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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 팔레스타인 |
1. 개요
튀르키예와 팔레스타인의 대외관계.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에 가입되어 있고 교류, 협력이 활발하다.2. 역사적 관계
2.1. 중세
셀주크 제국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 군대를 격파한 것을 계기로 튀르크인들이 아나톨리아 내륙 지방에 대거 정착하는데, 이렇게 아나톨리아와 레반트 지역에 정착한 튀르크인들이 세운 여러 술탄국들을 과거 로마 영토에 세워진 술탄국들이라는 뜻에서 룸 술탄국이라고 부른다. 룸 술탄국의 팽창으로 위협에 처한 동로마 제국은 서방 가톨릭권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로서 발발한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즉 튀르크인들의 팽창이 중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일어난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십자군 전쟁 발발 당시 룸 술탄국들은 여러 술탄들 아래 서로 분열되어 서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었고, 1차 십자군 전쟁 당시 십자군 세력은 이러한 분열상을 이용하여 현지 무슬림 술탄국들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포함한 여러 거점도시들을 함락시킨 후 여러 십자군 국가들을 건설하였다.
한세기 넘게 유지되던 십자군 국가들은 튀르크계와 체르케스계 노예 군인 이른바 맘루크들이 주축이 된 맘루크 왕조의 공격을 받아 붕괴되었다. 아랍 무슬림들은 맘루크들이 십자군의 축출하고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을 격파한 것을 환영하였으나, 외부의 위협이 약해진 이후 맘루크 왕조의 지배층 맘루크들과 아랍인 신민들과 민족적, 문화적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튀르크인들은 본래 텡그리 신앙 등을 믿던 상황에서 이슬람 수피즘에 감화되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연유로 정통 순니 이슬람을 추종하는 아랍인 지식인들과 갈등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이집트 일대는 중세 아랍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아랍 우월주의를 가진 아랍인 신민들과 수피즘을 추종하는 튀르크계 위정자들 사이의 갈등의 소지가 컸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리아의 한발리파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는 튀르크인 위정자들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수피즘 관광사업화하는 것을 두고 "예루살렘 방문은 경건한 방문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뿐, 예루살렘 방문을 메카나 메디나를 순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며 비판했다가 감옥에서 옥사하였던 바 있으며, 맘루크 왕조는 아랍인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아랍인들이 말을 타고 갑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2.2. 근세
16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것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은 현지 아랍인들의 반튀르크 감정 등을 고려하여, 해당 지역 내정은 현지 아랍인 지역유지들의 자치에 맡기는 편이었다.다른 한편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성지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와 메디나의 성지순례 루트를 관리하는 것 외에도 예루살렘을 새로 정비, 관리하는데 공을 쏟았다. 무슬림 구역과 유대인 구역, 기독교인 구역 및 아르메니아인 구역과 모로코인 구역 등으로 나뉜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는 쉴레이만 대제 시절에 구획, 정비된 것이다.
2.3.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19세기 후반 아랍인 지식인층 사이에서는 당시 아랍-이슬람권이 서구 제국주의에 침탈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튀르크인들의 지배에 있다는 반튀르크 감정이 번져나가는데 이를 오늘날 팔레스타인 내셔널리즘의 기원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2.4. 20세기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후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튀르키예는 이스라엘과 외교를 맺었으나 훗날 1975년 PLO와도 공식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1988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들어서자 이들을 인정하고 이들과의 교류도 있었으며 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도 승인했었다.2.5. 21세기
2013년 초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선언하자 튀르키예와 팔레스타인은 서로 외교를 맺게 되었다.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 정권은 카타르 등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데, 이를 두고 이스라엘은 이슬람주의 포퓰리즘 프로파간다라고 비판하기도 한다.20세기까지만 해도 튀르키예에서는 반이스라엘 감정 및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 여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었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 및 유럽 난민 사태 등으로 유입된 아랍인 난민들로 튀르키예의 경제와 사회가 없지않아 혼란에 빠진 점이나, 에르도안 정권이 튀르키예의 세속주의를 무너트리고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모습이 마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연상시킨다는 불안감이 더해져서 튀르키예인들 중 팔레스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국가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 냉랭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와 달리 그나마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서방국가들에게 어필해줄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 당장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준 도널드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에 팔레스타인이 죽던 말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좋은 생각이라며 박수나 칠때#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뺏아서 이스라엘에게 넘겨줄 계획이나고 거세게 반발한 국가중 하나가 튀르키예이다.##
3. 상호 교류
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있다.일부 팔레스타인인 난민들은 튀르키예로 이민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