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상한선 (1순위 5천만 원, 2순위 3천 5백만 원 상한) 제도가 철폐됨에 따라 1순위 지명이 확실한 선수들은, 구단과 최저 계약금 5천만원부터 협상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드래프트에서 완산 푸마 사태를 지켜 본 선수들은, 1994 시즌부터 참가를 선언한 전북 버팔로가 드래프트 지명 참여시, 드래프트 참가를 거부할 것임을 천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전북 버팔로는 기존의 완산 푸마 잔류 선수단과 여타 구단의 2군 선수를 무상으로 받는 조건으로 1994 드래프트 지명 참여를 포기하였다.
당시 4순위 지명은 연고지명이라 하여, 각 구단이 후원하는 대학의 졸업 선수를 우선 지명할 수 있게 하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 대회 직전에 진행된 대회였기 때문에, 전북 버팔로와 유공 코끼리를 제외한 나머지 프로팀들은 월드컵 대표 선수들의 공백 속에 대회를 치러야만 했다. 때문에 전력 보전에 성공한 유공 코끼리가 골득실까지 따지는 치열한 접전 끝에 LG 치타스를 밀어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