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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3:03:40

조르주 그륀

조르주 그륀의 역임 직책
{{{#!folding ▼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얀 쾰레만스
(1984~1991)
조르주 그륀
(1991~1995)
프랑키 판더얼스트
(1995~1998)
}}} ||
벨기에의 前 축구선수
파일:Geogre Grun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조르주 그륀
Georges Grün
본명 조르주 세르주 그륀
Georges Serge Grün
출생 1962년 1월 25일 ([age(1962-01-25)]세)
벨기에 브뤼셀 스하르베크
국적
[[벨기에|]][[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직업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방송인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RSC 안데를레흐트 (1982~1990)
파르마 AC (1990~1994)
RSC 안데를레흐트 (1994~1996)
레지나 칼초 (1996~1997)
국가대표 77경기 6골 (벨기에 / 1984~1995)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은퇴 후6. 수상 내역
6.1. 선수
6.1.1. 클럽6.1.2. 대표팀6.1.3.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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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Geogre Grun_Parma_1.jpg

벨기에의 前 축구선수. 80년대 붉은악마 군단를 대표했던 수비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후방에서 영리한 수비력으로 공을 탈취하고 전방으로 볼을 전개하는데 능한 센터백이였으며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다.

3. 클럽 경력

안데를레흐트에서 축구 커리어를 시작했고, 1983년에 구단 역사상 최초의 UEFA 컵 우승[1]과 1984년부터 1987년 사이에는 3번의 벨기에 1부리그 우승을 견인하며 팀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1990년, 벨기에 리그를 평정한 그륀은 파르마에 입단하면서 세리에 A 무대에 진출했고 4시즌간 세리에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나며 코파 이탈리아UEFA컵 위너스컵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1993-94 시즌에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시즌을 마친 뒤 친정팀 안데를레흐트로 복귀한다.

그리고 1996년, 이번에는 레지나로 이적하며 이탈리아 무대로 컴백한다. 오자마자 주전으로 뛰었으나 이미 34살의 노장이였던 그는 노쇠화가 진행된 상태였고, 부진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 결과, 팀도 세리에 B로 강등당하게 됐고 1996-97 시즌이 끝나자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4. 국가대표 경력

1984년 6월 13일, UEFA 유로 1984 조별라운드 1차전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 라이트백으로 선발출전하며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리고 팀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2:0 승리에 기여, 만점짜리 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남은 조별라운드 2경기 모두 선발로 나섰으나 프랑스덴마크에게 연달아 패하며 1차전 승리를 이어가지 못한 채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유로 대회 이후에도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한 그륀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전 경기를 모두 선발로 출전했고, 이웃나라 네덜란드를 상대로 원정에서 치러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득점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

멕시코에서 치러진 월드컵 본선에서는 멕시코와의 개막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경기는 모두 출전하며 당시 월드컵 최고 성적이였던 4위 달성에 큰 기여를 했다.[3]

1991년, 오랜기간 대표팀 주장을 역임한 얀 쾰레만스 대신 이어받으며 1995년까지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5. 은퇴 후

현재는 축구 관련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6. 수상 내역

6.1. 선수

6.1.1. 클럽

6.1.2. 대표팀

6.1.3. 개인



[1] 1년 뒤에도 결승에 진출했으나 이번에는 토트넘에게 패하며 2연속 우승에는 실패했다.[2]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했고 2차전은 1:2로 패했으나 그륀의 원정골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3] 32년 뒤 월드컵에서 후배들이 3위를 달성하며 기록을 경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