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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杞
1.1. 개요1.2. 역사1.3. 기타1.4. 역대 군주
2. 紀
2.1. 개요2.2. 역사2.3. 역대 군주
3. 冀4. 岐5. 기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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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요

고대 중국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지금의 허난성 치현에 위치하며 수도는 옹구였다가 순우로 옮겼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하나라의 후예라고 한다. 현대 고고학에서는 하나라의 존재가 실증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1]

1.2. 역사

전설에 따르면 하 왕조 때부터 후작의 작위로 분봉을 받은 국가로 하 왕조의 시조인 의 후예가 다스리며 자작작위로 분봉을 받은 국가였다. 상 왕조 말기에 망했다가 주나라 무왕이 우의 후손 동루공을 얻어 봉했다. 국성은 사(姒)성이며 우의 후예라고 칭했다.

기는 소국이었기 때문에 사서에서의 기술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사기》에는 진기세가의 기술이 있지만 기에 대한 기술은 불과 270자이며 '기는 작고 약하여 기사를 쓰기에는 부족하다'고 다루어지고 있다. 본기에도 가끔씩 언급되기는 하지만 정말 분량이 적다. 이와 같이 국력도 영 충분하지 않은 소국이었기 때문에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 안에서 천도를 반복하였다. 기는 비록 소국이었지만 하 왕실의 후예이고 하례를 보존하고 있어 유가에서는 큰 의의가 있었다. 공자도 하례를 배우기 위해서 기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기의 공자 중 한 명이 제나라를 섬겨 (鮑)의 땅을 받은 데에서 포씨를 자칭했고 그의 후손 중에서 현신으로서 유명한 포숙아를 배출하였다. 포숙아의 후손인 포씨는 대대로 제나라에서 벼슬을 살았다.

춘추》에서는 기후(杞侯), 기자(杞子), 기백(杞伯) 등으로 불러 일관적이지 않은데, 전통적으로는 기나라가 원래 후작이나 오랑캐와 섞여 살았기 때문에 폄하돼 자작이 됐다가 중원의 패자와 협력하면서 백작이 됐다고 한다. 애초에 기후(杞侯)가 또 다른 기나라인 기후(紀侯)를 잘못 적은 것으로 이 기나라는 후작인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기원전 722년에 이(夷)나라를 정벌했고 기원전 719년에 거나라와 싸웠고, 초(楚)나라의 공격을 받아 약소국으로 전락하였으며 간공 원년 기원전 445년 초(楚)나라의 혜왕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1.3. 기타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인 기우(杞憂)라는 말의 유래가 된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기우 같은 기나라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고사가 전해지는 건 망한 왕조의 후예인 기나라에 대한 당대의 비하적 인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비슷하게 역시 망한 왕조인 상나라(은나라)의 후예인 송나라에 대해서도 역시 비하적 인식이 있었는지 송양지인, 수주대토 같은 우스꽝스러운 고사들이 전해지고 있다. 요즘으로 따지면 지역드립인 셈.

1.4. 역대 군주

앞에는 시호, 뒤에는 이름이다.(예 : 환공 고용, 환이라는 시호를 받은 기나라의 사고용) 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군주도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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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개요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지금의 산동성 수광현에 위치하며 제나라와 같은 강성(姜姓)이며 후작이라고 한다.

2.2. 역사

서주 이왕 시대에 기나라의 군주가 제(齊)나라애공(哀公)을 참소해 이왕은 그를 주나라로 잡아와 그를 펄펄 끊는 가마솥에 넣고 삶아 죽이는 팽형에 처해 버렸다. 따라서 이 후로 제와는 대대로 원수가 되었고 노(魯)와 제나라에게 인접하여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약소국으로 전락하여 노(魯)의 속국이 되었다. 속국이 된 뒤에는 노(魯)와는 대대로 혼인을 맺어 유대 관계를 맺어 왔으며 제(齊)나라 초기에 내분을 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하며 그 일로 150년 후 제(齊)나라의 군주 희공의 공격을 받지만 노(魯), 정(鄭)의 구원으로 이를 막는다. 그러나 기원전 690년 희공의 아들 제(齊)나라의 군주 양공이 공격하여 결국 멸망했다.

2.3. 역대 군주

전해 내려오는 군주는 단 넷이며 이들의 계보나 다른 군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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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에 존재했던 소국. 현재 산시성 허진시에 해당되는 지역의 위치로 비정된다.

사서의 기록도 거의 부재하여 언제 멸망했는지조차 정확하지 않으나, 희성 진에게 합병당한 것만이 알려져 있다(...). 가도멸괵의 고사에서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기나라 국가 자체는 지극히 비중없는 약소국이었지만 이 기나라의 국명이 한나라(후한) 시대 후한 13주 기주의 어원이 되었다.

토탈 워: 삼국/세력/노식 세력이 삼대 세력으로 성장할 경우, 기(冀)나라로 국명이 변경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9월 패치 이후에는 기나라가 아닌 광양국으로 수정되었다.

4.

오대십국시대에 존재하던 소국(901년 ~ 924년)으로 독립 국가를 형성하기는 했으나 십국에는 포함되지 않아 정식왕조로는 치지 않는다.

황소의 난에 공을 세운 봉상절도사 이무정관중 일대를 지배하면서 군웅으로 발전한 세력으로, 901년 당소종을 자신의 근거지인 봉상으로 끌고와서 기왕의 칭호를 받는다. 그러나 훗날 후량을 세우게 되는 주전충, 전촉을 세우게 되는 왕건의 협공을 받아 당 소종은 주전충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기나라 또한 약소 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 924년 후당을 세운 이존욱의 압박에 굴하여 이무정이 후당에 항복함으로써 멸망하였다.

5. 기타

기자가 살던 곳도 기나라다. 현 산서성 진중시 타이구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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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근대 시대에 각국의 군주들이나 귀족들이 전설 속의 나라나 신화 속 인물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일은 흔하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의 귀족이나 왕족들은 자기들의 조상을 헤라클레스, 포세이돈 등의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나 신이라고 주장했고, 로마 제국의 건국 신화에서는 그 시조인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를 트로이의 후예이자 마르스의 아들들이라고 비정하고 있다. 기나라의 경우도 이런 경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