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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8:28

경희궁 자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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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271호 경희궁
<colbgcolor=#bf1400> 경희궁 자정문
慶熙宮 資政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45 (신문로2가)
건축시기 1620년 (창건) / 1998년 (복원)
파일:경희궁 자정문.jpg
<colbgcolor=#bf1400>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복원한 자정문의 모습
1. 개요2. 역사3. 구조

[clearfix]

1. 개요

경희궁편전 자정전정문이다. 경희궁 정전 숭정전의 서북쪽 뒷편에 있다.

'자정(資政)' 뜻은 '정사(政)를 돕는다(資)'이다.# 현재 현판은 서예가 송천 정하건 선생(松泉 鄭夏建. 1939 ~ )이 썼다.#

2. 역사

1620년(광해군 12년) 경희궁 창건 때 지었다. 처음 지은 후 화재 한 번 겪지 않고 260년 간 별 탈 없이 존재했다.
서궐(경희궁) 내에는 숭정전, 회상전, 정심합(正心閤), 사현합(思賢閤), 흥정당만 남기고 그 나머지는 모두 헐었다. 목재를 가져오니 다수가 썩었다. 이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서 (경복궁의) 나인간(內人間)과 각사의 건조에 사용했다.
《경복궁 중건일기》

1865년(고종 2년) 경복궁 중건 시 경희궁을 헐어 경복궁 공사의 자재로 쓸 때 헐렸다. 흔히 일제가 훼철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 1901년(광무 5년)에 숭정전을 찍은 사진을 보면, 자정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정문이 없다. 이로 보아 아무리 늦어도 그 이전에 이미 철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알레베크 사진엽서 경희궁 숭정전.jpg
<colbgcolor=#bf1400> 1901년 이전에 촬영한 경희궁 숭정전 사진
(프랑스어 교사인 샤를 알레베크가 제작한 사진 엽서의 사진)
일제강점기 이후 일제는 자정문 터에 경성중학교 교사를 세웠다. 8.15 광복 후에는 서울고등학교가 사용하다가 1990년대 경희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교사를 철거했다. 그 뒤 발굴 조사를 거쳐 1998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복원 공사 중인 자정전사진을 보아 자정문 공사가 자정전보다 먼저 끝난 듯 하다.
파일:복원 공사 중인 자정전.png
<colbgcolor=#bf1400> 복원 공사 중인 자정전. 왼쪽 사진은 북쪽에서, 오른쪽 사진은 남쪽에서 바라 본 모습이다.[1]

3. 구조

파일:서궐도 자정전.png}}} ||
<colbgcolor=#bf1400> 〈서궐도안〉을 채색한 〈서궐도〉에서 묘사한 자정전
조선 후기에 들어 자정전을 혼전[5] / 빈전[6]으로 주로 사용했으며 이에 맞추어 자정문과 자정전 사이에 혼전 / 빈전에 설치하는 복도각을 설치했다. 여기서 복도각은 혼령이 드나드는 이란 의미이다. 고종 시기 자정문, 자정전을 철거할 때 같이 헐었다. 1990년대 말 이 일대를 복원했지만, 복도각은 복원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른다.

[1] 사진 출처: MBC Archive.[2] 梓宮. 임금.[3] 부재 끝부분에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이다.[4] 가칠단청 위에 선만을 그어 마무리한 단청으로, 가칠단청은 무늬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단청이다.[5] 魂殿. 임금이나 왕비국장 뒤 3년 동안 신위(神位)를 모시던 전각.[6] 殯殿. 국상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임금이나 왕비을 모시던 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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