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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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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59593><colcolor=#fff> 박남정
朴南政 | Park Nam Jeong
파일:박남정.jpg
출생 1966년 4월 19일 ([age(1966-04-19)]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만리동
(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계동)[1]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본관 밀양 박씨 (密陽 朴氏)[2]
신체 164cm[3]|55kg|A형
가족 부모님
배우자 허은주(1974년생, 1999년 결혼-현재)
장녀 박시은(2001년 8월 1일생)[4]
차녀 박시우(2004년 8월 11일생)[5]
학력 서울화곡초등학교 (졸업)
화곡중학교 (졸업)
상문고등학교 (졸업)
성결대학교 신학대학 (신학 / 중퇴)[6]
데뷔 1988년 1집 앨범 <아! 바람이여>
종교 개신교 (예성)
별명 한국의 마이클잭슨, 시버지[7], 대디베어[8]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소개3. 활동
3.1. ㄱㄴ춤3.2. 한국 힙합계에서
4. 그 외 활동5. 수상 경력
5.1. 가요 프로그램 1위
6. 기타7. 가족오락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가수이다.

2. 소개

춤만 잘 추는 것이 아니라 선명회[9] 어린이 합창단을 거쳐 MBC 합창단에서 활동했을 정도로, 듣는 이로 하여금 청량 음료를 원샷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원한 가창력을 보유하고 있어 노래만 들어도 어? 박남정이네? 할 정도로 고유의 음색과 특유의 창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싱어송 라이터로서 대히트곡 '널그리며'를 직접 작사·작곡하였으며 음정과 화음을 자유자재로 변조해서 부르는 등 음감이 뛰어난 뮤지션으로서의 기량 또한 아주 탁월하다.

곱상한 외모와 화려한 댄스 실력으로 당시 소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상의 전성기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박남정이 등장하면 소녀 팬들의 환호성이 정말 대단했고 박남정 특집이 실린 하이틴 잡지는 완판되었으며 1980년대 말을 주름잡던 말 그대로 원조 아이돌이었다.

STAYC의 멤버 시은의 아빠이며 딸의 유명세 덕택에 '시버지'라는 별명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3. 활동

1988년 '아 바람이여'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노래와 함께 로봇춤이 인기를 얻었다.

1989년 '널 그리며'를 통해 더 큰 인기를 얻었으며, ㄱㄴ춤이 전국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널 그리며"는 디스코 풍의 댄스곡으로, 비 지스의 1979년 빌보드 1위곡 "Tragedy"와 약간 비슷한 느낌을 준다.[10]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곡은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했으며 후속곡인 '사랑의 불시착' 역시 골든컵을 수상하면서 조용필 이후 한 앨범에서 2곡의 골든컵을 배출한 수상자가 되었다.



놀라운 점은 이 노래들을 대부분 본인이 작사와 작곡을 직접 했다는 것이다.[11] 하지만 최전성기에 히트시킨 곡들은 뽕끼가 강한 댄스곡들이라서 90년대 이후 주류가 된 아이돌, 댄스 가수들과 음악적으론 별다른 접점이 없다.

여기에는 박남정이 자신의 취향대로 마음껏 곡을 쓴 게 아니라는 뒷사정이 있다. 박남정의 음악 기반은 미8군 흑인들에게서 전수받은 1980년대말 흑인 음악이었다. 본인 별명부터가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었는데 이 별명은 단순히 춤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음악 성향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가요계는 그 슈퍼스타 조용필조차도 기획사(음반사)[12]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지라, 초창기 1~2집 앨범의 활동 시기에는 박남정 본인의 음악 취향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상당히 뽕끼가 들어간 스타일로 작곡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 3집 앨범부터는 뽕끼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박남정만의 파격적인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곡이 여럿 등장했다. 특히 3집 수록곡 중 파격적인 랩을 선보이기도 한 "멀리 보이네"는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인기를 끈 세련된 댄스 팝 스타일의 곡이며 실제로 1987년~1989년 사이 미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던 트렌디한 스타일로서 댄스 팝과 프리스타일(Latin Freestyle)을 결합한 스타일으로 볼 수 있다.[13]

아마 이 장르에 1989년 당시 미국 메인스트림에서 쓰이기 시작한 랩을 붙이는 실험을 '멀리 보이네'를 통해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1989년부터 랩을 기반으로 한 댄스 음악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갱스터 랩 등의 "진짜" 힙합이 미국 "메인스트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4년이 지난 뒤인 1993년이다. 닥터 드레의 "The Chronic"이 갱스터 랩을 중심으로 한 서부 힙합을 대중화시켰던 것. 그전의 4년 동안은 랩을 기반으로 한 유로댄스 / 하우스/ 댄스 음악이나 Vanilla Ice, MC Hammer 등의 팝 랩이 인기를 끌었다. 이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랩을 접목한 랩송이 시도되기 시작했고, 이 중 성공한 것이 현진영과 와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박남정은 그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성공했기 때문에 '멀리 보이네'는 그의 커리어에서 그렇게 각인되어 있지는 않지만 당대에는 나름 가요프로 순위권에도 드는 등 인기가 있었다. 2011년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홍서범이 아니지"라고 해놓고 '멀리 보이네'의 랩을 선보였으나 MC들에게 홍서범과 똑같다고 핀잔을 들었다.

박남정의 전성기가 살짝 저물었을 무렵인 1992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격변기를 맞이하던 해였다. 박남정 역시 같은 시기에 5집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박남정의 스타일은 크게 바뀌게 된다. 5집 타이틀곡 '비에 스친 날들'은 지금 들어봐도 상당히 세련된 느낌의 곡이며 댄스 스타일 또한 기존의 디스코 춤사위에서 벗어나 지금의 박남정이 추는 것과 같은 정통 팝핀에 가까운 스타일로 변모하게 되었다.

1992년 5집 앨범 활동 당시까지만 해도 그 이전까지 쌓아둔 강력한 인지도로 인해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새로운 세대의 경쟁자 등장에도 불구하고 박남정은 비록 최정상까지는 아니어도 꽤 선전할 수 있었다[14]. 5집을 끝으로 박남정은 잠시 활동을 쉬게 되는데 이미 이 시기에는 수많은 댄스가수의 등장으로 가요계의 판 자체가 바뀜으로써 박남정이 더이상 이전과 같은 주목을 기대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결국 박남정은 1995년 6집 앨범으로 가요계 복귀를 시도하였으나 그 시점에는 이미 댄스가요 시장의 규모가 과거 박남정이 활약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비대해졌고 세분화되었으며, 또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댄스가수들이 생겨나 활동하고 있었기에 과거 박남정의 명성과 지위를 되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1995년 앨범은 본인이 프로듀싱했으나, 자작곡보다도 다른 작사가와 작곡가의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타이틀곡을 제외한 전곡이 신곡으로 채워져 있는데 굳이 정규 6집이라는 카운트를 다시 왜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 두 장의 6집이 발매되던 시기에 베스트 앨범도 두 장이나 나왔는데, 이 앨범들은 전 기획사에서 발매된 것으로 하나는 안타프로덕션, 다른 하나는 오아시스레코드사. 후자는 박남정이 직접 세트리스트를 정해 재편곡한 베스트 앨범이라 색다르다.(5집 수록곡은 원곡들이니 제외) 이렇게 다른 앨범이 같은 카운트를 갖고 있는 가수로는, 권인하가 있으며 해당 앨범은 1995년의 5집이다.

이후 1996년에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를 패러디한 "멀어지는 너" 로 컴백했지만 한국 K팝 씬이 H.O.T.젝스키스, S.E.S 등 K팝 아이돌그룹 1세대로 트렌드가 넘어가는 시점이라 그렇게 큰 반응은 얻지 못했다. '멀어지는 너'는 공교롭게도 2장의 6집 앨범에 모두 타이틀곡으로 수록되었는데, 전자는 1993년 12월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후자는 1995년 9월 서울음반에서 발매되었다. 1993년 앨범은 전곡이 박남정의 자작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드럼 프로그래밍과 편곡, 샘플링도 해냈기에 의미가 있다. 5집과 심의를 같이 받았으나 모종의 문제로 누락된 'The Lover(내 곁을 떠나줘)'가 수록되었다. 해당 곡은 뉴욕에서 온 래퍼 SLI 가 피쳐링하였으며 길고 타이트한 영어랩과 박남정의 보컬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멀어지는 너" 이후 박남정은 활동을 중단하고 한동안 TV 출연이 거의 없었으나 2004년도에 7집 앨범을 내면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큰 흥행은 하지 못했으나 이때를 기점으로 다시 TV에 간간이 얼굴을 비추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복면가왕을 비롯한 공중파는 물론 종편의 연예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하여 국민들에게 꾸준한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본인을 쏙 빼닮은 딸이 활동중인 걸그룹 STAYC의 멤버 시은 아버지라는 의미의 '시버지'로 유명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3.1. ㄱㄴ춤

한국에서 박남정의 트레이드 마크로 알려졌던 'ㄱㄴ춤'은 사실 8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춤으로, 자넷 잭슨의 1986년 앨범 Control의 싱글로 발매된 'The Pleasure Principle'의 뮤직 비디오(1987)나, 같은 해에 나온 티파니의 'I Saw Him Standing There' MV, 마이클 잭슨의 1989년 싱글 Speed Demon의 MV 등에서 이미 등장했던 나름 유명한 춤이다. 당시에도 한 예능프로에서 외국의 가수들이 추는 영상이 나온 적이 있어 방송을 본 사람들은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



1분 42초부터 등장한다.



3분 27초부터



9분 27초부터 보면 된다. 4초 정도 가볍게 추고 만다.

3.2. 한국 힙합계에서

파일:external/img.maniadb.com/101770_2_f.jpg

1980년대 한국 흑인음악, 클럽댄스계의 0세대 인물중 하나다. 이 시절의 흑인음악, 흑인댄스는 한국에서 연마하기 어려운 기술로 주한미군들을 통해서 대도시의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미국의 힙합, 클럽댄스 문화가 조금씩 유입되던 시기였다. 이때 서울 이태원동의 나이트클럽에 주로 모이던 박남정과 이주노, 도건우[15], 박철우 등의 댄서, DJ들이 이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했다.

이들의 뒤를 따라 1세대 멤버들인 현진영, 양현석, 강원래, 구준엽, 유영진 등 최신 트렌드 춤에 미쳐 있던 당시 20대 댄서들은 이태원의 나이트클럽들[16]에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미군들과 교류하며 기술을 연마하게 되었다.

이들 중에서 박남정이 가수로 성공하자 당시 가요계의 음반기획자들이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이수만이 현진영을 스카웃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에 줄줄이 오버그라운드에 입성하기 시작했다.

양현석이주노는 데뷔전에 박남정과 프렌즈라는 이름의 박남정 백댄서로 활동하다가 1991년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고 1992년 데뷔, K팝 씬이 당시 랩송이라 불리던 댄스뮤직으로 넘어오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4. 그 외 활동

1986년 전국디스코경연대회 금상 1위를 차지했으며, 2위는 이주노였다고 한다.

1988년 해태제과 폴라포 아이스크림을 비롯 수많은 광고에 출연[17].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89년에 '새앙쥐 상륙 작전'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바 있다.

2007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경제야 놀자 코너에서 박남정이 2002년 국내 최초로 제작했던 영어교육용 랩 CD가 소개돼 화제가 되었다. 랩송을 듣고 따라하면서 영어단어와 숙어 등을 자연스레 익힌다는 기획으로 제작되었으며 무지개 일곱색깔에 맞추어 빨주노초파남보 총 일곱 가지 버전으로 구성되었다. 박남정은 이 음반을 통해 교육 사업에 진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인기 래퍼였던 조PD, 바비킴, 비트박스 달인 후니훈 등이 제작에 참여하여 퀄리티만큼은 자부할 수 있다 말했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나간 탓인지 처참히 실패하고 재고를 자택에 수북하게 쌓아두고 보관하고 있다가 방송을 보고 연락해 온 어느 음반업자에게 땡처리로 처분했다고 한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카메오로, 1980년대 말의 박남정 자신으로 등장한다. 빡빡한 스케줄로 졸다가 행사장을 부산으로 착각하곤, 광주의 나이트 클럽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행사를 진행하다가 몰매를 맞는 역할이다. 박남정 본인이 실제로 겪었던 에피소드라고 한다. 더군다나 단순히 경상도 사투리로 진행만 했다면 모를까 전라도에서 "역시 경상도전라도보다 물이 좋네, '부산 갈매기들 어딨노?"라고 이야기하는 등 전라도 사람들에게 안 좋은 말만 늘어놨다고 한다.

2013년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인 유자식 상팔자에 장녀인 박시은 양과 함께 출연하면서 딸바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철없는 아빠 박남정이 의젓한 딸 박시은 양에게 잔소리를 듣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서 박남정의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굉장히 착하면서도 순박하고 어리버리해서 귀엽다는 평이 많았다.

2016년 1월 24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2차 경연에서 폴짝폴짝 아기강시라는 가명으로 참가했으며 그 특유의 가창력과 녹슬지 않은 댄스 실력을 과시했다.[18][19]

듀엣가요제 22회에서 브로맨스 멤버인 박장현과 팀을 이루어서 우승한 전적이 있었다.

2018년 1월 21일에 대화가 필요해 1987에서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2020년 4월 25일 불후의 명곡2에 출연하였다. 영상1 영상2

2020년 11월 5일 사랑의 콜센타에 출연해서 널 그리며, 인디안 인형처럼을 불렀다. 영상1 영상2

2020년 12월 27일, 2021년 1월 3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44차 경연에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고양이는 없네... 십이지신[20]이라는 가명으로 다시 참가해서 준우승했다.

파일:/pds/200902/11/88/a0111588_4992809847c38.jpg
3집 자켓(딸이랑 똑같이 생기셨다?)

박남정은 지금도 방송에 꾸준히 출연해 여전히 녹슬지 않은 댄스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쉬지않고 댄스 연습과 후배 양성을 꾸준히 하고있다고 한다.

5. 수상 경력

5.1.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13회 1위
<rowcolor=#fff>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89년
2월 1일 KBS 가요톱텐 널 그리며
(6회)
첫 1위
2월 15일 1위
2월 22일
3월 1일
3월 12일
3월 19일 1위
(5주 연속, 통산 6주) (골든컵)
6월 18일 KBS 가요톱텐 사랑의 불시착
(7회)
1위
6월 25일
7월 16일
7월 23일
7월 30일
8월 6일
8월 13일 1위
(5주 연속, 통산 7주) (골든컵)

6. 기타

7. 가족오락관



[1] 한때 강서구(당시 영등포구) 출생으로 알려졌으나 현진영과의 인터뷰에서 용산구 만리동(現 서계동)에서 태어났다고 밝혔다.[2] 밀성부원군파(密城府院君派) 34세손, 혁거세 69세손 남○(南○) 항렬이다.[3] 한동안 본 문서에 163cm이라 기재되었는데, 리마리오와 같은 자세로 섰을 때 코 중간에 닿는 걸 보면 프로필 상 키보다 살짝 작을 가능성도 존재한다.[4] 걸그룹 STAYC의 멤버이다.[5] 이름도 남성적인 편이고 머리가 숏컷이라서 아들로 오해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맞다.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때 나온 모습을 보면 충분히 오해할 만 하다. 아예 기자가 박시우 군이라고 기사를 내 버렸다. 언니와 같은 고등학교인 고양예고 연기과 수석 입학 출신이며, 인스타에 올라온 가족사진들을 보면 머리를 꽤나 길렀음을 볼 수 있다. 23학년도 연극영화과 수시 5관왕을 달성하였으며, 그 중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수시합격영상[6] 후에 각주에서 언급할 학창 시절의 합창단 활동도 그렇고 꽤나 종교적인 면에 연관이 있다. 오버그라운드 가수로 진로가 정해진 뒤 학업을 중단한 듯. 여담으로 박남정의 어머니도 전도사였고 군부대를 돌면서 정기적으로 예배 인도 및 설교를 하기도 했다.[7] 딸 박시은이 걸그룹 스테이씨로 데뷔하면서 시은의 아버지라는 뜻의 별명이 붙었다.[8] 딸 박시은의 걸그룹 스테이씨의 노래 중 <Teddy Bear>가 있는데, 댄스 챌린지를 딸과 같이 하며 소속사가(!!) 붙여준 별명.[9] 개신교 계열 아동구호기금으로 알려진 월드비전 산하 단체로 지금은 월드비전이란 이름을 쓰지만 과거에는 "한국선명회"란 이름이었다. 국가적인 귀빈이 오면 청와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어린이 합창단으로, 박남정 개인도 중학생 때 1등을 하여 당시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여담으로 구글에서 선명회를 검색하면 통일교와의 연관성에 대해 답변한 사항이 맨 처음 뜨는데, 명칭에 '선명'이 들어가다 보니 생긴 오해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정기적으로 실리던 아동구호 후원 광고에는 항상 "한국선명회는 통일교(교주 문선명)과는 관련이 없습니다"란 문구가 실려있었다.[10] 사실 노래의 풍이 살짝 비슷할 뿐 유사하다고는 볼 수 없다.[11] 예외적으로 '사랑의 불시착'은 본인이 직접 만든 곡은 아니다.[12] 이 당시는 음반 제작자가 무대 기획까지 같이 했다. 기획사가 곧 레이블이었고 음반 제작사였던 시대다.[13] 뉴잭스윙과 함께 80년대 말 미국 댄스음악을 주도하던 스타일이었다. 원래 Dance-pop/Freestyle 장르에서 랩을 하진 않으나, 박남정이 이 스타일에 랩을 붙인 건 혁신적이다. 힙합과 R&B가 합쳐진 뉴잭스윙은 원래 노래와 랩이 같이 있으나 힙합의 드럼이나 비트, 멜로디 등에서 영향을 받은 프리스타일 계열의 댄스 음악은 원래 노래 위주이기 때문이다.[14] '비에 스친 날들' 댄스곡 부문 4위 기록[15] 1988년 갑작스레 탈퇴한 이상원을 대신해서 소방차(아이돌)의 멤버로 영입되었다.[16] 라디오 스타 클론편에서 강원래가 직접 실명 언급.[17] 당대 최고의 스타였으니 당연히 광고 출연작도 어마어마했다[18] 글 초반에 설명한 것 처럼, 특유의 가창력 덕택에 과거에 박남정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작은 키에 댄스실력까지 숨기지 못하고 과시해버렸으니... 그래서 연배가 좀 있는 출연자는 물론 30대 언저리 나이의 출연자까지도 대번에 박남정임을 알아차리고는 적당히 모르는 척 시간을 끌다가 오래 못버티고 박남정 아니냐고 추궁함[19] 이후에 딸도 복면가수로 참가했다.[20] 당시 독주하던 얌전한 고양이가 가왕석에 먼저 올라간다! 부뚜막 고양이를 노린 가명이다.[21] 실제로 일본식 카레를 보면 케첩이나 토마토가 필수로 들어간다.[22] 박남정이 1966년생, 이주노가 1967년생이지만, 빠른 생일로 동갑내기 친구 사이이다. 이주노는 '노피플' 소속.(이 노피플은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콘서트 당시에도 댄싱팀으로 출연해줬다.)[23] MBC '화요일에 만나요', 가수 정수라가 몸무게를 강제인증했던 프로그램이다.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응답자가 맞히면 고가의 상품을 주었는데 퀴즈는 출연 가수의 노래제목, 허리둘레 등 다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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