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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00:52:21

남한산성(영화)/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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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트로3. 제1장: 두 신하4. 제2장: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다5. 제3장: 서날쇠의 조총6. 제4장: 나루터에서 태어난 아이7. 제5장: 가마니와 말고기8. 제6장: 삼전도의 칸9. 제7장: 북문전투10. 제8장: 적의 아가리11. 제9장: 보름달이 차는 밤12. 제10장: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13. 마지막 장: 삶의 길

1. 개요

영화 남한산성의 줄거리를 설명한 문서. 문서 문단은 영화에서 나온 제XX장이라는 글귀에 따라 정리하였다.

2. 인트로

17세기,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과 대립하여 전쟁 중이던 후금은 국호를 으로 바꾸고 칸이라는 명칭을 황제로 바꾼 다음,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한다. 그러나 조선은 민족의 자존과 명과의 의리를 내세워 청에 저항하였고 이에 청나라 10만 대군[1]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침공하였다. 강화도로의 피난길이 막히자 인조남한산성으로 피신했고 그해 겨울은 춥고 이 많이 내렸다.라는 글귀를 끝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어서 최명길이 얼어붙은 강 위에서 청의 선봉대 군사들과 마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청군은 기선 제압을 위해 최명길의 바로 앞에 화살 세례를 퍼붓는다. 그리고 통역관 정명수가 신분을 밝히라고 외치자 최명길이 자신의 관직을 말하며 이것이 사신을 대하는 처사냐고 항의하고. 자신이 최명길임을 밝힌다.

장면이 바뀌고, 얼어붙은 위에서 한 노인[2]김상헌이 건너가고 있다. 노인은 강 근처 나루터에서 부모를 잃은 손녀와 살고 있으며 얼음 지리에 밝아 길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손녀를 뒤로 한 채 노인과 함께 강을 건너는 김상헌은 노인에게 곧 청군이 들이닥칠 것이니 남한산성으로 가지 않겠냐고 권유한다. 그러나 노인은 청군이 자신 같은 나루터 늙은이를 죽이겠냐고 하면서, 어제 인조에게 얼음 길을 알려주었는데 좁쌀 한 되도 받지 못했다며, 청군이 지나가면 길을 알려주고 곡식이라도 받아볼 생각이라 말하며 거절한다. 이를 들은 김상헌은 자신이 돌보아줄 테니 손녀와 같이 남한산성으로 갈 것을 몇 번이나 더 권하지만, 끝내 노인이 거부하자 돌아가는 노인을 칼로 베어 죽인다.[3] 죽은 노인의 모습에서 멀어지면서 남한산성 로고가 뜨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3. 제1장: 두 신하

먼저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비롯한 조선군이 들어오는 걸 보며 대장장이 날쇠에게 동생 칠복은 성내 사람들은 대부분 도망갔다는데 우리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날쇠는 지난 정묘년 때 이곳으로 온 뒤 이제는 살더라도 이곳에서 살고 죽더라도 이곳에서 죽는다며 도망칠 거면 칠복에게 혼자 가라 하자 칠복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면서 형님이랑 계속 함께 있을 거라고 한다. 한편 남한산성에 자리잡은 인조와 신하들은 어떻게 대응할지 회의를 열고, 청군에게서 돌아온 최명길이 청군의 강화 조건이 세자를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인조에게 보고하며 화친을 주장한다. 이에 소현세자는 스스로 볼모가 되겠다고 자처하고 조정 신료들은 세자의 행동을 칭찬하며 조선의 앞날이 밝다고 하지만, 이때 갑자기 문을 열어 젖히며 김상헌이 나타나서는 다 듣고 있었던 것인지 화친은 아니 된다며 최명길의 목을 베라 말한다.[4] 김상헌의 등장으로 척화파 대신들이 벌때처럼 일어나 볼모로 보내면 안 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이에 인조는 알았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며 토론을 마무리 지으려는 참에 추운 계절 때문에 옥체가 쇠약해져 기침을 하자 신하들이 어의를 부르며 어전 회의는 종료된다. 이후 평상복을 입은 김상헌과 수어사 이시백이 성벽 위를 순찰하던 중 날쇠의 동생을 비롯한 병졸들이 추워서 불을 지핀 것을 보고 청나라 군대가 성벽의 병사배치와 이동을 알아챌까 봐 불을 끄라며 단속하는 군관을 발견한다. 이때 옆에 있던 대장장이 날쇠가 동생이 군역을 경험하지 못해 잘 몰라서 그랬다고 사죄하면서 김상헌에게 가마니라도 내어주면 눈비와 바람을 막고 바닥의 한기를 막을 수 있다며 나눠 달라 청하고, 좋은 생각이라 여긴 김상헌은 이를 인조에게 고하여 가마니를 나눠줄 수 있도록 조치한다.

4. 제2장: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다

최명길은 인조가 쥐여준 은자가 가득한 상자를 들고 청군 진영으로 다시 찾아간다. 그곳에서 최명길은 조선 땅에서 약탈해온 풍부한 식량과 군사를 가진 청군의 상황을 살핀다. 용골대는 최명길에게 차를 따라주며 성 안의 생활을 묻는 등 선선히 대하지만 이미 조건을 명시했던 평화 협상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내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세자를 불모로 보낼 수 없다는 인조의 입장을 전달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악화되어 쇠뇌에 겨냥 당하는 위협을 당하게 된다. 용골대는 쇠뇌로 최명길 옆에 있던 계속 짖는 검은 개를 저격해 죽여 위협하는 고압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최명길은 협상에서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만 칸(청 태종)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채 돌아간다.

성과 없이 복귀한 최명길을 두고 신료들은 이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세자와 인조를 청의 아가리에 밀어넣으려드는' 최명길에 대한 참수를 주장하고 이에 인조가 격분해 적군이 성을 포위 중인데 어찌 밖이 아니라 안에서 서로를 죽이려 하냐며 대갈해 이들을 제지한다. 김상헌은 최명길의 행보로 인해 성 안의 백성과 군사들이 청군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며 근왕병 부르기를 서두르고 군사들에게 항전의 의지를 보이자고 주장한다. 이에 최명길은 용골대로부터 칸이 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음을 전하고 지금은 싸워야 할 때가 아니라고 만류하지만 김류를 포함한 조정 신료들은 현재 명나라도 상대하고 있는 청군의 칸이 어찌 심양을 비우고 이 곳까지 올 수 있겠냐고 믿지 않고, 김상헌은 오히려 칸이 오고 있다면 그 전까지 근왕병을 서둘러 불러야 한다고 인조를 설득한다.

결국 항전을 결의한 인조는 팔도에 근왕병을 소집하여 남한산성을 구원하라는 격서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김상헌에게 격서를 쓰게 한 후 성책 위의 병사들을 독려하며 격서를 보낼 결사대를 파견한다.
김상헌: 조정이 가난하여 너희들의 추위를 덮어주지 못하니, 임금인 의 부덕이다. 너희들이 이 외로운 산중에서.. 얇은 옷에 떨고 거친 밥에 주리며, 살이 얼어 터지고 발가락이 빠지는 추위에 알몸을 드러낸 채 성을 지키고 있으니, 나는 온 몸이 바늘로 찔리는 듯 아프다. 이제 적들은, 차마 옮기지 못할 말로 야만의 무도한 속내를 드러내니. 금수(禽獸)만도 못한 것들을 어찌 사람의 말로 꾸짖을 수 있겠느냐? 저들 마음 어둡기가 짐승 같아, 말 길이 막히고 화친의 길이 끊어졌으니. 오직 싸움이 있을 뿐이다. 군신상하(君臣上下)가 한 몸으로 성을 지키고 창의(倡義)를 몰아오는 근왕병과 함께 떨쳐 일어서면, 대의(大義)가 이미 우리와 함께 했으니 깊이 들어와 의지할 곳 없는 오랑캐를 국경 밖으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고립된 성은 위태하기가 머리칼과 같고 군부의 위급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삼남(三南)[5]의 군사들은 밤을 새워 달려오라! 너희 의로운 신민들은 달려오고 달려오라!

5. 제3장: 서날쇠의 조총

그러나 결사대가 길을 간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청나라의 매복 부대의 맹렬한 기습 공격을 받고, 그 와중에 날쇠의 동생 칠복이 청 기병의 표적이 되자 날쇠는 옆에 있던 조총을 들어 한 번 사격 하지만 조총이 불량품에 가까워서 맞추지 못하고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가까스로 동생과 함께 살아 돌아온 날쇠는 자신의 청을 들어줬던 김상헌에게 찾아가 조총의 가늠자가 비틀어지고 총신이 휘어져 구실을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면서 대장장이인 자신이 쇠를 다루는 재주가 있으므로 고치게 해달라 말한다. 김상헌이 의아해하며 소속 군영의 무관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왜 자신을 찾아와서 이르냐며 물어보는데, 돌아온 답변은 애초에 미천한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옆에서 싸움 나가기 싫어서 꾀 부리지 말라고 매질까지 당했다고 거드는 칠복은 덤. 전쟁 중에 무기 관리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오죽하면 예조판서인 김상헌을 찾아왔던것.



이에 김상헌은 어찌 자신이라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냐며 묻고, 날쇠는 예전에 가마니를 성벽 위에 올려준 일을 말한다. 김상헌은 가마니를 나눠준 건 자신이 아닌 주상 전하께서 군사를 아껴 내려주신 은덕이라 하지만 날쇠는 그럼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건의해 달라 요청하였고, 김상헌이 인조에게 건의해 마침내 날쇠를 주축으로 여러 장정들이 병장기들을 수리하기 시작한다.[6] 한편 최명길은 눈을 쓸다가 김상헌과 만나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7] 그렇게 조정에서는 전투를 벌여서 화친할 뜻이 없음을 성 밖의 적군과 아군 모두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결정하고, 수리한 조총 등의 병장기들을 가지고 이시백을 지휘관으로 한 전투에서 청군 장수의 목을 베는 등 첫 승전을 올리며 사기를 끌어올린다.[8]

6. 제4장: 나루터에서 태어난 아이

승전하여 성으로 돌아오는 이시백의 눈에 나루터에서부터 포위된 남한산성까지 찾아온 나루가 숲 속에 웅크린 것이 보이고, 이 소식은 승전보와 함께 조정에까지 알려진다. 인조는 승리한 날에 적군이 가득하여 산성까지 오기가 불가능한 북문으로 어리고 여린 소녀가 단신으로 오자 상서로운 일이라 여기며 비천한 백성의 자식을 어찌 데려오겠냐는 영의정 김류의 반대를 무릅쓰고 데려오게 한다. 조정 중신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인조는 나루가 자신들을 안내해준 노인의 손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도 인연이라면서 그 노인은 어딨냐고 묻는다.[9] 인조는 신하들에게 나루의 할아버지를 찾으라고 하고 김상헌이 평소 아이들을 잘 아낀다고 소문났다면서 나루를 맡을 것을 명한다. 김상헌은 당황하지만 이내 받아들인다. 김상헌은 나루를 데리고 집에 와서 식솔에게 옷과 먹을 것을 주라고 부탁한다. 나루는 정말 할아버지를 찾아주냐고 묻고 김상헌은 허탈함과 동정 어린 표정을 짓는다.

한편 승전한 이시백의 거처를 찾은 최명길은 자신의 목을 베어야 한다는 척화파의 여론을 안주거리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 자신의 소신을 감당하는 최명길의 인간적인 고뇌를 털어놓는 부분. 최명길이 이시백에게 무슨 파냐고 묻자, 이시백은 자신이 척화파, 주화파 그 어느 편도 아니며 단지 명령에 따라 싸우는 무관일 뿐이라고 말하고, 최명길은 자신도 무과나 볼 걸 그랬다고 한숨을 쉰다.[10]

7. 제5장: 가마니와 말고기

그러나 희망도 잠시, 성 안에 먹을 것이 없어 말들이 비실비실 쓰러지기 시작한다. 말들이 굶어 죽자 인조는 '말은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지만, 백성과 병사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병이 전쟁에서 중요하다는 도체찰사 김류의 말을 들어[11] 초가집의 지붕 볏집과 바닥, 병사들에게 나눠준 가마니를 거두어 말먹이와 땔감으로 사용한다. 이때 추위에 떨며 애원하는 가족과 노인이 나오며 민초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칠복과 날쇠도 가마니를 실어 나르는 역을 하게 되고, 칠복은 말로 태어나지 못한 게 한이라고 냉소 하며 날쇠는 아래의 한마디를 남긴다.
서날쇠: ...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구나.
한편 성으로 회군 하는 병사들 사이로 한 병사가 오랑캐의 머리를 잘라왔으니 상을 받을 수 있겠다며 좋아한다. 그런데 머리를 본 이시백과 김상헌은 이 머리가 격서를 쥐어서 보낸 전령의 머리임을 알아채고 김상헌은 칼을 뽑고 달려나가 머리를 가져온 병사에게 이 머리를 어디서 잘랐느냐 추궁한다. 그 병사는 당황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결국 병사가 전령의 머리를 잘라다가 오랑캐의 머리라 속여 가져온 것이 밝혀지고, 인조와 대신들은 이를 두고 격서를 다시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인조의 말에 적의 군세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포위가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어 격서를 보낼 길이 없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최명길의 대답 등 이런저런 대화가 오간다. 모든 길이 막힌 것은 아닐 거라는 김상헌의 말에 인조는 몸이 날랜 정예 무관도 해내지 못한 일을 누가 하겠느냐며 묻고, 김류가 끼어들어 성 안의 병사와 백성의 숫자가 몇인데 설마 격서를 전달할 사람이 없겠느냐며 답한다. 이에 인조는 그럼 영상이 하겠는가? 라며 묻지만 김류는 헛기침만 하며 대답을 피한다. 그리고 최명길은 천만다행으로 이번엔 격서를 빼앗기지 않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적이 이를 역으로 이용할 것이라 진언한다.

논의를 마친 후 거처로 돌아온 김상헌은 자신을 기다리던 나루를 보고 할아버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하며 추우니 안으로 들어가라 한 뒤 나루를 피하듯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김상헌 얼굴을 비추는데 점점 마음의 부담이 커져 가고 있는 듯 하다. 날이 밝자 전령의 목을 잘라온 병사도 참수 되어 거리에 효수된다.

남아있던 말들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리고, 이후 전부 도축되어[12] 병사들에게 고깃국으로 배급된다. 간만에 고기를 먹으며 웃음꽃이 피어오른 이때, 영의정 김류를 필두로 한 고관들이 순시를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한 병졸이 우리 볏짚을 뺏어 기른 말고기 한 점 드셔 보시라며, 기왕 말고기를 줄 거면 살이 좀 쪄 있을 때 잡았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는 말로 조롱[13]섞인 말을 꺼낸다. 이에 군관이 정녕 죽고 싶은 거냐고 호통치지만 병졸은 아랑곳 않고 어차피 칸이 오면 우리는 다 죽을 텐 데 며칠 먼저 죽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친다. 난데없는 조롱에 격분한 김류는 옆의 군관에게 그의 입을 찢으라고 명령한다. 칼을 빼든 군관을 이시백이 제지하지만, 체찰사를 겸하고 있던 김류는 군율의 지엄함을 내세워 벌을 주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상헌과 최명길은 병졸을 당장 벌하여 일시적으로 복종 시킬 수는 있지만, 영원히 그럴 순 없다며 만류한다. 그러자 김류는 뒤늦게 주변의 병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14]을 느끼고 명령을 거두어 들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이시백의 목을 치겠다고 호통을 치고는 가버린다. 날이 다시 저물자 이시백과 최명길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성벽 위에 올라가 적의 진을 살핀다. 빼곡하게 쳐진 횃불들과 청군의 진을 보며 이시백은 어제부터 더 많은 청군들이 삼전도로 모여들고 있다고 말하고, 이에 최명길은 분명 칸이 오고 있는 것이라 답한다.

8. 제6장: 삼전도의 칸

새해를 맞은 조정. 최명길은 칸이 정말로 도착했는지 염탐할 겸, 용골대에게 세찬을 주러 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이때 김류가 또 나서서 적과 내통한 최명길은 믿을 수가 없고, 최명길의 목을 베어버리라며 공격하자, 인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김류의 목을 자르라는 상소도 있었다면서 이를 물리치고, 김류도 같이 가서 청군 진영을 살펴보고 오라고 명하고, 그의 충심에 큰 보답을 내리겠다고 한다. 마지못해 명령을 받드는 김류의 표정은 썩어 들어간다.[15] 그렇게 김류와 최명길은 청의 앞잡이 역관 정명수와 함께 청 진영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면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명에서 노획한 홍이포를 보게 된다. 정명수는 명군에게서 빼앗은 서양의 대포라 소개하며 이 대포로 댁들 임금이 숨어있는 성의 벽도 속절없이 무너뜨릴 수 있다며 넌지시 협박한다. 김류는 정명수를 보며 당신도 조선 사람 아니었느냐 하며 어찌 청군 편을 드냐며 묻지만, 정명수는 자신은 노비로 태어났고 조선의 노비는 사람이 아니라며 다시는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하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이윽고 사신단은 용골대를 만나 와 세찬을 바치지만, 용골대는 이미 , 고기, 과자까지 풍성하게 차려진 상에서 보란 듯이 식사를 하던 중이었고 세찬을 거절하며 도로 가져가라 말한다. 김류는 이유를 물으며 가져온 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고 질문하지만 용골대는 가져가서 너희 임금의 봉양을 위해 먹이라며 우리는 먹을 것이 넉넉하기에 여유롭다는 대답을 한다. 최명길은 도성을 나와 고루 갖추지는 못했지만 조선의 임금이 보낸 세찬과 소라며 받아주기를 바라지만, 용골대는 이어 조선의 8도가 이미 우리의 것이니 8도의 술과 고기도 전부 우리의 것이라며[16] 너희들이 그 성에 숨어 먹을 것이 없음을 내가 이미 아니 굶주린 너희 왕과 신하들이나 먹이라며 끝내 거절한다. 최명길은 칸에게 멀리서라도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청하지만 용골대는 인사는 너희 임금이 성에서 나와 직접 해야 한다며 거절한다. 칸은 어디에 있느냐는 최명길의 물음에도, 곧 소식이 갈 것이라는 말만 전해 듣는다. 김류는 그래도 어떻게 가져온 세찬인데 도로 가져가는 건 곤란하다고 설득하지만, 정명수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그 말은 통역조차 하지 않고 되려 김류를 질책한다.

김류와 최명길이 돌아온 후, 세찬을 거부 당해 당연히 화가 난 조정에서는 최명길은 물론이고 김류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김류와 최명길은 인조에게 청군이 조선군보다 훨씬 강력한 홍이포를 갖추고, 성벽을 거뜬히 넘을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으며, 칸이 친정(親征)한 것도 확실해 보인다고 군사 상황을 알리지만, 다른 신하들은 죄를 면하기 위해 본 것을 부풀리고 있다고 의심한다. 김상헌은 세찬을 보낸 것 자체로도 오랑캐에게 법도를 가르쳐준 것이라고 평하며, 지금은 성 안이 분열해선 안되고 힘을 합쳐야 한다며 상황을 중재한다. 이에 김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북문 쪽 청군 진영이 허술해 보인다며 선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상헌은 합류할 근왕병들에게 결전의 의지를 알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찬성하지만, 최명길은 싸우려면 이기는 싸움이 되어야 한다며 넌지시 반대의 뜻을 밝힌다. 하지만 신하들의 척화 여론은 이미 극에 달했고, 인조의 결정으로 결국 출정이 확정된다.

9. 제7장: 북문전투

이리하여 김류를 총 사령관으로 하여 군사 300여 명이 성 밖을 나간다. 이때 김류 곁에서 군사들을 내보내기 전에 척후병을 풀어 적의 동태를 살피자고 이시백이 건의하지만 김류는 이를 무시하고 끝내 바람이 심하고 때가 좋지 않다며 만류하는 간언조차 물리친 채로[17] 성루에 서서 총공격 신호를 내리며 북을 울린다. 하지만 초관을 비롯한 병사들은 살기가 섬뜩한 산성 주변 숲을 보며 두려움에 움직이지 않는다. 이에 화가 난 김류는 부관에게 자신의 칼을 내려주며 '체찰사의 칼이다, 움직이지 않는 병사들을 베라'고 하고, 부관이 김류의 칼로 병졸 몇 명을 본보기로 죽이자 그제서야 부대가 전진한다. 긴장감 넘치는 숲 속. 무언가 부스럭거리자 부대 전체가 얼어버리고 초관이 소리가 난 곳을 활로 쏘는데, 확인하러 간 병졸이 사슴이라면서 고기를 얻었다고 좋아한다. 초관은 그 자리에 표시를 해서 돌아올 때 사슴을 갖고 가자고 한다.[18]



조선군은 산을 내려가서 청군의 목책에 불을 지르고 넓은 들로 전진해서 부대 재배치 및 정찰을 하려 하지만[19] 목책 주변이 비어 있던 것은 청군의 함정이었다. 병사들은 얼마 전진하지도 못하고 개활지에서 적 포병화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20] 청군 홍이포의 포격이 작렬하는 가운데 초관은 청군의 목책 뒤로 성공적으로 후퇴해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초관은 다가오는 청의 기병들이 유효 사거리 안에 들어올 때까지 사격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지만, 지나치게 긴장한 병졸이 실수로 사격을 해버리자, 이를 시작으로 모든 조총병들이 따라 사격을 해, 탄을 전부 허공에 날려버리고 만다. 다급해진 조총병들은 얼른 재장전을 하려 하지만 전투 직전 이시백의 강풍에 대한 염려가 현실이 되어 총구 안으로 화약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그 사이에 청 기병들이 조선군을 박살 내버린다. 전령이 성문으로 뛰어 오는 것을 보자, 패배를 직감한 이시백이 퇴각을 주장하지만 반대로 김류는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며 지원군을 내려보낼 것을 강요한다. 이시백은 지원군도 다 죽는다며 항명하고, 곧 북을 울려 퇴각 신호를 보낸다.[21] 후퇴 북 소리를 들은 초관과 잔존 군사들이 산성으로 후퇴하지만[22] 군마를 타고 나와 군사들을 호령하던 용골대는 포격을 계속하고 보병을 보내 추격하도록 해 조선군 대다수가 전사하고, 숨이 아직까지 붙어있는 활을 맞은 사슴의 곁은 수많은 조선군의 시신으로 뒤덮인다.

패전 후 조정에서 책임론이 일자, 김류는 자신도 죽을 죄를 지었지만 지원군을 보내지 않고 항명한 이시백과 휘하 병사들을 모두 잃은 초관의 책임이 더 크다면서 물귀신 작전을 펼친다.[23] 최명길은 자신이 아는 수어사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며 이시백을 변호하지만, 김류가 최명길은 이시백과 동문이었다고 들었다며 이시백과의 사사로운 정으로 대사를 그르친다며 공격하면서 변호가 무산되었고, 이시백은 상관인 자신을 참하고 부하는 살려줄 것을 청하지만 결국 이시백은 곤장 30대를 맞게 되고 부하를 모두 잃은 초관이 참수 당하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김류는 체찰사직을 삭탈당하고 김상헌이 체찰사가 된다.

10. 제8장: 적의 아가리

이후 날이 밝자 김상헌은 새로 쓴 격서[24]를 인조에게 올리며, 인조는 내용인 즉 성문을 열고 나가 근왕병들과 합세에 야습을 하여 청군을 몰아내자는 격서를 읽으며 이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묻는다. 김상헌은 어젯밤 한 승려가 성으로 들어왔는데 근처에 도원수가 이끄는 어림잡아도 수만은 되는 근왕병들의 진지를 봤다는 증언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인조는 필시 근왕군이 와서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는 김상헌의 말을 듣고 정월 대보름에 검단산에 오르는 봉화를 신호로 안과 밖에서 동시에 공격하기로 하지만,[25] 포위된 성 밖으로 격서를 전달할 방법이 없어 그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김상헌은 날쇠에게 격서를 근왕병을 이끄는 도원수의 진영까지 전달할 것을 부탁한다. 날쇠는 군관도 아닌 천한 대장장이에게 이러한 국가의 막중대사를 맡기냐며 질문하고, 김상헌은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데 충절의 귀천이 있겠느냐며 날쇠를 설득하지만 오히려 날쇠는 먹고 살며 때리고 가두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다며 반문하고 자신보다 나은 이가 있을 거라며 거절한다. 하지만 김상헌은 등을 돌린 날쇠에게 무관들은 성 밖의 지리를 알지 못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날쇠 밖에 없다며 계속 부탁하고, 날쇠가 망설이던 찰나 나무를 해오고 돌아오던 동생 칠복이 이야기를 듣고 뛰어 들어와 왜 자꾸 우리 형님에게만 목숨을 걸라 하냐며 완강히 거부하지만 날쇠는 마음을 굳힌 듯 격서만 전달된다면 전쟁이 끝나냐고 김상헌에게 묻는다.

김상헌은 그렇다고 하며 조정이 나서야 성 밖의 백성들도 살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칠복은 그 말을 듣고 기가 찬 듯 이미 다 뒤져버렸는데 누굴 살리느냐며 김상헌에게 대들고 날쇠는 그런 칠복을 말려보지만 칠복은 계속해서 김상헌에게 정묘년의 난리 때 마을에 오랑캐가 쳐들어와 마을 사람 중 남자는 싸그리 참살 당하고 여자는 겁탈 당했다고, 형님의 색시와 자식들도 모조리 오랑캐에게 죽어나가는 와중 지체 높으신 분들은 전부 강화도로 도망가버렸는데 김상헌 대감은 어디 있었느냐고 언성을 높인다. 계속해서 날쇠가 그만 하라며 타이르지만 칠복은 부모님 시체도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하며 울분을 터뜨린다.

김상헌은 이런 칠복에게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결국 거처로 돌아간 김상헌은 새해를 맞이해 나루에게 떡국이 놓인 상을 받지만 나루에게 상을 물리며 니가 먹으라며 나루에게 내준다. 나루는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며 수저를 들기를 권하지만 김상헌은 나는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 그만 먹으면 안되겠냐고 하지만 결국 권유에 못 이겨 한 숟가락을 뜬 뒤 임금님이 내리신 음식을 버릴 수도 없으니 니가 먹으라고 하며 나루에게 떡국을 물려주고 나루가 떡국을 먹는 모습만 바라본다.

그 후 새해를 맞아 남한산성 안에서는 명나라 황제를 위한 망궐례가 행해지는데, 산 위의 청군 진영에서는 이 모습을 바라보는 청 태종이 등장한다. 용골대가 자신의 무능으로 이를 막지 못했다며 홍이포로 망궐례를 중단 시키겠다고 하지만 칸은 정초에 화약 냄새는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며 이를 중지 시킨다. 망궐례를 치르던 대신들과 인조는 산맥을 넘어 포대가 설치된 청의 진영을 보고 후에 논의를 시작한다. 최명길은 인조에게 칸이 여기에 온 이유는 성벽을 밖에서 부터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성문을 안에서 부터 열기 위함이라며 먼저 서신을 보내 청 황제에게 예를 갖출 것을 권한다. 김상헌은 그것은 용골대에게 세찬을 보내는 것과는 다른 일이라며 이에 반발하며 이미 어떠한 서신도 없이 국경을 넘어 온 자들에게 예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라 반문한다. 김상헌은 결사항전을 주장하지만 최명길은 체념한 듯 살 길을 찾기 위해서 항복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올리고 논쟁이 격해지자 인조는 그만둘 것을 명한다. 하지만 인조의 명에도 아랑곳 않고 임진년의 왜란에 명의 황제가 도와주신 덕에 정사를 보존한 것이라거나 오랑캐에게 고개를 조아릴 수는 없는 것이라는 지극히 친명배금적인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인조는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너희들이 그만하지 않으니 내가 그만해야 할 노릇이라 말하고 자리를 나선다. 최명길은 엎드려서 걸어나가는 인조를 마지막으로 부르고 저들이 말하는 대의와 명분은 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삶이 있은 후에야 대의와 명분 또한 있는 것 아닌가라며 울먹이고, 김상헌도 그저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푹 숙인다.

한편 서날쇠는 임무를 수행하기로 마음먹고 낫을 챙겨 들고 대장간을 나서던 중 같이 가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칠복에게 같이 있으면 더 눈에 잘 띌 것이며 여기에 남아 대장간을 지켜 달라 부탁한다. 칠복은 형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하지만 날쇠는 니가 장가 가는 모습은 보고 죽을 것이라며 타이르고, 끝내 칠복은 체념하며 형을 보낸다. 암문에 도착한 날쇠는 김상헌으로부터 격서를 받고 이 일을 성공하고 돌아온다면 주상전하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것이라 격려 받지만..
서날쇠: 제가 이 일을 하는 건, 주상전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하와 사대부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저 같은 놈들이야 그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배를 곯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입니다.
날쇠는 이렇게 자신과 같은 소시민들이 정확히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자신들이 꿈꾸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소박한지, 또한 간절한 것인지 정곡을 찌르는 명대사를 남기며, 이후 김상헌에게 절을 올리고 문을 나선다. 김상헌은 후에 최명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겨울이 참으로 모질고 깊다는 김상헌의 한탄에 최명길은 겨울이 깊었으니 봄이 멀지 않았을 것이라며 모진 겨울을 견뎌낸 것들이 곧 봄을 맞을 것이라 답한다.[26] 자리를 나서는 최명길을 불러 세운 김상헌은 격서가 성 밖으로 나갔다는 말을 해주고 최명길은 그에 대답 없이 김상헌을 바라본다.

11. 제9장: 보름달이 차는 밤

그리고 곧 이어 밤 중 청의 병사들의 맹렬한 추격을 받아 도망치는 날쇠가 화살 세례를 받고, 결국 화살이 맞았는지 핏자국을 뚝뚝 흘리고 격서를 떨어뜨리고 만다. 핏자국을 추적하던 병사가 격서를 발견하고 주우려던 찰나,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날쇠가 뛰어내려 낫으로 병사의 목을 베어 죽이고 간신히 격서를 챙겨 달아나는데 성공한다. 한편으로 청나라의 군영에선 용골대가 태종에게 군사를 나눠 사방에서 성을 공격하면 하룻밤 안에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모든 장수가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말하지만 태종은 자신은 저런 작은 성 하나를 얻고자 군사를 보내 성벽을 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직접 그들이 성문을 열고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황제의 위엄이 빛날 것이라 한다. 즉 직접 공격하지 않고 성을 압박해 그들이 알아서 항복하게 하겠단 것. 이후 태종은 문장이 좋은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시키며, 아래의 서신을 쓴다.
청 태종: 네가 기어이 나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患亂)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조차도 나의 부덕일진대, 나는 그것을 괴로워하며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왔다.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 주겠다. 너는 나와서 두려워 말고 말하라.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하늘에 보름달이 차는 날.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서신을 읽은 인조는 두려움에 떨며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지만 김류는 "이 나라는 전하의 나라이니 대신들에게 묻지 말고 전하께서 뜻을 말하시면 받들겠다"고 대답한다.[27] 인조는 살고자 하며, 이것이 자신의 뜻이라 말한다. 최명길은 살고자 한다면 답서를 보내어 말귀를 트라 진언하지만 김상헌은 살고자 하는 뜻은 거룩한 것이니 진정 살고자 하신다면 답서를 보내지 말라 반문한다.[28] 이 말을 들은 인조는 보냈다는 전령은 어디 있냐고 물었지만, 김상헌도 아는 것이 없었기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인조는 이제 곧 대보름인데 도원수의 근왕병은 언제 오는 것인지 이어서 물었지만 김상헌은 그저 진정하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만 답한다.

인조는 언성을 높이며 칸이 이 성벽을 무너뜨리고 오랑캐들이 자신을 죽이러 온다고 호통치며 김상헌은 쩔쩔매며 보름날까진 시간이 남았으며 반드시 근왕병의 봉화가 오를 것이라고 말하지만 대신들은 이를 듣고 의아해 하며 근왕병의 봉화가 무엇이냐며 물었고 곧 사태를 파악한 몇몇 대신이 국가의 중대사를 어찌 소신들도 모르게 도모할 수 있냐며 말한다. 김류는 군사경험이 일천한 김상헌 예판에게 종사의 운명을 맡기시냐며 따지듯이 물었으나 인조는 "그렇다면 다시 그대에게 맡기냐고 말하는 것으로 답하고 경이 날 살려보겠느냐?"고 다시 물었지만 김류는 돌이켜 보면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전부 다 예판이 화친을 배척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예판에게 화친의 뜻을 담은 답서를 써서 보내게 하면 칸도 마음을 아실 것이라며 답한다. 인조는 이를 받아들여 문구를 최대한 공손하게 해서 답서를 지어 올리라 하지만, 김상헌은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며 불복한다. 그 때 최명길이 나서서 조선에 문장가가 김상헌 밖에 없겠냐며 화친을 반대했던 그 이름을 지켜 달라고 청한다. 인조가 다시 누가 항서를 쓸 것이냐 묻지만 신하들은 청군에 의한 죽음과 후대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나서지 못한다. 오로지 최명길만이 스스로 나설 뿐이었다.

임무를 수행하던 날쇠는 상처를 입고 쓰러지지만 다행히 조선군에 발견돼 목숨을 건지고 격서도 전달한다. 근왕군 장수들은 처음에는 의식을 찾은 날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며 격서는 잘 받았다면서 어느 군영의 군관이냐고 함자(이름)를 묻지만 날쇠가 자기 신분을 밝히자 곧바로 반말을 하면서 대장장이 따위가 격서를 전달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의심한다. 한편 칠복은 김상헌으로부터 동상에 좋다는 돼지 기름을 받으며 이것을 전해주러 온 것 뿐이냐는 질문을 한다. 김상헌은 애매모호하게 "소식은 없느냐"라고 물었고 칠복은 날쇠에 대한 소식인지 근왕병에 대한 소식인지를 되물었다. 김상헌은 그 둘은 다르지 않다고 하자 칠복은 근왕병이 더 중요할 것임을 안다며 냉소하고 자리를 떠난다.

김상헌이 다시 거처로 돌아오던 중 밖에서 흙바닥에 물고기를 그리고 있던 나루를 발견하고 물고기인 꺽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루는 송파강이 녹으면 꺽지를 잡아드리겠다며 김상헌에게 말하고, 김상헌의 송파강의 해빙기를 묻자 민들레 꽃이 필 때 같이 송파강의 얼음이 녹는다며 답한다.

12. 제10장: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시간이 지나 최명길이 쓴 항서가 올라오자 조정에서는 답서를 불태우고 역적 최명길의 목을 베라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최명길과 김상헌은 사는 길을 주제로 논쟁을 벌인다.[29]
최명길: ..신의 학식과 경륜이 짧아, 전하의 성심을 온전히 글로 옮기지 못했사옵니다. 고쳐야 할 곳이 있으면 하명해 주시옵소서.
김상헌: 이 문서가 정녕 살자는 문서이옵니까? 전하, 명길의 문서는 살자는 글이 아니라..
최명길: (김상헌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러하옵니다.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야 할 길이옵니다.
김상헌: 지금 전하의 군사들은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죽기로 성첩을 지키고 있사옵니다!
최명길: 성첩 위 군사들은 이미 추위와 굶주림에 기력을 잃어가고 있사옵니다..
김상헌: 내일이 보름이옵니다. 오늘밤 반드시 검단산에 봉화가 오르고 근왕병들이 성을 향해 달려올 것이옵니다!
최명길: 오늘 답서를 보내지 않으면.. 칸의 대군이 성벽을 넘어 들어와 세상은 모두 불타고 무너져버릴 것이옵니다.
김상헌: 하룻밤이옵니다!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어찌 먼저 무릎을 꿇으려 하시옵니까!
최명길: 그 하룻밤에 온 세상이 무너질 수 있사옵니다. 상헌은 우뚝하고, 신은 비루하며 상헌은 충직하고, 신은 불민한 줄 아오나! ..내일 신을 죽이시더라도.. 오늘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주소서.
김상헌: 명길이 칸을 황제로 칭하고 전하를 칸의 신하로 칭했으니, 전하께서는 명길의 문서를 두 손에 받쳐들고 칸 앞에 엎드리시겠사옵니까? 무릎을 꿇고 술을 따르라 명한다면 칸에게 술을 따라 올리시겠사옵니까?!
최명길: 전하..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는 것과 같이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것이옵니다!
김상헌: 정녕 명길이 말하는 것이 전하가 살아서 걸어가시고자 하는 길이옵니까?
최명길: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상헌은 말을 중히 여기고, 삶을 가벼이 여기는 자이옵니다.
김상헌: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 옵니다. 신은 차라리 가벼운 죽음으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전하! 상헌이 말하는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김상헌: 명길은 삶을 죽음과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최명길: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전하, 만 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김상헌: (울먹이며) 한 나라의 군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 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신은 그런 임금은 차마 받들 수도, 지켜볼 수도 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신의 목을 베소서...
최명길: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에 발 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지금 신의 목을 먼저 베시고, 부디 전하께서 이 치욕을! ..견뎌주소서...
인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한편 인근 근왕병의 주둔지에서는 격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리 전시라지만 천한 대장장이에게 국서를 맡겼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며 무관들은 진언하지만 도원수는 날인된 국새를 보고 인조의 격서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무관들은 남한산성은 견고한 성이니 홀로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청나라의 군대를 두려워 해 진을 뒤로 물리는 것을 권한다. 설령 봉화를 올리더라도 청군에게 노출되어 집중 공격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워하여 공격을 망설이며 왕명을 거역하여 전쟁 이후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을 고민한다. 도원수와 장수들의 결론은 격서를 받은 적이 없으면 된다는 것이었다.[30]

결국 무관이 몰래 침소에 들어와 단도로 날쇠를 죽이려고 이불에 단도를 찔러 넣었으나 이불 안에 있었던 것은 짚더미였고, 뒤에 숨어 있던 날쇠는 "나는 벼슬아치들을 믿지 않소."라고 말하며[31] 성을 떠날 때부터 챙겼던 으로 군관을 제압하고 달아난다.[32] 같은 시간, 김상헌은 어두운 검단산의 봉화대를 바라보며 봉화를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오히려 근왕병들은 청군과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포위를 뚫고 격서를 전달한 구국의 영웅인 날쇠를 첩자로 몰아 엄하게 죽이려 들고 있었다. 추적 도중 앞뒤로 포위당한 날쇠가 얼어붙은 폭포를 조선 낫을 피켈처럼 찍어 올라 도망가는 걸 알아차리지만, 군관이 활로 날쇠를 겨냥하는 순간 폭포 위의 청군의 공격을 받고,[33] 쏟아지는 화살에 추격하던 근왕병은 날쇠를 포기하고 도망치고 청군 장수는 부하 장수에게 "분명 조선군의 본영이 있을 것이니 우린 위치를 알아내고 한꺼번에 기습 공격할 것이다"라며 부하 장수에게 척후대를 딸려 조선군을 추격하게 한다.

한편 인조는 최명길과 독대하여 후대에 역적으로 남아도 괜찮겠냐고 묻고, 최명길은 자신이 감당할 일이라고 말하며 김상헌만한 충신이 없으니 후일 궁으로 돌아가더라도 내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이에 인조 역시 경도 나의 충신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김상헌과 최명길 모두 우국충정의 길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도망치는 근왕병들을 청군이 추격하면서 근왕군의 본진은 완전히 초토화된다. 남한산성 성벽에서 김상헌은 봉화대를 하염없이 바라 보는데 어두웠던 먼 산에 횃불이 하나 둘 씩 켜지며 함성이 울려퍼지는 듯 하지만 김상헌의 멍한 표정을 잠깐 비춰준 뒤 아무일도 없이 잠잠한 산을 다시 비춰준다. 김상헌은 아침까지도 엄청난 수의 근왕병들이 횃불을 들고 봉화를 피우는 상상을 하며 기다렸지만 결국 근왕병은 오지 않았다는 묘사이다.[34] 조선의 항전이 결국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로 다음 장면에 초토화된 조선군 진영을 걷는 날쇠의 모습 뒤로 까마귀가 시체의 눈을 파먹는다.



모든 방해를 무릅쓰고 마침내 최명길이 청군 진영으로 출발한다. 그 시각 성벽 위의 칠복은 김상헌에게 받은 돼지기름을 동상 부위에 바르며 형이 근왕병들을 이끌고 와서 난국을 돌파할 것이라며 주변 병졸들과 잡담을 한다. 나이 먹은 병졸이 정말 그렇게 되면 자신의 딸을 날쇠 동생과 혼인시켜 주겠다고 하자, 칠복은 딸이 이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말하려는 순간, 병졸이 기대어 있던 성벽이 청군의 포격으로 순식간에 무너지며 즉사하고 계속되는 포격과 함께 정월 대보름으로 예고한 청군의 공격이 시작된다. 김상헌은 집안으로 들어가 겁에 질린 나루를 안아 보호한다.[35] 무너진 성벽 사이로 청군이 쳐들어오고, 이시백을 필두로 한 조선군과 청군의 백병전이 벌어진다. 조선군은 조총을 쏘며 응전하지만 청군의 계속되는 포격과 압도적인 군사 수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36] 포격으로 인조가 있는 행궁을 비롯해 성 안이 파괴되고 대포 소리에 다급하게 말을 달려 겨우 청의 본진에 도착한 최명길은 항서를 칸에게 바치며 항복을 청한다.[37] 이 전투에서 군역 경험이 없었던 칠복은 겁에 질린 채 벌벌 떨다가 동료를 죽이려는 청군 한 명을 돌로 머리를 쳐서 죽여버리지만 곧바로 뒤에 있는 청군의 창을 맞고 전사한다.[38] 그 시각 칸은 이제야 조선이 자신의 의사를 파악했다며[39] 용골대와 장수들에게 공격을 멈추게 한다.[40] 때 맞춰 날쇠는 남한산성으로 돌아왔지만, 들려온 소식은 조선이 결국 항복했고 칠복이 죽었다는 비보 뿐이었다.[41] 하나뿐인 가족마저 잃은 날쇠는 칠복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한다.

13. 마지막 장: 삶의 길

청에 항복하기로 최종 결정이 나자 조정에서는 성내 청을 오랑캐로 취급하는 문서와 서적을 모두 불태워버린다. 이후 성으로 돌아온 최명길은 김상헌을 찾아온다. 김상헌은 최명길이 사직의 안위와 무고한 백성들을 구했다고 말한다. 이에 최명길은 같이 조선을 다시 일으키자고 설득하지만 김상헌은 그것이 임금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백성을 위한 것인지 반문한다. 최명길은 임금과 백성이 함께 걸어갈 새로운 길이라고 답하지만, 김상헌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그렇지만 틀렸소.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말이오." 이와 같이 말하며 거절한다.

김상헌은 나루를 날쇠에게 맡기고, 어려운 일을 해주었으며 마지막까지 염치없는 부탁을 들어준 날쇠에게 큰 절을 올리는데, 몸 둘 바를 모르던 날쇠 또한 맞절을 하며 작별한다. 최명길은 임금의 곤룡포가 아닌 신하의 남색옷을 입고 항복의 예를 하러 가는[42] 인조의 말고삐를 잡고 성문 앞까지 향한다. 항복하러 가는 인조 행렬을 보며 나루가 날쇠에게 왜 임금이 궁으로 돌아가는데 사람들이 우냐고 묻고, 날쇠는 임금이 집으로 돌아가신다니, 모두가 기뻐서 우는 것이라고 답해준다. 청나라의 요구 조건에 따라 칸에게 무례를 범한 인조는 죄인이므로 정문인 남문으로 나오지 못하고 서문으로 나온다. 최명길은 성문 밖에서부터는 말을 탈 수가 없다 말하고 이에 인조는 하마하여 문 밖으로 나가며 그 뒤를 신하들이 따르고 한쪽 팔을 다친 이시백을 비롯한 병졸들과 장수들은 모두 절을 한다.

인조는 청 태종에게 삼궤구고두례를 바치고, 그 시각 김상헌은 인조가 있는 삼전도를 향해 절을 올린 뒤 나루의 할아버지를 죽였던 바로 그 칼로 자결한다.[43][44] 삼전도에서 이를 지켜보던 최명길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45]

굴욕의 항복식이 끝나고 그때의 복장 그대로인 인조와 신하들이 한양 궁궐로 돌아온다. 폐허가 된 궁은 어지러웠다. 인조와 신하 행렬이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와중에 최명길이 뒤돌아 관객들을 응시하다가 궁궐 문이 닫힌다. 이 다음으로 병자호란이 개전 47일 만에 끝났으며 50만 명의 조선인이 청에 끌려갔다는 글귀가 나온다.

다음해 봄이 되어 민들레꽃이 핀 마을. 언제 전쟁이 났냐는 듯 평화롭기 짝이 없는 모습인데, 최명길과 김상헌 두 사람이 모두 바랬듯 결국 삶은 다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나루가 날쇠가 대장간 일하는 걸 쪼그려 앉아 구경하다가 친구와 연을 날리러 뛰어가고 이에 날쇠가 "너무 멀리 가지는 말거라"라고 말하고 다시 대장간 작업에 몰두하는 장면을 비추며 영화가 끝난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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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여진족, 포괄해 말하자면 만주족)나라군 7만 명, 몽골군 3만 명, 한족 군사 2만 명.[2] 배우는 문창길. 과거 용의 눈물조준, 여인천하남곤 역으로 유명하다.[3]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노인이 한 생각은 청군에게 인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행위이므로 잘못하면 바로 왕이 인질로 잡히고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김상헌은 노인이 이 일을 행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가 없으니, 위험 요소를 남겨두는 것보다 제거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취한 것이다. 또한 이 장면은 화친을 반대하는 김상헌의 캐릭터성을 잘 나타내는 장면이고, 이를 관객들에게 각인 시키는 효과가 있다. 김상헌이 간곡히 당신들을 거두어 들일 테니 제발 같이 가자고 처음 본 노인에게 누차 청하는 것은 단순히 동정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청에게 길잡이가 생기는 것은 막되 이 노인을 죽이는 선택은 최대한 피하고 싶기 때문이었던 것. 요청에 응하지 않자 베어 쓰러트려 후일의 악재를 방지하는 것까지, 이는 이후의 날쇠와의 장면들이나 나루와의 장면의 시작점으로 인간 김상헌의 인덕과 융통성을 보여주며, 반대로 끝끝내 스스로 자결하며 쓰러지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강직함까지 모두 한 번에 설명하는 신이 된다. 더불어 또 노인을 죽인 것이 나중에 나루에게 동정을 느끼고 거두어 키우는 이유가 된다.[4] 물론 당대엔 명분이 중요했고 김상헌도 진짜로 베라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살벌하다.[5]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세 남쪽 지방을 이르던 말[6] 또 회의 와중에 군량 소모와 관련하여 논의를 하던중 인조가 최명길에게 의견을 묻고자 그를 부르지만 최명길은 그날 입궐하지 않았다. 김류는 이를 역적 최명길을 참수해야 한다는 상소에 겁을 먹어 청군에게 투항하러 간 것이 아니겠냐며 모함하는데 인조는 '영상의 목을 베라는 상소도 있었다!'고 일갈하며 입을 다물게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김상헌이 병장기 문제 안건을 올리자 정작 병조판서와 군무를 총괄하는 체찰사인 김류는 이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었다.[7] 의견이 달라 충돌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라를 위한 마음은 같다는 걸 서로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8] 영화에서 유일하게 조선군이 청군을 상대로 확실하게 승리한 전투이다. 전투 환경만 봐도 이미 진을 치고 있는 조선군에게 청군들이 돌격하는 상황인데 지형이 좁고 험해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속도도 느려져 포수들이 체계적으로 퍼부은 총탄 세례로 기세가 좌절된데다 결정타로 살수들이 돌격해 청군을 패퇴시키는데 성공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식으로 청나라 군대를 몇번 격퇴를 했다. 하지만 후에 나오는 북문 전투와 비교해보면 모든 상황이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9] 이 시점에서 엎드려 있던 김상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얼이 빠져서 나루를 맡아 달라는 인조의 말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한다. 나라의 관리로서 냉정하게 노인을 살해했었던 김상헌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10] 사실 수어사 이시백이 무과에 응시한 무관이라는 설정은 오류이다. 그는 공신 이귀의 아들로 반정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용되어 정묘, 병자호란을 거치며 무관으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은 관리였지만, 본래부터 광해군 대에 진사시에 합격했던 유생이었고 호란 이후에는 조정의 핵심 요직을 거치며 영의정까지 역임하는 문신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문민통제의 일환으로 무관 요직을 문관이 담당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11] 이 외에도 김류는 말은 추우면 참기 어렵지만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다면서 백성과 병졸들의 추위는 감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미 수성전에 돌입한 이상 기병의 존재는 큰 의미가 없다. 나가서 싸울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김류의 말이 단순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음을 영화에서 조선군이 기병을 부리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방증한다. 그전에 여진족 출신인 청나라군을 기병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12] 원작에서는 볏단이 썩어 있어 그걸 먹은 말이 죽었다고 설정했다.[13]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라는 반어적 조롱을 들은 사대부의 체통이 오죽했을까. 가마니를 걷도록 주도한 인물 또한 김류였으니...[14] 이 때 병졸들의 표정을 화면에 모아서 잡는다. 이 모습이 높으신 분의 살벌한 분위기에 기죽기는 커녕, 어떻게 나설지 기다리고 있는,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금방이라도 반란이 일어날 것 같은 모습. 성이 '안에서부터 무너진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가 강조되는 장면이다.[15] 사대의 예를 따르는 조선이 웬일? 이라고 할 만하지만, 화친이나 항복 같은 것이 아닌 단순한 선물이었고, 화친을 반대하는 김상헌도 오랑캐에게 법도를 가르쳐 주는 것이니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찬성한다.[16] 실제 역사에서는 마부대가 조선측에게 한 말이다. 영화 내에서는 밖에 있던 일개 병졸들도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모습으로 한끼 먹을때도 시름하던 남한산성의 조선 백성들과 대비를 이루며, 이 말이 허세가 아님을 보여준다.[17] 이때 무당에게 오늘이 길일이라고 들었다는 김류의 말이 가관이다. 물론 전근대 시대에는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무당이 길일로 택한 날에 전투를 하는 경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걸 사대부에게 쓴다는 건...[18]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가던 인조가 노루를 발견하고 신하가, "노루가 보이니 길조이옵니다" 라고 말하지만 인조는 이괄의 난 때 몽진 갈 때에도 노루를 봤다며 씁쓸해했다는 설화가 있는데, 거기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19]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대군이 움직이기 전에 정찰이 이뤄져야 하는게 당연한 것이다. 군사를 총괄하는 체찰사 김류도 무시한 부분을 하급 군관인 초관이 뒤늦게서라도 급히 하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20] 포격을 당하는 병사들의 팔이 절단되고, 하반신이 날아가 울면서 기어다니는등 상당히 고어하게 묘사된다.[21] 이 부분에서는 시청자들마다 의견이 갈리는데, 후퇴하는 군사들을 엄호하기 위해 지원군을 보내야 맞는다고 하는 쪽과 반대로 애초에 대열도 무너진 채 패주하는 군사를 지원하기 위해서 추가증원군을 내보내는 건 어리석다는 쪽도 있다. 일단 작중 김류는 다른 전략적 판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 자신이 지휘하는 전투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어떻게든 이기려고 어거지로 증원군을 사지로 내모려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상으론 첫 출전때도 본보기로 몇 명을 죽여야 겨우 전진했는데 패전해서 아군들이 도륙당하고 있는 와중에 성 밖으로 나갈 병사는 없을 것이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애초에 최정예 부대도 아닌 급하게 구성한 일반병 300명으로 타격을 주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홍타이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군대 라면 매우 강력한 병사들일 텐데 정말 기습에 성공한다 한들 침착하게 대응하면 역으로 당할 게 뻔하다'''[22]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사슴을 잡았던 숲이다.[23] 애초에 사기도 떨어져 있고 준비도 되지 않은 오합지졸을 데리고 전투를 수행하려는 김류와 조정의 성급한 판단부터가 미스. 활로를 뚫으려는 그들에게도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겠지만 그 명분이 병사들의 목숨보다 앞서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었다. 노련한 이시백의 조언마저 개무시해놓고는 항명이랍시고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더 큰 책임을 묻게 만들었다.[24] 앞서 한 번 등장했던 격서는 이미 죽어 아군에게 목이 잘린 전령과 함께 돌아왔고, 이 격서는 이후 인조가 국새로 날인을 해주는 장면을 보임으로써 새로 만든 격서 임을 알 수 있다.[25] 다만 다른 대신들에겐 비밀로 했다.[26] 흔히들 현실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척화파로 알려진 김상헌은 당장 직면한 현실인 겨울을 바라보고 있고, 현실을 명분보다 중요시하는 주화파로 알려진 최명길은 오히려 미래의 봄을 예견하는 장면이다.[27] 그 전까지는 잘도 갑론을박 하던 대신들이 이번에는 왕에게 떠넘긴다. 국가 위기 상황을 헤쳐나갈 인재 풀이 부족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28] 무슨 뜻이냐면 살아가는 것은 숭고한 일이지만 청에게 답서를 보내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은 숭고한 것이 아니니 답서를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29] 영화의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부분. 오랑캐에게 치욕을 구걸할 바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서 살 길을 찾으려는 김상헌과, 자신이 지어 올린 글은 '글'이 아니라 삶을 위한 '길'이며 죽음은 견딜 수 없지만 치욕은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최명길의 가치관 충돌을 보여준다. 둘 다 의견은 다르지만 둘 다 나라를 위한 충심은 같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다.[30] 이 때 장수들의 대화로 근왕군으로 온 부대의 수장이 도원수 김자점임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김자점이 함경도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실제 김자점은 12월 25일 토산에서 도르곤의 기습을 받고 패전한 뒤 12월 30일 미원(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까지 다다라서 패잔병을 수습하여 1만 7천에 달하는 병력을 모아 놓고 있었다. 따라서 이를 고증오류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이들이 청군에게 박살 난다는 것이 고증오류다.[31] 날쇠를 연기한 배우 고수가 영화 고지전에서 맡았던 역할을 생각하면 정말 절묘한 캐스팅과 대사라 할 수 있다.[32] 이때 군관을 살려두면 반드시 군사들과 함께 다시 쫓아올 것임을 알면서도 군관을 죽이지 않고 도망간다. 여러가지 추측이 있는데 '자신은 조금만 잘못해도 백성을 함부로 죽이고 벌주는 벼슬아치들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자비를 베풀어 살려둔 거라고 볼 수도 있고, '내 임무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고(격서는 전했지만 근왕병은 데리고 오지 못했으므로) 거기다 장수까지 죽이면 전쟁 후에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이 더 커질 것이다.'라는 생각에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33] 잘 보면 단도를 들고 날쇠를 살해하려 하던 군관이 제일 먼저 목에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날쇠가 살려주었을 때 쫓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34] 해당 장면의 묘사를 원작에서 처럼 충청도 근왕병이 실제로 산성에 근접하였다 전멸하는 대목의 묘사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성 밖의 먼 고지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밤에, 남한산성 서장대에서는 먼 고지의 어지러운 불빛들이 보였다. 불빛들은 빛의 가루처럼 가물거렸다. 고지의 위쪽과 아래쪽에서 대열을 이루며 가까워지던 불빛들은 쫓고 쫓기면서 뒤섞이다가 하나둘씩 꺼졌다.(345쪽)[35] 원작과 실제 역사를 무시하고 김상헌을 체찰사로 임명하는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체찰사라는 사람이 성이 전면공격을 받는 와중에 군사지휘도 포기하고 아이를 보호하러 달려가는 어이없는 장면이 연출되고 만다.[36] 이 때 이시백은 칼을 잘 다루며 많은 청군을 베고 왼쪽 팔에 상처를 입고도 상처입힌 청 군사를 벤 후, 자신을 공격한 다른 청 군사도 목을 칼로 베어 제거하는 무쌍 난무를 찍는다.[37] 이 장면이 조선의 군사들, 백성들이 청군에게 무차별적이고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장면과 교차된다.[38] 정신이 무너져있는 칠복에게 그 동료가 정신차리라고 소리치는데, 첫 번째 "칠복아!"를 잘 들어보면 날쇠의 목소리가 들린다. 칠복에게 날쇠가 어떤 존재였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결국 그 동료는 칠복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칠복은 그 직후에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멍하니 서서 오랑캐들 다 죽여버리겠다, 우리 형이 근왕병이랑 돌아오면 너흰 끝이라고 혼잣말을 하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칠복같은 일반 백성에게 있어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광기스럽고, 참혹한 것인지 보여주는 부분이다.[39] 자신들을 오랑캐라고 욕하고 무시했으나, 이제라도 신하의 예를 갖추라는 뜻이다.[40] 전투가 끝난 후 성에 즐비한 조선군과 청군의 시체들, 그리고 이시백을 포함해 생존한 소수의 조선군들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는 장면이 나온다.[41] 칠복이 구한 동료가 울먹이며 알려준다.[42] 곤룡포는 명나라가 내린 복식이기 때문에 이를 버리고 청의 신하가 됨을 뜻한다. 물론 삼전도의 굴욕 이후에도 곤룡포와 익선관 등의 복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청에서도 이를 문제삼지는 않는다.[43] 실제 역사에서는 목을 매었으나 자식들이 발견해서 죽지는 않았고, 청의 원병 요청을 거절한 책임을 물어 소현세자 일행과 함께 청나라로 끌려가게 된다. 이때 청나라에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바로 옆방에 최명길이 명과의 내통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함께 갇혔고 이후 서로 시구를 주고받으며 회포를 풀었다는 구전이 있다. 이후 둘 다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한다.[44] 영화에서도 칼로 찌른 후 아직 숨이 끊어지진 않은 묘사가 있다. 이후 김상헌의 생사는 언급되지 않아 그대로 죽을지, 방법만 달라졌지 역사처럼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어 미수로 끝날지, 김상헌의 생사에 한해선 열린 결말이기도 하다. 영화상에선 김상헌이 배 쪽으로 칼을 찔러 자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나 실제로 배를 갈라 자결하는 방법은 매우 어렵다. 자세한 사항은 할복 참고.[45] 의미심장하게도 위태롭게 눈물을 참고 있던 최명길이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통곡하듯이 터뜨리는 장면과, 김상헌이 자신을 칼로 찌르며 자결하는 장면이 거의 동시에 나온다.[46] 민들레 꽃은 봄이 와서 강물이 녹으면 자기가 생선을 잡아 주겠다는 김상헌에게 나루가 했던 말에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