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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 칼초 191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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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 칼초 1913|파르마 칼초 1913]]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223c87> 파일:파르마 칼초 1913 로고.svg파르마 칼초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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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3c87> 기본 정보 <colbgcolor=#000> 연고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파르마현 파르마
산하 구단 파르마 칼초 1913 | 파르마 칼초 위민 | 파르마 프리마베라
스쿼드 1군 스쿼드
역사와 문화 역사 역사 | 역대 회장 | 역대 감독(초대~40대 · 41대~80대 · 81대~) | 과거의 전설들
역대 시즌 2024-25/리그
문화 응원가
관련 상식 더비 매치 파일:볼로냐 FC 1909 로고.svg 데르비 델 에밀리아 | 파일:AC 레지아나 1919 로고.svg 데르비 델 엔차
관련 인물 카일 크라우스구단주 | 페데리코 케루비니CEO | 크리스티안 키부감독 | 임원진 | 스태프
기타 세리에 7공주
구단 시설 경기장 스타디오 엔니오 타르디니 | 스타디오 일 노체
기타 시설 무티 트레이닝 센터 | 에르네스토 체레시니 뮤지엄
기타 스폰서 파일:푸마 로고.svg 푸마키트 스폰서 | 파일:크레디 아그리콜 로고.svg 크레디 아그리콜슬리브 스폰서
기타 크라우스 그룹(디모인 메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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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엠블럼3. 창단과 파르마 풋볼 클럽(Parma Football Club)4. 파르마 AS(Parma Associazione Sportiva)5. 파르마 풋볼 클럽(Parma Football Club)6. 파르마 AC(Parma Associazione Calcio)
6.1. 세리에 A 승격과 함께 시작된 전성기
7. 파르마 FC(Parma Football Club)
7.1. 재정난의 시작7.2. 쇠퇴 및 세리에 B 강등7.3. 2004-05 시즌7.4. 2005-06 시즌7.5. 2006-07 시즌7.6. 2007-08 시즌7.7. 2008-09 시즌7.8. 2009-10 시즌7.9. 2010-11 시즌7.10. 2011-12 시즌7.11. 2012-13 시즌7.12. 2013-14 시즌7.13. 2014-15 시즌
8. 파르마 칼초 1913(Parma Calcio 1913)
8.1. 2015-16 시즌8.2. 2016-17 시즌8.3. 2017-18 시즌8.4. 2018-19 시즌8.5. 2019-20 시즌8.6. 2020-21 시즌8.7. 2021-22 시즌8.8. 2022-23 시즌8.9. 2023-24 시즌8.10. 2024-25 시즌8.11. 역대 리그 순위
9. 주요 인물
9.1. 과거의 전설들

1. 개요

파르마 칼초 1913의 주요 시기
파일:AS 파르마.png 파일:파르마 AC 로고.svg 파일:파르마 FC 로고.svg 파일:파르마 칼초 1913 로고.svg
파르마 AS
Parma Associazione Sportiva *
(1913~1969)
파르마 AC
Parma Associazione Calcio
(1968~2004)
파르마 FC
Parma Football Club
(2004~2015)
파르마 칼초 1913
Parma Calcio 1913
(2015~)
* 로고 출처
이외의 전반적인 구단의 역사는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르마 칼초 1913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

파르마는 창단 직후인 1913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역사 동안 구단의 명칭 또한 여러 번 바뀌었고, 3번의 파산, 3번의 재창단을 겪을 정도로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리에 7공주 시절의 파르마 AC, 세리에 중위권 시절인 파르마 FC, 이제 막 세리에 B를 우승하고 올라온 파르마 칼초 1913 시절까지.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여준 구단이기도 하다.

2. 주요 엠블럼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223c87> 파일:파르마 칼초 1913 로고.svg파르마 칼초 1913
역대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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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C 파르멘세.png 파일:파르마 AC 로고.svg 파일:파르마 AC 로고(2000-2001).webp 파일:파르마 FC 로고.svg
AC 파르멘세
(1968-1970)
파르마 AC
(1970-2000)
(2001-2004)
파르마 AC
(2000-2001)
파르마 FC
(2004-2013)
파일:파르마 FC 100주년 기념로고.svg 파일:파르마 FC 로고(2014-2015).webp 파일:SSD 파르마 칼초 1913 로고.webp 파일:파르마 칼초 1913 로고.svg
창단 100주년 기념 로고
(2013-2014)
파르마 FC
(2014-2015)
SSD 파르마 칼초 1913
(2015-2016)
파르마 칼초 19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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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전 파르마는 본인들의 로고를 잘 활용하지 않았었다. 본인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흰 바탕 + 검은색 십자가 유니폼이 특색있는 디자인이었기에 로고가 없어도 구분이 가능했기 때문. 이에 파르마의 로고는 원정 유니폼에 부착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기조는 파르마 AC 시기에 들어서면서 변하게 되었다. 기존 십자가 디자인에서 벗어나 흰색 유니폼을 메인 유니폼으로 사용하고, 로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단이 2번 파산하며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로고는 파르마 AC 시기의 디자인을 유지하였고,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3. 창단과 파르마 풋볼 클럽(Parma Football Club)

파르마의 축구 역사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파르마에서 축구는 '도폴라보로'[1]정도였으며, 주로 도시 내 군사 캠프에서 행해졌다. 기록에 남아있는 첫 축구 경기는 1911년 프로 베르디(Pro Verdi) 학생팀과 살소마조레(Salsomaggiore)의 유벤투스팀 간 경기로, 0-1로 패했다.

1913년 7월 27일, 주세페 베르디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베르디 풋볼 클럽(Verdi Football Club)이 공식적으로 창단되었다. 그러나 베르디 FC는 1913년 말에 해체되었고, 같은 해 12월 16일 파르마 풋볼 클럽(Parma Football Club)으로 재탄생했다.

얼마 안 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구단 활동이 중단되었고, 9명의 선수가 입대하여 그 중 5명이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홈 유니폼[2]이 도입되었고, 1922년 12월 31일에는 엔니오 타르디니 회장이 새 경기장의 첫 돌을 놓았다.

1924-25 시즌, 파르마는 ASD 노베세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3-2로 승리하여 최상위 리그인 프리마 디비지오네에 승격했다. 그러나 첫 시즌에서 유벤투스, 밀란, 제노아와 같은 강팀들과 경쟁하며 고전했고, 이후에는 프리마 디비지오네 노르드에서 주로 활동했다

4. 파르마 AS(Parma Associazione Sportiva)

1930년에 구단은 다양한 스포츠를 포괄하는 종합 스포츠 클럽으로 변모하여 파르마 아소시아치오네 스포르티바(Parma Associazione Sportiva)로 개명했다. 이 시기에는 축구 외에도 럭비, 배구, 탬버렐로 등의 스포츠를 포함했다. 그러나 축구가 여전히 핵심 활동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프리마 디비지오네에서 활동했다.

전쟁 후 세리에 B에 배치되었고, 1947-48 시즌에는 프라토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리그에 잔류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스페치아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4-1로 패하며 세리에 C로 강등되었다.
1953-54 시즌,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선수들인 체스트미르 비츠팔레크와 율리우스 코로스텔레프, 그리고 이탈리아 출신 에드몬도 파브리와 윌리엄 브론조니의 활약으로 세리에 B로 복귀했다. 1953년부터는 크로스 디자인의 유니폼에서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소매 또는 노란색 디테일이 있는 유니폼으로 변경했다.

1964-65 시즌, 파르마는 세리에 B에서 최하위를 기록하며 세리에 C로 강등되었다. 이후 팀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1966-67 시즌과 1967-68 시즌 모두 세리에 C 복귀에 실패했다.

5. 파르마 풋볼 클럽(Parma Football Club)

1968년 1월 2일, 파르마 재정 위기가 심화되면서 구단이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도시의 산업가들이 구단을 인수하여 파르마 풋볼 클럽으로 개명했으나, 경기력과 재정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1968-69 시즌 말, 세리에 D에서 간신히 강등을 피했으나, 파르마 법원은 구단의 재정 상황이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파산을 선고했다.

6. 파르마 AC(Parma Associazione Calcio)

1968년에 설립된 아마추어 클럽 AC 파르멘세(AC Parmense)가 파르마 FC의 역사, 크로스 유니폼 착용 권리, "파르마"라는 이름 사용 권리를 약 2천만 리라에 구매했다. 1969-70 시즌이 시작될 때 파르멘세로 출전했지만, 1970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파르마 AC(Parma Associazione Calcio)로 개명했다.

새 구단은 빠르게 발전하여 1970-71 시즌에 세리에 C로 승격했다. 세리에 C에서 3년 동안 좋은 성적을 거둔 후, 1972-73 시즌에는 우디네세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세리에 B로 승격했다.

1970년대 후반, 에르네스토 체레시니가 구단주로 취임하고 체사레 말디니가 감독으로 부임한 후, 1978-79 시즌에 트리에스티나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3-1로 승리하며 세리에 B로 복귀했다. 그러나 1979-80 시즌에는 세리에 B에서 최하위 마테라 바로 위인 19위를 기록하며 다시 강등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세리에 C1에서 중위권을 유지했다.[1980-81] 1983-84 시즌, 파르마는 마지막 경기에서 산레모를 1-0으로 이기며 세리에 B로 승격했지만, 이듬해 다시 강등되었다.

1985년, 아리고 사키가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5-86 시즌 세리에 C1 우승을 이끌었다. 1986-87 시즌 세리에 B에서는 세리에 A 승격을 불과 3점 차이로 놓쳤으나, 코파 이탈리아에서 밀란을 꺾는 성과를 거두었다.

6.1. 세리에 A 승격과 함께 시작된 전성기

1987-88 시즌부터 현지 파르마의 식품 회사 파르마라트(Parmalat)의 칼리스토 탄치가 구단 스폰서가 되었다. 체스트미르 비츠팔레크의 조카 즈데넥 제만이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10월에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잠피에로 비탈리가 부임했다. 이후 1988-89 시즌에도 10위에 그쳤다.

1989년, 네비오 스칼라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구단의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에르네스토 체레시니의 사망 후 그의 아들 풀비오가 구단주 자리를 이어받았다. 1989-90 시즌, 파르마는 역사적인 세리에 A 승격을 이루어냈으며, 1990년 5월 27일 레지아나를 2-0으로 이기며 승격을 확정지었다.

1990년 여름, 파르마라트의 탄치가 구단 소유권을 인수했고, 체레시니 가문은 소액 지분만 남겼다. 조르조 페드라네스키가 새 회장으로 취임했다. 세리에 A 데뷔를 앞두고 파르마는 브라질 골키퍼 타파렐, 스테파노 쿠오기, 조르주 그륀, 토마스 브롤린 등을 영입했다. 1990-91 시즌, 신예 파르마는 홈 경기에서 단 두 팀[4]에게만 패하며 6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UEFA컵 출전권을 획득했다.

1991년 9월, 파르마는 유럽 대회에 처음 출전했으나, UEFA컵 1라운드에서 CSKA 소피아에게 탈락했다. 1991-92 시즌에는 7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992-93 시즌, 파우스티노 아스프릴라를 영입하며 공격력을 강화했다. 1993년 3월 21일, 아스프릴라의 골로 밀란의 58경기 무패 행진을 종료시켰고, 그 해 웸블리에서 개최된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벨기에의 앤트워프를 3-1로 이기며 첫 유럽 타이틀을 획득했다.

파르마의 급속한 성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방 클럽'이었던 팀이 이탈리아 축구의 엘리트로 부상했음을 보여주었다. 1993년, 마시모 크리파지안프랑코 졸라를 영입하며 UEFA 슈퍼컵에서 밀란을 꺾었다. 그러나 1993-94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결승전에서는 아스날에게 패했다.

1994-95 시즌, 파르마는 UEFA컵 결승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첫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세리에 A에서는 2위를 기록했으나,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는 유벤투스에게 패했다. 국내 및 국제 타이틀을 획득할 정도의 강호 클럽으로 약진하면서 미라클 파르마라고 불리게 되었다.

1995년 여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를 영입했지만 1995-96 시즌에는 트로피를 획득하지 못했다. 17세의 잔루이지 부폰이 데뷔[5]했고, 시즌은 6위로 마감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네비오 스칼라 감독은 사임했고, 스테파노 탄치[6]가 페드라네스키를 대신해 구단주가 되었다.

1996년, 카를로 안첼로티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파르마는 전반기 부진했으나 후반기 회복하며 1996-97 시즌 2위를 기록했다. 1997-98 시즌, 파르마는 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했으나 네비오 스칼라가 이끄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탈락했다. 세리에 A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1998-99 시즌, 알베르토 말레사니가 감독으로 부임하여 세리에 A 4위, 코파 이탈리아 우승[7], UEFA컵 우승[8]의 성과를 거두었다. 1999년 8월에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밀란을 2-1로 이기며 우승했다.

1999-2000 시즌, 파르마는 세리에 A 4위를 기록했으나, 인테르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 플레이오프에서 패했다. 2001년 초, 사키가 말레사니의 후임으로 부임했으나 3경기 만에 스트레스를 이유로 사임했다. 그의 뒤를 렌초 울리비에리가 이어받았지만,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피오렌티나에게 패했다.

2001-02 시즌, 파르마는 부폰튀랑이 유벤투스로 이적한 상황에서도 유벤투스를 꺾고 코파 이탈리아를 재차 우승했다.

2002-03 시즌부터는 체사레 프란델리가 감독으로 부임했고, 2003-04 시즌까지 두 시즌 연속 5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다.

7. 파르마 FC(Parma Football Club)

7.1. 재정난의 시작

2003년 12월, 모기업 파르마라트의 심각한 회계 부정과 파산 소식이 드러났다. 칼리스토 탄치는 체포되었고, 구단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어 파산 관재인의 관리 하에 놓여지게 되었다. 2004년 6월, 클럽 파산을 피하기 위해 파르마 FC(Parma Football Club)로 개명했다.

7.2. 쇠퇴 및 세리에 B 강등

7.3. 2004-05 시즌

지난시즌까지 파르마를 이끈 체사레 프란델리AS 로마로 떠나고[9] 실비오 발디니가 새 감독이 되었다. 파르마는 실비오 발디니 감독 하에서 세리에 A 승점 누적 27점 상태로 12월 중순에 경질되었고, 피에트로 카르멘이 대행을 맡았다. UEFA컵에서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세리에 A에서는 위기를 맞았다. 최종적으로 볼로냐와의 플레이오프[10]에서 승리하며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

승격팀 메시나와 홈에서 0-0 무승부에 그치며 불안하게 출발한 파르마는 우디네세 원정에서 4-0 대패를 당했고, 볼로냐와의 홈경기도 1-2 패배를 당하며 어려운 시즌 출발을 보였다. 인테르 원정에서 2-2 무승부, 피오렌티나와의 홈경기 0-0 무승부 후 브레시아에 3-1 패배를 기록하면서 6라운드까지 1승 없이 강등권인 19위에 처졌다.

2004년 10월 24일 7라운드 라치오와의 홈경기 3-1 승리로 리그에서 첫 승리를 신고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파르마의 부진은 이어졌다. 15경기에서 단 2승에 그치는 부진 속에 18위에 처지자 발디니 감독은 전격 경질되었고 2000-01 시즌에 파르마의 소방수로 잔류 및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었던 피에트로 카르미냐니가 다시 한 번 소방수로 부임했다. 한편 UEFA컵에서는 1라운드에서 슬로베니아의 마리보르에 1차전 3-2 승리, 2차전 0-0 무승부로 조별리그에 진출했다. 그리고 빌바오 원정에서 2-0 패배한 뒤 스테아우아와의 홈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고, 스탕다르 리에주 원정에서 2-1로 역전패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카르미냐니 체제의 첫 경기는 UEFA컵 베식타스와의 홈경기 단두대매치였는데 3-2 승리를 거두며 32강 토너먼트에 합류했다. 그러나 리그에서는 16라운드 로마 원정에서 5-1 대패를 당하면서 2004년을 19위로 마감했다.

2005년 들어 파르마는 유벤투스와의 홈경기를 비기고 시에나 원정에서 1-0 승, 레체와의 홈경기에서 PK 2개를 놓친 끝에 극적인 골로 2-1 승리를 거두면서 반등세를 보였다. 후반기에는 홈에서 단 한 경기도 지지 않았고 우디네세, 브레시아, 칼리아리, 리보르노[11], 로마를 상대로 승리했다. 리그에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에 승선하게 된 공격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가 리그 23골 맹활약을 했고 공격형 미드필더 도메니코 모르페오 역시 특급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원정경기 성적은 썩 좋지 않았고 리그는 혼전 그 자체라서 최종전까지 9팀이 강등을 피하기 위한 경기를 했다. 결국 최종전에서 레체와 3-3 무승부를 기록하면서[12] 피오렌티나, 볼로냐와 승점 42점으로 동률을 이루었고 3자 맞대결 전적에 따라 볼로냐와의 에밀리아 데르비로 강등 타이브레이커를 치르게 되었다. 시즌 맞대결에서는 2전 전패를 당했고 볼로냐의 수비는 경기당 1실점을 넘지 않아서 강등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타이브레이커 1차전 볼로냐와의 홈경기에서 모르페오, 질라르디노 등 주축 선수들이 징계로 대거 결장하며 1-0으로 패배해 강등 위험이 커졌다. 그러나 징계에서 주축들이 다 돌아온 2차전 원정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가까스로 생존했다. 프레이가 볼로냐의 수 차례 슈팅을 막아냈고 질라르디노가 파르마의 생존을 확정짓는 결정적인 득점을 했다. 질라르디노는 2,5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남기고 AC 밀란으로 이적했고, 프랑스 국적의 주전 골키퍼 세바스티앙 프레이도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UEFA컵 토너먼트에서는 주로 1.5군으로 나섰음에도 32강에서 슈투트가르트, 16강에서 세비야, 8강에서는 아우스트리아 빈을 꺾고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CSKA 모스크바를 상대로 1차전 0-0으로 비겼고, 2차전 원정에서 3-0 패배를 당하며 결승 진출은 무산되었다.[13]

그 후, 2005년 전 레알 마드리드 회장 로렌소 산스가 클럽을 인수하려 했으나 자금 부족이 드러나 인수가 되지않았다. 결국 클럽은 경매에 붙여졌으며 2007년 1월 24일 토마소 기라르디에게 양도되게 되었다.

7.4. 2005-06 시즌

질라르디노의 빈 자리에는 발렌시아에서 실패를 맛본 공격수 베르나르도 코라디를 영입했다. 감독은 마르코 바레타가 선임되었다.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의 이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영향으로 전반기에는 3승 6무 10패로 승점 15점에 그치며 강등권에 머물러 이번에는 진짜 강등되는듯 했다. 그러나 이후 굴리엘모 찬티와 파비오 심플리치가 연달아 감독을 맡았고, 후반기에 반등에 성공해 승점 30점을 벌어들였다.

사실 지난시즌보다 겨우 승점 3점이 많았지만 하위권 팀들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10위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칼초폴리 사건을 통해 유벤투스의 강등, 4위 피오렌티나와 6위 라치오의 승점 30점 감점에 힘입어 전반기에만 해도 강등권이었던 파르마는 단숨에 7위로 UEFA컵 티켓을 얻게 되었다.

7.5. 2006-07 시즌

2006-07 시즌 파르마는 UEFA컵 1라운드서 루빈 카잔을 꺾고 조별리그에 진출했고, CA 오사수나, RC 랑스, 오덴세 BK, SC 헤이렌베인과의 조 편성에서 조 1위를 기록해 토너먼트에 나갔다. 하지만 32강에서 포르투갈에 브라가에 져서 탈락했고 이것이 파르마의 마지막 유럽대항전 경기가 되었다.

리그에서는 초반 7경기에서 5패를 당하는 등 부진으로 인해 2007년 2월에 19위까지 떨어지자 스테파노 피올리 감독이 경질되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했다. 파르마는 라니에리 체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임대한 주세페 로시의 맹활약을 앞세워 반등하였고, 시즌 마지막 날인 2007년 5월 27일 엠폴리를 3-1로 이기며 극적으로 강등을 면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7.6. 2007-08 시즌

도메니코 디 카를로 감독이 부임한 2007-08 시즌은 감독 세 명을 갈아치운 것도 소용없이 힘겨운 싸움을 했고 결국 19위로 부진하여 18년 만에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게다가 인테르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패전에 의해 파르마의 서포터들은 세리에 B 강등이 결정되는 동시에 눈앞에서 남의 우승잔치를 치르게 되고 만다.

7.7. 2008-09 시즌

세리에 B로 내려간 파르마는 루이지 카니가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9월에 프란체스코 귀돌린으로 교체되었다. 2008-09 시즌, 파르마는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최종적으로 2009년 5월 16일 치타델라와의 2-2 무승부로 세리에 A 복귀를 확정지었다. 이 시즌 파르마는 세리에 B에서 4패만을 거두며 최소 패배와 함께 65골로 최다 득점, 34골로 최소 실점을 기록했다.

7.8. 2009-10 시즌

귀돌린 감독은 유지되었고, 크리스티안 파누치, 발레리 보지노프, 다니엘레 갈로파, 크리스티안 자카르도, 조나탕 비아비아니 등을 영입했다. 기존의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등을 주축으로 한 스쿼드로 적절한 중위권 이하의 성적을 찍다가 리그 후반기 8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대약진, 시즌 중반에는 4위까지 올라갔으나, 최종적으로는 8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7.9. 2010-11 시즌

유벤투스 FC로부터 아마우리, 세바스티안 조빈코를 데려오는 등 선수단을 좀 갈아엎고 시즌을 상큼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팀의 전체적 기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12위로 마무리.

7.10. 2011-12 시즌

승격 이후 가장 처참한 전반기를 보낸다. 지오빈코가 15골을 넣는 등 대활약하고 루카렐리같은 기존 선수들이 그대로임에도 인테르오대영으로 털리는 등 체면을 다 구기고 만다. 그러나 후반기 기적같은 8연승, 후반기 10경기로는 9승 1패를 거두며 8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는데 성공한다. 3-1로 인테르에 복수한 건 덤.

7.11. 2012-13 시즌



홈/원정 골키퍼 저지의 모습(...). 임대와서 7골로 쏠쏠하게 써먹은 아마우리, 이스하크 벨포딜, 마르코 파롤로, 하이메 발데스 등을 영입해 주전으로 잘 써먹는데 성공한다. 특히 아마우리는 10골로 팀내 최다득점자까지. 그러나 또 8르마로 끝나는...가 싶었더니 마지막 무재배 쇼로 9르마로 마무리.

7.12. 2013-14 시즌

돌아온 탕아 안토니오 카사노를 영입했다. 현지 반응은 매우 냉소했으나...우리 카사노가 달라졌어요.

초반기는 또 엄청난 무재배를 포함해 올해도 중위권이면 다행인 것 같은 스타트였으나 후반기에 또 부스터를 달았다. 2014년 3월 중순경까지 아예 후반기 전체 무패. 물론 리그 1, 2, 3위와 경기를 치르지 않았지만 리그 순위 6위로 승격 이후 처음으로 유럽 대회까지 가시권에 들어온 거침없는 질주 중 유벤투스를 만나 무패가 끊겼다. 그래도 17경기 무패로 인테르, AC 밀란등 전통의 강호들은 물론 엘라스 베로나, 토리노까지 물리치고 유로파 진출을 확정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UEFA 자격이 없어 유로파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구단주는 곧 취득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구단주는 피거솟하여 구단을 아주 팔아버리고 축구도 때려치겠다고 하는 상황.. 대타로 토리노가 나가게 되었다.

7.13. 2014-15 시즌

임대생이었던 에제키엘 스켈로토, 왈테르 가르가노, 조엘 오비는 원소속팀으로 복귀했다. 크리스티안 몰리나로토리노 FC로, 만능 미드필더 마르코 파롤로라치오로 이적했다.

프란체스코 로디(임대)가 왔고 이스하크 벨포딜이 1년 만에 리턴했다. UC 삼프도리아와 마르코 마르키오니-안드레아 코스타의 스왑딜이 있었다. 잔니 무나리는 잉글랜드 챔피언십의 왓포드로 임대되었다. 아마우리는 토리노로 떠났다. 막판에는 유벤투스로부터 파올로 데 첼리에를 임대영입했고, 여름이적시장 종료 후에는 맥도날드 마리가가 인테르로 떠난지 4년 반 만에 자유계약으로 복귀했다.

전 시즌 유로파권이였던 만큼 아무도 이 구단의 성적을 걱정하지 않았다.. 라이센스 문제는 간단한 문제였기 때문에 파르마는 빠르게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세리에 개막전에서 승격팀 AC 체세나에게 1:0 패배를 당했고 2라운드 AC 밀란과의 홈경기도 4:5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조나탕 비아비아니가 밀란으로의 이적 불발 이유가 메디컬테스트 중 심장 이상이 있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이유 때문에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며 지난 시즌 공격의 두 축이었던 파롤로와 비아비아니를 한꺼번에 잃게 되었다.

3라운드 키에보 원정에서 카사노의 2골로 3:2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 승을 올렸으나 로마와의 4라운드 홈경기도 1:2로 아깝게 패했다. 그러나 우디네세, 제노아, 아탈란타, 사수올로, 토리노에게 승점 단 1점도 올리지 못하고 6연패와 함께 9경기 21실점으로 수비가 완전히 붕괴되며 최하위로 처지고 말았다. 파올로 데 첼리에의 2골로 경질설이 돌고 있던 마짜리의 인테르를 2:0으로 잡지만 곧바로 유벤투스 원정에서 파르마의 구단 역사상 세리에 A 최다점수차 패배인 7:0 대패를 당했다. 그리고 엠폴리-팔레르모-라치오에게 4연패로 다시 수렁에 빠지며 꼴찌로 추락했다. 12월 9일에는 임금 체불 문제로 승점 1점이 깎였고 기라르디 회장도 2개월 직무정지를 받았다. 얼마 뒤 러시아-키프로스 합작 투자 회사인 다스트라소 홀딩스의 에르미르 코드라에게 매각되었다.

17라운드 피오렌티나전 승리로 전반기 단 3승만 기록한 채 3승1무15패, 승점 9점으로 한 자릿수 승점에 그쳤다. 20라운드 꼴찌더비였던 체세나와의 후반기 첫 경기도 패배했다. 유럽 5대리그 최소승점. 그 원인으로 밝혀진 것은 재정 문제였다. 2015년 1월 26일에는 안토니오 카사노와 임금체불 문제로 계약을 해지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크리스티안 로드리게스지아니나의 안디 릴라, 포르투실베스트르 바렐라, AC 밀란의 안토니오 노체리노를 임대영입했다. 팔레르모로 임대갔던 주하이르 페달이 임대복귀했다. 데 첼리에가 유베로 돌아갔고 가브리엘 팔레타AC 밀란으로 이적했다. 아프리예 아쿠아는 새롭게 삼프도리아로 임대지를 옮겼고 펠리페는 계약을 해지했다.

16강에서 시작한 코파 이탈리아는 칼리아리를 꺾고 8강에 올라갔으나 유벤투스에게 0:1로 패하며 탈락했다.

사실 새 구단주가 부임하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있었으나... 파르마는 파산 직전이였다. 결국 리그 후반기에 들어선 2월, 갑작스레 유로스포트의 보도로 파르마의 해체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반나절만에 레가 세리에에서 공식 성명의 오역에 의한 것이며, 해체는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뭐가 달라 또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세금 납부가 불가능해 이탈리아 국세청이 파르마의 구단 버스를 추징했으며, 구단 소속의 선수 및 스탭 전원이 지난 7월부터 급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구장 관리인의 급료 미지급으로 인해 우디네세전이 연기된 상황... 유스 팀 감독인 에르난 크레스포에 의하면, 훈련 시설에 전기가 끊겨 유소년 팀 선수들이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구단에 돈이 없어 훈련에 먹을 물도 못 사는 형편이라고. 2015년 들어서는 파산 위기 파르마, 유니폼도 선수들이 직접 빤다는 기사까지 뜨는 지경. 동네 조기축구회보다 못한 상황이라 당연히 팀성적도 곤두박질쳐서 압도적인 꼴찌. 사실상 강등이 확정적이다. 당시 승점 삭감에다가 너무 압도적인 최하위 상황이어서 보다 못한 강등권 팀들마저도 일부러 져주자는 분위기가 많았다.

또 이미 구단 버스는 매각됐고 구단 벤치마저 경매에 올라올 정도이다. 하지만 파르마의 주장인 루카렐리는 팀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삼프도리아 구단주인 마시모 페레로 구단주는 파르마의 지원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단돈 1유로에 구단을 사들이며 2월에 새롭게 구단주로 부임한 잠피에트로 마넨티는 사기꾼이었다. 돈 세탁을 위해 구단을 인수하였던 것.

결국 2015년 3월 19일, 구단 파산이 확정됐다. 잔여 경기는 예정대로 치렀고 유벤투스도 잡아내는 등 어떻게서든 강등을 면하고 인수자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최종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아 세리에 D로 강등(아마추어팀으로 강제전환)+구단명 박탈을 당하게 됐다.[14] 15-16시즌부터 파르마 칼초 1913이라는 구단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2015년 7월, 1990년대 파르마를 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던 네비오 스칼라가 회장에 취임했고 파르마의 레전드 수비수였던 루이지 아폴로니가 감독에 선임되었다.

이젠 UEFA컵 포함 우승컵들을 모조리 판매했다는 기사까지 올라왔다.

8. 파르마 칼초 1913(Parma Calcio 1913)

8.1. 2015-16 시즌

사상 최악의 파산으로 인해 구단명을 박탈당했을 뿐더러 아마추어로 전환되는 수모를 겪은 후 맞는 첫 세리에 D 시즌.

세리에 D에선 그룹 D-E-F에 배정되었으며 그룹D에서 경기를 하게된다.한편으론 팀의 전설적인 수비수 루카렐리가 잔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룹D에서 양민학살을 하고있다(...)14승 4무 0패 승점 46점으로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정도면 레가 프로 승격은 가능할 것 같다.

31라운드 기준으로 22승 9무 0패 승점 75점으로 나름 세리에 A 소속이었던 면모를 보여주고있다.

경기 동영상이 유튜브에 많이 있으며 세리에D로 강등되었어도 팬들이 꾸준히 응원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보여지기도 한다.

28승 10무 0패로 레가 프로로 승격했다.

8.2. 2016-17 시즌

레가 프로 B조에 속해있다. 현재 상황으로는 조금더 노력해야 세리에B에 올라올 수 있을 것 같다.

코파 이탈리아에서 피아첸차를 만나 승리했다. 이로서 3차예선도 진출했다.

17라운드 기준 13승 4무로 이번에도 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무난히 세리에 B 승격이 기대된다.

그러나 리그 최종 성적은 38경기 승점 70점에 그치며 베네치아에 세리에 B로 자동 승격되는 선두를 내주고 2위를 기록하였다. 레가 프로의 승강 플레이오프가 기존 8강전에서 28강전으로 괴악하게 개편되는 바람에 28팀이 한 자리를 놓고 6월 말까지 격돌하게 되는데, 현재(6월 14일 기준) 파르마는 피아첸차와 루케세를 차례로 제치고 플레이오프 4강에 진출한 상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4강에서 포르데노네를 만나 연장전까지 1:1,승부차기 끝에 5:4로 승리하면서 결승에 진출. 이제 세리에 B 승격까지 한경기 남았다.

마침내 결승에서 알레산드리아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하면서 승격이 확정되었다!

8.3. 2017-18 시즌

2008-09 시즌 강등 이후 9년 만에 맞는 첫 세리에 B 시즌이다.

시즌 극초에는 중위권을 맡다가 11월 20일 현재 리그 2위다. 다만 선두인 바리, 3위 베네치아, 5위 프로시노네와 승점이 1점 차이고 4위인 팔레르모가 한 경기 뒤진 상태로 24점이기 때문에 2위 싸움을 지속적으로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선수 보강도 알차고 선수진의 주축인 루카렐리가 있어서 동기부여도 잘 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4월 25일, 리그 잔여 5경기만 남겨둔 상황에서 2위를 유지 중이다.

팔레르모와 프로시노네와 함께 승격 경쟁을 펼치고있다.

2018년 5월 18일, 세리에 B 최종전 스페치아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하고, 마지막까지 승격 경쟁을 펼치던 프로시노네가 포자와의 홈경기에서 2-2로 무승부를 한 덕분에, 2015년 세리에 D로 강등당한 뒤로, 한번도 쉬지않고 3년 만에 세리에 A로 복귀하게 되었다!

8.4. 2018-19 시즌

2018년 7월 23일, 파르마는 승점 5점이 삭감되는 징계를 받았다. 이보다 앞서 파르마의 엠마누엘레 칼라이오가 지난 시즌 스페지아 전에서 "적당히 해줘."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가 스페지아 선수들이 제보하는 바람에 승부조작 의뢰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파문이 확산되었다. 연방 대법원은 파르마가 승부조작을 조직적으로 벌이지 않았음을 확인했지만 선수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2018-19 시즌 승점 5점이 삭감되는 징계를 내렸다. 이와 별도로 칼라이오는 2년간 선수 자격 박탈 및 2만 유로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이에 대해 파르마는 항소할 뜻을 밝혔다.

파일:news-lucarelli-club-manager-750x330.jpg

2018년 8월 2일, 알레산드로 루카렐리가 클럽 매니저로 부임했다.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심판에게 교체 선수를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2018년 8월 10일, FIGC(Federazione Italiana Giuoco Calcio, 이탈리아 축구 연맹)는 파르마의 항소를 받아들여 승점 삭감 징계를 무효화하고 벌금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칼라리오의 징계는 2년간 선수 자격 박탈에서 5개월간 선수 자격 박탈로 경감되었다. 세리에A 승격팀으로서 승점 5점 삭감된 채 시즌을 치러야 하는 곤경에 처해있던 파르마로선 한시름 던 셈.

1라운드 우디네세와의 경기에서 2-0으로 리드를 잡았으나 막판 동점을 허용하며 무승부를 기록했다.

제르비뉴의 하드캐리에 힘입어 전반기를 12위로 마치며 최근 승격팀들이 모두 하위권을 전전하던 양상과는 달리 선전하고 있다. 근본의 힘

후반기 들어 승격팀으로서의 한계를 보이며 강등권까지 근접했으나 시즌 말에 다시 승점을 챙기며 14위로 승격 첫 시즌, 승격팀 중 유일하게 잔류에 성공했다.[15]

8.5. 2019-20 시즌

맨유에서 마테오 다르미안을 €1.5M로 헐값에 영입했다.

제르비뉴의 활약과 더불어 아탈란타에서 임대해온 19살의 데얀 쿨루셉스키가 포텐이 터지며 둘의 하드캐리로 전반기를 7위로 마쳤다.

최종순위는 11위.

2020년 8월 23일 로베르토 다베르사 감독이 사임했다. 팀의 비전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임은 전 레체 감독이었던 파비오 리베라니 감독이다.

8.6. 2020-21 시즌

직전시즌 팀의 에이스였던 데얀 클루셉스키의 임대가 종료되었지만 니스의 주전 미드필더였던 윌랑 시프리앙을 임대로 영입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시프리앙은 부상과 부진으로 제몫을 못해주고 있고, 쿨루셉스키가 빠진 공격진은 전술 문제와 [16] 중앙 공격수들이 몇달째 무득점을 기록하며 부진하는 등으로 인해 12월 이후 한달넘게 무승행진을 기록하던 중 결국 1월 7일에 리베라니 감독은 경질되었다.

후임 감독으로는 전임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다베르사 감독이 재부임했다.

팀 상태가 좋지 못하다보니 겨울 이적시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였고, 안드레아 콘티, 마티아 바니, 데니스 만, 조슈아 지르크지, 그라치아노 펠레등을 데려오며 선수단 보강을 했다.

현재까지 리그 20경기가 진행된 가운데 2승 7무 11패 승점 13점으로 19위 강등권에 위치해 있고, 14득점으로 리그 최저득점을 기록중이다.

그후로도 계속해서 무 - 패 행진을 이어갔지만 6경기동안 12득점을 기록하면서 공격력이 어느 정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27라운드 로마 전에서 2-0으로 승리를 따내며 다베르사 감독 재부임 후 첫 승과 3달만의 승리를 따냈다.

하지만 이후 5경기에서는 1무 4패에 그쳤고, 특히 31R 칼리아리 전에서는 3대1로 앞서가다가 한골을 허용하더니 후반 추가시간에 두골을 얻어맞고 4대3으로 패배하면서 잔류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32R 유벤투스 전에서는 전반 25분에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나갔으나 알렉스 산드루에게 멀티골을 허용하고 마테이스 더리흐트에게 쐐기골까지 얻어맞으며 1대3으로 역전패했고, 18위 칼리아리가 우디네세를 상대로 승리하고 17위 베네벤토는 무승부로 승점 1점을 가져가면서 승점 차가 11점으로 더 벌어졌다.

거기다가 남은 6경기중 마지막 4경기에서 리그 상위권과 중상위권 팀들인 아탈란타 - 라치오 - 사수올로 - 삼프도리아를 연달아 만나는지라 강등은 사실상 확정이다.

33R 크로토네에게 유효슈팅 4개를 모조리 허용하고 3대4로 패배하더니 리그 34라운드 토리노에게도 지면서 리그 4경기를 남기고 강등이 확정, 3년 만에 다시 세리에 B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마지막 4경기도 전패하면서 9연패를 기록하고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8.7. 2021-22 시즌

2021년 6월 16일, FA로 풀린 팀 레전드 잔루이지 부폰을 영입했다. 부폰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현역으로서 꾸준히 출전을 원하고 있는지라 친정팀 파르마에서 적극적으로 오퍼를 넣어 영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2021년 7월 7일, 맨 시티에서 유망주 아드리안 베르나베자유계약으로 영입했다.

8라운드까지 2승 4무 2패를 기록하고 있다. 시즌 초반을 2승 1무로 시작했지만 이후 2연패 후 3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며 다소 주춤하고 있다.

17R 기준 14위로 결코 예상대로의 만족스러운 성적이 아니다. 엔초 마레스카를 경질하고 주세페 이아키니를 선임한지 얼마 안 되었고 겨울 이적시장에 중요포인트들의 보강을 마친다면 반등할수 있겠지만 너무 빠른속도로 선수들을 검증되지 않은 자원들로 갈아치우고 감독마저 초짜를 선임했던것이 파르마 전반기 부진의 이유이다.

8.8. 2022-23 시즌

후반에 반등하면서 5위까지 올라왔고 플레이오프 진출했으나, 칼리아리에게 지면서 승격 무산되었다.

8.9. 2023-24 시즌

25라운드 기준 현재 8점차로 세리에 B 1위를 유지하면서 3년 만에 세리에 A 복귀를 노리고 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16강에 진출했고 피오렌티나와 2:2로 비겼지만 승부차기에서 1:4로 밀려 탈락했다.

36R 바리전 1:1로 비기면서 3위와 승점 차이가 7점이 나면서 20-21 시즌 이후 3년 만에 세리에 A 복귀를 확정지었다.

내친김에 우승까지 성공하며 화려한 귀환을 예고했다.

8.10. 2024-2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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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역대 리그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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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리그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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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리그 순위
1919-20 2 프로모치오네 2
1920-21 1 프리마 카테고리아
1921-22 1 프리마 카테고리아
1922-23 2 세콘다 디비시오네
1923-24 2 세콘다 디비시오네
1924-25 2 세콘다 디비시오네 1
1925-26 1 프리마 디비시오네 11
1926-27 2 세콘다 디비시오네
1927-28 2 세콘다 디비시오네
1928-29 2 세콘다 디비시오네 2
1929-30 2 세리에 B 12
1930-31 2 세리에 B 13
1931-32 2 세리에 B 18
1932-33 3 프리마 디비시오네
1933-34 3 프리마 디비시오네
1934-35 3 프리마 디비시오네
1935-36 3 세리에 C
1936-37 3 세리에 C
1937-38 3 세리에 C
1938-39 3 세리에 C
1939-40 3 세리에 C
1940-41 3 세리에 C
1941-42 3 세리에 C
1942-43 3 세리에 C
1943-44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
1944-45
1945-46 2 세리에 B-C 알타 이탈리아
1946-47 2 세리에 B 14
1947-48 2 세리에 B 7
1948-49 2 세리에 B 19
1949-50 3 세리에 C 2
1950-51 3 세리에 C 3
1951-52 3 세리에 C 2
1952-53 3 세리에 C 6
1953-54 3 세리에 C 1
1954-55 2 세리에 B 9
1955-56 2 세리에 B 15
1956-57 2 세리에 B 12
1957-58 2 세리에 B 18
1958-59 2 세리에 B 18
1959-60 2 세리에 B 14
1960-61 2 세리에 B 13
1961-62 2 세리에 B 12
1962-63 2 세리에 B 13
1963-64 2 세리에 B 15
1964-65 2 세리에 B 20
1965-66 3 세리에 C 17
1966-67 4 세리에 D 6
1967-68 4 세리에 D 6
1968-69 4 세리에 D 14
1969-70 4 세리에 D 1
1970-71 3 세리에 C 5
1971-72 3 세리에 C 2
1972-73 3 세리에 C 1
1973-74 2 세리에 B 5
1974-75 2 세리에 B 20
1975-76 3 세리에 C 2
1976-77 3 세리에 C 2
1977-78 3 세리에 C 4
1978-79 3 세리에 C1 2
1979-80 2 세리에 B 19
1980-81 3 세리에 C1 13
1981-82 3 세리에 C1 9
1982-83 3 세리에 C1 6
1983-84 3 세리에 C1 1
1984-85 2 세리에 B 18
1985-86 3 세리에 C1 1
1986-87 2 세리에 B 7
1987-88 2 세리에 B 11
1988-89 2 세리에 B 9
1989-90 2 세리에 B 4
1990-91 1 세리에 A 6
1991-92 1 세리에 A 6
1992-93 1 세리에 A 3
1993-94 1 세리에 A 5
1994-95 1 세리에 A 3
1995-96 1 세리에 A 5
1996-97 1 세리에 A 2
1997-98 1 세리에 A 5
1998-99 1 세리에 A 4
1999-00 1 세리에 A 5
2000-01 1 세리에 A 4
2001-02 1 세리에 A 10
2002-03 1 세리에 A 5
2003-04 1 세리에 A 5
2004-05 1 세리에 A 17
2005-06 1 세리에 A 7
2006-07 1 세리에 A 12
2007-08 1 세리에 A 19
2008-09 2 세리에 B 2
2009-10 1 세리에 A 8
2010-11 1 세리에 A 12
2011-12 1 세리에 A 8
2012-13 1 세리에 A 10
2013-14 1 세리에 A 6
2014-15 1 세리에 A 20
2015-16 4 세리에 D 1
2016-17 3 세리에 C 2
2017-18 2 세리에 B 2
2018-19 1 세리에 A 14
2019-20 1 세리에 A 11
2020-21 1 세리에 A 20
2021-22 2 세리에 B 12
2022-23 2 세리에 B 4
2023-24 2 세리에 B 1
2024-25 1 세리에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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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요 인물

9.1. 과거의 전설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223c87> 파일:파르마 칼초 1913 로고.svg파르마 칼초 1913
과거의 전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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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3c87> 출처: 공식 웹사이트, 최종 수정 일자: 2025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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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마 칼초 1913 공식 사이트에서 지정한 레전드들을 모아놓은 페이지로, 일종의 명예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트로피과 관계 없이 팬들을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에 따라 선정되었다.

가장 적은 선수들이 등록된 포지션은 골키퍼, 가장 많은 선수들이 등록된 포지션은 수비수다.
[1] dopolavoro, 여가 활동[2] 가슴에 검은 십자가가 있는 흰색 셔츠[1980-81] 시즌 13위, 1981-82 시즌 9위, 1982-83 시즌 6위[4] 유벤투스피사[5] 1995년 11월 19일 밀란전[6] 칼리스토의 아들[7] 피오렌티나 상대[8] 마르세유 상대 3-0 승[9] 부인의 병 간호 문제로 데뷔전 없이 사퇴했다.[10] 1-0, 2-0[11] 6-4의 난타전이었다. 질라르디노루카렐리가 4골씩 주고받으며 둘은 33라운드까지 빈첸초 몬텔라 독주체제였던 득점왕 레이스에 합류했다.[12] 패배했을 경우 파르마는 다이렉트 강등이었다.[13] CSKA 모스크바가 최종 우승팀이 되었다.[14] 그 덕에 리가 프로로 강등된 것이 확정되었던 브레시아 칼초는 21위를 마크했음에도 파르마의 세리에 D 강등으로 세리에 B에 잔류하였다.[15] 같이 승격한 엠폴리와 프로시노네는 강등되었다.[16] 리베라니 감독이 주로 사용한 352 투톱 체제는 팀의 공격진들과 전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술할 중앙 공격수들의 부진도 이 전술 문제가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