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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8:43:46

군북역

폐역 함안 - [ruby(신음, ruby=~1927)] - 군북 - [ruby(원북, ruby=~2012)] - [ruby(평촌, ruby=~2012)] - [ruby(진주수목원, ruby=~2012)] - 반성
군북역
부전·동대구 방면
함 안
← 7.0 ㎞
목포 방면
반 성
13.5 ㎞ →
역명 표기
경전선 군북
Gunbuk
郡北 / [ruby(郡北, ruby=クンブク)]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의산삼일로 1992
(동촌리 783)
관리역 등급
무배치간이역 (KN 여객사업처)
(진주역 관리 /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운영 기관
경전선 한국철도공사
개업일
경전선 1923년 12월 1일
무궁화호 1984년 1월 1일
철도거리표
경전선
군 북

1. 개요2. 역 정보3. 일평균 이용객4. 승강장5. 역 주변 정보
5.1. 관광지5.2. 대암 이태준 기념관과 함안독립공원
6. 기타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Gunbuk.jpg
현 역사 (2012년 준공)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2170315467_60200010.jpg
3대 역사 (1997년 준공, 2020년 철거)[1]
파일:옛 군북역.jpg
2대 역사 (1968년 준공, 1997년 철거)[2]
급수탑이 있었던 경남 서북부의 관문
군북역은 1923년 경전선 보통역으로 시작, 처음 역사가 건립되었을 당시에는 급수탑이 설치되어있었으며, 마산-군북 간 설치되었던 사설 철도의 종착역으로 역할 했을 만큼 대표적인 지역 교통의 중심지였다. 넓은 역사 광장에 승강장을 지키던 향나무와 조차장을 둘러싼 벚나무까지, 서북부 경남의 관문으로 손색이 없던 옛 군북역. 옛 군북역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군북역 물류창고이다. 1923년 역사와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창고로 현재는 물류회사의 창고로 이용되고 있다. 1997년 새로운 역사가 신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12년 경전선 복선전철화사업으로 이설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

경전선철도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의산삼일로 1992 (동촌리)[3] 소재.

구 역사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지두2길 50 (덕대리)[4]에 위치해 있었다. 신 역사 기준 삼랑진역 기점 64.6 ㎞. 승강장은 쌍섬식. 아직 관내에 철도가 없는 의령군의 철도 관문 역할도 한다.

2. 역 정보

파일:구 군북역 승강장(1).jpg<nopad>파일:구 군북역 승강장(2).jpg<nopad>파일:구 군북역 승강장(3).jpg
구 군북역 승강장 구 군북역 구내 선로 구 군북역 유치선

3대 역사는 2대 역사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1997년 신축되었는데, 경전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지어진 지 불과 15년 만에 '구 역사'가 되어버렸다. 섬식 승강장에 본선 외 대피선 1쌍이 있는 흔한 역 구내 구조였다. 그리고 짧게나마 유치선도 있었는데 사진에서 보듯 모터카 등이 주박하는 용도였다. 이외에도 역사(驛舍) 쪽 대피선 옆으로는 대한통운 창고가 있고, 이에 대응하는 화물용 고상홈이 있어서 유개화차에 그대로 짐을 싣고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구 역전에 있던 동네 병원인 '구자운의원'이 이 건물을 낼름 먹었다.(....) 군북면에서 외과수술이 가능한 몇 안되는 의원인데다 병원 원장이던 구자운 박사[5]가 뼈를 잘 고친다고 예로부터 소문이 나서 인근 농군 노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관련사진 구자운의원은 이후 2019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신축 이전하여, 구 역사는 방치되었다가 2020년 철거되었다.

현재 구 역사 터에는 독립운동가인 대암 이태준 기념관이 들어섰다. 2021년 6월 준공하여 동년 11월 16일 개관식을 가졌다.

현재 하루 상하행 합쳐서 14회의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여객수요 자체는 꽤 있는 편. 게다가 부근으로 제39보병사단이 이전하였으므로 전망도 나쁘지는 않은 편. KTX는 정차하지 않는다.

현재 위치로 이설 직후에는 열차운전시행규칙 제7조에 따른 1명 근무지정역이어서 역장 혼자서 근무했었다. 그 이전에는 보통역이었으나 경전선 직선화로 관리할 간이역이 줄어서 격하되었다. 사실 군북면 자체가 지나치게 쪼그라들어서겠지만.. 그리고 2015년 7월 25일에 개정된 열차운전시행세칙에 따라 운전간이역에서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이 역과 반성역의 거리차이는 13.5㎞로 꽤 먼 편. 중간의 원북역, 평촌역이 있었으나 경전선 직선화의 영향으로 폐역되었다.

3.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55839><bgcolor=#f55839> 연도 || [[무궁화호|
무궁화호
]] ||<bgcolor=#f55839> 비고 ||
2004년 162명
2005년 221명
2006년 220명
2007년 219명
2008년 169명
2009년 149명
2010년 145명
2011년 161명
2012년 161명
2013년 137명
2014년 132명
2015년 116명
2016년 149명
2017년 155명
2018년 179명
2019년 184명
2020년 109명
2021년 99명
2022년
2023년 145명
출처
철도통계연보

4. 승강장

함안
1 2 3 4
반성
1·2 경전선 [[무궁화호|
무궁화호
]]
마산·동대구·부전 방면
3·4 진주·순천·목포 방면

5. 역 주변 정보

한국철도공사 군북시설사업소, 신창동회관과 신창리 마을, 동촌동회관, 제39보병사단 사령부 정도가 역 주변의 전부다. 신창리에는 심지어 요즘은 흔한 편의점도 하나 없고 "전빵"이라 부르는 동네 구멍가게 하나가 전부. 군북역에서 군북면 소재지가 가깝긴 하지만 1029번 지방도(의산삼일로)를 타고 한참 걸어가야 한다. 도보 30분 가량인데 택시 타기엔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농어촌버스는 하루에 세 번 들어오면 많이 오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다리가 불편하신 고령자층의 택시 이용률이 의외로 높다.

그리고 군북면은 이설하기 전부터 면 북쪽에 남해고속도로 군북IC장지IC가 생겨나면서 군북역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남쪽부터 군북역 - 군북면소재지 - 군북IC/장지IC가 있는 구조인데 군북면 사람들이 주로 1029번 지방도를 타고 장지IC를 이용하게 되며 군북역은 큰 타격을 받았고 군북면소재지도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아래 '이야기들' 항목 서술 참조.

5.1. 관광지

주변에 명산 고찰이 몇 군데 있지만 교통편 연계는 불편하다. 낙남정맥의 거봉 여항산과 그 줄기인 각대미산(서북산)에는 신라 고찰인 의상대라는 암자가 있다. 참고로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항상 셋트로 엮이듯 여기도 원효암이란 절 소속이다. 원효암은 6.25때 한 번 불타고 재건했는데 또 화재가 났고 지금은 중건해서 칠성각, 의상대, 대웅전이 다 원효암에 부속된 절집이다. 이름에서 보듯 의상대사와 연관이 있는 절이며, 신라시대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수련하던 수도처가 기원이라고 한다. 한밤중에 군북역에서 여항산 쪽을 보면 산 중턱에 웬 전깃불이 반짝반짝 혼자 빛나는 게 보이는데 그게 원효암 절이다.

이외에도 역 바로 앞에 백이산이란 봉우리가 자리잡고 있는데, 적당히 트래킹하기 좋은 산이라 등산객들이 자주 찾기도 한다. 사실 정상부에 공원 운동시설이 생긴 후에는 거의 동네 앞산 취급이다. 인왕산보다는 약간 높은 편이고(인왕산 338m, 백이산 368m) 등반 난이도는 비슷하다. 39사단 간부들 중에는 아침 운동으로 꼭대기까지 뛰어올라갔다가 출근하는 용자들도 있다(...) 백이산 바로 남쪽에 붙어 있는 숙제봉 기슭에는 고성 상족암과 비슷한 크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도 있다.

또한 서편의 방어산과 마애불, 원북역 서산서원까지도 역 주변 명승지로 넣을 수 있겠지만 조금 멀다.

파일:여항산_상데미산_피바위_골새미산.jpg
남쪽의 여항산은 과거 마산 전투의 전장이었고 현재는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등산하기 좋은 산이다. 꼭대기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의령의 자굴산, 동쪽으로는 창원의 무학산이 보이고 칠원 부근을 제외한 함안군 전체가 시야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여항산보다 군북역에 더 가까이 보이는 상데미봉(피바위)에는 함안군 유일의 초급 암벽등반 코스가 설치되어 있다.[6]

2015년 6월부터 새로운 명승지(?)가 추가되었다.(...)

구 군북역 자리는 독립운동가 이태준 선생을 기리는 대암이태준기념관이 들어섰고, 조차장 자리는 기존 조경을 활용해 "함안독립공원"이 조성되고 증기기관차 목업을 갖다놓았다.

5.2. 대암 이태준 기념관과 함안독립공원

파일:이태준기념관.jpg
파일:군북역 함안독립공원 항공뷰.jpg
"특히 은 일제강점기 마산∼군북선 철도 종착역으로 옛 군북역이 있던 곳을 기념하고 상징하고자 증기기관차를 설치해 일제강점기 역사를 체험하는 장소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양곡수탈 현장을 널리 알리고, 이태준기념관과 수많은 함안 독립열사, 3·20독립만세운동 등 독립을 주제로 함안군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군은 사업비 3억 원을 들여 지난해 8월 증기기관차 및 객차 제작에 들어가 지난 2월 설치를 완료했다."
- 함안군청 배포 보도자료, 경남도민일보 보도 재인용#
파일:군북역 증기기관차 모형.jpg<nopad>파일:군북역 함안독립공원 증기기관차 목업 2.jpg
군북역 터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목업 앞에서 기념촬영 중인 조근제 함안군수와 공무원, 지역 유지 등 관련 내빈들.

6. 기타

파일:b0007832_16104719.jpg<nopad>파일:b0007832_11050068.jpg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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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역으로 쓰인 기간은 15년에 불과하다. 90년대에 지어진 역사가 이러한 편. 역이 현재 위치로 이전한 후에는 병원 건물로 쓰다가 이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태준 선생의 기념관 건설을 위하여 2020년 10월 철거하였다.[2] 1925년 경남선 개통 때부터 쓰던 일제식 목조 건물이 1대 역사였으며, 그 건물이 6.25 때 한 번 불탔기 때문에 어쩌면 3대째일 수도 있다(...) 구 반성역이랑 비슷한 구조였으며 1997년에 철거되었다. 입구 포함하여 우측 3칸이 맞이방, 좌측 2칸이 역무실이었다.[3] 동촌리 781-1. 원래는 신창리였지만 군북면 인구가 쪼그라들어 크게 4개 동리로 다 통합되어버렸다.[4] 덕대리 14-54[5] 1936년생. 87세의 고령임에도 지금도 현역 의사이다. 이태준 기념관 건립에 기여하기도 했다.[6] 남쪽으로 쳐다봤을 때 동쪽부터 미산봉, 여항산, 전투산, 피바위가 줄줄이 보인다.[7] 인천 이씨 집성촌이 있다.[8] 미카 3 128호. 대전현충원에 전시중인 129호의 오마주로 추정된다. 김재현(철도 기관사) 항목 참조. 그런데 사실 김재현 기관사가 실제로 몰았던 차는 219호다...[9] 배장기 자체가 미국 서부 등지에서 버팔로가 선로에 앉아서 요지부동일 때 이걸 그냥 밀어내고 지나가기 위해 달아놓은 것이기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튼튼하다. 유니온 퍼시픽 빅 보이에 있는 배장기는 거의 사람 키높이만하다.[10] 현재는 면이 쪼그라들면서 덕대리만 빼고 모두 중암리로 통합되었다.[11] 의령 정암나루는 조선시대부터 주요 길목이었다. 곽재우 장군이 침공해오는 왜군을 물귀신으로 만든 루트이기도 하다. 1955년 구 정암교(현재 이름은 정암철교)가 완공되었는데 이는 정주영의 첫 토목 공사로 유명한 고령교 완공보다도 2년이 더 빠르다.(!) 개통 당시에는 함안, 의령 사람들이 구경거리 났다고 개통식이 북새통을 이뤘다카더라. 현재는 안전상의 문제로 통행이 금지되고 4차로로 확장한 정암교로 79번 국도가 지난다.[12] 현 군북역 바로 앞 동네인 신창마을에 있다. 걸어서 3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13] 인근의 군북초등학교는 현재 두 자리수 학급이 채 안 되는 분교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도시 학교 못지않은 체육관이 있다! 1986년에는 효성 8비트 컴퓨터로 무장한 컴퓨터실이 있어서 함안군 내 시범학교 지정까지 되었을 정도였고, 지금은 다른 농산어촌 학교들처럼 감소하는 듯 했지만, 인근에 새로 들어선 제39보병사단의 영향 때문인지 학생 수는 함안군 관내 초등학교 중 학생 수 다섯 손가락 안(4위)에 든다.[14] 의외로 증기 기관차 운행시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다. 일단 증기 견인기는 한 번 서면 다시 출발시키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구배를 잘 살펴서 운행해야 하고 심지어 역 구내 입환시에도 사점(死点)을 잘 피해서 운행해야 한다. 현 전기견인기의 절연구간과 비슷하지만 운행 노하우는 훨씬 까다롭다. 한국에 디젤 견인기가 6.25 전쟁 당시부터 들어온 것이 단순한 전쟁구호 물자 성격만은 아니었던 이유로, 전시물자의 빠른 입환과 조차편성을 위해 디젤 견인기가 필요했던 것이다.[15] 정규편성에서 제외, 가끔 명절 대수송기간에만 PP와 구 무궁화 동차(NDC 개조 이전), CDC가 뛰었다.[16] 함안군 일대에서는 흔히 동짓날 혹은 정월대보름날에 이런 동네마다 있는 당산나무 앞에서 제를 지낸다. 함안 일대에서는 읍내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절벽 위에 있는 검암리 당산나무의 동제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