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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3 16:43:14

해상봉쇄

<colcolor=#FFF><colbgcolor=#2743d2> 해군 전략
해군의 목표 제해권
해군력의 운용 현존 함대 | 통상 파괴 | 함대결전 | 기지 타격
상세 사례 진입차단·지역거부 | 점감 요격 | 해상 봉쇄

海上封鎖 / Naval blockade

1. 정의2. 역사
2.1. 근대2.2. 현대
3. 현대에 해상 봉쇄가 가능한 경우4. 창작물에서의 묘사

1. 정의

해상봉쇄해군력을 동원하여 적선 또는 상선의 통행을 차단하는 군사행위를 이른다. 타국의 해상 무역을 방해하거나 보급로를 끊거나 군함의 이동을 제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대규모의 경제제재 카드이자 군사작전이며, 전시 또는 준전시 상황에서 실시된다. 먼 바다가 아니라 항만 연안에서 봉쇄할 경우에는 해안봉쇄 또는 연안봉쇄라 칭한다.

영어로는 'naval blockade'라 하며, 한국어의 경우 봉쇄라는 단어의 2. 번 의미에 '해군력으로 해상 교통을 차단하는 행위'라는 뜻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2. 역사

파일:noryang_battle_map.jpg
1598년 12월 15일, 순천왜성 고니시 유키나가수군의 퇴로를 봉쇄하는 이순신의 함대.

2.1. 근대

독일 제국에 대한 영국의 해상봉쇄
파일:무제한 잠수함 작전.png
무제한 잠수함 작전 당시 U보트로 인한 선박 격침 지역.

2.2. 현대

3. 현대에 해상 봉쇄가 가능한 경우

4. 창작물에서의 묘사



[1] 영국은 대 프랑스동맹의 핵심국이었으나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프랑스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하진 않은 국가였다. 이것은 혁명 전 체결된 프랑스 왕국과의 무역조약을 통해 저관세로 자국 공산품을 프랑스에 반입할 수 있게 되면서 상업적인 이익을 누렸던 실리적인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혁명 속에서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왕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면서 혁명전쟁이 개전될 때와 곧이어 루이 16세가 폐위되고 반년후 처형될 때도 영국은 중립을 지켰었다.왕의 처형은 영국도 해본 적이 있는지라[2] 우크라이나는 삼면이 육지기 때문에 흑해 차단은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유효했지만 결국 육로로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수적 효과만 있었다. 유조선이 항구로 들어올 수 없어 연료 부족 문제가 심하다고 한다.#[3] 사실 군사쪽보다는 경제적인 수출-수입 문제가 더 심각하다.실질적으로 내륙국이 되어버린거나 마찬가지라. 그나마 접경지인 도나우강이나 루마니아 연안등을 어느 정도 이용할수 있기에 해상봉쇄가 완전하지는 않다[4] 정식 정부 승인을 받지못해 반군이지, 사실 수도를 포함한 주요 지역을 실질적으로 점령중이며, 정규군에 준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5] 홍해봉쇄 이후 수에즈 물동량을 절반으로 감소시켰고, 이걸 풀기 위한 미국-유럽의 군사력을 이용한 봉쇄해재 작전도 사실상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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