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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09:15:53

풍청양

소오강호의 등장인물
풍청양
風淸揚 / Fēng Qīngyáng
[1]
<nopad> 파일:소오강호 드라마 2018 풍청양.jpg
드라마 〈신소오강호(2018)〉의
풍청양(왕진쑹(王劲松) 분)
[2]
<colbgcolor=black><colcolor=#CC864F> 소속 화산파
등장작품 - 소설 《소오강호(원작)
- 각종 2차 창작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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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lack><colcolor=#CC864F> 성별 남성
언어 중국어(근고한어)
자택 화산(華山)
(명나라 섬서등처승선포정사사 서안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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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
2.1. 《소오강호》2.2. 《벽혈검》
3. 무공수위
3.1. 풍청양 대 동방불패3.2. 풍청양 대 양과
3.2.1. 관련 쟁점 인터뷰3.2.2. 비교 불가3.2.3. 비교 가능

[clearfix]

1. 개요

風淸揚

소설 《소오강호》의 등장인물.

화산파 검종(劍宗) 출신의 은거기인. 영호충에게 독고구검을 전수해준다.

2. 작중 행적

은둔고수

2.1. 《소오강호》

소오강호》에서는 화산파 검종 출신의 고수로서 전백광은 풍청양을 보고 70~80세로 추측했다.[4] 활동할 당시 화산파 검종의 최고수는 물론이며, 전 무림 통틀어도 최상위권에 위치했던 고수로 추정된다.[5]

당시 화산파는 검술을 중시하는 검종과 내공을 중시하는 기종이 나뉘어 집안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화산파 후계자를 정할 무렵 풍청양은 40~50세가 넘은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가게 된다. 허나 이 결혼은 알고 보니 기종이 음모를 꾸민 사기 결혼이었고, 풍청양이 멀리 떠난 시기 서로 대립하던 검종과 기종이 대혈투를 벌여 결국 패배한 검종은 거의 전멸에 이르게 된다. 풍청양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처가를 찾아갔지만 이미 죄다 도망쳐버린 후였다.

풍청양은 사기를 당해 사형제를 모두 잃은 것과 아내까지 통수를 친 것에 충격을 받고 매우 수치스러워 세상을 등지고 은거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당시 기종도 혈투로 초고수들이 대거 사망하는 등 피로스의 승리였던지라 풍청양이 작정하고 쓸어버리면 쓸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본질은 같은 화산파 식구인데 모든게 헛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이후에도 자신을 속인 기종의 음모, 일월신교의 10장로를 함정에 빠트려 죽인 오악검파의 치졸한 만행을 비롯한 위군자의 탈을 쓴 정파의 위선에 진저리가 나서인지 무림규범이니 문파규칙이니 하는 소리를 겉만 번지르한 헛소리 취급한다. 특히 화산파 장문인이 된 악불군은 제자들 가르치는 무공부터가 꽉꽉 막힌 놈이라고 정확히 평가하며 얼굴조차 안 봤다.

오랫동안 모습을 숨기며 살다가, 영호충이 벌을 받아 사과애로 오게 되자 그를 지켜보았다. 원래 악불군의 제자이니 딱히 본인이 가르칠 생각은 없었으나, 하도 앞뒤가 꽉 막힌 악불군의 가르침에 충실한 영호충에 속이 답답했는지(...) 얼굴을 가린채 초식 두어개로 영호충을 제압하며 살짝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다 전백광이 영호충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와 옥신각신하다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자 전백광의 입을 막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 전백광은 대경실색하며 노선배가 후배에게 손을 쓰는 것은 아니라 들먹였고,[6] 풍청양은 영호충을 시켜서 그가 전백광을 제압할 수 있도록 독고구검의 총결식, 파검식, 파도식 중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알려주어 전백광을 제압시킨다. 이때 독고구검에 완전히 부합하는 영호충의 자질과 성격이 매우 마음에 들었는지 전수할 마음을 보인다. 그리고 전백광이 풍청양의 생존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간 뒤, 10여 일의 기간에 독고구검의 모든 부분을 영호충에게 전수해준다.

수십년 전 은거했지만 소림사의 방생 대사, 일월신교의 상문천, 임아행, 무당파의 충허도장은 영호충이 사용하는 검법을 보고 바로 풍청양과 독고구검을 떠올린다. 또한 강남사우 역시 풍청양의 이름을 듣고는 매우 놀랬다. 그만큼 20~30여년 전의 활동기에 대단한 명성을 떨쳤던 것으로 보인다.

영호충에게 독고구검을 전수해준 뒤 영호충 앞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일은 없다. 작중 최후반 화산에서 못된 짓을 하던 도곡육선을 제압해서 일월신교가 화산을 공격할 것이란 정보를 듣고, 도곡육선을 시켜서 소림사와 무당파에 서찰을 전하도록 하고, 영호충에게 화산파 비전의 내공을 방증에게 전달시켜서 흡성대법의 부작용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게 도와줬다.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소림과 무당에 일월교의 움직임을 전한 것은 사실이나 내공의 정체는 바로 소림사의 역근경. 원래 소림사 방장인 방증대사가 역근경을 전수해서 영호충을 살리려 해도 영호충은 소림 제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대며 끝까지 전수받기 거부했다. 영호충의 상황이 더 악화되자 역근경이 아니라 화산파의 내공이라고 영호충을 속였던 것이었다. 임영영은 도곡육선 같은 멍청이(...)들이 이렇게 대단한 내공비결을 절대 제대로 외울 수 없다고 의심해서, 도곡육선에게 물어보니 도곡육선은 여느 때처럼 자기들끼리 횡설수설하다가 진상을 실토한다.

후에 임영영결혼영호충이 그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 화산을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만나지 못 했다.

2.2. 《벽혈검》

벽혈검》에 나오는 화산파 장문인 목인청이 화산파를 소개할 때 풍(風)조사가 화산파를 개창했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상으로 화산파를 만든 개창조사는 학대통이다.[7]

이를 두고 팬덤 일각에선 소오강호 시절 박살난 화산파를 풍청양이 재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한다. 당시 소오강호의 화산파를 돌아보면 악불군 일가와 임평지, 노덕약까지 모조리 죽거나 폐인이 되었다. 살아남은 소수의 화산파 제자들은 임아행의 말처럼 쓸모없는 버러지(...) 수준이다. 그렇다고 영호충이 나서자니 영호충은 이미 화산파에서 파문당한 신세고, 항산파의 장문인까지 되었으니 더더욱 화산파에 개입할 수 없었다.

즉, 화산파를 재건할 사람은 명분이든 실력이든 풍청양밖에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풍(風)씨는 엄청나게 희귀한 성씨이기 때문에 풍청양과 전혀 무관한 또다른 풍씨의 인물이 화산파를 재건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따라서 화산파를 재건한 사람은 풍청양 본인이거나, 최소한 풍청양에게서 사사한 인물일 것이다. 다만 반대측에선 작중 후반 영호충이 풍청양을 찾았지만 끝내 보지 못했을 정도로 풍청양이 이미 수십년간 꼭꼭 은거를 한 사람인데 노년에 화산파 일에 또 간섭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8]

어쨌든 김용 월드에서 소오강호 시절만 해도 쇠락했던 화산파였지만, 명말~청초를 다룬 벽혈검-녹정기 시대엔 단연 최강 문파로 군림할 정도로 화산파 위세는 강해졌다. 참고로 벽혈검은 녹정기와 등장인물들이 직접적으로 겹치는 이어지는 작품인데, 녹정기에서 영호충독고구패의 이름이 등장해 소오강호와 연결다리가 있다.

3. 무공수위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일종의 맥거핀 캐릭터임에도 작중 세계관 최강자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작중 무공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거나 고수랑 겨룬 적은 없다보니 그의 강함에 대해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편이라 소오강호 무인 순위에서 아예 제외하는걸로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넣는다면 소오강호의 또 다른 세계관 최강자급인 동방불패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일부 소오강호 드라마에선 실제 풍청양과 동방불패가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기도 한다. 대개는 몸 풀기 정도로만 싸우다가 무승부로 떼우는 편.

3.1. 풍청양 대 동방불패

김용은 김용 본인의 공식 인터뷰에서 분명히 독고구검은 (동방불패가 익힌) 규화보전보다 더 강하다고 발언했고, 풍청양 우위론자들은 동방불패의 수련 기간은 10년 남짓인데 반해 풍청양은 최소 20~30년 이상 독고구검을 익혔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방불패 우위론자들 중[9]에서 작중 임아행이 풍청양을 자신이 탄복하는 무림의 3대 고인 중 세번째로[10] 첫번째 동방불패보다 낮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다.[11] 그러나 해당 언급순은 무공순이라고 볼 수 없다. 풍청양 우위론자가 아니더라도 이 부분은 반박이 많았는데 임아행이 동방불패에게 탄복한 이유는 동방불패의 무공을 두고 발언한 것이 아닌 동방불패의 흉계[12] 때문이었다. 두번째인 방증에게 탄복하는 이유는 자신과 달리 자상함과 겸허함[13]이 있어서이다. 그런데 풍청양에 대해 탄복하는 이유는 검술[14] 때문이며 자신은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발언한다. 즉 탄복한 근거가 흉계, 자비심, 검술이었다. 따라서 무공의 강함에 대해 확실하게 본인보다 우위에 있다 언급한 것은 탄복한 3인 중 풍청양이 유일하다.

풍청양은 영호충에게 독고구검을 전수해주면서, 그의 총명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20년은 수련해야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영호충은 임아행과 방증의 대결 관전을 비롯한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20년 수련이 필요함을 인정했다. 독고구검은 앞의 검식을 이해해서 경지에 올라 뒤의 검식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피라미드형 구조이다. 영호충은 원체 자신의 권각에 미천해서 파장식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금 무림에서 검을 드는 조건이지만, 확실히 영호충을 이길 고수는 동방불패 외에 찾기 어려웠다. 고로 독고구검을 완전히 통달한 풍청양의 무공 수위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영호충의 동방불패와 4:1의 악투 이후 임평지와 악불군의 검법을 보고 동방불패를 떠올리게 되자 풍청양에게 다시 가르침을 구하려 했다. 벽사검법(규화보전)을 파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풍청양을 지목한 것이다. 간접 묘사로 동방불패와 대적할 상대임을 묘사한다. 또한 풍청양과 영호충 두 사람의 검식을 모두 본 충허도장은 풍청양을 제외하고 영호충의 검술을 따라갈 자가 없다고 평가한다.

3.2. 풍청양 대 양과

원작 외적으로 vs 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김용의 또 다른 작품 신조협려의 주인공이자 마찬가지로 독고구패의 무공을 습득한 것으로 보이는 양과와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위인지 혹은 비슷한지 논쟁이 있다.

기존 서술에 반론 및 재반론이 있어왔고 이후로는 삭제 러쉬가 되는 부분이나 엄연히 찬반양론이 있어온 부분이다. 양측의 의견을 기술하여, 먼저 사용되는 해당 인터뷰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양측의 의견을 언급한다.

3.2.1. 관련 쟁점 인터뷰

Q. 양과와 영호충 모두 독고구검을 익혔는데 누구의 독고구검이 더 강합니까?출처

A. 양과는 신조의 도움을 받아 차근하게 수련한 반면 영호충은 전백광과의 대결관계로 급하게 수련했기 때문에 양과의 독고구검이 더 강하다.[15]

Q. 양과는 독고구검을 연성한 것입니까? 그의 무학의 경지는 어느정도입니까?출처
A. 일부분이 독고구패에게서 완전히 전수된 것이 아니기에 그의 검법은 매우 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력은 영호충보다 나은데 왜냐하면 16년동안 절벽에서 폭포수로 연마하였기 때문으로 내력은 무척 강합니다.

3.2.2. 비교 불가

1. 애시당초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같은 김용 선생의 작품이긴 하지만 소오강호와 신조협려는 세계관 자체가 달라서 어느 쪽이 더 강한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비교가 없다. 기껏해야 작가의 설정에 따를 뿐이다. 그리고 위에서 보다시피 저 문답은 어디까지나 양과와 영호충 간의 비교이지 양과와 풍청양 간의 비교가 아니다.

2. 기준이 독고구검 하나뿐이다.
사실 양과는 배운 무공이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양과가 배운 독고구검은 어디까지나 4~5권에서 신조로부터 일부의 수련법을 전수받아 익힌 아류라 할 수 있다. 이후 소용녀와 헤어진 다음 파도를 상대로 무공을 수련한 것은 내공의 증진과 잡다한 자신의 무공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다.

3.2.3. 비교 가능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는 위 두개의 인터뷰를 통해서 다른 작품에 나오는 무공을 해당인물이 익혔는지에 대한 답변과 서로 다른 작품의 등장인물을 비교했다. 따라서 독자는 그 인터뷰와 해당 작품을 보면서 비교해보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국 해당 인터뷰와 각 작품의 본문을 연관시켜서 독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비교가 불가능하다 혹은 비교가 가능한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즉, 한쪽만 주관적인 판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풍청양 우위론쪽에 입각하여 서술하자면,

1. 작가의 인터뷰와 소오강호 본문을 종합적으로 보면 풍청양의 우위가 가능하다.

풍청양이 등장하는 소오강호, 양과가 등장하는 신조협려 모두 작가 김용이 쓴 소설이다. 해당 인터뷰를 정리하면 양과가 익힌 것이 독고구검이지만 완전하지 않다, 대신 수련기간이 길어 영호충은 수련기간이 짧아서 양과가 더 강하다.이다. 소오강호 본문을 확인하면 풍청양은 영호충에게 독고구검을 전수해주며 영호충에게 20년 정도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작중의 영호충이 거의 최고수급에 도달하는 후반부에서도 풍청양이 언급한 20년 수련이 더 필요함을 인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양과와 영호충의 비교에서 언급되는 수련기간 차이가 소오강호 본문에서도 버젓이 나온다. 반대로 풍청양은 영호충을 보고도 그 언급을 한 점과 풍청양이 배운 것이 양과와 달리 완전본이라는 점을 볼 때 수련기간의 차이가 없는 풍청양이 더 강할 소지는 충분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2.기준이 독고구검 하나뿐이라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먼저 인터뷰를 통해서 본다면 양과가 익힌 현철중검이나 목검수련 등은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의 일부분이다. 또한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의 개념을 본다면 양과가 잡다하게 익히고 집대성한 것이 큰 의미가 없다. 소오강호에서 언급된 독고구검은 결국 무초승유초와 연관되어, 초식이 없어서 적이 일초식이면 일초식, 천초식이면 천초식, 만초식이면 만초식이 된다. 즉, 상대가 익힌 무공의 갯수와 상관이 없는 무공이다. 그런데 양과가 집대성한 최종무공인 암연소혼장은 총17초식이다. 따라서 독고구검을 기준으로 잡는다 하더라도 양과가 익힌 무공의 가지수는 크게 의미가 없다. 양과의 무공이 유초라는 점과 양과가 익힌 것 역시 독고구검이라는 점을 본다면 양과는 무초의 경지는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수련기간이 부족하여 온전히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영호충과는 달리 영호충이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20년 수련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풍청양의 경우는 더 강하다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양과가 어떤 무공을 쓰던 수련기간이 영호충처럼 부족하지 않다면 무초로 대응하면 되기 때문이다.

3.결론

1, 2의 주장에 따라서 풍청양>양과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풍청양>양과는 아니다. 왜냐하면 해당 인터뷰와 소오강호와 신조협려의 본문을 참고해서, 독자가 어떤 기준을 먼저 삼는지에 따라서 다른 결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이 영역은 찬성측이든 반대측이든 주관적인 영역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1] 간체자로는 '风清扬'. 광동어 윳팽으로는 'fung1 cing1 joeng4'[2] 왕진쑹은 김용 무협소설 드라마에는 출연한 적이 드물지만, 2017년에 방영된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에서 순욱 역을 맡은 배우로 알려져있다.[3] 현대 기준으로는 '중국 산시성 시안시'[4] 다만 일각에선 그렇다면 풍청양이 은거를 한 시점은 대략 30년 전 쯤이므로 그 당시 나이는 40~50대 정도로 추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풍청양이 나이 50에 장가 가려고 한 너무 노총각 아니냐는 문제 제기(?)도 한다. 나이 든 것도 서럽구만 다만 풍청양이 50세까지 결혼을 안한 것 자체는 무공에 전념하다보니 그렇다로 보면 문제없는 일이고, 오히려 늦은 나이에 결혼 사기에 걸려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고 자책한다면 그 충격에 은둔하는 것도 딱히 이상할 건 아니기에 설정 붕괴는 아니다.[5] 방생, 임아행, 상문천, 충허 같은 일류 고수들이 모두 30여년 전 은거한 풍청양과 독고구검을 알고 있었다.[6] 이는 이막수가 황약사에게 대선배의 체면 운운하며 목숨을 건진 것과 유사하다.[7] 다만 김용월드에서는 학대통이 화산파를 창시했다는 언급이 없고, 원나라 후기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화산파 무공은 전진교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8] 다만 소오강호의 화산파와는 달리 벽혈검의 화산파는 말이 문파고 장문인이지 실상 목인청 한 사람이 화산에 은거해 살고 제자만 몇 명 가르쳐 내보낸 느낌이라 거의 일인전승 신비문파 수준이다. 그 제자 몇 명이 최상위권 고수일 뿐. 풍청양이 문파 명맥만이라도 잇자는 느낌으로 무공만 전수했다면..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단 얘기.[9] 동방불패 우위론자들 중에서 가장 밀고 있는 주장은 풍청양의 나이와 당대 제일이라는 칭호는 동방불패가 가지고 있다라는 것에 있지 임아행의 언급을 두고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는 드물다.[10] 그의 검술은 자신보다 확실히 강하지만 세상을 등졌다고 평가했다.[11] 참고로 임아행이 거론한 두번째는 방증대사이다. 충허도장은 제자를 잘 가르치지 못해서 반만 탄복했다가 7할까지 인정했다.[12] '그래서 이 세상에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뜻밖에 동방불패의 흉계에 빠져 호수 밑바닥에서 하마터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뻔하였소. 동방불패는 이렇듯이 대단한 인물이니 이 몸은 어찌 그에게 탄복하지 않겠습니까?'[13] '큰 스님, 당신은 역근경을 연마하시고 내공은 이미 무안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러나 마음씨가 자상하시고 겸허할 줄을 압니다. 이 늙은이와 그런 점에서는 좀 다르지요. 그래서 그점이 내가 제일 탄복하게 여기는 점입니다.'[14] '내가 탄복하는 자는 바로 검술이 신통한 풍청양 풍 선생올시다. 풍 선생의 검술은 매우 고명하여 제가 따르지 못하지요. 나는 충심으로 탄복하고 있으며 절대 거짓이 없습니다.'[15] 소오강호 본문을 확인하면 풍청양은 영호충에게 20년의 고된 수련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작품 후반부에 영호충은 흡성대법과 독고구검을 익혀서 중반부에는 충허를 이겼다. 이후 임아행과 방증대사와 대결은 승패를 알기 어렵고, 좌냉선은 검술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임아행과 방증대사의 대결을 관전해보니, 풍청양이 언급한 20년의 수련이 필요함을 인정한다. 따라서 영호충과 양과의 차이가 수련기간에 있다는 인터뷰의 언급과 소오강호 본문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다라는 언급이 묘하게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