 - 정비사
44 장 젤리베르
Jean Gelibert
1942.11.28 - 정비사
45 아나톨 코로
Anatole Corot
1943.06.09 - 통역 및 행정
46 이고르 아이헨바움
Igor Eichenbaum
1943.10.12 - 통역 및 군수
47 폴 피스트라크
Paul Pistrack
1943.10.12 - 통역 및 통신
48 조르주 드 프리드
Georges de Friede
1944.12.12 - 통역
49 모리스 로메르
Maurice Rohmer
1942.12.12 - 행정

5. 운용 기종

* 야코블레프 UT-2 : 1942년 12월 1일부터 18일까지 짧은 기간만 기종 적응 훈련에 사용된 복좌 훈련기.

6. 전후

6.1. 프랑스

파일:pfm6ky6suadx.jpg
70주년 기념 도장을 한 라팔 전투기.

귀국 후 노르망디-니에멘 연대는 그대로 유지하여 1949년에 베트남으로 이동해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2005년부터 이 부대는 다쏘 미라주 F1 전투기를 장비한 1/30 비행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행대는 2010년 6월에 일단 해체되었다가, 2011년 초에 재정비 되었다. 미라주 F1의 퇴역 이후에는 운용 기종을 라팔로 변경하여 지금에 이른다.

6.2. 소련/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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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후 소련군에도 노르망디-니에멘 전투비행연대가 유지되었다. 전후 자유 프랑스군 파일럿들이 귀국하면서 해당 부대에서 더 이상 프랑스인이 복무하지는 않았지만, 그 공훈을 기리기 위해 부대 명칭과 편제가 유지된 것이다.

이후 형제 연대였던 제18근위전투항공연대가 노르망디의 이름을 이어받아 제18 근위 비텝스크 적기 수훈 항공연대 "노르망디-니에멘"[43]으로 바뀌면서 해당 부대는 극동 군구 예하 제11 항공군에 소속되어 우수리스크 인근 갈룐키 기지에 주둔하게 되었고 제트 전투기를 운용하는 현대적 전투비행단으로 개편된다. 개편 후 부대는 1951년에서 1953년까지 중국으로 잠시 주둔지를 옮겨 6.25 전쟁에 참전하여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받기도 하는 등 활동을 이어간다.

냉전 후반기에 해당 부대는 Su-25 공격기 위주로 편제가 변경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공군으로 전속돼 타지키스탄 내전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2009년 11월,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당시 국방장관의 군제개편의 일환으로 부대가 해산하였다. 해체되기 전까지 부대는 프랑스의 노르망디-니에멘 비행단과 교류를 유지하였다.

그러다 2013년, 러시아 연방군의 확대와 해당 부대의 상징성 등의 이유로 극동의 체르니홉카 기지에서 부대가 재창설되었고 이후 시리아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여담

8. 대중매체



[1] 레지멍 드 샤스 노흐멍디-니에멍[2] 나르만디야 녜만[3] 허리케인을 장비한 부대. 이 부대도 소련 파견 부대이며, 노르망디-니에멘처럼 파견 기간 동안 이 병력들의 소속은 소련군으로 전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4] 영국에 더부살이하고 있던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이런 지원 부대를 편성하여 소련으로 파견한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과를 쌓아서 전후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선 결국 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했다.[5] 기존에 초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던 조제프 풀리캉 소령은 고향의 이름을 따 '브르타뉴'로 지으려고 했으나 해당 이름을 사용하는 폭격기 부대가 직전에 만들어지는 탓에 쓸 수가 없었다. 이름을 다시 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대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지만 풀리캉은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브르타뉴-2’ 같은 이름이라도 쓰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때 마르셀 르페브르가 ‘노르망디는 어때요? 이웃이잖아요.’라고 농담했고, 다들 마음에 들어 해서 최종적으로는 그 이름으로 정해졌다. 정한 이름이 노르망디.[6] 사후 추서.[7] 1944년에 인원이 늘며 셰르부르, 까지 총 4개 비행대대가 편제되었으나, 1945년 2월에 손실이 심각해지자 연대장 루이 델피노가 제1대대 루앙과 제4대대 캉을 없애고 2개 비행대대만 남겼다.[8] 리톨프와 카스텔랭은 튤란과 1941년 북아프리카에서부터 같은 부대에서 싸우며 동고동락한 조종사들이었다. 더군다나 리톨프는 노르망디가 막 창설되어 라야크에 집결한 시기부터 튤란과 함께 부대를 꾸려 나간 충실한 부지휘관이자 절친한 친구였으니...[9] 독일어로는 메멜(Memel)이라고 한다.[10] 푸아프는 전투기를 저렇게 도색한 다음날 출격했다가 부주의 때문에 격추당할 뻔했다. 착륙 직후 함께 출격했던 리톨프 대위가 그를 측은하게 쳐다보며 상어 말고 올리브비둘기를 그렸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꾸중했다.[실종] 작전 중 실종되어 행방도 유해도 찾지 못했다.[실종] [13] 이틀 전인 7월 14일에 카스텔랭이 처음으로 교전 중 리톨프를 놓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적기를 하나 격추하기는 했지만 연료가 떨어져 비행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다행히 소련군의 도움을 받아 그날 밤에야 돌아갈 수 있었다. 리톨프는 돌아온 카스텔랭에게 선임을 놓쳤으니 8일간 영창이라고 혼을 냈다. 독일기도 하나 격추하고 온 사람한테 너무 심하지 않냐는 레비딘스키의 말에, 카스텔랭은 '우리 대위님 말씀은 항상 옳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는 리톨프를 놓치지 않았다.[실종] [실종] [실종] [소비에트연방영웅] 노르망디-니에멘 대원 중 4명이 해당 훈장을 수훈했다.[18] 수용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신분을 바꾸거나 숨어지내는 일 정도는 흔했다.[소비에트연방영웅] [소비에트연방영웅] [21] La poisse. 불행이라는 뜻이며, 푸아프의 이름과 발음도 유사해 별명으로 채택된 듯.[22] 그리고 일본에서 모에선을 맞았다[실종] [실종] [실종] [실종] [실종] [실종] [실종] [소비에트연방영웅] [31] 동료 소련 포로의 회고에 의하면 프랑스인 포로 수용소로 옮겨가는 것을 거부하고 끝까지 소련인 포로 수용소에 남았다고 한다.[실종] [실종] [실종] [실종] [실종] [실종] [실종] [실종] [40] 일본에서 모에화 당했다.[실종] [실종] [43] 18-й гвардейский Витебский дважды Краснознаменный ордена Суворова второй степени истребительный полк ВВС России "Нормандия – Неман"[44] 처음엔 같이 파견된 프랑스 정비사들이 정비를 담당했으나 혹독한 소련의 환경과 프랑스어 매뉴얼 부족, 조종사들과의 배급 차별에 지쳐 1943년 8월에 대부분이 중동으로 떠나 소련 정비사들로 대체됐다. 조종사들은 거의 최고급의 대접과 배급을 받았지만 정비사들은 최악에 가까운 배급을 받아 굶주림에 길고양이를 잡아먹을 정도였다고. 프랑스에선 조종사와 정비사의 대우가 비슷했기 때문에 심적으로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45] 1기 조종사 알베르 프레지오시의 정비를 맡았었다.[46] 처음 14명만 왔을 때 노르망디가 이 연대 소속이었다. 덕분에 교류도 제일 많이 하던 형제같은 부대였다.[47] 지휘관이었던 쟝 튤란이 엄청나게 화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