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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2:33

김삿갓(노래)


1. 개요2. 가사3. 한국 최초의 랩4. 여담

1. 개요

1989년에 가수 홍서범이 부른 실존인물 김병연(김삿갓)에 대해 노래한 곡. 홍서범 1집에 수록되어 있으며 홍서범 본인이 작사, 작곡, 편곡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랩송으로 알려져 있다.

2. 가사


김삿갓 김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삿갓삿갓 삿갓삿갓

1807년 개화기[1]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글공부를 좋아하여
열 살 전후에 사서삼경 독파 이십세 전에 장원 급제했네[2]
안동 김씨에 본명은 김병연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둘에 처 하나
중국이태백 일본바쇼 그렇다면 보여 주자 대한민국 김삿갓

백일장 과거에서 조상을 욕한 죄로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이름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양반 또한 버렸네
그 후로 한평생 삿갓을 쓰고 삼천리 방방 떠돌아다니니
사람들은 그를 보고 김삿갓 김삿갓 삿갓이라 하네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너무너무 좋아 김삿갓

삿갓 쓰고 죽장 짚어 바람 부는대로 구름처럼 떠돌며
착한 서민의 친구 되어 못된 양반 혼내 준 의리의 사나이
도인에는 도 시에는 시로 맞서 시 짓기 내기에 져 본 일이 없네
산첩첩 수중중 구경하고 동가식서가숙 방랑하네

외롭고 고독한 방랑의 생활 술은 삿갓의 유일한 친구
한 잔 하면 시상이 떠올라 두 잔 하면 세상이 내 것이라
한 잔에 시 한 수 또 한 잔에 시 한 수 신선의 목소리 무아의 경지로다
천재로다 천재로다 김삿갓 김삿갓
삿갓 삿갓 삿갓 삿갓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너무너무 좋아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김삿갓 삿갓삿갓 삿갓삿갓

3. 한국 최초의 랩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랩 음악으로 여겨지지만 이에 대해서 반론도 약간 있다. 우선 1년 먼저 공개된 가수 김수철의 '무엇이 변했나'의 중간 부분도 랩과 매우 유사하다.[3] 김완선의 '그건 너'를 원조로 보기도 하지만 랩이라 하기엔 좀 애매하다는 의견이 많고 김삿갓보다 한두달 정도 이른 날짜인 1989년 8월에 발표한 박남정의 '멀리 보이네'도 원조로 보나, 실제 앨범 발매일은 김삿갓보다 늦다는 듯. 서수남과 하청일의 '팔도유람'을 한국 최초의 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위의 모든 예시들은 랩을 '멜로디보다 리듬에 중점을 두고 가사를 읊조리는 스타일의 노래'로만 이해하는 오류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랩은 힙합 음악의 한 부분으로서 발전한 장르인 만큼 미국 힙합음악과의 연관성을 기준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페라가 그 형식뿐 아니라 계보적으로 16세기 이탈리아 음악극의 전통 아래 있는 가극으로 정의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팔도유람'이 나온 1971년은 미국에서도 아직 힙합/랩 음악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다.[4], 따라서 위에서 든 예시들은 우연히 결과물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랩과 유사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뿐이고[5] 한국 최초의 랩송은 분명한 미국 랩의 레퍼런스가 존재했던 최초의 한국 가요인 홍서범의 '김삿갓'이 맞다.[6][7] 홍서범이 직접 '미국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장른데 한번 시도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을 뿐만 아니라 초창기 힙합음악처럼 디스코 펑크 반주에 랩을 얹었으니 힙합 스타일에도 나름대로 충실했다.[8] 또한 김봉현의 한국 힙합 에볼루션 발간 기념 인터뷰에서 전설적인 힙합 그룹인 Run DMC까지 언급했다. # [9]

한국에서 선구적인 랩 장르를 도입한 곡이다 보니 이에 따른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곡은 처음에 심의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음정불안. 당연하지만 당시 심의를 하는 사람들은 힙합과 랩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여 멜로디가 없는 곡은 처음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이에 홍서범은 직접 미국 힙합을 들려주며 미국에선 멜로디 없는 이라는 장르가 있다고 해명하여 방송이 가능하게 됐다.

홍서범이 힙합 장르를 내세워 지속적으로 활동했다면 명실공히 한국 힙합 역사책 첫 페이지에 수록되었겠지만, 홍서범의 랩은 일회성 시도 정도로 그쳤다는 한계가 있다. 홍서범은 기본적으로 옥슨으로 대표되는 밴드 출신이라 힙합보다는 락에 가까운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고 홍서범이 이 곡을 만들 땐 제대로 된 레퍼런스도 없이 런DMC의 음악만 참고했을 테니 들어서 알 수 있는 음악적 형태(펑키한 반주에 멜로디 없이 리듬에 맞춰 말을 빨리 하는 정도)만을 참고한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한국어 라임은 2000년대 들어서야 등장하고 본격적인 힙합뮤지션들의 초창기 작업물들도 지금 들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플로우를 들려주기 때문에[10] 지금의 기준으로 홍서범의 도전을 폄훼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당시 미국에선 뉴 잭 스윙이 대세였기에 최신 트렌드를 가져왔다기에는 약간 늦은 감이 있었다. 이 후 뉴잭스윙 스타일의 힙합 음악으로 등장한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1990)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1992)보다 앞선 랩송.

가사 내용은 김삿갓의 설화에 기반하여 그의 생애와 행적에 대해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특별한 내용은 없다. 다만 전통적인 소재와 노랫말을 최신의 음악 장르에 결합하여 신선함과 이질감을 유도하려 했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동어반복으로 중독성을 준다는 점과 특별한 의미가 없는 가사는 놀랍게도 2020년대 현재 큰 인기를 끄는 래퍼 릴 펌프의 스타일과 상당히 유사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시대를 앞서간 곡이라 할 수 있다.

4. 여담

2008년에 메탈로 리메이크했고 2018년에 그걸 또 리마스터링했다.

스타 골든벨 절대음감에도 등장했다. 이때는 상반기 결산 특집이라 역대 최고난도 단어가 주제였는데 이 중에서 난이도는 ★★☆☆☆ 수준으로 다른 단어에 비하면 쉬웠지만 절대음치 최정원이 무려 2분 42초를 잡아먹은 끝에 MC의 긴급제안으로 혼자 도전했고 결국 2분 55초를 기록하며 힘들게 성공했다.

노래 제목 덕분에 신정환라디오 스타에서 김삿갓 본명은 홍서범이라는 드립을 친 적이 있다.

[1] 실제로는 1807년은 개화기보다 몇십 년 전이지만 꽃이 피는 개화기로 이해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김삿갓의 생일은 양력 4월 22일, 음력 3월 7일이다.[2] 김삿갓의 유명한 설화인 백일장에서 김익순을 논박하는 시를 써서 장원 급제했는데 알고보니 할아버지를 욕한 것이 되어 버려 충격 먹고 삿갓을 쓰게 되었다는 것에서 따 온 가사지만 실제 김삿갓은 현재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장원 급제는 커녕 과거 급제도 한 적이 없다. 자세한 것은 김병연 문서의 방랑의 계기 참고. 홍서범 본인도 후에 벌거벗은 한국사 김삿갓 편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가사를 쓰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김삿갓의 경력에 관한 실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언급했다.[3] 1988년작 영화 칠수와 만수에서 사용된 OST로, “보고싶은 사람들은 떠나고 없구나 지쳐버린 가로수 아무 말 하지 않고 도시의 먼지속에 그림자만 바라보네 어려서 내 고향은 산좋고 물 좋았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빌딩숲에 사라지네 그리운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갔나, 밤비는 내리고 네온사인 슬피우네” 라는 구절을 랩과 비슷한 빠른 템포로 불렀다.[4] 다만 이 때 미국에선 랩의 청사진으로 평가받는 노래가 발표되었다. 미국의 가수인 길 스콧 헤론(Gil Scott Heron)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가 그것. 이 노래는 훵키한 재즈 반주에 높낮이 없는 시적인 가사를 붙인 곡이다.[5] 팔도유람의 경우 가사를 빠르게 읊조린다는 점 외에는 딱히 랩 같지도 않다. 오히려 포크 음악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로 서수남이 미8군 출신으로 요들, 컨트리, 포크 등 백인 음악에 능통했다.[6] 이런 점에서 서영춘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마십니다.'가 한국 최초의 랩이라는 말도 틀렸다. 물론 이쪽은 노래가 아니라 서영춘의 만담에서 나온 일종의 유행어에 가까워서 진지한 주장이라기보다는 농담에 가깝지만.[7] 다만 김완선의 '그건 너'의 경우, 이러한 예가 있는데 여기서 2절에 도입된 턴테이블 소리가 후대의 편집이 아니고 당시 라이브 방송에서 나온 것이라면 김삿갓보다 1년 앞선 시기에 나온 최초의 랩송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힙합 초창기 기준으로 턴테이블 문지르기는 힙합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턴테이블 소리가 1988년 라이브 방송에서 실제로 들어간 것이라면 가수 본인의 공식적인 발언만 없을 뿐 국내 최초의 랩 시도로 볼 수 있다.[8] 아마도 팔코(Falco)의 'Rock me Amadeus'에 영감을 받은 듯하다.[9] 그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곡은 바로 Walk This Way #[10]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언더 힙합의 제왕이자 마스터 플랜의 간판스타였던 주석이 아직 동호인 수준에 지나지 않던 시절, 하이텔 동호회 BLEX 멤버들과 만든 음반인 '검은소리, 첫번째 소리'를 들어 보자. 나름대로 속사포 랩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귀가 썩는 수준의 랩을 들려 준다.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야 그렇다는 것이지 당대에 주석은 장르의 선구자적 위치를 점하였고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당시에는 그와 유사한 수준을 점하는 뮤지션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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