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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16:16:44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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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Μακεδονικό ονοματολογικό ζήτημα
마케도니아어Спор за името помеѓу Македонија и Грција
영어Macedonia naming dispute

1. 개요2. 현대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성립3. 그리스의 격렬한 반발4. 국명 변경을 통한 화해와 해결5. 이후6. 여담

1. 개요

그리스북마케도니아가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한 신생 국가 마케도니아의 국호를 두고 2019년까지 벌인 갈등. 간단히 설명하자면, 고대 마케도니아 지역에 슬라브인들이 주축이 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1943-1992)의 일원이었던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하고 마케도니아라는 국호를 내세우면서 시작된 역사 갈등.

그리스인들 입장에서는 슬라브계 국가가 자신들의 민족 역사를 강탈한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 공화국 사람들 입장에선 알렉산드로스 대왕 같은 그리스계 왕족으로 인해 자신들의 민족 역사가 통째로 그리스인들에게 넘어갔다고 반발한다. 그리스 우파들이 가장 증오하는 국가가 튀르키예에서 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갈아탈 기미가 보일 정도로 관계가 험악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알렉산드로스 동상을 세우거나 관광 상품을 개발을 하는 등의 문제도 생겨서 그리스-마케도니아 공화국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2019년 1월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국명이 북마케도니아로 바뀌게 됨에 따라 두 나라 간의 국명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마케도니아 국명 '북마케도니아'로 공식 변경 두 나라 야당 중에 여전히 이 합의에 대한 반대 세력이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합의가 되었으며 양국은 이후에 이렇다 할 큰 분쟁이 없이 외교 관계가 개선된 편이다.

2. 현대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성립

현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위치한 지역은 마케도니아 왕국 이전에는 파이오니아라고 부르던 지역으로 고대 그리스 시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북부 지방이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쓰이던 고대 마케도니아어는 현재 그리스어 계통이라는 것이 발굴된 고증이 받쳐주는 가장 신빙성 있는 학설이다. 헬라어로 된 펠라 저주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전의 물품이다. 현대 슬라브 마케도니아인들이 쓰는 현대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와 같은 동부 남슬라브어로서 슬라브인은 7세기 중세 민족 대침공기에나 들어왔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물론 기존 언어의 소멸이 반드시 혈통의 완전교체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북마케도니아 내에서 고대 마케도니아인·로마인 혈통은 주류 민족인 남슬라브계 마케도니아인뿐만 아니라 알바니아인, 터키인 등 소수민족들도 가지고 있으므로, 마케도니아 자립론은 다문화사회의 국가통합을 위해 마케도니아 왕국의 후광에 기대려는 정치적 목적도 띄고 있었다.

고찰해보자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바르바로이라 불렸기 때문에 마케도니아는 그리스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다. 일단 고대 그리스인들 자체가 폴리스마다 출신 민족이 제각각 다른 데다 서로에 대한 적대 감정이 엄청났다. 스파르타만 해도 침략자 도리아인의 도시고 아테네는 선인 이오니아인의 도시라 공통 의식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아테네 입장에서는 적어도 문명이란 걸 배워가려 하는 마케도니아 왕국보다 아무런 문명도 발달시키지 않고 전사 육성과 메세나인 노예 학대에만 골몰하는 스파르타가 더 야만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엔 한 가지 맹점이 있는데, 바르바로이는 조건(?)에 해당되는 경우에 쓰이는 명칭이란 것. 즉 마케도니아가 아무리 스파르타보다 대단해도 바르바로이에 속하는 조건이 하나라도 있다면 얄짤없이 바르바로이고 스파르타는 그렇지 않다면 바르바로이가 아닌 거다.

스파르타도 아르고스와 죽도록 싸워댔다. 또한 완전히 같은 혈통의 폴리스들일지라도 연대 의식이 없었던 것은 스파르타와 스파르타계 식민 폴리스인 타렌툼의 생활양식이 극과 극이고 사이도 데면데면 했던데서 알 수 있다. 정확히는 스파르타의 근간을 형성한 리쿠르고스의 군국주의 개혁에 반발한 세력들이 해외로 떠나서 세운 도시가 타렌툼이었어서 놀랍게도 타렌툼은 아테네처럼 해양상업으로 부를 쌓고 민주정을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싸움을 매우 싫어해서 전쟁은 항상 외국인 용병을 고용해서 치렀다. 게다가 바르바로이라고 불렸다고 해서 다 이민족의 의식을 가진 게 아니었다. 한때 마케도니아와 함께 바르바로이로 불리던 에페이로스의 군주 피로스 1세도 스스로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로마군을 바르바로이라고 불렀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 예. 그리스어를 쓰는 그리스 혈통의 공통 그리스인이라는 의식이 생긴 것은 마케도니아 왕국의 그리스 통일 및 세계정복 이후인 헬레니즘 시대부터이므로 마케도니아 왕국이 그리스 민족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전혀 없는 사실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도 초기에는 다른 중원 나라들에게 오랑캐 야만인들 나라라고 멸시받았던 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진나라가 중국사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1]

아무튼 그후 마케도니아 왕국이 멸망하고 한참 후인 7세기경 이 지역을 다스리던 동로마 제국사산 왕조+이슬람 제국+역병 콤보로 멸망 직전까지 몰린 사이 마케도니아 전역에 슬라브족들이 대거 남하, 정착하였고 8세기 초 얼추 위기를 넘기고 정신을 차린 동로마가 반격에 나서 마케도니아 남부를 회복, 이 지역에 도달한 슬라브족들을 전부 마케도니아 북부 지역으로 밀어냈고, 이후 마케도니아 북부에는 슬라브족의 불가리아 제1제국이 들어서면서 슬라브화가 완료되어 지금의 북마케도니아와 그리스가 차지한 남부 마케도니아가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 가톨릭·정교회·이슬람이 교차하는 발칸 반도답게, 여러 외세의 지배와 침략을 받아오면서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되는 마케도니아 지역은 발칸 전쟁 이후 세르비아에 편입되었다. 1·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에 편입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성립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6번째 공화국이 되었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하면서 조금씩 흔들리던 유고슬라비아는 냉전 종식과 구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민족주의 정서가 폭발하면서 1991년 민족간의 갈등이 폭발,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돌입하였다.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역시 그 틈을 타 1991년 9월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분리 독립을 선포하였다.

3. 그리스의 격렬한 반발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연방내 구성국들 간 전쟁과 해체로 촉발된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독립 선언에 이웃나라였던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이 오랜 시간 동안 그리스 북동부의 지방명이자 과거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주장하며 정식 국가로서의 승인을 거부했다. 실제로 그리스 북동부의 해안 지방은 중마케도니아 주(州)로서 오랫동안 그리스가 차지해왔다. 알렉산더 역시 그리스계라서 '마케도니아'라는 단어의 국제 지명도마저 그리스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의 근간이 되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원래 중심지는 현재 그리스의 영토인 중마케도니아 주(州)이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도읍인 펠라 또한 현대 그리스의 중마케도니아 주에 위치해 있었으며 중마케도니아 주에 사는 그리스인은 약 250만 명으로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인구보다 더 많았으며 마케도니아 주가 독립 마케도니아 공화국보다 훨씬 크고 부유할 정도였다. 현재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위치한 곳은 마케도니아 왕국이 나중에 정복, 합병한 지역으로 마케도니아 왕국의 중심부가 아닐 뿐 더러 애초에 이 일대의 원래 지명은 파이오니아 왕국으로 원래 마케도니아의 영토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해당국가의 주요 민족이라도 그리스계였다면 참작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지만, 현재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국민들은 상술하다시피 약 7세기에 동유럽 북부에서 현재의 북마케도니아 영토가 위치한 발칸반도 지역에 내려온 슬라브계 인종들이다. 동쪽과 북서쪽의 근방 발칸반도 국가들인 불가리아나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와 같은 남슬라브족 계열의 슬라브인들이 뜬금없이 기층 혈통 드립으로 고대 마케도니아의 후손임을 자칭하면 그리스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긍이 될리가 없었다. 어차피 혈통이 이어지니까 마케도니아라는 주장은, 그럼 파이오니아 혈통은 다 끊어지기라도 해서 역사적으로 훨씬 해당 지역의 더 정확한 명칭인 파이오니아 공화국을 쓰지 않는거냐고 간단히 반박된다.

대략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유하자면 고대 한국사의 국가인 고구려발해의 영역권이었던 만주의 동북 3성 지역에서 살던 한족, 만주족계 중국인들이 중국이 분열, 붕괴되자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해당지역에 독립국가를 수립하여 국호를 '고구려 공화국' 또는 '발해 공화국'으로 짓고 자기나라가 만주 지역을 재패한 고구려발해후예라고 자칭,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고구려, 발해사를 한민족의 역사로 여기고 있는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격렬하게 반발하거나, 과거 프로이센 왕국-독일의 최동단 영토였던 동프로이센 지역이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나치당 정권이 패망한 이후에 독일에서 러시아로 합병되었던 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에서 2차 대전 전후 이 일대에 원래 살던 독일인들을 다 추방시키고 러시아 본토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칼리닌그라드의 러시아인들이 어느날 러시아가 해체, 붕괴되는 틈을 타서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여 해당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운 다음 국명을 '프로이센 공화국'이라고 짓고 자국이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프로이센에 역사적 승계권을 갖고 있는 독일에서 분노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셈이다.[2]

특히나 세계구급 위인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반도 전토는 물론 당시의 내로라 하는 문명 세계 전체(그리스 + 페르시아 + 이집트 + 팔레스타인 +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였고 마케도니아에서 북동아프리카와 북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에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의 영향력을 퍼뜨린 업적이 있기 때문에 당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 및 '마케도니아'라는 단어가 가지는 상징성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과거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에게 국명 변경과 분리독립 선언의 철회를 꾸준히 요구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과거 수 세기 전부터 사용돼온 국호이고 구 유고 연방에서 독립하여 나온 '다른 구 유고슬라비아권 국가들인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등등도 구 유고 연방의 일원일때 쓰던 명칭을 국명으로 삼고 독립했는데 왜 우리한테만 마케도니아의 이름을 갖고 독립하면 안되냐?'라며 국명 변경을 거절했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 그리스가 마케도니아 공화국에 대한 항구 사용을 금지하고 국경을 폐쇄하는 등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험악해졌다 [3]

결국 유엔유럽연합(EU) 등이 사태에 개입해 분쟁을 중재해 '슬라브 마케도니아'란 절충형 국호를 제시했다가 거절당하고, 1993년 UN이 마케도니아 공화국에게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 FYROM)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종용하여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두 나라가 제안을 수용하면서 분쟁은 잠시나마 일단락되는 듯 싶었다.[4]

마케도니아 구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채택했던 마케도니아는 이후에도 UN 정식 명칭도 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국명을 변경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심지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까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의 심기를 건드려 결국 국호 '마케도니아'를 둘러싼 두 나라의 분쟁은 또 다시 폭발하였다. 그리고 2004년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EU에 가입 신청서를 내는 등 EU 가입을 추진하려 하자 그리스는 EU 가맹국의 지위를 이용해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EU 가입을 반대하며 마케도니아의 가입을 저지했다.

EU 가입을 둘러싼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그리스의 대립이 격화되자 EU는 양측을 상대로 '마케도니아' 국명 분쟁 협상을 중재하고 그리스에게 가입 반대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지만 양국 모두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중재 시도는 허사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EU 가입 반대 입장을 고수하였기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EU에 가입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거기다 그리스는 같은 이유로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NATO 가입도 반대하였다.

그런 가운데 2006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사라지면서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UN에게 "유고슬라비아 연방도 사라졌으니 더 이상 이 이름을 쓸 필요가 없으며 계속 써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이건 소비에트 연방(소련) 소속이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에스토니아,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라트비아 같은 나라에게 영어로 구 소비에트 연방을 붙여야 하는 거랑 차이가 뭐냐? 적어도 1993년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존재했지만 이젠 아니다. 따라서 이 이름을 변경할 수도 있다."고 강력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러다보니 유엔에서도 구 유고슬라비아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은 강요할 수도, 중재할 수도 없는 사항이 되어버렸고 '마케도니아의' 국호를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2014년에는 마케도니아 측에서 '마케도니아 북측 공화국'을 제안했고, 그리스 측에서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을 제안했으나, 마케도니아 공화국 측에서는 '북마케도니아'가 반쪽짜리라 싶었는지 거절했고, 그리스측에는 '마케도니아 북측 공화국'이라는 제안 국명이 그리스의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에 대한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거절했다. 그리고 명칭의 적용 범위도 문제되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이 제안이 그리스-마케도니아 공화국 관계에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마케도니아 공화국' 국호를 쓰겠다 하였고 그리스 쪽은 이 타협안이 모든 관계에 적용되기를 원했다.
파일:마케도니아 국기(1992-1995).svg 파일:마케도니아(그리스) 비공식기.svg
독립 후 1995년까지 사용하던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첫 국기 그리스령 마케도니아의 지방기
바탕색이 적-청으로 다르다는 점만 빼면 '베르기나의 태양'이라는 중앙부 문양은 완전히 똑같다.

애초에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독립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쪽에서 국명 사용을 포기하지 않자 내륙국인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쓰고 있던 테살로니카 항을 봉쇄하는 등 강경 조치를 취했으나, 유럽연합이 그리스의 행위가 불법이라며 개입하면서 마케도니아 공화국보다 훨씬 중요한 유럽연합 국가들과 사이가 악화된데다 불가리아가 독립을 인정하고 그리스의 원수 튀르키예 역시 지지하며 티토 사망 이후에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불안정해진 발칸 반도에 대한 역내 안정을 노린 미국프랑스,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서방권 내 여러 선진국들이 독립을 인정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였다. 신생 소국에 대해 자국의 문화적 우월성과 국력을 지나치게 과시해댄 그리스 때문에 여론이 동정적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경우를 보면 민족 국가를 세우는데 독자적 언어와 문화가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현재 마케도니아 공화국 주변국 중에 "마케도니아인"이 독자적 민족이라고 인정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그리스는 일단 현재의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남슬라브계 국가로 고대 마케도니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그리스 쪽의 주장이나, 그리스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현재의 마케도니아 공화국 영토가 고대 그리스의 영역임을 들어 이들이 비록 슬라브어를 말하고 있으나 기층 민족은 동화된 그리스인이라며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그리스 합병을 주장하였다.

90년대 미스 월드, 미스 유니버스 같은 국제 미인 대회를 보면 그리스 대표는 늘 "알렉산드로스 대왕 다 아시져?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땅이에요~" 따위 소리를 했다. 때문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유럽연합(EU)이나 NATO에 가입을 시도하려 해도 그리스가 결사 반대하여 매번 거부당했다. 사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EU에 가입하지 못하는 데에는 그리스의 반대뿐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다. 자세한 건 유럽연합 항목 참조.

4. 국명 변경을 통한 화해와 해결

2017년 6월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가입을 위해 국호를 바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그리스에서 환영의 뜻을 밝혔다. # 그리고 2017년 9월 양국의 외무장관들이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수도 스코페에서 양국 관계 개선에 합의하면서 # 1991년 마케도니아가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이후 20년 넘게 국호과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고대사를 두고 겪어온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두 나라 간의 해묵은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8년 1월에는 마케도니아 공화국 총리가 그리스와의 국명 갈등을 상반기 내로 해결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 여기에 화답해서 3월에는 그리스가 마케도니아 공화국에게 5가지 국명을 제시했다. "상(Upper)마케도니아", "신마케도니아", "북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 스코페", "바르다르 마케도니아"가 그것이다. 스코페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수도이고 바르다르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에 흐르는 가장 큰 강의 이름이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꼭 이 중에서 골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스가 용인할 수 있는 국호의 범위를 보여준다. EU와 NATO 때문에 아쉬운 것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므로 협상이 잘 풀린다면 이와 비슷한 수준에서 국호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그리스 양국 내에선 이런 국명 변경을 통한 타협안에 대한 반대도 나타나고 있다.

2018년에는 그리스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이 그리스 마케도니아 주에서 마케도니아 공화국 국명 반대 시위를 대규모로 펼쳤다. 또한 일부 급진 황금새벽당 당원들은 그리스-마케도니아 공화국 국경을 무단 월경하여 마케도니아 공화국인들을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 이 사안에 대해 황금새벽당 당수는 황금새벽당 당원들을 두둔했다.

그러나 국명 변경 작업은 계속 진행돼서 2018년 5월 마케도니아 공화국 정부는 새로운 국호로 '일린덴 마케도니아' 사용에 그리스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마케도니아 공화국 국민투표를 통해서 확정된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리스 정부 역시 지지의사를 표명하였다. 다만 양국의 야당들이 모두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 실제 국명 변경까지는 지켜봐야 할듯하다.

2018년 6월 12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조란 자에프 마케도니아 공화국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국명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 하지만 국명 변경에 대해선 그리스 야권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야당 소속인 조르게 이바노프 마케도니아 공화국 대통령도 반발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의원내각제라 총리가 소속된 당이 여당이다.) #

2018년 6월 17일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그리스-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한 호수인 프레스파호(Μεγάλη Πρέσπα / Преспанско Езеро) 인근의 프사라데스 마을(Ψαράδες)에서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의 항구적인 해결을 위한 협정인 프레스파 협정(Prespa Agreement)에 서명했다. # 마케도니아 공화국 스코페에서 국명 변경에 반발하는 시위가 발생되었다.#

프레스파 협정의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2018년 7월 5일, 마케도니아 공화국 의회는 프레스파 협정을 승인 및 가결하면서 가을에 국민투표로 국명을 바꿀 계획을 세웠다. #

2018년 7-8월에 치러진 여론조사에서는 찬성이 41.5%, 반대가 35.1%, 그리고 투표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12.4%로 나타났다. # 민족별로는 슬라브 마케도니아인의 찬성률은 27.4%에 그쳤으나 소수 민족인 알바니아인의 경우 88.0%에 달했으며, 지지 정당으로 보면 여당인 사민당 지지자는 74.5%가 찬성에 투표하겠다고 하였으나 야당인 VMRO-DPMNE 지지자의 경우 4.9%에 불과했다. 조르게 이바노프 대통령은 국민투표 불참을 촉구하고 있다. #

2018년 9월 30일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에서는 국명 변경을 위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 투표 결과는 찬성이 압도적이었으나, 투표율이 36%에 그치면서 투표 결과는 법적 효력을 얻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는 반대 측이 투표에 불참한 결과로 보인다. #

그럼에도 여당인 사회민주당은 이번 투표 결과를 토대로 의회 비준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보여서 야당과 반대파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2018년 10월 15일에 다시 국명을 바꾸는 재투표가 실시되었다. # 그리고 마케도니아 공화국 측은 나라 이름을 바꾸기 위한 헌법 개정에 돌입했다. # 그리고 마케도니아 공화국 측은 2019년 1월 11일에 의회에서 자국 국명을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하는 헌법을 승인했다. #

그리스 내 일부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국명 변경 움직임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리스의 고등학생들은 등교 거부에 들어갔고, 황금새벽당은 그리스 마케도니아 주(테살로니키 등)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고 있다. 또한 알렉시스 치프라스급진좌파연합 정부에서 연립 여당인 독립 그리스인은 그리스에서 해당 국명 변경 승인 투표를 하면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20일에 아테네에서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국명 변경에 대해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

2019년 1월 25일에 그리스 의회는 마케도니아의 국명을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하는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 간신히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켰으며, 이로써 그리스-마케도니아 공화국 국명 분쟁은 막을 내리게 됐다. 이제 북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계승국"이 아닌 "마케도니아 지방의 북부 지역에 세워진 남슬라브계 국가"로 굳혀지게 된 것이다.

5. 이후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 사이의 국명 분쟁이 완전히 해결되면서 대한민국과 북마케도니아의 수교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한국은 6.25 전쟁에도 참전했던 우방국인 그리스의 입장을 존중하여 1990년대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되어 나온 다른 발칸 역내 국가들과 달리 북마케도니아와의 수교를 미뤄왔었다. 그런데 사실 대한민국과 북마케도니아 사이의 외교 관계 수립에 대해 그리스가 반대한 적은 없다. 그리스는 북마케도니아라는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 국명에 대해서만 반발했을 뿐이다. 당사국인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는 1990년대부터 이미 국명 분쟁과는 별개로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다.[5]

여하튼 두 나라 사이의 명칭 분쟁이 해결되면서 문제될 것이 없어졌고, 2019년 7월 18일 대한민국과 북마케도니아는 북마케도니아 독립 28년 만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다만 상호 대사관은 설치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주 불가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북마케도니아는 주일 북마케도니아 대사관에서 겸임하고 있다.

2020년 3월, 북마케도니아는 마침내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했다. 다만 유럽연합에는 불가리아비토 및 낮은 경제력 등으로 인해 아직도 가입을 못하는 중이다.

2024년 5월 12일 북마케도니아 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고르다나 실랴노프스카다프코바 대통령이 취임식 연설에서 자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프레스파 협정에서 합의한 '북마케도니아' 대신 '마케도니아'를 사용하였다. 주북마케도니아 그리스 대사는 북마케도니아 측의 협정 위반 및 항의에 대한 표시로 취임식 도중에 퇴장했으며 그리스 정부는 프레스파 협정 위반이라고 반발하면서 국명 분쟁이 재점화될 기미를 보였으나 이후에 실랴노프스카다프고바 신임 대통령 본인이 직접 그리스 대사 측에게 사과하고 협정에 대한 준수를 약속함으로서 갈등은 봉합되었다.

여튼 이 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을 두고 1991년 유고 연방에서 독립한 이래 아랫나라 그리스와 20년 넘게 분란을 겪었던 북마케도니아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 역시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아테나,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등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그리스어식 명칭이 아닌 유피테르, 유노, 넵투누스, 미네르바, 디아나, 메르쿠리우스 등 로마식 명칭으로 부를 정도로 그리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증오감이 남아있다고 한다.[6]

6. 여담

이 명칭 분쟁 중간에 그리스어서 Μην παραχαράσσετε라는 애국가요가 나왔다.

다른 위키백과 언어판에는 북마케도니아라고 되어 있으나, 마케도니아어판 위키백과에서만 마케도니아라고 되어있다.


[1] 허나 진나라는 중원사에 편입될만한 당연한 근거가 있다. 1: 진나라는 그 시조인 비자, 진양공이 주나라로부터 직접 분봉받았다는 정통성이 있다. 2: 진나라가 일어난 땅은 호경 일대로 이 땅은 서주의 발상지이라는 강력한 정통성이 있다. 이 분쟁과 연관지어 보면 북마케도니아가 고대 마케도니아의 문화와 혈통을 가장 잘 보존한 것과 동시에 국가의 중심지(수도)도 옛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것과 같다. 허나 현 북마케도니아는 고대 마케도니아인에 슬라브가 뒤섞이고 현재는 슬라브가 주류이며 국가의 위치마저 옛 마케도니아의 중심지는 그리스가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진나라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2] 다만 북마케도니아의 마케도니아인들은 약 7세기 경에 발칸반도로 남하해온 이래 유전적으로 남슬라브인 계열로 분화되어 민족 정체성이 갈린 지 수천년이 지난 것에 비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독일에서 러시아의 영토가 된 칼리닌그라드 주 지역의 러시아인들은 독일에서 러시아로 병합된 직후에 이 지역으로 서진, 정착해온 지가 약 80년에서 50년 남짓이라서 정체성 역시 러시아 본토 지역의 러시아인들과 동일하기 때문에 북마케도니아의 마케도니아인과 달리 정체성의 분화도 크게 이뤄지지 않은 편이다.[3] 그러나 이는 북마케도니아가 그리스 대신 불가리아의 항구를 우회적으로 사용하면서 별 소용은 없었다.[4] 현재 구글 지도에서도 이 약칭으로 뜬다.[5] 아무래도 한국이 겪고 있는 남북관계 문제와 주변국 중국하나의 중국 등의 문제 때문에 한국 측이 필요 이상으로 해당 사안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6] 현재 유럽, 서양권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신들의 명칭을 그리스식 이름이 아닌 로마식 이름을 쓰는 국가는 이탈리아와 북마케도니아 뿐이다. 가끔씩 서양권 국가들에서도 로마식 이름이 쓰이기도 하지만 그리스식 이름에 비하면 덜 쓰이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