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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 제6차 1987년 10월 27일 | 시행 불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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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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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1998년 4월 2일과 7월 21일, 11월 26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다. 2000년 2월 이전까지는 재보궐선거의 일정이 정례화 되지 않아 지역마다 선거일이 모두 달랐다.[1]2. 4월 2일
1998년 4월 재보궐선거/국회의원 선거 결과 |
|
4석 |
제15대 국회의원 |
부산 서구, 대구 달성, 문경-예천, 의성 4곳에서 치러졌다. 모두 보수정당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지역이라 한나라당이 무난히 승리하였다. 전임 김영삼 정권의 1997년 외환 위기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락하여 연립여당인 국민회의-자민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력을 다해 선거운동을 했다. 어쨌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전승이었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높은 지역감정과 같은 지역구내에서 벌이지는 '소지역주의'를 패배의 원인으로 꼽았다. 결국 지역감정이 정권 초반 주요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 한 것.
문경-예천 지역구는 여론조사에선 자민련 신국환의 우세였다. 하지만 한나라당 신영국 신승.
18대 대통령 박근혜가 처음 정계에 입문한 선거다. 박근혜는 연고지인 대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경쟁자인 국민회의 엄삼탁 후보는 민주당계 정당 불모지에서 40%에 가까운 의미있는 득표를 하였다. 여론조사에서는 박빙이었으나, 실제로는 차이가 꽤 났다.
2.1. 국회의원
2.1.1. 부산광역시 서구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홍인길이 한보 사태로 형을 선고받아 공석이 되었다. 부산 서구 부민동, 아미동, 초장동, 충무동, 암남동, 동대신1동, 동대신2동, 동대신3동, 서대신1동, 서대신3동, 서대신4동, 남부민1동, 남부민2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문화(鄭文和) | 21,235 | 1위 |
| 38.12% | 당선 | |
2 | 정오규(鄭吾奎) | 7,732 | 3위 |
[[새정치국민회의|]] | 13.88% | 낙선 | |
3 | 이종혁(李鍾赫) | 4,570 | 4위 |
[[국민신당(1997년)|]] | 8.20% | 낙선 | |
4 | 강진수 | 835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50% | 낙선 | |
5 | 곽정출(郭正出) | 11,400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47% | 낙선 | |
6 | 김창국 | 330 | 10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59% | 낙선 | |
7 | 윤형철 | 874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57% | 낙선 | |
8 | 이송학 | 3,996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17% | 낙선 | |
9 | 최경석 | 3,981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15% | 낙선 | |
10 | 최기복(崔基福) | 748 | 9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3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3,740 | 투표율 45.66% |
투표 수 | 56,496 | ||
무효표 수 | 795 |
한나라당 정문화 전 부산시장과 무소속 곽정출 전 의원의 대결 양상이었고 최종적으로 정문화 후보가 당선되었다.
2.1.2. 대구광역시 달성군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김석원이 쌍용그룹 회장 복귀를 이유로 의원직을 사직하여 공석이 되었다.[2][3] 달성군 달성군 일원[달성]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근혜(朴槿惠) | 34,271 | 1위 |
| 62.50% | 당선 | |
2 | 엄삼탁(嚴三鐸) | 20,563 | 2위 |
[[새정치국민회의|]] | 37.5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4,605 | 투표율 59.43% |
투표 수 | 56,223 | ||
무효표 수 | 1,389 |
참고로 개표 결과 박근혜가 당선되었고, 안방 챔피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단, 상대편인 엄삼탁도 무려 37.5%라는 높은 득표율로 선전했다. 하지만 해당 문서 및 검색을 해보면 알 수 있듯이 내막을 보면 엄삼탁은 전-노 정권 동안 정권 핵심부와 매우 가까웠던 민정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줄을 잘 타서 YS에게도 병무청장으로 발탁되었다가 비리로 낙마하고 구속되어 내쳐진 뒤 DJ가 이삭줍기 하듯 영입한 인사이다. 순수 민주계열 인물은 아니기에 지역민에게 거부감이 없어 나온 결과이다. 첫 정권교체를 준비하기 위한 야심찬 외연 확장이었고 1961년 5.16 군사정변 이래 군부세력이 직접 30년, 직접적인 군부세력은 아니지만 손 잡고 같은 세력이 된 YS의 5년, 도합 35년간의 군부 계열 보수여당의 정권독점으로 인재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1998년 재보궐선거 (1998.4.2 국회의원) 선거벽보 (대구달성 박근혜 후보 출마당시 공보물, 당선 되었다.) |
2.1.3. 경상북도 문경시·예천군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황병태가 한보 사태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공석이 되었다. 문경시·예천군 문경시, 예천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신영국(申榮國) | 34,932 | 1위 |
| 46.94% | 당선 | |
2 | 신국환(辛國煥) | 33,640 | 2위 |
[[자유민주연합|]] | 45.20% | 낙선 | |
3 | 이상원 | 5,854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8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5,655 | 투표율 66.30% |
투표 수 | 76,682 | ||
무효표 수 | 2,256 |
문경 VS 예천의 지역대결로 선거가 진행되었고,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문경 출신의 신영국 후보가 신승했다.
2.1.4. 경상북도 의성군
전임자인 자유민주연합의 김화남이 당선무효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공석이 되었다. 의성군] 의성군 일원[의성]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창화(鄭昌和) | 18,958 | 1위 |
| 41.59% | 당선 | |
2 | 김상윤(金相允) | 17,015 | 2위 |
[[자유민주연합|]] | 37.33% | 낙선 | |
3 | 신진욱(申鎭旭) | 9,610 | 3위 |
[[국민신당(1997년)|]] | 21.0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63,481 | 투표율 73.87% |
투표 수 | 46,896 | ||
무효표 수 | 1,313 |
3. 7월 21일
1998년 7월 재보궐선거/국회의원 선거 결과 | ||
| [[새정치국민회의|]] | [[자유민주연합|]] |
4석 | 2석 | 1석 |
제15대 국회의원 |
서울 종로구 이명박 의원이 사직하여 궐석이 되었다. 사직한 이유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자 사직한 것. 이 지역구에 국민회의 소속 노무현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종로구는 대통령을 3명이나 배출해 낸 '정치 1번지'다운 면모를 보여줬다.(윤보선, 이명박, 노무현)
전 경기도지사이자 19대 대선 바른정당 대권 후보였던 남경필이 처음 정계에 입문한 선거다. 당시 수원 팔달구 남평우 의원이 사망하여 궐석이 된 상태에서 아들인 남경필이 아버지의 지역구를 그대로 물려 받았는데, 주로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재다.
민선 1기 서울시장을 지낸 바 있는 조순이 강릉시 을에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전임자 최욱철 의원직 상실)[6]
14대 대선에 출마한 전례가 있던 박찬종이 서울 서초구 갑에서 국민신당 소속으로 6선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7] 해당 지역구는 최병렬 의원이[8]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공석이 되었고, 박준병 자민련 부총재[9]가 여권단일후보로 나왔으나, 한나라당 박원홍 후보가 당선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신 새누리당 대권 후보인 친박 성향 조원진이 처음 정계 입문에 도전한 선거이다. 대구 북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5% 안팎을 득표하는데 그쳤다. 그 지역구에선 박승국 후보가 당선되었다.
유권자 60%가 기권하면서(평균 투표율 40.1%) 정치 무관심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한 때다. 이 선거 결과로 여당은 국민회의 88 + 자민련 49=137,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151로 여소야대 정국이 그대로 유지된다.
경기 광명시 을에서는 조세형 후보가 당선되었다. 부산 해운대구·기장군 을에서는 김동주 후보가 당선되었다.
3.1. 국회의원
3.1.1. 서울특별시 종로구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이명박이 선거법 위반으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하기 전에 자진사직하여 공석이 되었다. 종로구 종로구 일원[종로]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정인봉(鄭寅鳳) | 20,993 | 2위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43.53% | 낙선 | |
2 | 노무현(盧武鉉) | 26,251 | 1위 |
[include(틀:새정치국민회의)] | 54.44% | 당선 | |
4 | 한석봉(韓錫奉) | 974 | 3위 |
[include(틀:무소속)] | 2.0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4,375 | 투표율 33.73% |
투표 수 | 48,693 | ||
무효표 수 | 475 |
당선자는 노무현. 이른바 전설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종로구 재보선이다. 노무현 의원은 국민의 정부에서 해수부장관을 지냈고,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리고 26년 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사위 곽상언이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된다.
3.1.2.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최병렬이 서울시장 출마를 이유로 사직하여 공석이 되었다. 서초구 갑 잠원동, 반포본동, 반포1동, 반포2동, 반포3동, 반포4동, 방배본동, 방배1동, 방배4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원홍(朴源弘) | 23,446 | 1위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44.41% | 당선 | |
2 | 박준병(朴俊炳) | 19,093 | 2위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 36.16% | 낙선 | |
3 | 박찬종(朴燦鍾) | 4,600 | 4위 |
[include(틀:국민신당)] | 8.71% | 낙선 | |
4 | 배종달(裵鍾達) | 377 | 5위 |
[include(틀:무소속)] | 0.71% | 낙선 | |
5 | 이종률(李鍾律) | 5,281 | 3위 |
[include(틀:무소속)] | 10.0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1,705 | 투표율 37.56% |
투표 수 | 53,223 | ||
무효표 수 | 426 |
3.1.3. 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기장군 을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김기재가 부산시장 출마를 이유로 사직하여 공석이 되었다.[11] 해운대구·기장군 을 해운대구 중1동, 중2동, 송정동 + 기장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안경률(安炅律) | 15,192 | 2위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32.97% | 낙선 | |
3 | 김동주(金東周) | 20,568 | 1위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 44.63% | 당선 | |
4 | 오규석(吳奎錫) | 10,325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2.4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79,932 | 투표율 58.27% |
투표 수 | 46,580 | ||
무효표 수 | 495 |
3.1.4. 대구광역시 북구 갑
전임자인 자유민주연합의 이의익이 대구시장 출마를 이유로 사직하여 공석이 되었다. 북구 갑 고성동, 칠성1가동, 칠성2가1동, 칠성2가2동, 침산1동, 침산2동, 침산3동, 노원1·2가동, 노원3가1동, 노원3가2동, 산격1동, 산격2동, 산격3동, 산격4동, 대현1동, 대현2동, 대현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승국(朴承國) | 23,046 | 1위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47.11% | 당선 | |
3 | 채병하(蔡炳河) | 14,308 | 2위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 29.25% | 낙선 | |
4 | 안경욱(安炅郁) | 9,114 | 3위 |
[include(틀:무소속)] | 18.63% | 낙선 | |
5 | 조원진(趙源震) | 2,453 | 4위 |
[include(틀:무소속)] | 5.0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4,200 | 투표율 39.78% |
투표 수 | 49,411 | ||
무효표 수 | 490 |
원래 국민신당 소속이었던 조원진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꼴찌인 4위로 낙선했다. 조원진은 10년 뒤인 2008년 18대 총선 대구 달서구 병 지역구에서 친박연대 소속으로 당선되고 20대까지 내리 3선을 지낸다.
3.1.5.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남평우가 사망하여 공석이 되었다. 수원시 팔달구 팔달구 일원[d]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남경필(南景弼)[13] | 21,356 | 1위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44.28% | 당선 | |
2 | 박왕식(朴旺植) | 20,695 | 2위 |
[[새정치국민회의|]] | 42.91% | 낙선 | |
4 | 김정태(金正泰) | 3,654 | 3위 |
[include(틀:국민신당)] | 7.58% | 낙선 | |
5 | 손민(孫敏) | 1,964 | 4위 |
[include(틀:무소속)] | 4.07% | 낙선 | |
6 | 정관희 | 563 | 5위 |
[include(틀:무소속)] | 1.1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6,116 | 투표율 26.15% |
투표 수 | 48,674 | ||
무효표 수 | 442 |
여담이지만, 2위로 낙선한 박왕식 전 의원도 1년 뒤 사망하였다.
3.1.6. 경기도 광명시 을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손학규가 경기도지사 출마를 이유로 사직하여 공석이 되었다. 광명시 을 철산3동, 하안1동, 하안2동, 하안3동, 하안4동, 소하1동, 소하2동, 학온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전재희(全在姬) | 28,558 | 2위 |
| 48.85% | 낙선 | |
2 | 조세형(趙世衡) | 29,901 | 1위 |
[[새정치국민회의|]] | 51.15%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15,923 | 투표율 50.8% |
투표 수 | 58,892 | ||
무효표 수 | 433 |
3.1.7. 강원도 강릉시 을
전임자인 한나라당의 최욱철이 당선무효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공석이 되었다. 강릉시 을 주문진읍, 성산면, 사천면, 연곡면, 교1동, 교2동, 포남1동, 포남2동, 초당동, 송정동, 유천동, 죽헌동, 운정동, 저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조순(趙淳) | 28,181 | 1위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61.13% | 당선 | |
3 | 유헌수(柳憲洙) | 3,779 | 3위 |
[[국민신당(1997년)|]] | 8.20% | 낙선 | |
4 | 최각규(崔珏圭) | 12,989 | 2위 |
[include(틀:무소속)] | 28.17% | 낙선 | |
5 | 최경운 | 1,153 | 4위 |
[include(틀:무소속)] | 2.5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5,160 | 투표율 54.65% |
투표 수 | 46,538 | ||
무효표 수 | 436 |
4. 11월 26일
무소속 하일청 사천시장이 빗길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공석이 되어 치러졌다.1998년 11월 재보궐선거/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결과 |
무소속 |
1석 |
경남 사천시장에 무소속 정만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
[1] 그래서 위키백과나 나무위키 문서에 기재되지 않은 2000년 이전 재보선 결과도 상당하다. 지역별로 날짜가 전부 달라 목록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전의 지역별 재보선 결과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중앙선관위 자료를 참고하길 바람. #[2] 결국 김석원은 다른 계열사들과 쌍용그룹도 지키지 못 하고 고스란히 다 날려먹었다. 쌍용자동차와 정계입문을 통해서 다른 계열사들과 쌍용그룹도 통으로 잃은 것.[3] 여기서 당선된 박근혜는 해당 지역구에서 내리 3선을 더 하고 19대 총선에는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5선을 한 뒤 대통령직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12월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었다.[달성] 화원읍, 논공읍, 다사읍, 유가읍, 옥포읍, 현풍읍, 가창면, 하빈면, 구지면[의성] 의성읍, 단촌면, 점곡면, 옥산면, 사곡면, 춘산면, 가음면, 금성면, 봉양면, 비안면, 구천면, 단밀면, 단북면, 안계면, 다인면, 신평면, 안평면, 안사면[6] 이후 18대 총선에서 최 전 의원이 당선되지만, 1년도 안돼서 또 의원직을 잃었다.[7] 박찬종 전 의원은 신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21번이었으나, 국민신당으로 가면서 의원직을 승계받지 못 했다.[8] 서울시장은 국민회의 후보인 고건 전 총리가 당선. 최 전 의원은 이후 서상목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하여 무주공산이 된 강남구 갑으로 옮겨서 16대 총선에 출마해서 당선.[9] 이후 16대 총선 때 다시 보은-옥천-영동으로 지역구를 옮겨서 출마하니 다시 낙선.[종로] 종로1·2·3·4가동, 종로5·6가동, 청운효자동, 창신1동, 창신2동, 창신3동, 숭인1동, 숭인2동, 가회동, 사직동, 삼청동, 이화동, 혜화동, 무악동, 부암동, 평창동, 교남동[11] 하지만, 김기재는 공천에서 패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안상영 후보에게 패해 야인이 되었다. 이후 민주당으로 넘어가 2000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지낸다.[d] 지동, 고등동, 매교동, 매산동, 인계동, 팔달동, 신안동, 남향동, 우만1동, 우만2동, 화서1동, 화서2동[13] 전임자 남평우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