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거스 히딩크의 대한민국과의 관계 등을 다루는 문서.2. 대한민국 내의 위상과 평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다신 나오지 못할 전무후무한 최고의 성과인 FIFA 월드컵 4강 신화 라는 눈부신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인물로써[1] 한국에서 그의 위상은 가히 神급 이다. 당연하게도 KFA 명예의 전당 최초의 7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age(2002-06-22)]년이 지난 지금도 '히딩크'라는 이름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고 보면 된다. 어느 정도냐면 2002년 이후 4번의 월드컵이 지나간 후인 2018년 겨울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국에 조용히 들어왔는데[2]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 촬영을 요청해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다. 당시 동행했던 네덜란드 TV 방송분을 보면 히딩크 본인도 2년쯤 지나면 잊힐 거라 생각했지만 한국에 올 때마다 사람들이 많이 다가온다는 말을 하며 빠르게 사진 요청에 응한다.
이렇듯 한국에서 사실상 영원한 영웅 대접을 받는데 대한 반작용인지 일본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안티가 많다.[3] 히딩크 본인의 말에 따르면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일본에서 자신에게 거액을 제시했지만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내가 일본 감독이 될 수는 없다' 고 거절하기도 했고[4] 게다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박살냈으니, 싫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5] 그가 탈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2ch 등지에서는 축제 분위기였다가 오래가지 않아 풀려나자 도로 실망했던 적도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건 아니었고, 한국에서도 처음에는 그의 별명이 '오대영'이었을 정도로, '외국인 감독 하나가 굴러들어와선 개최국 망신 다 시키겠다'고 어마어마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었다.[6] 그러나 히딩크는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은 그 때에 알게 될 것이라며 준비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도 수용할 것이라 하여 더더욱 언론을 벙찌게 만들었다. 거기다 언론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자신은 6월을 기다려 왔고 세계 유명 축구팀들이 비웃어도 반박할 필요 없이 월드컵에서 보여주면 된다며 무한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특히 "개최국으로서 2라운드 16강만 넘으면 체면치레 하는 거다."라며 대부분의 여론이 히딩크에게 16강 진출을 두고두고 강조할 때도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16강은 나의 바람이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며 야망을 드러내었다. 당시엔 '32강 본선 조별리그나 통과하고 그런 말을 해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정말로 16강을 통과하고, 이후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초절정 명언과 그에 걸맞은 성적까지 겹쳐지자 꿈을 현실로 만든 남자라면서 한국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등극했다.
감독으로서 히딩크가 평가한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공격수는 많으나 수비수의 자원이 부족한 것, 그리고 정신력이었다고 한다. 훈련 중에도 전술적, 기술적 실수는 문제 삼지 않았으나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선수가 가장 싫다며 선수들의 정신력에 많은 비판과 조율을 요구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지적은 2010년대~2020년대의 한국 축구에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편이다.
한국 선수들이 기술은 유럽보다 부족하지만 붉은 전사 투혼만은 살아있다라고 생각했던 세간의 평가와는 정반대되던 셈. 그는 한국 축구의 기술이 유럽에 비교해서도 훌륭한 수준이라고 평가했으며 특히 양발잡이들이 많다는 점을 놀라워 했다고 한다.[7]
유럽 축구에 대해 무지했던 당시에는 언론플레이성 발언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확실히 EPL 라리가 세리에등 최상위 리그들에는 비비기 힘들었으나 주전급 선수들은 유럽 중상위권 리그에서는 통용 되는 실력을 보이며 이를 증명하였다.[8]
2002WC 멤버들의 90분 내내 사냥개처럼 뛰어다니던 체력과 탄탄한 기본기들만 보던 축구팬들은 이들이 은퇴 한 이후 국가대표에 뽑히고도 체력[9], 기술적으로 문제를 보이는 선수들이 속출하며 히딩크의 저런 발언들이 립서비스처럼 보이게 만든 원흉이 되었다. 히딩크는 상술했듯 오히려 멘탈적인 면을 크게 지적하며 한국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의지는 제법 높게 평가했지만 그마저도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보여주는 그 무시무시한 승부 근성에 비교해보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히딩크가 가장 혹평했던 것은 한국 선수들이 공만 잡으면 지나치게 흥분하여 오히려 골 결정력에 방해가 되는 것과 어린 선수들이 고참 선수들을 무서워 해 기가 눌려있다는 것이었다.[10]
이러한 한국 특유의 선후배간 위계질서를 가장 좋지 않게 보면서 "그라운드에서는 반드시 나이를 막론하고 반말을 쓰고 위계질서에 관계없이 서로간에 대화를 하며 경기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며 모든 선수들이 훈련 중 반말을 쓰게 하고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월드컵 안 데려가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11][12]
히딩크는 이런 수직적 관계가 축구의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보았고 선배가 잘못을 하면 후배라도 반드시 지적하고 수정하라는 철학을 강조했다. 당시 몇몇 고참 선수들은 한국의 유교적 정서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혹평했으나[13]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의 경우 대표팀과 축구계에 존재하는 위계질서나 권위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신선한 시도였고, 결과적으로 20대 초반의 이천수, 박지성 등의 선수들이 기죽지 않고 활약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불어 수비수 자원의 부족 및 유소년 발굴 시스템의 안일함 등 제 3자인 외국인 감독의 시각에서 한국 축구 및 국가 대표팀의 문제점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 지적했다는 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외에도 기존에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들을 기용 및 발굴해 호평을 받았는데, 미리 선발된 선수 외에 선발되지 못한 쪽에도 더 좋은 선수가 많을테니 잔뜩 추천하고 계속 뒤져보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14]
그리고 해외에서 잘 나가던 선수들보다, 한국에 오래 머물고 있어 경기력이 다듬어져 있던 국내 선수들의 체력 등을 더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스타 선수였던 이동국은 탈락한 반면에 신참에다 당시 아무런 기대도 받지 못하던 박지성이 최종 엔트리에 합류하여 한일월드컵의 또 다른 스타가 된다. 박지성 본인에겐 히딩크가 축구인생의 은인이었던 셈이다.[15]
아무튼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히딩크는 내리막길 감독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났고 대한민국 내에선 국민영웅 대접을 받았다. 월드컵 시작하기 전에 오대영 감독이라고 그렇게 까대던 국내 언론들도 그를 거의 한국 축구의 성자로 떠받들며 매일 같이 찬양 일색이었다[16]. 혹자는 만약 독일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거나 우승까지 했다면 국내에 히딩크를 숭배하는 종교가 하나 나왔거나 히딩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면[17]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을 거라고 하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은 홍명보 등 고참들이 안정적인 기량을 보이고 이영표, 박지성 등 히딩크 부임 이전 발탁된 신예들의 활약도 돋보여 4강 진출이란 성과를 이룩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리즈 시절이었다. 동시에 히딩크 본인에게도 전성기이자 인생역전 그 자체였다 할 수 있다.[18] 이런 4강 신화의 업적을 인정받아, 히딩크 감독은 2003년 2월 25일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문화·체육·학술 인사로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02년 당시 각종 광고에 모델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히딩크 음료가 나오기도 했었다. 김국진, 핑클 등에 이어 사람 이름이 상품명에 붙은 케이스이다.
3. 한국에 대한 애정
축구공에 사인을 하는 거스 히딩크[19] |
월드컵 이후 PSV 에인트호번 감독으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한국과 정이 많이 들어 떠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참가할 큰 대회도 당분간 열리지 않을 것 같고 여기서 서로 헤어지는게 좋은 이별이 될 것 같다고 말하였다. 2012년 방한 후 기자회견장에서 수많은 기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자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월드컵 전 2002년 5월에 한 인터뷰 역시도 화제가 됐는데, 단순히 이번 월드컵 무대만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강력한 팀으로 가는 길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또한 한국 선수들의 첫인상에 대해선 착하고 순수하며 의지가 강해 그들을 매우 사랑한다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불어 "과거의 한국축구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변방의 소속팀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속한 나라이며 내가 이끌고 있는 우리의 나라이다. 비록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그 문화의 차이가 다르지만 내가 선택한 나라, 또한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다. 남들이 뭐라 떠들든 나는 내가 생각한 길을 갈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는 성공으로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비난 여론에 대응하고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드러냈다.
이렇듯 히딩크는 대한민국에 대해 유독 각별한 애정을 표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단순한 립서비스라고 볼 수 없다.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지 않았더라면 히딩크는 자칫 한물간 3류 감독 신세가 될 수 있었다.[21] 거기에 각종 상금과 CF[22] 출연료 등으로 거액의 돈까지 벌어들인데다 구국의 명장입네 한국 축구의 은인입네 하는 등 그 어떤 축구 감독도 쉽게 받을 수 없는 대접을 받았다. 히딩크 본인도 이때가 자신의 Career High였다며 그리워하는 발언을 후에 남기기도 했고 특히 인천국제공항에 존재하는 외국 국가원수 등의 VIP 전용 비밀 출입문인 더블 게이트를 이용해보는 등 국가원수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23]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봤다시피 한국에서의 위상은 아주 대단하다.
심지어 그를 한국으로 귀화시켜 '희동구'라는 한국 이름을 주고 상암 희씨의 시조로 삼자는 애정어린 농담까지 돌아다녔을 정도. 여권을 빼앗아서 출국을 막아야 한다는 드립도 바로 이 때 나왔다. 월드컵 직전에 돌아다녔던 유머 중에는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 시, 8강 진출 시... 등으로 국민 반응을 예측한 것이 있었다. 해당 유머에 따르면 8강 진출 시 정몽준 당시 축구협회장과 히딩크 감독이 원내 1위 정당을 설립, 4강 진출 시 헌법 개정으로 히딩크 감독 대통령 취임 등등. 동아일보 기사.
만화가 허영만이 관상을 소재로 한 만화 꼴에서 히딩크를 다루며, 수재민 연금으로 겨우 5천만 원(!?)을 냈다고 비판한 관상가 인터뷰를 실은 적이 있다. 사실 네덜란드인들은 1945년 전후 2차례의 불경기를 겪으며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다[24]. 히딩크가 그 정도 액수를 '쾌척'한 것이 대단한 것이다. 게다가 2010년대 들어 5천만 원은 살짝 적어보이지만 IMF 구조조정 사태 터지고 얼마 안 지난 상황에서 당시 5천만 원이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사실 자발적으로 하는 기부에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는데 적어도 얼마 이상은 내야 한다"라는 기준을 부여하는 것도 우습기는 하다. 조세 피난처를 이용해 탈세한 혐의가 인정돼 유죄판정을 받은 걸 보면, 짠돌이란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지만. #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2002 월드컵 10주년 기념 올스타전에 초청되었을 때도 "한국 사람을 세계 곳곳에서 만날 때마다 언제나 환영받는 느낌이 떠오른다."며 "한국에 그동안 여러 번 와서 2번째 고향 같다."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후 올스타전 경기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고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그 유명한 세레머니 포즈를 취하며 달려오자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어퍼컷 모션을 취하며 포옹, 10년 전의 명장면을 재현하여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축구선수들 및 인사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평이 대부분이고, 이 월드컵을 시발점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스타가 된 한국 선수들과도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아직까지도 교류가 활발하다. 이 당시 거미손 골키퍼로 이름을 떨친 이운재가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년 전부터는 홍명보, 박지성, 안정환, 이운재 등과 함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계모임을 시작해 얼굴을 보고 있다고 한다. 회장은 홍명보. 홍명보가 자신의 팀으로 와 지도자 연수를 받을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이영표, 박지성의 경우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25] 덕분에 이영표와 박지성은 성공적인 해외 리그 커리어를 쌓는 데 성공했고, 특히 박지성은 한국 축구 최고의 레전드로 성장하게 되었다.
선수들의 히딩크에 대한 인상은 호랑이처럼 엄하지만 할아버지처럼 푸근했다고 한다. 특히 선수들에게 주눅들지 말라며 자신감을 심어준 것과 끝까지 믿어준 것에 감사한다는 평이 많은 등, 정신적인 면에서 선수들을 지탱해 준 것에 대한 감사도 많이 받았다. 심지어 월드컵에 출전도 못해보고 2002년 당시 벤치 신세를 지켰던 선수인 윤정환도 당시에는 벤치 신세로 만들어 서운했지만, 그럼에도 히딩크에게서 정말 많이 배웠다며 자신의 평생에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자 롤모델로 히딩크를 뽑았다.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고 냉정한 분석력이 있으며 선수에게 끊임없이 다가서려 하는 면모를 특히 존경한다고.
이 중 박지성과는 말할 필요도 없이 서로 최고의 은사 - 제자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한국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총애하여 아직까지도 둘은 축구팬들에게 모범적인 사제지간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박지성이 에인트호번을 떠날 때 히딩크가 만류하며 섭섭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와[26] 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냐 했지만 이후 박지성이 맨유에서 힘든 적응기를 겪자 언론을 통해 박지성은 훌륭한 선수이고 더 많은 기회를 받을 가치가 있다며 그를 끊임없이 옹호해주어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27] 아직까지도 볼 때마다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제자라고 각별하게 생각할 정도다.
박지성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히딩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한 바 있으며, 항상 히딩크를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왔다. 박지성이 자서전에 쓴 내용에 따르면 부상당한 그에게 정신력이 훌륭한 선수라고 찾아와 칭찬을 해준 것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바꿔주었다고 할 정도. 그만큼 히딩크 감독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무명 선수와 다를 바 없던 당시의 박지성을 히딩크가 월드컵 전부터 끊임없이 칭찬하고 언론의 비난 세례를 받아가면서까지 그를 기용하고 지지해주었던 점을 생각하면 둘이 서로를 각별하게 최고라고 칭찬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박지성이 은퇴하기 전 히딩크에게 미리 통보를 했는데 흔쾌히 지지해줬다고 한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 역시 박지성에게 히딩크는 그의 재능을 알아봐 준 감독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연락을 자주 하고 잊을 수 없는 감독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은퇴식에서 박지성은 인생 최고의 감독으로 히딩크를 꼽으며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감사하고 있다고 인사했다.
한국 요리는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갈비와 생선전 외에는 좋아하는 한국 요리가 없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산낙지를 매우 질색하였다고 한다.[28] 그래도 한국이 결승에 진출하면 먹겠다고 말한 적은 있었다.[29] 의외로 마늘만큼은 스테미너에 좋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선수들과 고깃집에 갔더니 외국 사람은 마늘을 싫어할 거라 생각한 주인이 안 주는 바람에 따로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생마늘을 쌈장에 찍어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고기랑 같이 구워먹는 걸 즐겼으며, 이는 자서전에서도 언급되었다.
2014년 1월 5일, 무릎 관절 수술과 복부지방제거, 이마거상수술을 받기 위해서 방한한다고 하며, 기사. 연인 엘리자베스도 따라왔다. 이후 홍명보 감독을 포함한 축협 간부들이 총출동하여 병문안을 가는 진풍경이 나왔고, 히딩크 감독도 한국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첫 경기 러시아전을 최소한 비겨야 할 것이라는 조언을 하였다. 그리고 정말로 비겨서 승점 1점을 획득했다.
한국이 처참하게 월드컵을 마무리한 후에 올스타전과 박지성 결혼 때문에 방문했을 때는 한국 팬들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투의 인터뷰를 했다. 정 아니면 자신이 했던 것처럼 장기 합숙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다고...[30]
2014년 연말에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방한했다. 경제 사절단 담당 특사 자격으로 왔고, 양국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도 배석이 되었다. #
나이가 들면서 무릎이 좋지 않아 한국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 상태가 심각해서 한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 현재는 다행히 골프를 칠 때 카트를 타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회복을 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한국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16년 10월 한국 방문에서는 미친 포텐을 터트리고 있는 손흥민에 대해서 프리미어리거 수준을 넘었다고 호평해 주었다.
2018년 2월 10일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가 펼쳐진 강릉 아이스 아레나를 찾아 직관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히딩크는 "솔직히 네덜란드인으로서 네덜란드를 응원하지만, 한국에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고, 결국 히딩크가 금메달을 기대했다던 싱키 크네흐트는 남자 1,500m에서 한국의 임효준 다음으로 결승선을 통과, 은메달을 땄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기간에는 미국 폭스 스포츠에서 스튜디오 분석가로 참여하고 있는데 (현지 시간) 2018년 6월 18일 한국이 속한 F조의 독일 vs 멕시코 경기 종료 후 같이 분석가로 참여중인 멕시코 출신 모이세스 무뇨스(Moisés Muñoz)[31]가 "멕시코는 이미 독일을 잡았으므로 (스웨덴, 한국) 쉬운 경기만 남은 셈이다" 라고 코멘트하자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한국은 투지가 있는 팀이고 충분히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편을 들어주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32]
다음날 대한민국 vs 스웨덴 경기 전에는 폭스 스포츠 해설위원인 알렉시 랄라스가 감독 선임 논란에 대해서 질문하자 본인이 더 이상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하고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과정이 불안하긴 했지만 발전했다고 신태용 감독을 호평했다. 또한 손흥민, 황희찬 등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동시에, "내가 보기에는 수비가 (대한민국의) 유일한 약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만약에 수비에 부담이 지워지면 아마도 무너질 것입니다."(That's only weakness, that I have. I think their defence when they are under pressure, they might collapse.) 라면서 냉철한 평가를 동시에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졸전 끝에 패배한 이후 경기 종료 후에는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면서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발언은 신태용호가 스웨덴에게 졸전 끝에 패배한 이후에 뒤늦게 알려져서 실망해 있던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독일전 승리 후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팀에 대해서 "상당히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 대한민국이 패배한 이후 대한축구협회에 있는 지인들과 통화했을 때 사기가 상당히 저하되어 있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들이 상당히 끈기있고 침체되어 있다가도 한 시간 뒤에 바로 일어선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들은 오늘 일어섰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태용 감독의 1% 승률 발언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말했을 것이라고 하고 결과에 대해서 대한민국 대표팀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라고 하면서, 독일이 대한민국이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허용함으로써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분석했다. ##
최근에 과거 네덜란드 방송에 출연한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 자신의 커리어 중 "한국에 있었을 때가 가장 자랑스러웠다"며 회고하며, 그 자리에서 태극기를 꺼내보였다.[33]
2022년 6월 2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도 연인 엘리자베스와 애제자 박지성과 함께 참관하였다. 비록 경기는 1-5의 대패였으나, 히딩크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현대 축구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 평하며 "스타일을 바꾸지 말고, 실수를 줄여나가라"는 인터뷰로 파울루 벤투 감독을 지지해주기도 했다. 한편으로 손흥민에 대한 호평도 이어갔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때 손흥민이 있었다면 결승까지 가서 우승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34]
이후 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스타일을 유지한 채 가나전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연달아 겹치면서 석패하고,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을 상대로 실수를 안 해서 선전한 끝에 16강을 따내었기에 히딩크의 이 안목과 조언은 괜히 한국에 대한 애정을 품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날카로웠다.
그 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하기도 했고, 카타르 월드컵 기념 겸 한일 월드컵 20주년 기념 MBC 다큐멘터리 그때 나도 거기 있었다에 특별출연했다. 그 때 한일 월드컵 당시 제자이자 유일한 고인이 된 제자였던 유상철의 무덤에 찾아가기도 했다.[35]
4.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재부임 논란
자세한 내용은 2017년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2017년 9월 6일 YTN 단독 뉴스에 따르자면 지난 6월 슈틸리케 감독이 사임할 당시 관계자를 통해 "한국 국민들이 원한다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다고 한다. "히딩크, 한국민이 원한다면 국대 맡을 의사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협회 측에서는 그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과거와 같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히딩크의 한국 국대 감독 재선임 문제를 일축했다. 의향 있다는 히딩크, 협회는 불신 2002년은 2002년일뿐
실제 한국팀 국가대표 감독을 맡게 될지는 미지수이나 적어도 한국을 향한 히딩크의 애정이 각별함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측근을 통해 "연봉과 상관없다"[36], "슈틸리케보다 적게 받아도 상관없다." 등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그런데 정작 이 소문들을 흘린 당사자로 추정되는 히딩크 재단 노제호 사무총장은, 히딩크가 6월 당시에 대표팀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듣기는 했으나 자신이 축협에 이걸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성과를 기대했다가 처참하게 망하면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고 망할 경우 2002년 4강 신화의 명예까지 훼손된다고... 관련기사 이에 대해 한 매체에서는 노제호 사무총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해당 기사
9월 14일, 히딩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이 원한다면 어떤 역할과 자리라도 맡겠다"면서 3개월 전, 그러니까 지난 6월 대리인을 통해 한국 감독직을 맡을 의사가 있다는 것을 축구협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축협은 이에 대해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입장을 발표한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발언은 거짓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히딩크 재단은 "히딩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높으니 기술위가 남은 최종예선 두 경기를 맡을 임시 감독을 뽑고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지원자 중에서 뽑는 게 어떻겠냐"고 축구협회에게 제안했으며, 해당 내용이 담긴 문자를 공개했다. 히딩크 재단에 따르면 히딩크 측의 이런 제안에 대해 축구협회는 "지금에서는 할 이야기가 아니다"고 반응했다고 밝혔다. # 같은 날 터진 축구협회 횡령사건과 히딩크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축구협회에 대한 불만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히딩크의 재부임설 문제가 단순한 대표팀 감독 선임의 문제를 넘어서 축구협회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 요구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히딩크 감독 선임 촛불집회에 직접 참가한 언론 보도가 화제가 됐다. 해당 기사
5. 명예국민
- 2002년에 명예국민증을 수여받았다. 명예국민은 무비자[37]로 대한민국을 방문할 수 있으며, 본인이 한국 영주를 희망할 경우에는 심사 없이 즉시 한국 영주권(F5)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로부터 명예시민 자격을 얻었다.[38]
[1] 1라운드 통과는커녕 월드컵에서 승리 한 번이 없었던 당시까지만 해도 개최국으로서 2라운드만 가면 체면치레 충분히 했다는 말이 많았고, 과연 54 월드컵 1라운드 탈락 이후 48년만에 최초의 1라운드 통과가 가능할지조차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당시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무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먹여주고 월드컵 4위라는 선물을 주었으니 한국인들 스스로도 지나치다 못해 과분한 성과라고 할 정도였다. 당연히 2002 월드컵에서 가장 이변을 일으킨 4팀 중 최고에 선정되었다.[2] 당시 네덜란드 현지 방송사가 동행했을 뿐 국내에서는 방한 소식이 딱히 알려지지 않았었다.[3] 2002년 국대 멤버인 홍명보, 박지성, 유상철 등이 일본에서 팬층이 상당히 두터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박지성은 교토 퍼플상가 시절 팀의 유일한 일왕배 우승컵을 안겨준 공로 때문에 교토 팬들에게는 말 그대로 성역처럼 대접받는다.[4] 다만, 이것 또한 어느 정도 언론을 의식해서 립서비스를 한 면이 있는데 2002 월드컵이 시작하기 전부터 에인트호번 측에서 히딩크에게 접촉을 했다. 그래서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계약 연장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하고 떠난 것. 그는 에인트호번과 가장 먼저 협상한다는 약속을 지켰고, 거기서 좋은 얘기가 오고 가서 바로 에인트호번 2기 하러 간 것이다.[5] 2006 월드컵 당시 한국 지상파 3사에서 호주 대표팀 경기를 중계할 때는 은근히 호주 쪽에 우호적인 해설을 하기도 했었다.[6] 참고로 이때 히딩크를 비난하고 비아냥댔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한국 축구를 망치는 데 일조했거나 현재까지 일조하는 중인 인간들 투성이다.[7] 양발 쓸 수 있는 게 뭐 대단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상대팀도 바보는 아니라 공수 과정에서 맞닥뜨릴 때 상대의 주발을 생각하고 위치를 마크해서 공을 효과적으로 뺏거나 돌파한다. 그러나 양발이라면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고 한발 늦게 반응하기 때문에 양발 선수가 공격이나 수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이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2024년 현재 활약하고 있는 선수인 손흥민에게서 잘 알 수 있다.[8] 이미 설기현이 벨기에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때이고 네덜란드 리그의 박지성과 송종국, 네덜란드 리그 최고수준의 LB로 활약한 이영표나 AS모나코에서 처참한 수준의 팀을 홀로 이끈 박주영, 터키의 이을용, 유럽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유럽팀들의 오퍼를 받던 유상철등을 생각해보면, 유럽 중상위권 리그에서는 통할 수준이라는 선에서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9] 특히 조광래호.[10] 2005년에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유망주 박주영이 축구 천재이자 황선홍의 뒤를 잇는 정통 스트라이커라고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이유도 간결한 플레이와 골대 앞에서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과 결정력이 돋보였기 때문이었다.[11] 이 당시 하늘같은 선배들은 황당해 하고 까마득한 후배들은 당황해 하며 모든 사람들이 쭈뼛거리는 와중에 이천수가 걸어오며 "명보야, 밥먹자!!"를 외쳐 분위기가 풀어졌다고 한다. 당초 홍명보에게 반말한 선수가 처음엔 김남일이라고 알려졌으나 정작 김남일 본인은 그런 적 없다면서 이를 부정했다.[12] 한편, 이 사례는 의외로 경영학에서 자주 인용된다. 특히 다문화 이해를 중시하는 경영 기법(Inter-cultural Management)에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사례다.[13] 그런데 정작 유교 문화가 발달했던 조선왕조 시기의 질서와 서열 의식은 현대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양반 가문에서는 자녀가 장성하면 부자간에 대체로 상호존칭을 하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자라서 관직에 진출하면 신분에 맞게 존칭을 해 주기도 했다. 적어도 양반 계층 사이에서는 상호존칭의 원칙이 암묵적으로나마 있었던 셈이다. 현대의 연공서열 의식은 오히려 근대화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선후배 문화는 사실 유교 문화와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의 선후배 서열 의식은 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권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있었으며, 그 중에는 한국에서보다 심한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알렉스 퍼거슨이 발굴하고 길러낸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와 같은 스타들도 신인 시절에는 각종 구타와 얼차려에 시달려야 했으며, 팀의 고참이었던 에릭 칸토나가 라커룸에서 과시한 똥군기는 영국 현지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퍼지면서 각 구단 지도층들 사이에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근래에는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스티븐 제라드와 리오 퍼디난드 등 일부 고참급 선수들은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마치 군대에서 선진병영을 하려고 하자, 상~병장급 병사들이 이에 불만을 갖는 것과 유사하다. 자세한 것은 변질된 유교적 전통 참고.[14] 최진철을 발탁하면서 "왜 여태 안 뽑았느냐?"고 말한 일화가 있다.[15] 물론 히딩크 이전에 허정무가 박지성의 재능을 일찍 눈여겨보고 뽑은 덕도 컸다. 문제는 당시 여론이 인맥이다, 낙하산이다 하며 저평가를 해댔다 히딩크가 그렇게 뽑힌 박지성을 잘 키워내서 여론을 반전시키지 않았다면 박지성이 어떤 오명을 뒤집어썼을지 상상이 간다.[16] 한국축구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선사했을 뿐 아니라,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강호를 꺾고 4강까지 진출시킨 업적은 온갖 미사여구를 다 써서 극찬해도 부족하다. 당장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한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점과, 최종성적 역시 아시아 최초의 4위였다는 점 역시 엄청난 업적이다. 거기다 4강 진출은 설령 결승 진출을 실패해도 결승전 전날 3-4위전이 남아있기 때문에 사실상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대회의 종반부까지 뛸 수 있었다는 점도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4위로 마쳤기에 망정이지, 혹시 정말로 결승 진출까지 성공해서 우승이나 준우승으로 끝냈다면 차기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계는 매 국제대회마다 "외국인 감독이 지휘하는 팀도 결승까지 갔는데 왜 이번엔 안 되냐?"라는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17] 실제로 대한축구협회장이었던 정몽준은 그 해 대선에 실제로 출마했다. 히딩크만큼이나 선호도가 엄청나서 한 때 지지율 2위까지 치고 올라갔었지만, 새천년민주당의 후보였던 노무현과 단일화하였다. 그러나 대선 전 날 갑작스럽게 지지를 철회하면서 정치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고, 거기다 자신이 포기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권주자로서 그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18] 괜히 박지성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대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후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포옹을 한 것이 아니다. 축구선수로서 대성하기 어렵다는 평가에, 프로선수 경력마저 해외, 그것도 일본의 J리그에서 뛰던 그를 발탁시켜 인생 역전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외국인 감독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은인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 이전 자기를 믿어준 소수 지도자들의 명예를 지원해준 백락이나 다름없다.[19] 허정무/거스히딩크 축구재단에서 훈련받은 박재민이라는 선수가 나이키 모스트 원티드의 한국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20] 물론 트레블도 이룩한 사람이 히딩크 자신을 포함해 9명밖에 없을만큼 대단한 성과이지만 월드컵에서 아시아 팀으로 4강에 오르는 것은 향후 일어나긴 할까 싶은 수준의 성과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조차 월드컵 4강은 커녕 8강까지 간 아시아 팀도 전무하다.[21] 실제 히딩크 영입 때 찾아간 가삼현이 히딩크를 설득하면서 한국 말고는 당신이 갈 곳이 더 이상 없다는 말로 설득했다고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때 히딩크는 레알 베티스에서 실패한 후 야인으로 차츰 잊혀가는 중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았던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진하기 시작할 정도로 슬슬 빌빌거리다 중국 리그 같은 변방 쪽에서 감독을 하는 걸 히딩크가 경험할 수도 있었다.[22] 출연한 광고 중에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말하는 모 보험사 광고가 있었다.[23] 외국 국가원수, 대통령이 보낸 특사급 인물, 각 국제기구 단체장, 대통령이 초청하여 특별 방한한 인물 등이 더블 게이트를 통과하여 한국에 입국한다. 예를 들면 IOC 위원이라든가.[24] 히딩크 부모세대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물자공출로, 히딩크 또래의 세대들은 네덜란드병 → 석유파동의 2연타로 10대, 30대 시절을 어렵게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 편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46년 생인 히딩크 세대는 어렸을 적엔 전후의 가난함을 그대로 안고 살다 유년 시절 물질적으로 좀 펴질라 하니 성인이 되고 사회에 진출하니 하필 바로 불경기라 근검절약이 몸에 벨 수 밖에 없었다.[25] 그래서 실력 외적인 문제로 해외 커리어가 꼬이게 된 안정환의 팬들 중 안정환이 히딩크를 따라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본인도 아쉬움이 남는 듯 한데, 사실 히딩크는 이영표와 박지성 이전에 안정환부터 가장 먼저 거두려고 실제로 시도했었다고 한다. 안정환도 당연히 기뻐했지만, 2002년 이탈리아전의 골로 최고 주가를 달리던 안정환의 몸값을 아인트호벤이 감당할 수 없어서 안타깝게 무산되었다고 한다.[26] 이 때 히딩크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벤치멤버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소유팀인 첼시 FC로 나중에 같이 가자면서 만류했다. 첼시의 팀컬러가 박지성 같은 높은 전술 이해도를 가진 하드워커가 진가를 드러내는 전술이기도 하고, 첼시의 감독 주제 무리뉴도 박지성 영입을 매우 강력하게 원한 것을 보면 박지성이 맨유보다 첼시에 가서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나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은 첼시가 아닌 맨유라면서 이적을 강행한다.[27] 무엇보다 박지성이 맨유 입단을 위해서 영국 비자를 발급받아야 할 때 필요한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28] 사실 이건 히딩크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다. 산낙지는 아시아 각지, 오세아니아, 중남미, 북중미 등에 굉장히 질색하는 사람들이 많고, 한국인 간에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음식이다.[29] 당시 대표팀 코디네이터였던 얀 룰프스는 다리 한짝을 잘라먹긴 했다. 반면 전설의 명장 조 본프레레의 경우 김치로 밥을 비벼먹을 정도로 음식 적응을 잘 했지만, 해삼에게는 백기를 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해삼 역시 한국인들 중에서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30] 하지만 과거 FC 코리아와 같은 합숙은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31] 클루브 아메리카에서 뛰고 있고,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에 후보 선수로 선발된 경력이 있다.[32] 결국 오만한 태도로 나왔던 멕시코는 3차전에서 크게 패배한 후 한국의 카잔의 기적에 힘입어 16강에 올랐다.[33] 사실 이 쯤에 손흥민이 번리전에서 엄청난 슈퍼골로 이슈가 되었을 때 일뽕과 국까들이 경기장에 태극기를 펼쳐드는 것을 갖고 시비와 논란을 일으켰는데, 히딩크의 이 영상이 이 쓰잘데기 없는 논란을 일축시켰다.[34]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팀별 리뷰를 보면 알 수 있듯, 히딩크호는 수비력에 비해 공격력이 무딘 편이어서 매 토너먼트마다 홈 어드밴티지를 입고도 기선제압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양상 속에서 겨우겨우 4강에 진출해야만 했다. 손흥민 같은 확실한 득점력이 있는 공격수가 있었다면 경기를 어렵게 풀어갈 일도 없었을테고, 2연속 연장전으로 소모된 태극전사들의 체력도 어느 정도 세이브해서 4강 독일전의 양상이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35] 그 때 그가 한 말이 친구, 저 앞을 보라고. 20년 전 그랬던 것처럼....너와 함께 해서 정말 기뻤다. 너의 헌신, 그리고 용감했던 친구, 고마웠네. 그 때 그의 모습은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 보일만큼 애절해보였다.[36] 리피 이전에 중국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참고로 리피의 연봉은 약 200억원[37] 다만 히딩크의 모국인 네덜란드는 이미 한국과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국가이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는 없는 혜택이다.[38] 영주권 혜택, 무비자 입국 등 혜택을 제공하는 명예국민과 달리 명예시민은 별 다른 혜택을 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