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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4:48:38

기황후(드라마)/방영 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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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충혜왕 미화 논란2.2. 기황후 미화 논란2.3. 제작진 발언 논란
3. 방영 전 변경사항

1. 개요

드라마 기황후의 방영 전 논란에 대해 정리한 문서.

2. 목록

2.1. 충혜왕 미화 논란

가장 큰 우려를 낳있던 것은 최초 주인공이라고 발표했던 충혜왕. 사서에서는 '희대의 폭군이자 암군'으로 평가받는 충혜왕을 드라마 시놉시스에서는 '야성적이고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남자', '고려의 힘을 키우고자 노력했으나 좌절감에 젖어 퇴락에 빠지고 만 후대의 공민왕 같은 비운의 임금'으로 표현하고 있다.[1] 물론 충혜왕재평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부원배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으며, 상업을 발달시켰다는 부분이 조명되긴 했다. 허나 이 부분도 충혜왕 자신의 성격을 봐서는 절대 고려를 위한 게 아니라, 국가의 수익모델화이자 자신의 놀자판을 위한 왕권강화였을 뿐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상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는 평가를 내려도 사실 문제다. 충혜왕은 자신이 장사를 하기 위해 백성들의 피땀을 한 톨까지 갈취하여 자신의 장사 밑천으로 썼고, 장사해서 번 돈을 백성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신의 사치향략을 위해 썼다. 이는 《고려사》보다 《고려사절요》를 보면 극명하다. 신궁을 지을 동철을 구하려고 백성들의 농기구를 몽땅 긁어가서 농사가 방해가 되었다 할 정도이다. 이렇게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지건 말건 왕이 새로 지은 궁궐 창고에는 곡식과 피륙으로 가득 찼다고 하니, 이래서야 욕을 안 먹을래야 안 먹을 수 없다.

공개된 정보를 보면, 이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충숙왕의 계비이자 충혜왕의 서모인 경화공주였다. 배역 설명만 봐도 원나라 황후가 되고 싶을 정도로 야망이 크네, 용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를 선택하네, 사치를 좋아하네 등 아무리 봐도 악역에게나 붙을 설명이 붙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경화공주는 의붓아들 충혜왕에게 강간당한 피해자이다. 반항하니까 충혜왕이 신하들을 시켜 경화공주의 사지를 묶고 강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강간 피해자를 악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사.[2]

강간했다는 죄로 폐위된 것 역시 친원파 권신들이 누명을 씌운 것으로 나온다고 한다. 역사 왜곡에 고증 깽판이 장난 아니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영 당시 드라마의 팬들이 장옥정숙종의 로맨스를 실제 역사였다고 믿고 싶어서 사료를 지들 마음대로 끼워 맞추어 해석하던 것으로 보아[3] 이 드라마 역시 충혜왕을 매력적으로 그려내게 된다면 검열삭제킹을 위해 사료를 지들 마음대로 해석하는 후폭풍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사극에서 무조건 먹고 들어간다는 서브남주 포지션이라는 말이 있어 더욱 우려되는 바. "차라리 공민왕을 서브남주로 삼는 게 낫지 않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충혜왕의 막장성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예 고증을 충실히 하여 도쿄핫 같은 곳에 외주를 맡기자는 개드립까지 돌고 있었다. 참고로 제작사는 이김프로덕션. 그렇다. 스파이 명월을 만든 그 제작사다.

한편 네이버는 <기황후> 방송 첫 날 충혜왕의 진면목을 그대로 적은 네이버 캐스트를 올렸다. #

2.2. 기황후 미화 논란

실존 기황후고려 출신이면서도, 고려 침략을 원나라 황제에게 요구했다. 고려의 국정을 농락했던 오빠 기철공민왕이 처형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것.[4] 그러나 반대파에서는 "역사는 역사일 뿐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현실과 드라마는 구분해서 보는 게 좋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고려 공민왕은 즉위 후 원나라를 적대시하며 반원(反元) 정책을 고수하며 고려 왕조에 있는 친원파 관료들을 모조리 숙청하였으며, 그 중에는 기황후의 오빠이자 친원(親元) 성향이 짙었다는 기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이같은 주장이었다.

그래서 제작사의 언플인 듯한 역사왜곡 반박 기사를 내기도 했는데, 기사에 서울대 교수라고 나와있다. 그러나 경향신문 조사 결과 기사의 이강한 교수는 서울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학교 출신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이다. 관련 기사 검색하면 대체로 서울대 교수들과 같이 언급되는 사람인데, 언플 담당 기자가 대충 보고 오보한 듯.

또한 반박 내용이 지금까지의 기황후 파의 실더들과 거의 흡사해서 오히려 비웃음을 사고 있다. 보면 알겠지만 그 충혜왕이 상업을 중시한 것에만 중점을 두고 그걸 하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한 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간 기록들도 막연하게 '후대에 부풀렸을 것이다', '사칭 기록이 있으니 부풀려진 것이다' 라고 딱히 명확한 증거도 없이 주장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이강한 교수의 원래 연구 내용은 '기황후 일파가 권력을 잡은 후 고려가 원에게 보내는 공물의 양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것으로, MBC 측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기황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지 인터뷰를 하자 이강한 교수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고, 충혜왕폭군이다"라고 대답했다. 제작진이 이강한 교수의 논문을 근거로 기황후 옹호론을 폈다고 하자 "그 사람들 내 논문 제대로 읽긴 한 거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

다만 이강한 교수는 충혜왕보다 우왕을 더 폭군으로 보기는 한다. 충혜왕은 삥 뜯은 돈으로 백성 구휼을 한 '정황'이라도 있지만, 우왕은 그냥 실드의 여지가 없다는 것. 그렇다고 충혜왕이 잘했다는 것은 물론 아니며, 게다가 이강한 교수의 핵심적인 논지는 충혜왕의 공격적 경영이 기황후 일파를 위협했기 때문에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둘을 러브 라인으로 엮었다.

또한 애초에 같은 역사학자라고 해도 어느 시대를 연구하느냐는 물론 정치사 전공이냐 문화사를 주로 연구하느냐 등이 대충 나뉘는데, 이 교수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원 간섭기 정치사가 아니라 경제사다. 즉 기황후를 어떻게든 옹호하고 싶다면 고려 후기 정치사나 외교사 전문을 불렀어야지, 원 간섭기의 고려는 수탈을 당하기도 했지만 대외 무역만큼은 활발히 했다고 주장한 사람을 불러내는 건 처음부터 부적절했다[5].

결국 명확한 증거가 없자 "역사서 속 한 줄만 가지고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사극"이라며 "우리가 역사학자도 아니고 해외에 수출하려는데 이상하게 하면(악행 등을 그대로 작품에 담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실드 치고 있다. # 사실 이는 정말 되지도 않는 변명에 불과하다. 그들의 말대로 역사서 속 한 줄에서 사극이 나올 수는 있다. 역사서에 기록되어있지 않는 사실을 상상으로 메꾸는 것은 사극도 창작극인 이상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인간말종인 인물을 선한 인물로 둔갑시키거나 하면서 실제 역사와는 정반대로 왜곡하는 것이 문제일 뿐. 사실 고증 따위를 떠나 "주인공의 악행 같은 것을 묘사한다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도 현실과는 먼 이야기다. 실제로 충혜왕과 쌍벽을 이룰 정도의 폭군 연산군이나 조선시대 투탑의 요녀로 인식되던 장희빈장녹수 등등 선한 이들이라고 볼 수 없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들이 저지른 악행들을 미화하고 왜곡하지 않아도 성공한 사극들은 수두룩하다.

근데 사실 드라마 내용상으로 비판하려면, 기승냥(기황후의 작중 본명)이 어릴 때 기승냥 가족 전체가 피난을 가다가 엄마가 사망, 나중에 아버지가 죽은 후 정작 같이 있었어야 했을 기승냥의 오빠라는 기철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부터를 비판해야 할 것이다. 작 중에서 초반부만 나온 기자오가 "해주에 기승냥의 오라비들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추후 악역이나 최종 보스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있었으나, 후반부까지 그런 건 없었고 마지막 51화에서 "고려 왕에게 죽었다"는 짤막한 언급만 나왔다.

2.3. 제작진 발언 논란

일찌감치 기황후 역에 하지원이 캐스팅되었다. 그러나 하지원은 캐스팅 이후 인터뷰에서 기황후가 누구인지 검색조차 해보지 않은 듯한 발언을 해 네티즌들의 우려를 샀으며, '기황후가 한류의 원조라서 출연했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6] 배우가 전문 학자도 아닌 이상 큰 잘못은 없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야말로 그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하는 게 배우다. 확인되진 않은 루머일 뿐이지만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의 찌질한 행동에 대해 "내가 파악한 이순신이란 캐릭터는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제작진에게 확인을 요청했다는 김명민의 일화나[7], 용의 눈물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김흥기의 후덜덜한 정도전 연기는 그만큼 정도전의 생애에 깊게 파고 든 김흥기의 성과였다[8] 또한 주진모는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사극에서 일일이 역사적 사실을 따지면 그게 다큐이지 드라마냐?"라는 소리를 했다가 비판을 받았다.[9] [10]

결국 제작진이 나서서 "이 드라마는 기획부터 정사나 퓨전 드라마가 아닌 픽션이며 극 중간중간에 픽션 드라마임을 확실하게 고지하겠다"고 밝혔다. #, # 쾌도 홍길동처럼 등장인물 전원이 원래 정사(正史)에 없었던 경우와는 달리 기황후라는 실제 인물을 다루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역사 왜곡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가는 '팩션'이라고 하였는데, 팩션은 100% 가상이 아니라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것을 의미한다.[11]

게다가 작가는 이전에는 "근거 자료 없이 역사를 극화시키지는 않았다", "논란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자료 준비 과정에서 인물들이 충분히 재평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와 같은 모순되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

여담으로 한국 사극의 특색 중 하나인 주인공이 어렸을 때 비참한 신분(노예, 천민)으로 떨어져 개고생한다는 클리셰를 이 사극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3. 방영 전 변경사항

또한 제작진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방영 이전 기황후에 나오려던 충혜왕을 가상의 고려 왕 왕유로 변경하고야 말았다. # 물론 악소배와 어울리지만 실은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눈 가리고 아웅으로도 보이는데, 어쨌거나 충혜왕을 대놓고 미화하는 것은 무리수였다는 점이 여실히 증명되는 셈. 사실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게 사극이나 역사 드라마에서 역사 흐름에 영향을 끼치 않는 가상의 인물이 추가되거나 별 기록이 없는 인물에게 작가의 상상력을 부여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가상의 인물이 현실의 인물,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대체하는 건 굉장히 특이한 일이기 때문. 애초에 눈 가리고 아웅밖에 되지 않는 허술한 조치다보니 제작진의 이런 한심한 작태에 동조해주는 시청자는 거의 없다.

결국 논란이 계속되어 충혜왕이 가상의 왕으로 변경이 된 이후에, 경화공주는 캐릭터 성격이 변경된 채로 비중이 크게 줄었고.별로 나오지 못했다. 경화공주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배우 윤아정기황후를 괴롭히는 공녀 출신 무수리 '연화'라는 캐릭터로 배역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방영도 제대로 되기 전에 배역이 계속 설정이 바뀌는 등 쪽대본으로 인한 파행 촬영이 나올 환경이 딱 나오기 좋게 생겨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드라마의 완성도도 걱정되던 상황이다.

[1] 아무리 시대가 원 간섭기여도 당대는 물론 현대까지도 기록된 글을 보면 충혜왕의 행위는 도저히 한 나라의 군주의 품행이라고 볼 수 없다. 백번양보해서 연산군과 비교를 해도 용인이 안 되는 게 충혜왕이다.[2] 그러니까 경화공주가 누군지 잘 안 알려져 그렇지, 오늘날로 치면 일본에서 위안부가 악당이라는 내용의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하는 소리와 마찬가지이다.[3] 그렇게 했어도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동시방영작인 《구가의 서》보다도 시청률이 낮다.[4] 다만 당시의 민족 관념과 지금의 민족 관념을 1:1로 비교하는 건 약간 어폐가 있다. 그렇다고 기황후의 짓이 커버되는 건 아니지만.[5] 다만 고려와 원의 관계에 대해서도 부차적으로 논하기는 하는데, 공민왕의 개혁이 '반원(反元)' 이라고까지 평가받을 정도는 아니었으며, 고려와 원의 관계는 오늘날 인식되는 것처럼 험악하지만은 않았다는 독특한 주장을 한다. 아무래도 드라마 제작진들은 이 부분에 주목한 모양인데, 공민왕을 재평가하는 것과 기황후를 재평가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동일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6] 기황후고려 여인들을 공녀로 뽑아 그녀들을 원나라의 귀족 가문에 첩이나 시녀로 들여보내 로비를 했다. 국가 단위로 고국의 여인들을 데려다 포주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7] 말 그대로 방영 당시에 잠시 돈 루머일 뿐이지만, 그만큼 김명민이란 배우가 실제 역사 인물에 대한 공부를 했고 그렇기에 그런 명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썰의 일종[8] 얼마나 깊이 공부를 했는지, 용의 눈물이 방영되었던 1997년에 국민대학교에서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강연을 했을 정도였다. #[9] 물론 드라마가 너무 다큐 만들듯이 엄숙하게만 나가면 시청자들 보기에 꽤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래서 가공 인물이나 가공 사건들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왜곡 없는 사실 역사를 토대로 부가적으로만 넣어야 하는 것이지, 대놓고 역사나 인물 자체를 왜곡시켜 놓는다면 그게 정작 우리나라가 욕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과 다를 게 뭐냐는 의미이다.[10] 사실 왜곡이 100% 안들어 갈수는 없다. 우리가 그 시대를 살고 있는것도 아니고 기록에 없는 부분도 존재하기에 그 부분을 메꾸기 위한 창작 또한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기록을 토대로 가능한 상상으로 창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드라마 해신의 경우 장보고의 어린시절을 다룰때 장보고가 고생해 노예로 끌려간것으로 묘사 되었는데 그렇게 묘사한 이유가 당시 당나라로 가는 경우는 유학이나 노예로 끌려간 경우 두가지 뿐이라고 볼수있기에 천민출신이던 장보고가 유학으로 갔다고 볼수는 없고 남은 단 한가지 노예로 끌려간걸로 묘사한 것이라고 한 제작진의 인터뷰가 있었다.[11] 이런 팩션물의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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