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20:17:27

소어석터널

이곳은 폐쇄된 교통 시설입니다.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교통 시설은 폐쇄되어 더 이상 운영하지 않습니다.
파일:20230608_130023.jpg
광주송정 방향으로 본 시점
파일:20230608_130958.jpg
삼랑진 방향으로 본 시점
소어석터널
폐 쇄
소재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다국어 표기
영어 Soeosuk Tunnel
한자 소어석터널
터널길이
304m
관리 기관
경전선 국가철도공단
개업일
경남선 1923년[1]
폐쇄일
경전선 2012년 10월 23일
경전선
소어석터널

1. 소개2. 원북리 어씨굴 미군폭격 사건3. 근황

[clearfix]

1. 소개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서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까지 이어진 구 경전선 선로 상에 있던 터널이었다. 구 원북역평촌역 사이 '어씨재'에 있다. 한때는 열차가 다녔던 터널이지만 2012년 부로 경전선이 이설 되면서 폐터널이 되었다.

이름 유래는 터널 인근에 있는 소어석골에서 유래되었다. 어석재는 인근의 1004번 지방도가 넘어가는 곳을 '큰어석재', 30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이 곳 평촌리 고개를 '작은어석재'라고 부른다.

지역 주민은 이 고개 이름을 "어씨재"라고 부르며 이 터널 이름도 무슨무슨 터널이 아니라 희한하게 한글 지명인 '어씨굴', '어석굴'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터널 길이는 304m로 직선형 터널이다.

2. 원북리 어씨굴 미군폭격 사건

1950년 8월 18일[2] 아침 미군폭격기가 해당터널을 폭격했다. 미군 보고서에 따르면 인민군이 해당터널을 점거 및 보급창고로 활용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전투기로 폭격했다고 한다.[3] 참고로 이 날 발진한 전투기들은 인근 군북 북쪽의 남산벌에도 기총소사를 감행하여 피난민들이 많이 희생당했다.

조선인민군 6사단은 방어산 일대부터 상데미산, 여항산, 서북산 일대를 점령하고 마산을 위협했는데, 이를 결사방어하던 미군 24사단과 국군 해병대(김성은 부대)와 두 달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이 당시 군북면 일대에서 전쟁을 피해 피난가던 피난민들을 인민군이 마구잡이로 징집해서 노역을 시켰는데, 중간에 도망간 몇몇 사람 외에는 이 포격과 폭격에 휘말려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7월과 8월 즈음 군북면 일대에는 한날 한시에 제사 지내는 집이 많다. 자세한 이야기는 마산 전투 항목 참조.

3. 근황

1004번 지방도는 어씨재 쪽이 아니라 인근의 사봉리 쪽의 큰어석재 쪽으로 넘어가는데, 이 곳 소어석재보다 훨신 가파르고 꼬불꼬불하지만 이상하게 신작로는 그 쪽으로 났다. 사실 큰어석재, 작은어석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그냥 군북면 사람들은 전부 사봉고개, 어씨재라고 구분해서 부른다. 지도에는 이 고개 이름이 '제산령'이라고 되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일제강점기 기준 지도의 정보가 그대로 계승되어 온 것이다. 기존 어씨재는 사봉고개보다 도보로 넘어다니기 편했기 때문에 1980년대말까지도 우마차도로가 있었고 오봉산 꼭대기에는 성전암이란 사찰이 있다. 다만 이 도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성전암에서 평촌리(이반성면)쪽으로 내려가는 도로는 꽤 급경사면이라 여기도 사봉리 못지않게 꼬불꼬불하다. 차량이 보급된 현재는 어씨재 쪽으로 가면 둘러가기 때문에 1004번 지방도로 주로 간다.

현재 진주시에서 추진중인 경전선 자전거도로 사업 으로 인해 기존에 진주수목원역에서 끊겼던 자전거 도로가 이 터널 입구까지 연장되고 있다.[4]

[1] 올해로 터널 개통한지 101주년 이다.[2] 한국 전쟁 당시[3] 참고[4] 터널입구 부터 터널출구 가는 방향 까지 방치 되고 있으며, 갈 수는 있으나 매우 위험하다. (일해라 함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