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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18:30:39

O. J. 심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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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O. J. 심슨 사건
O. J. Simpson murder case
People of the State of California v. Orenthal James Simpson
파일:nicole-brown-simpson-house-2.jpg
사건 발생 장소
발생 일시 1994년 6월 12일 저녁 ([dday(1994-06-12)]일, [age(1994-06-12)]주기)[1]
발생 장소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브렌트우드
피해자 2명
용의자 O. J. 심슨
혐의 살인죄
관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 법원
재판장 랜스 이토 (Lance Ito)
재판 결과
제1심
무죄

1. 개요2. 사건3. 재판의 진행4. 사건의 종결과 확률 문제5. 재판과 관련된 이야기들6. 재판 이후
6.1. 사실은 아들이 진범이었다?6.2. 그 외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7. 뒷이야기8. 대중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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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늘 다시보기] OJ 심슨 체포(1994) (2019.06.17/뉴스투데이/MBC)
1994년 6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당시 용의자로 유명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이 체포되었으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고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다. 영미법 체계에서는 1심에서 용의자가 무죄 선고를 받으면 검찰항소할 수 없기 때문에 심슨은 1심에서 무죄로 확정되었다.[2]

가정 폭력과 젠더 갈등, 미국 사회 특유의 계급 및 인종 갈등, 확률통계의 함정 등 여러 분야에서 상징적인 부분이 많아 법학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이 인용하는 사건으로, 미국 형법 체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현재까지 거론될 만큼 유명한 사건.

2. 사건

파일:external/www.blogcdn.com/oj-simpson-file-photos-1.jpg
사진 왼쪽 끝에 있는 인물이 O. J. 심슨. 그 옆의 금발 여성이 피해자인 니콜 브라운 심슨[3]

1994년 6월 12일 O. J. 심슨의 이혼한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식당의 종업원이었던 론 골드만[4]이 피살체로 발견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여러 증거물들로 미루어 보건대 O. J. 심슨이 범인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검찰은 심슨에게 17일까지 출두할 것을 요청했고 심슨은 전처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출석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O. J.는 6월 17일, 자신의 친구에게 '니콜의 죽음과 나는 관련이 없다'는 한 통의 편지를 남긴 뒤 잠적, 연락이 두절됐다. O. J.가 출석 명령을 따르지 않자 LA 경찰국은 긴급 수배령을 내려 이틀 뒤인 19일 O.J.를 체포했다.
The O.J. Simpson Chase
O. J. 심슨 추격전
그 과정에서 벌어진 도주극이 CNN과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되었는데, 도주극은 NBA 파이널 중계를 중간에 중단시켰고 9500만 명이 시청하면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슨은 자신의 포드 브롱코를 타고 도주하다가 이따금씩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기도 하였다. 이후 미국에서는 이 도주극을 지칭하는 관용어 "the juice is loose"가 생겨났다. O. J.가 오렌지 주스(Orange Juice)의 약자이기도 하기 때문.

이 사건은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O. J. 심슨은 이미 NCAA(미국 대학 스포츠)와 FBS(미국 대학 미식축구) 시절부터 여러 시즌마다 최고 기량을 선보이며 MVP에 수차례 선정되었고 70년대 전체의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로 칭송받던 유명 운동선수였으며 1973년 풋볼 선수로서 세운 기록은 역대 러닝백 최고의 시즌이라고 칭송받을 정도였던 데다 미국에서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유명 대기업의 광고들을 찍고 다양한 분야에서 엔터테이너로서도 상당한 위치에 오름으로써 흑인들도 충분히 건강한 매너로 미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던 인물이었다.[5]
파일:oj_480x318.jpg
뉴스위크》와 《타임》 표지를 장식한 O. J. 심슨

그랬기 때문에 그는 미국에서 흑인의 사회적 지위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기까지 했다. NFL에서 MVP를 최초로 선정한 것이 1961년인데 이후 러닝백이 MVP를 수상한 횟수가 딱 16번일 뿐일 정도로 러닝백이 MVP를 수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심슨의 선수 시절에는 지금처럼 패스 위주의 공격보다는 러닝백의 닥공 스타일이 주류였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더 러닝백이 주목받긴 했지만 러닝백의 MVP 수상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NFL은 MLB처럼 리그별로 MVP를 한 명씩 주는 게 아니라 양 리그 통틀어 한 명만 선정된다.

이런 인물이 자신의 백인 전처를 포함하여 사람을 두 명이나 살해했다고 알려졌으니 심지어 외국에서 온 유명 인사들이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물들조차도 이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이 사건의 재판은 국제적인 명성 때문에 세기의 재판(Trial of the century)으로 불렸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대중화된" 형사 재판으로 설명된다. 이 사건이 영어권 문화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2개 있다.

3. 재판의 진행

재판은 실시간으로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됐는데 수익이 나지 않아 골머리를 앓던 Court TV는 이 덕분에 한동안 CNN보다도 시청률이 더 높았다. 미국인들의 관심과 거기에 편승한 언론들의 행태는 다음 수준에 이르렀다. #피고인은 당시 금액으로 300만~600만 달러[6]로 변호인들을 고용하였는데 옛날이나 요즘이나 상당히 비싼 금액이다. 처음부터 이 변호인단은 하도 명성이 후덜덜한 변호인단으로 구성되었고 법정에서 그 뛰어난 활약 등으로 인해 '드림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당시 제시된 수많은 증거와 증언들은 그를 범인으로 가리켰다. 당시 제시된 증거로는
그 외에도 수많은 증언, 증거가 심슨이 범인임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O. J. 심슨은 꼼짝없이 살인범으로 전락해 그대로 구속되면서 사건이 끝날 것으로 보였지만 변호 측은 이를 하나하나 완벽히 반박해 나갔는데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그렇게 발견된 가죽 장갑은 O. J. 심슨의 손에 맞지 않았다. 장갑이 너무 작아서 손목 부분이 걸려 엄지와 검지가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증거 훼손을 막기 위해 라텍스 장갑을 낀 상태였고, 액체가 달라붙은 채로 오랫동안 보관된 상태였기에 오그라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O. J. 심슨이 재판정에서 장갑을 껴 보이는 장면은 이 재판의 최고 하이라이트이자 무죄 평결의 가장 중요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배심원들이 나중에 쓴 책들에 의하면 무죄를 주장하는 배심원들은 유죄를 맨 처음 주장하는 배심원들에게 범인이 썼던 장갑이 맞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심슨이 범인일 수 있냐고 말했고 결국 유죄 측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최후 변론에서 심슨 변호인단의 조니 코크란은 미국 법정 역사에 길이 남고 지금도 회자되는 그 유명한
"맞지 않으면 무죄이다."(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
라는 발언을 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에서 매우 화제가 된 사건이었으며, 언론은 O. J. 심슨을 아직 재판이 치러지지 않았는데도 범죄자로 몰아갔다. 배심원단 중에서도 O. J. 심슨을 다루고 있는 언론을 이미 읽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공정하게 재판의 판결을 내려야 할 배심원단이 이미 O. J. 심슨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법정의 정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때문에 배심원단을 교체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배심원단이 여러 차례 교체되었다.[11]

LA는 흑인들이 경찰들한테 인종 차별을 강하게 받는 도시로 알려졌었고 덧붙여 1992년 LA 폭동으로 촉발된 흑백 갈등으로 인해 변호인들은 인종 차별 하는 형사가 이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걸 강조하면서 이 사건 전체가 인종 차별적인 수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마지막 변론에서 마크 퍼먼을 히틀러에 비유했을 정도. 거기에다 증거를 수집할 때 하필이면 이런 비흑인들, 즉 대부분 백인들로 이뤄진 LA의 경찰(LAPD)들이 중요한 증거를 하나 이상으로 조작했다는 게 명백하게 나타났는데도 심슨을 구속하고 감옥에서 형량으로 살게 됐다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흑인 스타조차도 인종 차별 집단들로 인해 추락한다면 보통 흑인들의 위상이 미국에서 얼마나 더 추락하겠냐는 식으로 변호사들의 모든 주장들은 이런 식의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났고 많은 언론들은 이런 주장들이 유색 인종이 대다수인 배심원단에게 설득력 있게 들렸다고 분석했다.[12] 법정뿐만 아니라 언론을 영리하게 잘 사용해서 이 법정 사건으로 인한 해프닝들이 LA 사회 운동으로 번지게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12명의 배심원 가운데 흑인이 무려 9명, 백인이 2명, 히스패닉이 1명이었던 만큼[13] 검사 측은 유색 인종 배심원을 인정하지만 여성의 수를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흑인 여성들 사이에서는 성공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고 성공한 흑인들이 백인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실제로 O. J. 심슨도 유사한 행동을 했는데 평상시 '나는 흑인이 아니고 O. J. 심슨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1995년 10월 3일 1심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변호인 측의 주장을 지지하여 피고인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올 경우 항소할 수 없다는 영미법 체계 때문에 O. J.의 무죄는 그대로 확정됐다.

4. 사건의 종결과 확률 문제

영미법에서는 배심원단이 유무죄를 판결하기 때문에 사건의 판결은 무죄로 종결되었지만 재판의 진행에 대한 의문이 남았는데 이는 통계의 함정에서 기인한다. 각각의 조건이 용의자의 조건과 일치할 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경우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즉,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러 조건들이 사건에 부합되었을 확률을 봐야 했다. 쉽게 말하면 변호사는 심슨 말고 다른 사람도 범인이 될 수 있는 확률을 말한 것이고 실제로 고려했어야 할 점은 심슨이 그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범인이 아닐 확률이다. 모든 조건이 용의자와 일치하지만 그가 범인이 아닐 확률은 모든 조건에 대해 (1 - 일치하지 않을 확률)값을 곱해 줘야 하며 이 경우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왼손잡이 중 한 명일 확률', '왼손 장갑에 혈액이 발견된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범인이 왼손잡이일 확률',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정 폭력이 연관될 확률'... 등등 엄청나게 많은 조건에 대해 가장 먼저 고려되었어야 할 이 조건에 모두 해당됨에도 범인이 아닐 확률이 재판에서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변호 측은 가정 폭력이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살인으로 발전될 확률을 주장하였지만 실제로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정 폭력이 연관되었던 경우를 고려해야 했으며 다른 조건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변호인들이 한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단순하게 풀어 보면
라는 황당한 소리를 한 것이다.[14] 유죄/무죄를 따지기 이전에 수학적인 오류를 내포한 웃기는 소리를 했고 그게 재판에서 걸러지기는커녕 무죄 근거로 통하기까지 하는 심각한 상황이 나오면서 이 재판이 유명해졌다.

통계적으로 다시 설명을 보충하자면 피해자의 변호인 측이 '평소 심슨은 죽은 전처를 자주 때리고 욕했다.'는 주장을 했는데 심슨의 변호인은 '실제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 중에서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경우는 천 명 가운데 한 명, 즉 0.1%도 안 된다'고 반박했고 따라서 심슨이 아내를 때렸다는 사실은 아무 단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아내가 남편에 의해 죽을 확률은 0.1%밖에 안 되지만 심슨의 경우처럼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던 아내가 살해당했을 때 그녀의 남편이 범인일 확률은 80%가 넘는다고 밝혀졌다.

변호인들이 작정하고 헛소리를 하기로 맘먹은 것을 보여준 대목이 왼손잡이 운운하는 대목이었다. '미국의 왼손잡이가 2,600만 명이므로 O. J. 심슨이 범인일 확률은 2,600만분의 1이다'라는 소리를 했는데 이는 사건 현장이었던 브렌트우드뿐만 아니라 LA 전체, 거기다 시애틀, 뉴욕, 마이애미, 호놀룰루, 앵커리지에 있었던 왼손잡이까지 전부 포함된다는 소리다.[15]

변호인들은 DNA 결과도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DNA는 심슨의 것으로 분석되었다. 보통 DNA 분석에서 두 사람의 DNA가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1만분의 1이다. 따라서 검찰 측은 이 증거 하나만으로도 심슨이 99.99%의 확률로 살인자라고 주장하였지만 변호인 측은 이에 대하여 로스앤젤레스 인구가 300만 명이므로 이 중 약 300명이 DNA가 일치할 수 있고 따라서 심슨이 살인자일 확률은 0.3%(1/300)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원문 보기

다른 예시로 연속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웨인 윌리엄스는 범죄 현장의 섬유들을 조사해서 웨인 윌리엄스가 범인이 아닐 확률이 약 2,900만분의 1이라는 결론이 나와 유죄 근거로 사용된 적이 있다.

다만 통계 문제가 없었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제시한 핵심 증거들이 다 논파당하거나 신뢰성을 의심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긴 했다. 통계에서 들먹였던 사건 현장에 접근 가능한 왼손잡이 숫자 + 남편에게 폭행당하던 아내가 살해당했을 경우 그 범인은 남편일 가능성이 워낙 임팩트가 큰지라 눈에 잘 띄긴 해도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자 정황 증거에 지나지 않았던지라 핵심 증거가 아니었다. 이 사건에서 O. J. 심슨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하술하는 그 핵심적인 증거들까지 모조리 논파당했다는 것에 있다.

5. 재판과 관련된 이야기들

6. 재판 이후

1997년 피해자 니콜과 론 골드만의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는 패소 판결을 받고 배상금으로 총 3,350만 달러(한화 약 370억 원)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만 이미 과거의 형사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으로 그를 감옥에 넣을 수는 없었다. 민사와 형사 재판 결과가 달라진 것은 민사에서는 대립하는 당사자 중 더 우세한 쪽이 승소하지만 형사에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을 정도의 증거가 있어야 유죄가 되기 때문이다. 두 재판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으로 심슨이 아내를 죽였다는 게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죽이지 않았을 가능성보다는 높다는 걸로 정리된다.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고 온갖 재산을 빼돌리는 등 법의 함정들을 이용하여서 O. J. 심슨으로부터 2017년 8월까지 유가족들은 100만 달러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O. J. 심슨은 진짜로 돈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백 달러 규모의 세금도 못 내서 탈세 혐의로 수감되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건 주요 당사자들은 막대한 수임료를 지불하느라 거지가 된 심슨을 제외하면 대부분 떼부자가 되었다. 변호인단은 승소에 기반하여 높아진 명성으로 몸값이 치솟았고 특히 커크란은 자신의 법률 사무소를 미국 내 총 15개 주로 확대시킬 정도로 명성을 널리 떨쳤다. 검사 측도 마샤 클라크나 크리스 달든 모두 패배 책임으로 퇴직했지만 클라크 검사는 검사 퇴직 후 1997년 테레사 카펜터라는 유명한 작가와 함께 해당 사건을 배경으로 한 《Without a Doubt》라는 책을 썼고 당시 420만 불에 판권 계약을 했다. 당연히 베스트셀러 1위로 등극해 돈방석에 앉았다. 덕분에 재판 패배의 발목을 잡았던 자녀 양육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이후 작가로 생활한다. 크리스 달든은 이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해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배심원단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회고록 내지 인터뷰 등으로 돈을 두둑이 챙겼다. 심지어 악질 인종 차별주의자로 인증된 마크 퍼먼조차 위증 혐의 등으로 퇴직 처리 되었지만 동부로 이주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라디오 쇼를 진행하고 폭스 채널의 범죄 관련 패널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유일한 예외는 랜스 이토 판사인데 이후에도 판사로 재직했기 때문에 관련 인터뷰나 회고록 집필을 하지 않은 대신 재판 과정에서 명성이 높아지긴 했다. 유명세 때문에 LA 법원의 이름판을 자꾸 도난당했다고 하며 2015년에 은퇴했다.

O. J. 심슨은 2007년 《만약 내가 했다면》(If I Did It)이라는 책을 고스트라이터를 통해 출판했다. 이 책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작업으로 출판되었으나 이 책이 출판된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극도의 반발로 출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이때 이미 찍혔던 40만 부의 책이 파기되었고 사업 계획들도 무산되었다. 이 책은 나중에는 《만약 내가 했다면: 살인자의 고백》(If I Did It: Confessions of the Killer)으로 제목을 바꾸어 발행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출판 과정에서 O. J. 심슨의 가장 큰 채권자인 론 골드만의 유가족은 사전에 책을 검토한 후 'If'를 아주 작게 만들도록 해서 언뜻 보면 책의 제목이 《I Did It》처럼 보인다고 했다. 한국어로 비유하면 '내가 했다'이라고 한 셈이다.
O.J 심슨 옛집서 피묻은 흉기 발견…경찰 조사
2016년 3월 4일(현지 시간) O. J. 심슨이 살았던 옛집에서 피 묻은 흉기가 발견됐다고 폭스 뉴스가 보도했다.## 이 흉기가 발견된 곳은 로스앤젤레스(LA) 브렌트우드 지역에 위치한 심슨의 옛집 터다. 심슨의 옛집은 1998년 철거됐다. 한 건설업자가 2015년 심슨의 옛집 터에서 흉기를 발견해 경찰관 친구에게 건네줬으나 이 경찰관은 흉기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보관해 오다가 2016년 1월 지인의 신고로 경찰국에 제출했다고 폭스 뉴스는 전했다. 만약 당시 발견된 피 묻은 흉기가 심슨이 범인임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판명되더라도 O. J. 심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할 수는 없다. 헌법에 규정된 '이중 위험 금지의 원칙' 때문이다.[23] 감식 결과 사건과는 관계없다고 밝혀졌다.##

6.1. 사실은 아들이 진범이었다?

그런데 헨리 리 박사의 인터뷰에 따르면 범인은 다름 아닌 O. J. 심슨의 아들인 제이슨 심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건 초기 경찰이 찍은 현장 사진을 보면 시신 옆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운동화 자국이 있다. 목격 진술과 통화 내역, 두 집 간의 거리, 비행기 시간 등을 종합하면 O. J. 심슨에게는 딱 30분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성인 2명을 살해하고 도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장갑도 O. J. 심슨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작았으며 현장에서 발견된 모자도 O. J. 심슨의 것이 아니다. 심슨에게 맞지 않았던 장갑은 니콜이 심슨의 아들(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선물하려고 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고 심슨의 아들은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전에도 수차례 폭력 사건을 일으켰고 그녀의 여자친구를 폭행해 죽일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심슨은 자신의 아들을 말리려고 했다가 피가 난 것이고 O. J. 심슨의 아들이니 당연히 장갑 한쪽이 O. J. 심슨의 집에 있는 것이며 O. J. 심슨도 같은 장소에 있어서 발자국이 난 것이고 아프로계 머리인 아버지에게 유전된 머리카락은 심슨의 아들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 장갑, 모자는 나중에 모두 제이슨 심슨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범행 동기도 있었다. 제이슨 심슨은 사건 당일 자신이 일하던 레스토랑에 유명인인 아버지가 와 주기로 했는데 니콜이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시키는 바람에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전에도 전처의 아들인 제이슨 심슨과 니콜 브라운 심슨은 매우 사이가 나빴다. 아마 제이슨이 격분한 채 칼을 들고 말았고 이를 안 O. J. 심슨이 달려가서 말리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손을 다쳐 피를 흘린 채 비행기 시간 때문에 서둘러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했다. 재판에서 O. J. 심슨이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심슨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기뻐했는데 유독 제이슨만 무표정한 표정으로 있는 장면도 나중에 회자되었다. 또한 O. J. 심슨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이를 지목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이는 표창원의 《한국의 CSI》 (북라이프)라는 책에서 소개되어 있다.
사실 수사단 내부에서도 제이슨 심슨이 진범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인종 차별 형사인 마크 퍼먼이 백인 아내를 가진 흑인 유명 인사인 심슨을 표적으로 삼아서 진범을 놓치고 엉뚱한 범인을 만들려고 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크 퍼먼은 무단 횡단을 한 흑인의 멱살을 잡는 등 폭행을 한 전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해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언론이었다. 언론은 O. J. 심슨이 범인이라는 가정하에서 모든 내용을 몰고 갔다. O. J. 심슨의 자동차 추격전을 포함해서 범인으로 몰아간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증언 조작. 원래 O. J. 심슨이 범인인가에 대해서는 70% 정도가 무죄로 생각했다. 이 여론을 뒤집은 것은 한 TV 쇼에서 범죄 현장 근처에서 심슨을 봤다고 주장한 클라크라는 목격자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나중에 방송사에서 돈을 받고 해당 증언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뒤에는 O. J. 심슨이 범죄를 저지르는 칼을 팔았다는 증인이 나왔는데 이 사람은 신문사에서 12,000달러를 받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O. J. 심슨이 범인이라고 지목한 증언들의 상당수는 신빙성이 의심되었다. 이는 김형근이 쓴 《DNA 연쇄살인의 끝》이라는 책[24]에서 소개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사실상 종료된 지 30년이 지나고 당사자인 O. J. 심슨마저 세상을 떠난 지금은 아무 의미 없는 가설일 뿐이며, O.J. 심슨 사건은 이미 설명되었듯이 사건 현장의 모든 증거는 O.J. 심슨이 살인범임을 증명하는 상황이었고 O.J. 심슨이 무고하다는 물질적 증거나 알리바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O.J. 심슨이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발악을 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살인죄로 처벌받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때 O.J. 심슨이 순순히 재판에 임했다면 그는 꼼짝없이 살인죄로 감옥 신세를 져야만 했으며 그랬다면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도 해당 사건에 대해 사실은 아들 제이슨 심슨이 진범이 아닐까 하는 식의 주장도 전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6.2. 그 외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7. 뒷이야기

8. 대중 매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인 사건이자 재판 판결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그외 다른 매체에서도 자주 패러디되었다.


[1] 피해자들의 사망 일자가 기준이므로 주년이 아닌 주기로 표기.[2] 반면 대륙법에서는 검찰의 항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2-3심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판 O. J. 심슨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던(물론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역시 사건 발생 이후 대법원에서 피고인이 최종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3] 1959년 출생이고 독일계 미국인이다.[4] 처음엔 N. 심슨과 연인 사이였다고 추정되었으나 훗날 연인이 아니라 친구 사이였음이 드러났다. N. 심슨과는 이미 사건이 터지기 몇 주 전부터 알고 지냈고 N. 심슨이 본인 페라리를 태워 줄 정도로 친근한 사이였다. 사건 당일에도 N. 심슨은 골드만이 일하던 식당에서 식사했는데 골드만은 N. 심슨의 어머니가 식당에 놓고 온 안경을 보고 직접 N. 심슨에게 전달해 주러 갔다가 살해 당했다.[5] 80년대 마이클 조던이 등장하기 전까지 흑인 스포츠 스타로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 당시 돈으로 300만 달러는 현재 가치로 약 500만 달러/50억 원이다.[7]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아래 확률 문제 참조.[8] 퍼먼은 이 사건으로 흑인 사회에서 네임드 흑인 차별 경찰로 자리매김했으며 흑인 은어 중에 'go Mark Fuhrman'이라는 백인이 흑인을 강제로 추궁한다는 의미의 관용어까지 생겼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팔콘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토니 스타크에게 짜증을 내면서 'go Mark Fuhrman'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9] 심슨의 변호인들은 마크 퍼먼에게 평상시 니거라는 말을 사용했냐고 물었고 마크 퍼먼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 부분은 변호인단이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이미 테이프 녹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재판의 결정적인 임팩트를 주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10] 이 부분은 미국 법정 영화에서 가끔씩 나오는 부분인데 한번 <수정 헌법 5조>에 따른 묵비권을 주장하면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서는 안 된다. 한 질문에라도 대답하면 다른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상실되기 때문에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 위해서는 증거를 조작했냐는 질문에도 절대 대답 자체를 해서는 안 됐다. 문제는 증거를 조작했느냐는 질문에 "아니오"가 아닌 대답을 하면 "했을 수도 있다"의 의미가 강해지기 때문에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퍼먼의 대답은 마치 '증거 조작을 했을 수도 있다.'로 들리게 만들었다.[11] 배심원단 교체가 마치 억지로 시간을 끌고 사건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꼼수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미국 법정에서 배심원단 교체 요구 자체는 변호인은 물론이고 검사 측도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이다. 심지어 일정 숫자만큼은 별 이유를 대지 않고도 교체하는 것이 가능하다.[12] 실제로도 나중에 배심원들이나 검찰 측에서 낸 책이나 소고록 등에서 이런 변호사 측의 이런 주장들이 배심원들한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됐다.[13] 재판장은 일본계 미국인 랜스 이토 판사였다.[14] 증거 개수가 많을수록 1, 2개가 반박되더라도 나머지 근거가 반박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하면 여전히 그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15] 당연히 1/(사건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왼손잡이 숫자)가 정답이다. 문제는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을 특정할 시기를 이미 놓쳐 버렸다는 점이다.[16]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 O. J. 심슨 사건 파일>에서 해당 부분을 잘 묘사했다. 장갑 착용을 강력히 주장한 것은 흑인 검사 크리스 달든이고 수석 검사 마샤 클라크는 이에 반대하던 상황이었으며 휴정 시간 중 해당 장갑을 체크해 본 변호인 로버트 샤피로는 자신의 손(=심슨의 손과 크기가 비슷)에 장갑이 안 맞는다는 걸 확인하고 장갑 착용시키자고 강력히 주장했고 여기에 수석 변호인 조니 코크란이 변호인단 측에서 먼저 착용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며 크리스 달든에게 겁쟁이라고 도발했으며 달든은 수석 검사 마샤와 상의도 없이 독단으로 장갑 착용을 요청하였고... 이후 심슨이 연기했다거나 (증거 훼손 방지용) 비닐장갑을 낀 상태에서 착용하려 해서 그렇다는 등 제대로 멘붕한 모습을 보여줬다.[17] 그리고 피가 묻어서 쪼그라들었다고 한다면 간단한 실험으로도 실제로 심슨의 손에 맞는 장갑이 그렇게 줄어들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18] 이 사건의 여파로 개인 정보 보호법이 강화, 제정되었고 스토킹 방지법이 통과되었다.[19] 짐 브라운, 스눕 독, 마이클 잭슨 등 여러 연예인들의 변호를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20] 누구도 분명하게 이유를 말하지 않으나 다들 인종 문제로 봤다. 즉, 남부 딕시 주 중 하나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백인 판사님들이 인종 차별 문제 운운하는 흑인 변호사를 고깝게 보았다는 것이다. 심슨 사건을 다룬 드라마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 O. J. 심슨 사건 파일>의 묘사를 보면 법원 안에 남부 연맹 깃발이 있지 않나, 법원 건물 앞에는 남부 연맹군 동상이 세워져 있지 않나. 코크란의 요청이 기각당한 뒤 대신 나선 베일리는 이 상황을 잘 캐치하고 독립 13주의 일원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와서 영광을 시작으로 온갖 미사여구와 아부성 발언을 덧붙여서 테이프 제출 명령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21] 어째서 형사가 판사 아내를 비난하는 언급을 했는지가 의아할 수 있는데 마가렛 요크는 랜스 이토의 아내인 동시에 LA 경찰의 높으신 분으로, 그의 상사에 해당했다. 즉 상사 뒷담 깐 것이 하필이면 그 상사 남편한테 걸린 것이다.[22] 대표적인 인물이 타이거 우즈. 전 부인 엘린 노르데그렌은 부모가 스웨덴의 유명 정치인이고 본인도 성공한 모델이며 이혼 후 사귀었던 린지 본은 미국의 스키 스타다. 하다못해 그의 섹스 스캔들 당시 파트너는 하나같이 다 백인이었다.[23] '동일한 범죄에 대해 재차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위협받지 않는다'는 영미법의 원칙으로 대륙법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유사하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확정 판결에 대해서 다시 기소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이중 위험 금지의 원칙에서는 검찰 측은 항소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영미법에서는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재판이 끝난다.[24] 김형근은 《사이언스 타임즈》 편집 위원을 지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장 한면수의 감수를 받았다.[25] 흑인 은어 중에 'go Mark Fuhrman'이라는 백인이 흑인을 강제로 추궁한다는 의미의 관용어까지 생겼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팔콘캡틴 아메리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토니 스타크에게 짜증을 내면서 'go Mark Fuhrman'이라고 하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26] 그래서인지 킴 카다시안은 막장 파티녀 캐릭터, 고졸 학력 때문에 무식할 거란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자기 관리도 잘하고 인종 차별도 잘 안 하고 자기 주변의 추문에 대처하는 요령과 경험을 아버지를 통해 잘 배워 왔다.[27] 그냥 친구가 아니라 엄청난 절친이었다. 킴 카다시안의 대부가 바로 O. J. 심슨이었다.[28] 무죄 평결 당시 영상에서 평결이 내려지는 순간 로버트의 표정을 보면 당시에도 심슨이 유죄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는 최대한 심슨의 형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아예 무죄가 나와 버려서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29] 이 사건을 주제로 한 드라마 <O. J. 심슨 사건: 아메리카 크라임 스토리> 마지막회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고 재판장에서 나온 카다시안이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는 장면, 그리고 심슨의 자택에서 열린 무죄 판결 축하 파티 중 더는 견디지 못하고 심슨의 곁을 떠나는 장면으로 묘사했다.[30] 해당 사건을 다룬 드라마 <O. J. 심슨 사건: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에서도 크리스는 니콜의 장례식 때부터 쭉 심슨의 범행을 확신하고 그의 변호를 맡아 니콜을 죽이지 않았다고 믿는 전남편 로버트 카다시안과도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 묘사된다.[31] 유족들은 아직도 범인이 O. J. 심슨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32] 니콜의 집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당신이 그걸 막으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33] 한국명 <O. J. 심슨 파일: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34] 정작 라이베리아는 미친 독재자가 지배하는 막장 국가에 내전 중이라서 미국에게 뭐라 할 처지가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