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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9 11:13:31

이십사사

24사에서 넘어옴
1. 개요2. 변천사3. 목록4. 번역본5. 참고 문서

1. 개요

이십사사(二十四史)는 한나라 사마천사기부터 청나라 건륭제의 명에 의해 편찬된 명사까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공인된 정사 24권을 총칭한다. 1912년 청나라 멸망 후 현대에 편찬된 사서인 신원사청사고 중 하나를 더해 이십오사, 혹은 둘 다 더해 이십육사라고도 한다.

사마천사기를 시작으로 하여 중국 역대 왕조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24권의 기전체 사서를 의미한다. 한대 이후 고대 중국은 이전 왕조의 역사를 그 다음 왕조에서 정리하여 편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십사사는 바로 이러한 전통의 산물이다. 이는 현대까지 이어져서 1961년에 중화민국(대만)에서 청나라에 대한 기전체 사서인 청사를 펴냈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청나라의 사서를 공식적으로 집필하는 작업인 청사공정을 진행한 바 있다. 또한 현대 중국에서 정본처럼 여겨지고 있는 중화서국 점교본에 대한 새로운 표점교감 공정 역시 이뤄지고 있다. 이외에 정사에는 포함되지 않는 주요 사서로 동관한기[1], 신원사, 청사고가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서들이지만 사실 대중 인지도는 거의 사기와 나머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대체로 일반적인 시점에서는 사기보다 재미없기도 하고. 그 다음 순위는 정사 삼국지후한서, 진서 순으로 삼국지연의 덕분에 어느 정도 삼국지 팠다는 사람들에겐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2] 그 밖에도 한국사를 공부하려면 삼국시대-남북국시대를 공부할 때 당나라가 필수적으로 나오는데 이때 발해신라에 대한 기록이 구당서신당서에 나오고 특히 당나라의 유명한 고구려계 장수 고선지의 서역 원정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워 구당서와 신당서를 접해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다. 한국사 측면에서는 동이열전, 조선열전, 외국열전 식으로 한국 이야기가 실려있기 때문에 약간 인지도가 있다. 한국에 관련된 부분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원문과 번역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사기, 한서, 후한서, 정사 삼국지, 수서, 요사, 금사 등 7개 사서의 한국어 번역이 완료되었다.

2. 변천사

  1. 전삼사, 전사사: 사기, 한서, 동관한기를 일컬어 전3사라 칭했으나 남조 이후 후한서가 동관한기를 대체하였고 당나라 때 이후 삼국지를 추가하여 전4사라고 불리었다.
  2. 십사, 십삼사: 삼국지, 진서(晉書), 송서, 남제서, 양서, 진서(陳書), 북위서, 북제서, 북주서, 수서의 10개를 10사라고 불렀다. 여기에 전3사를 더해 13사라고도 하였다.
  3. 십칠사: 송대 이후 13사에 남사, 북사, 신당서, 신오대사의 4개를 더해 17사라고 불렀다.
  4. 십팔사: 원대에 증선지가 송사를 더해 십팔사략을 저술했다.
  5. 이십일사: 명대에 18사에 원사, 요사, 금사를 더해 21사를 편찬하였다.
  6. 이십사사, 이십이사: 청대에 이르러서 명사를 더해 22사, 여기에 구당서와 구오대사를 추가하여 이십사사가 완성되었다. 이십사사를 바탕으로 청대의 조익이 신, 구당서를 한 개로 신,구오대사를 한 개로 간주하여 이십이사차기를 저술하였다. 현재는 중국의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나온 표점교감(標點校勘) 이십사사[3]#가 널리 읽히고 있다.
  7. 이십오사, 이십육사: 청조 멸망 후 민국시기 원사를 보충하기 위해 신원사가 저술되었고 청사를 집필하기 위한 청사고가 저술되었으나 청사의 집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중화민국이 국부천대 이후 청사를 완성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공인하지 않았고 독자적으로 청사를 완성하는 청사공정을 추진한 바 있다. 신원사나 청사고# 중 하나를 포함해 이십오사라고 부르기도 하고 둘 다 포함시켜 이십육사 하고 부르기도 한다.

3. 목록

중국의 정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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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이십사사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송서
사마천 반고 범엽 진수 방현령 심약
남제서 양서 진서 위서 북제서 주서
소자현 요사렴 요사렴 위수 이백약 영호덕분
수서 남사 북사 구당서 신당서 구오대사
위징 이연수 이연수 장소원 구양수 설거정
신오대사 송사 요사 금사 원사 명사
구양수 토크토아 토크토아 토크토아 송렴 장정옥
기타
동관한기 신원사 청사고
유진 커샤오민 자오얼쉰 등
}}}}}}}}}}}}}}} ||

1. 《사기(史記)》 - 전한대 사마천
2. 《한서(漢書)》 - 후한대 반고
3. 《후한서(後漢書)》 - 유송대 범엽 저[4]
4. 《삼국지(三國志)》 - 서진대 진수[5]
5. 《진서(晉書)》 - 당대 방현령 등 저
6. 《송서(宋書)》 - 양대 심약 등 저
7. 《남제서(南齊書)》 - 양대 소자현 등 저
8. 《양서(梁書)》 - 당대 요사렴 등 저
9. 《진서(陳書)》 - 당대 요사렴 등 저
10. 《위서(魏書)》 - 북제 위수 등 저[6]
11. 《북제서(北齊書)》 - 당대 이백약 등 저
12. 《주서(周書)》 - 당대 영호덕분 등 저
13. 《남사(南史)》 - 당대 이연수 등 저
14. 《북사(北史)》 - 당대 이연수 등 저[7]
15. 《수서(隋書)》 - 당대 위징 등 저
16. 《구당서(舊唐書)》 - 오대십국시대 후진 조형 등 저
17. 《신당서(新唐書)》 - 북송 구양수 등 저, 《신오대사》와 함께 편찬.
18. 《구오대사(舊五代史)》 - 북송 설거정 등 저
19. 《신오대사(新五代史)》 - 북송 구양수 등 저[8]
20. 《송사(宋史)》 - 원대 토크토아 등 저[9]
21. 《요사(遼史)》 - 원대 토크토아 등 저
22. 《금사(金史)》 - 원대 토크토아 등 저
23. 《원사(元史)》 - 명대 송렴 등 저
24. 《명사(明史)》 - 청대 장정옥 등 저[10]
후보 《신원사(新元史)》 - 중화민국기(1920) 커샤오민(가소민, 柯劭忞) 저[11]
후보 《청사고(清史稿)》 - 중화민국기(1927) 커샤오민, 자오얼쉰(조이손, 趙爾巽) 저.[12]

4. 번역본

1. 《사기(史記)》김병총(집문당)# 정범진(까치)# 김원중(민음사)# 신동준(위즈덤하우스)#
2. 《한서(漢書)》이한우(21세기북스)# 진기환(명문당)#
3. 《후한서(後漢書)》진기환(명문당)#
4. 《삼국지(三國志)》김원중(휴머니스트)# 진기환(명문당)#
15. 《수서(隋書)》권용호(지만지)#
21. 《요사(遼史)》김위현(단국대학교출판부)#
22. 《금사(金史)》이성규,박원길,윤승준,류병재(단국대학교출판부)#

5. 참고 문서



[1] 후한서가 저술되기 전까지는 동관한기 역시 정사였다.[2] 사학에서는 주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 때문에 중요하다. 물론 한국 역사에 삼국사기라는 정사가 존재하긴 하지만 객관적인 교차검증을 하기 위한 사서로 일본서기와 함께 고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3]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는 글을 백문(白文)이라 하는데 백문에 구두점 찍는 것을 표점이라고 한다. 이십사사는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읽기 쉽게 표점교감을 하였다.[4] 후한사와 삼국시대 일부 포함.[5] 저술 시기로는 후한서보다 앞선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까지가 민간에서 사적으로 편찬한 사찬서인 전사사(前四史)에 해당한다.[6] 북위, 그 가운데 북제로 이어지는 동위측의 정사.[7] 각각 남북조시대의 남조, 북조를 다룬 책. 예를 들어 북위와 북주 사이에 빠진 서위 이야기가 북사에 있다.[8] 위의 구, 신당서를 당서 하나로 퉁치고 신오대사까지의 정사를 축약하여 편집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십팔사략이다. 책 자체는 원대에 편찬되었다.[9] 서하의 역사서는 쓰지 않았지만 송사에서 "하국전(夏國傳)"을 따로 남겼다.[10] 명사까지의 정사 22종(신,구로 나뉜 정사서들을 하나로 계산)을 청대의 학자 조익이 교감을 본 후 펴낸 책이 '이십이사차기'란 제목으로 전해진다. 청대 역사학 고증의 결정체이자 끝판왕으로 평가된다.[11] 기존의 원사가 너무 촉박한 기간에 만들어져 인용된 기록 간에 충돌이 잦고 오류가 많았기 때문에 새로이 쓰여졌다.[12] 청사란 제목에 주목하자. 즉 어디까지나 정식 《청사》를 편찬하기 전에 아직 정리를 덜 한 원고란 의미다. 중화민국 국민정부는 청사 편찬사업을 위안스카이가 신해혁명의 정신을 훼손할 목적에서 시작했다고 평가하여 청사고를 금서로 지정했고, 대만으로 넘어간 후 다시 청사고를 개정하는 작업에 들어가 1961년 정식으로 청사를 발간했다. 한편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판 청사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독자적으로 청사를 편찬하는 청사공정을 진행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니 후세엔 舊清史(구청사), 新清史(신청사)로 알려질 지도 모른다. 실제로 5대10국의 후진(後晉)이 편찬한 당서를 이후의 송나라에서 부실하다고 생각해서 新唐書(신당서)가 편찬되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