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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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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기타4. 관련 문서

1. 개요

스페인어: Guanches

관체족들은 스페인카나리아 제도에 살던 민족이었다. 베르베르인과 가깝지만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 눈 혹은 회색 눈이 많았다고 하며 신석기 시대 수준의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1] 관체족들은 15세기에 스페인의 정복 이후에 스페인인들에 동화되고 17세기 이후로는 관체족 문화와 언어는 민간에서 사멸되었다.

스페인의 전신인 카스티야 엔리케 3세의 후원을 받은 프랑스인 탐험가 장 드 베텡쿠르[2]1402년부터 카스티야인들을 이끌고 카나리아 제도의 섬들을 하나씩 공략하기 시작했으며 1496년스페인군테네리페 섬에서 벌어진 2차 아센테조 전투에서 관체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카나리아 제도 정복이 완료되었다.

2. 상세

관체인들은 베르베르인들과 매우 가까운 민족이었지만 베르베르인과 가까웠다는 것을 빼면 전반적인 문화, 생활상이 밝혀지진 않았다. 기원전 1천년 경 이후부터 기원전 6백년 경 사이의 기간에 북아프리카에서 카나리아 제도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베르베르계 민족들이 로마 시대에 토속신앙을 버리고 기독교개종했다가 아랍정복 이후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반면 관체족들은 스페인의 정복 이전까지 계속 고유의 토속신앙을 믿었다.관체족들이 숭배한 신들

관체족들은 관체어라는 베르베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는데 관체족들의 역사나 문화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멸되어서 관체어에 대한 것도 많이 밝혀지진 않았다. 과거에는 관체족들이 문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9세기고고학자 르네 베르뉴 박사(René Verneau)에 의해 동굴 벽화에서 고대 베르베르 문자(티피나그)가 발견되었다. 대신 관체족이 사용하던 휘파람을 이용한 의사소통은 현재도 남아있다. 관체어는 스페인어에도 영향을 줘서 카나리아 제도 스페인어에는 관체어의 영향이 일부 남아 있다. 카나리아 제도는 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테네리페 섬의 관체족들이 세력이 가장 강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 점령 이전에는 아랍인들도 카나리아 제도의 원주민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나[3] 당시에는 대서양 무역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이었던 이유로 방치되었던 듯 하다. 같은 이유로 아랍인 이전 카르타고인그리스인, 로마인, 누미디아인[4] 등도 '서쪽에 큰 유적지가 있는 섬들이 있고 거기에 이름없는 부족이 산다' 정도만 개략적으로 알고 해당 섬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제노바 공화국에 의한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된 이후 카나리아 제도는 노예 납치 및 공급 장소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관체족들은 염소, 돼지를 키우고 밀과 보리를 재배했는데 높은 산지에서는 양을 키웠으며 해안가에서는 조개물고기를 잡았다. 금속을 활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농업 기술은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도구연장가축의 뼈와 흑요석으로 만들었다.

미라를 만드는 풍습이 스페인 정복 이전까지 유지되었는데 미라 제작 기술은 고대 이집트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였다 한다.

관체족들은 스페인인들에 동화되었고 많은 관체족들이 죽거나 스페인 본토에 노예로 팔려갔으나 관체 혈통은 절멸되지 않고 남아있다. 오늘날에도 카나리아 제도의 주민들의 42~73%는 관체족 모계 유전자(mtDNA)를 보유하고 있다. 카나리아 원주민 부계 유전자를 보유한 경우는 16% 정도로 조사되었다. 관체족은 스페인인들과 동화되기 이전에도 유럽계 조상과의 통혼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카나리아 제도 주민들의 유전자 중 75% 정도는 유럽계, 22%는 북아프리카계, 그리고 3%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계 유전자라고 한다. 여타 스페인 사람들이 그렇듯이 관체족 계통의 사람들도 아메리카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서 라틴아메리카 각지와 미국 남부에 관체족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이주한 스페인계 도미니카인들 중에도 관체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경우도 일부 있다. 쿠바인의 혈통에도 관체족 혈통이 있거나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쿠바로 끌려온 관체인들의 일부가 타이노인들과 동화되면서 타이노인들도 관체족의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경우도 있다.

3. 기타

4. 관련 문서



[1] 이들이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하고 나서 항해술을 완전히 잊어먹어서 거의 완전한 고립 상태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 관체족이 카나리아 제도에 왔을 때 그들은 , 돼지, , 염소 같은 가축보리, , , 완두 같은 곡식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들을 재료로 하여 그들의 생활이 구성되게 되었다. 이들의 문화는 말하자면 거의 신석기시대 수준에서 크게 진척되지 못하고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큰 약점 중 하나는 금속 제련술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처음 섬에 왔을 때는 금속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나 이 섬에는 어떠한 금속 광산도 없기 때문에 결국 그 기술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에 맞서 싸울 때 금속 무기가 없다는 것은 분명 치명적인 약점이었다.#[2] 교황의 승인을 받아 카나리아 왕국이 되었는데 이후에도 카스티야 국왕의 봉신으로 남았다.[3] 아랍인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12세기 중반에 저술한 책에 카나리아 제도에 대한 아주 개략적인 정보가 서술되어 있다. 마데이라 제도에 대해서는 사람은 없고 산양만 많은 무인도들로서 산양이 많지만 섬의 산양 고기가 너무 맛이 없어서 먹을 수 없다는 기록이 담겨 있었다.[4] 관체족과 같은 베르베르 계통의 민족이지만 관체족과 달리 독자적인 나라를 세우고 기병대를 양성하여 로마전쟁을 벌일 정도로 번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