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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4:30:10

독고구패

소오강호의 등장인물
녹정기의 등장인물
신조협려의 등장인물
독고구패
獨孤求敗 / Dúgūqiúbài
[1]
파일:신조협려 드라마 2014 독고구패.jpg
드라마 〈신조협려 2014〉의
독고구패(장단펑(张丹峰) 분)
<colbgcolor=#9CA5AA,#021D2D><colcolor=#053D5F,#F0F0F0> 성별 남성
민족 선비족
기술 현철검법[2],
독고구법[3]
장비 현철중검[4],
무명리검[5],
자미연검[6],
부후목검[7],
초목죽석[8],
무검[9]
등장작품 - 소설 《신조협려(원작)
- 소설 《소오강호(원작2)
- 소설 《녹정기(원작3)
- 각종 2차 창작 작품
1. 개요2. 특징3. 검총에 묻힌 5개의 검4. 경지 논란5.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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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獨孤求敗

소설 《신조협려》, 《소오강호》, 《녹정기》의 등장인물.

별호는 '검마(劍魔)\'. 양과, 영호충의 선배격 인물로서, 이들을 뛰어넘는 무공 최강자이다. 하지만 해당 작품들에서는 이미 죽은 뒤라서 이름만 언급된다. 외팔이가 된 양과의 무공을 몇 단계 상승시켜주는 영물 신조(神鵰)를 벗으로 삼아 지내던 인물이다.

2.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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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구패란 '홀로 외로이(獨孤) 패배를 구한다'(求敗)는 뜻으로, 이 별호는 누구도 자신을 패배시킬 수 없어서 패배를 원하기 때문에 지었다고 한다.

"독고"는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존재하는 성씨이며, 한자 또한 홀로 독(獨)에 외로울 고(孤)로 동일하다. 소설에서도 가끔 '독고 선배' 라는 말이 나오며 풍청양의 대사에서도 "선배님이 이름을 구패라고 한 것은..."이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독고구패는 별호가 아니라 그의 본명이다. 물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아닐 것이고, 훗날 무림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최강의 검수가 되고 나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겠지만.

실로 광오한 별호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별호를 남겼다는 것 자체가 결국 무림에서 끝내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뜻이니 그만큼 지존의 무인임을 암시한다. 심지어 풍청양의 말에 의하면 독고구패가 수비 초식을 쓰게 할 사람조차도 전혀 없었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 줄 자를 죽을 때까지 찾지 못했다는 그 전설적인 강함 덕분에 김용 소설의 최강자 논쟁에 숱하게 나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명승과 함께 김용월드 최강자로 많이 거론되는 인물.

양쪽 모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고,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독고구패 자신이 남긴 약간의 글을 통해서 그의 인생과 무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당대의 최고수였던 천하오절과 접촉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보다 앞선 시대의 인물로 보이며, 기록 중 하삭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나라 시대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신조협려》에서는 검총(劍塚)의 유적과 애완동물(?)인 신조를 남겨두었으며, 양과가 이를 통해 검법을 수련하게 해주었다. 간략하게 묘사되는 독고구패의 인생은 그의 무덤과 검총의 유적, 그리고 거기에 쓰인 글씨를 통해 언급되는데, 각 시기마다 사용했던 무기와 자신이 성취한 무공의 경지가 기록되어 있다. 독고구패가 스스로 동굴 벽에 검으로 새긴 글에 의하면, 30년간 강호를 누비며 숱하게 많은 고수와 싸웠고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은거하여 수리인 신조를 벗삼아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천하에 적을 찾을 수 없어, 검을 절벽 위의 땅에 묻어서 검총을 만들었다.

소오강호》에서는 독고구검을 만든 사람으로 등장하며, 화산파의 풍청양이 독고구검을 익히고 있으며 주인공 영호충에게 검법을 전수해준다. 하지만 풍청양은 어떠한 기연을 얻어 독고구검을 배웠는지에 대해선 나오지 않는다. 다만, 소설 속에서는 풍청양이 독고구패를 실제로 본 것처럼 말한다. 물론, 소오강호가 명나라 이후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가능성이 없다.[10]

녹정기》에서는 위소보가 소림사에서 생활할 때 아가의 초식을 격파하기 위해 무공을 징광에게 물어볼 때 잠깐 언급된다.

3. 검총에 묻힌 5개의 검

강함과 사나움이 무시무시하여 아무리 사나운 것이라도 잘리지 않는 것이 없다. 스무살 이전에 하삭(河朔, 황하 이북)의 군웅과 겨룰때 사용하였다. 이 검으로 많은 영웅과 싸워 이겼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리함을 갖춘 보검으로, 후대의 의천검이나 도룡도처럼 독고구패 생전에 비할 데 없는 신병이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가 4척에 달하는 긴 장검으로 검 전체에 푸른 빛이 풍긴다. 검총에 묻혀 있었으나 양과는 취하지 않고 도로 원래 자리에 두었다. 검의 위력에 의지하던 독고구패의 초창기를 상징하는 무기.[11]
30세 이전에 사용하던 검으로 불길하게도 의로운 무사를 실수로 해쳐서 깊은 골짜기에 버리도다.
그 내막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이름으로 보아 연검(軟劍) 류의 일종으로 독고구패의 검술의 기교가 절정에 달한 경지에 사용하던 검으로 추정된다.[12]

'실수로' 의로운 무사를 해쳤다는 언급으로 보아 이 검으로 펼치던 검술은 독고구패 자신도 제어하기 힘들 만큼 살기어린 무공이었던 것으로 추측하는 팬들도 있다. 이 때문인지 현철중검 이후의 무공에서는 적을 굳이 해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하는 형태가 나타난다. 또한 독고구패가 '검마'라는 칭호와 달리 성품 자체는 오히려 정파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조협려 신판에서는 어떤 거대한 독사가 자미연검을 삼켰다가 양과가 득템한 것으로 나온다. 이 독사를 벨 때 군자검의 날이 나갔는데, 알고보니 독사의 뱃속에 자미연검이 있었다고 한다. 왠지 일본의 야마타노오로치 설화가 생각나는 부분. 그리고 곽부가 양과의 팔을 자를 때 사용한 것도 이 자미연검이다. 윗부분에서 독고구패가 자미연검으로 의로운 무사를 해쳤다는 언급을 생각하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부분.
중검에 날이 없듯(重劍無鋒), 크게 공교로운 것은 공교롭지 않은 것.(大巧不工). 40 이전에 이것을 믿고 천하를 횡행하도다.
매우 자연스러워 억지로 행하는 바가 없는 것을 뜻한다. 대교불공은 노자도덕경의 한 구절인 대교약졸(大巧若拙 - 완벽한 솜씨일 수록 서툴러 보인다)에서 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렵을 기점으로 기교에 구애되지 않고 오로지 '실함'을 추구하는 정반대의 길에 들었다.
40세 이후부터 사물에 얽매이지 않아 초목죽석(草木竹石)을 모두 검으로 삼을 수 있었다.
나무로 되어 있었으므로 다 썩어버렸다. 양과는 이 경지를 넘어다보면서 더이상 철검을 가지고 다니지않고 목검을 깎아서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로부터 수련을 거듭하여 점차 검이 없이 검을 이기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무검승유검(無劍勝有劍 - 검을 쥐지 않고 검을 쥔 자를 이기다)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무검승유검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었는데, 팬들은 무형검이나 심즉살의 경지에 이른게 아닌가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 혹은 공수탈백인과 같은 적수공권의 경지가 극에 달한 것으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 내적으로만 바라보면 이에 준할 수 있는 인물조차 없었기에 상상 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인물임을 강조할 뿐,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큰 의미가 없다. 다만 문구로 미루어 무기를 들지 않아도 전신이 무기를 든 것과 똑같은 위력을 발하는 경지임에 틀림없다.

이 무검승유검과 더불어 이와 대구가 되는 무초승유초는 김용이 활동하던 시절부터 무협작가들이 생각하는 가장 탁월한 무공을 표현하는 경지로 사용되었고 자주 인용되는 문구였다.

4. 경지 논란

일단 작중에 신조협려 후반의 양과는 중검(重劍)의 단계까지 도달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양과는 목검승철검 수련을 했고 내력이 강해짐에 따라 독고구패의 말년의 심경을 이해했지만 목검승철검의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다만 내공이 너무 강하여 양과가 휘두르기만 해도 너무 강력하다. 이 부분에 대하여 논란이 많은데, 말년의 독고구패의 심경을 이해했다라는 것을 근거로 목검승철검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설내용상 목검승철검에서 초죽목석을 가리지 않고 검으로 삼는다는 표현을 보아 목검승철검은 검의 질을 따지지 않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인 것으로 보아 양과는 목검승철검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은 풍청양이 맨손으로 검법을 펼치는 장면[13]이나 손이 검과 같다라는 조언을 통해 영호충이 전백광을 제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오강호 작중에서 영호충이 동방불패를 제외하곤 검이 부딪힌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대 병장기와 부딪히지 않는다면 무기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여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을 무검승유검의 경지로 보는 경우가 있다.[14] 소오강호를 통해 오히려 무검승유검의 모습을 유추한 의견도 있으며, 반대로 독고구검을 현철중검 이전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부분에 따라 독자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신조협려의 검총은 초식에 구애없이 단순하지만 강한 검법으로 표현되고,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은 내공에 구애없이 검술이 뛰어난 검법으로 표현되어 어느것이 좀 더 상위의 검법인지 혼란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의외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인데, 신조협려의 독고구패의 검술은 순수한 검법의 경력을 사용한다면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은 무초승유초의 이치를 통한 무공의 초식 자체를 파해하는 무공이다. 전자의 경우 자신보다 강한 내공을 지닌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후자의 경우 자신보다 강한 내공을 지닌 자를 이길 수 있으니 후자가 더 강하다.

소오강호에서 독고구검을 사용한 영호충이 작중 임아행의 사자후에 기절하는 경우와 동방불패를 상대로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오강호 작중에서 영호충은 독고구검을 완벽하게 연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떡밥의 대가 김용선생도 인터뷰들 중 "양과가 익힌 독고구패의 검술이 영호충이 익힌 독고구검과 같나요? 그렇다면 누가 더 강한가요?"라는 질문에 대하여 "양과는 검술이 일부분이 부족하여 검술은 매우 강하지는 않지만 수련기간이 길어 내공이 매우 강하며 영호충은 검술을 배운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과가 더 강합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이는 양과의 검법이 독고구패에 더 가까운 것을 의미한다고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 양과와 영호충의 실력 차이를 수련시간의 차이를 원인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검총에서 나타난 독고구패의 검술과 소오강호에서 나타난 독고구검이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 할 수 있다. 또한 양과의 검술이 부족하다는 평을 보면 오히려 영호충이 배운 것이 좀 더 완벽하다 볼 수 있다.

떡밥의 대가 김용선생은 인터뷰에서 규화보전독고구검 중 어떤 무공이 더 강한가에 대하여 독고구검이 더 강하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로써 영호충이 사자후로 기절했던 것과 규화보전을 사용하는 동방불패에 밀렸다는 점 때문에 독고구검 무공 자체가 약하다고 볼 순 없다고 확정지어졌다.

인터뷰와 소설맥락을 정리하여 신조협려와 소오강호의 독고구패의 검술은 결국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으로 최종정리되는 것이다. 검법이라는 점에서 신조협려에서 했던 수련보다 비교적 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신조협려의 내공을 바탕으로 한 독고구패의 검술이 소오강호의 독고구검보다 뛰어난 검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독고구검의 경우 상대에 따라 강해지는 검법인데 반해 신조의 경우 상대가 나보다 내력이 강하다면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다만 이경우 양과가 작중에서 보여준 검법의 형태를 따를 뿐이다.) 양과가 금륜에 의해 장검이 부서진 것도 결국 내력과 무기의 내구도 때문이며 물론 금륜법왕의 내공을 실험할 요량과 소용녀와 합벽검을 펼치기 위해 중검을 두고 왔다는 언급이 있으나 중검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후회한다는 것은 결국 무기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라리 검이 부딪히지 않는 소오강호의 독고구검이 목검승철검, 무검승유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데 반해 양과의 경지가 목검승철검이라고 가정할 경우에는 목검승철검, 무검승유검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이 존재하지가 않는다. 또한 양과와 영호충의 차이를 수련기간의 차이라고 하는 김용인터뷰답변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러나 저러나 독고구검은 무검승유검의 검법일 수밖에 없다.

추가로 암연소혼장을 통해 양과가 무검승유검을 이루었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설정 자체가 붕괴한다. 암연소혼장이 아니더라도 모든 장법 및 권법은 '맨손으로 싸우는 방법'인데 그러면 권법이나 장법의 고수들은 전부 다 무검승유검의 경지에 오른 것이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게다가 이런 식으로 따지게 되면 독고구검 제7초 파장식(破掌式)은 권법, 장법, 조법, 지법, 권각법 등 맨손이 검과 같은 자를 제압하는 초식이라고 설명되는데, 위와 같은 논리로 보면 맨손으로 싸우는 자가 높은 경지에 오르면 그건 다 무검승유검이다. 그러니까 독고구패는 다시 이들을 격파하는 새로운 경지에 올라 그것을 독고구검의 제7초식으로 남긴 것이 되고, 그러면 독고구패가 검총에 남긴 말년의 최고 경지가 무검승유검이라는 서술이 틀린 서술이 되는 것. 결국 '장법은 검을 안 쓰니까 장법으로 검객을 이기면 무검승유검 아니냐?' 라는 이야기는 그냥 말장난이고, 이 말장난을 억지로 끼워맞추려 하니까 작품의 다른 서술들과 자꾸 모순이 나오는 것이다. 검(劍)마 독고구패가 이룬 경지로써 무검승유검은 검 없이도 검법으로 다른 검객을 이길 수 있는 경지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게다가 신조협려 작중에서 암연소혼장에 대한 설명을 보면 양과가 배운 모든 무공이 들어가지만 중검무봉 대교불공의 이치는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암연소혼장은 독고구패의 검술과는 별개라고 할 수 있다.

5. 미디어



[1] 간체자로는 '独孤求败', 광동어 윳팽으로는 'duk6 gu1 kau4 baai6'이다.[2] 玄鐵劍法[3] 獨孤九法[4] 玄鐵重劍[5] 無名利劍[6] 紫薇軟劍[7] 腐朽木劍[8] 草木竹石[9] 無劍[10] 이지청이 지은 만화판 소오강호에서는 송나라때 독고구검을 창안하였다는 이야기만 나온다. 영화 독고구검의 경우엔 남북조 시대. 사실 원작자가 직접 집필한 게 아니라면 그 외의 작품들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맞긴 하다.[11] 의천도룡기 for kakao 게임에서 청광리검이 등장하는데 독고구패의 무덤에서 나온 검이며 날카롭고 견고하다고 하는데 여기서 모티프를 가져온 듯 하다.[12] 2010년에 나온 영화 검우강호에 나오는 벽수검과 비슷하게 사용자의 공력에 따라 자유롭게 뱀처럼 꺾이는 공격일변도의 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3] 풍청양은 영호충 앞에서 맨손으로 초수를 사용했으며, 실제 영호충전백광의 대결에서 독고구검을 가르치기전에 손이 곧 검이다라는 것을 이야기 했다.[14] 다만 독고구검의 마지막 검법인 파기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독고구검의 구결을 모두 잊어도 좋을때라는 전제가 붙는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다면 검이든 손이든 상대와 부딪히지 않기 때문에 무기에 구애받지 않고 목검승철검과 무검승유검 모두를 구현하는 것이 이론상 가능하다. 무검승유검의 형태를 표현하기엔 독고구검만큼 좋은 게 없다.[15] 북송 혹은 그 이전 시대의 인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