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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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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시리즈 역대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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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윤제 김재준 최택
<colbgcolor=#b9ac75><colcolor=#fff> 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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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사진(스포일러) ]
파일:external/s11.postimg.org/123-1.jpg
배우: 박보검 (아역: 이승준) (중년: 김주혁)
이름 최택 (Choi Taek)
출생 1971년 10월 8일[1]
(1988년 당시 18세, 2015년 기준 45세)
경상남도 김해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아버지 최무성, 어머니 ○민자[2]
배우자 성덕선
자녀 2명 이상[3]
학력 중학교 (졸업)[4]
별명 희동이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

골목 금은방 ‘봉황당’집 외동아들.
바둑계의 돌부처로 불리는, 대한민국 국보급 바둑기사다.

11살에 프로에 입단, 13살에 세계최연소 타이틀 획득 이후, 88년 현재까지 바둑 랭킹 1위, 상금 1위의 자리를 지키며, 최고의 바둑천재로 불린다.

불과 15세의 나이에 스승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바둑계의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타고난 천재성과 무서운 집중력, 가혹하리만큼 자신을 채찍질하는 피나는 노력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의 고수들을 꺾으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바둑의 신으로 불리는 택. 하지만 쌍문동에선, 신 보단... 등신에 가깝다.
목소리 듣기가 힘들 만큼 말수가 적고, 멍하니 넋 놓고 있느라, 혼자 뒷북치기 일쑤다. 라면도 못 끓여, 신발끈도 못 묶어... 할 줄 아는 거라곤 오직 바둑 뿐이니... 골목 이웃들에겐 언제나 돌봐주고 챙겨줘야 할 고길동 아저씨네 희동이로 불린다.

친구라고는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온, 정환, 선우, 동룡, 덕선. 네 사람 뿐이다.
대회 상금을 받아올 때마다, 한턱 쏘라고 조르고,
해외로 대국을 갈 땐 양주 한병 사오라며 항상 택을 귀찮게 한다.
그래도 언제나 형처럼, 누나처럼 택의 곁을 지키는 그들이 있어
외롭고 아픈 마음을 웃음과 행복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

바둑판 앞에 앉았을 때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아무 감정 없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황무지 같았던 그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사람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처음으로, 바둑판이 아닌 그녀가 사는 진짜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어졌다.


1. 개요2. 작중 행적3. 여담
3.1. 이창호 九단과의 비교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img.lifestyler.co.kr/1R9DJN6GPKJDW8HX5B36.jpg
파일:응팔 최택.gif
<rowcolor=#000> 1988년 1994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남주인공.

프로 六단(1988년 당시). 바둑계의 돌부처로 불리는, 대한민국 국보급 바둑기사다. 덕선이나 친구들이 부르는 별명은 희동이천연기념물. 어른들 사이에선 일명 최 사범이라고 불린다. 11살에 프로에 입단, 13살에 최연소 타이틀 획득 이후, 1988년 현재까지 바둑 랭킹 1위, 상금 1위의 자리를 지키며, 국내 최고의 바둑천재로 불린다.

별명이나 약력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바둑계의 전설로 유명한 프로바둑기사 이창호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성을 보면 단순한 모티브라기 보단 거의 이름과 배경만 바꿔서 옮겨놓은 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 자세한 것은 이창호 문서의 맨 하단 참조.

진지한 목소리와 더불어서 밖에서는 천재 바둑기사이며 중국에서는 거의 신급의 대접을 받는다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한낱 등신인 일종의 갭 모에 캐릭터다. 매사에 늘 어리바리한 면모를 보이면서 그야말로 바둑 빼면 남는 게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심각히 세상물정에 어둡고 어리숙하다.[5] 심지어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해서 깍두기를 집느라 애쓰는 걸 보다 못한 동룡이 대신 집어주고 덕선이는 그가 이빨로 낑낑대던 요플레를 따준다. 방에 패미컴까지 있는데도 워크맨이나 심지어는 플러그같은 간단한 기계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룬다. 거기다 1994년 성인이 돼서도 주차를 제대로 못하고 거기다 마흔이 넘은 현재에도 과자 깡통을 따지 못해서 덕선이 따준다.[6] 동네친구인 쌍문동 친구들도 가끔 그 어리바리한 면을 갖고 반쯤 장난으로 놀려대지만 쌍문동 친구들 사이에서도 왠지 지켜줘야 하는 친구 취급을 받는지 전부 택이를 조금씩 챙겨준다. 심지어 덕선의 친구들을 한 번씩 다 갈궈본 성보라마저 친구들의 쉴드로 인해 택이를 쉽게 갈구지 못했다.

이렇듯 어수룩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정다감하고 누구든지 배려하는 선량한 캐릭터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아 말수도 적고, 쉽게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으며 시종일관 시끄럽고 요란한 쌍문동 친구들에 비해 진중하고 성숙한 면모를 보인다. 일찍이 친구들과는 달리 어른의 세계에서 살았던 만큼 감정을 억누르고 자제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있는데다가 바둑기사 특유의 예민함도 있어서 항시 불면증 약과 두통약을 달고 사는 중.

별명은 희동이인데, 아버지 최무성의 별명이 고길동이라서 그런 듯하다.[7] 사실은 동룡을 필두로 한 친구들이 이분 방에 얹혀살다시피하는 포지션 때문에 그렇다. 친구들이 가끔씩 별명을 불러준다.

2. 작중 행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최택/작중 행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여담


응답하라 시리즈의 다른 들과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3.1. 이창호 九단과의 비교

작중에서 행적을 보면 이창호 九단을 오마쥬한 캐릭터임을 알 수가 있다.

유사성

파일:external/i2.imgtong.com/e4f34e64caab3017f64143d48eae3d59_bx7aUdtv4412OzTJrFNn8pSIOcXpn.jpg
파일:lYVtkOC.jpg


파일:external/pbs.twimg.com/CBqvbu1UoAEcA04.jpg

차이점


[1] 7화에서 공개되었다[2] 극중 이름만 언급된다.[3] 19화에서 "요즘은 썸타다가 한쪽이 고백을 해야 연인이 된다는 것을 애들한테 들었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 자녀가 2명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4] 모티브가 된 이창호는 고졸이다.[5] 이는 어려서부터 올림픽 또는 프로 진출만 바라보고 운동에만 올인하는 운동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입단 실패한 미생의 장그래도 사회생활 초년생으로 나오는데 고졸에 낙하산으로 설정되었다. 사실 장그래같은 케이스는 실제로는 입사하기 매우 힘들다고 한다. 드라마니 어느정도 극적인 장치를 보여주는 케이스.[6] 실제로, 이창호 九단도 아직까지 신발끈을 맬 줄 모른다. #[7] 겹사돈 암시이기도 하다. 희동이는 고길동의 여동생과 아내의 남동생 사이에 태어난 아이다. 극중 성선우과 의붓형제가 되면서 성자매와 겹사돈이 된다.[8] 장면 도중에 방에 홀로 있는 어린 최택의 모습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의미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어머니의 부재를 겪은 최택은 쌍문동으로 이사오면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바둑을 알게 되었으며, 첫사랑을 만나 사랑을 이루는 등,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최택을 '골목이 키운 아이'라고도 한다. 최택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부재감이 골목 이웃들과의 유대를 통해서 극복된 것처럼.[9] 팬들 사이의 가설 중에는 택이가 남편 후보에서 탈락할 경우, 남편의 라이벌도 다른 사람과 짝지어주는 것을 간단히라도 보여준 전작들의 사례를 보면 택이도 솔로로 남겨두지만은 않을 거니 모델인 이창호 九단을 따라 11살 연하와 결혼하되, 진주의 친구라는 설정을 덧붙일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10]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각성제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메스암페타민 구해다 먹고 공부해서 교수 되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시절이기도 하고. 당시에 특별한 과외나 학원 등이 표면적으로라도 금지된 시절 잠을 줄이고 무작정 공부시간을 늘리는 것이 왕도로 잡혀 있었다. 따라서 많은 고3들이 약물에 의존하고 4당5락, 3당4락이란 말이 유행했다. 당시 약국에서 팔던 것은 '타이밍'이라 불리던 카페인 성분이 든 각성제였는데, 90년대 초반까지도 처방전 없이 이러한 약품을 약국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보다 못한 약국 주인이 신문에 이런 현상을 걱정하는 글을 기고할 정도였다.[11] 약의 제형에 대해서는 아직도 추측이 무성하다. 과거에는 타정기술이 널리 보급되지 않아 가루약도 제법 유통되었기 때문. 실제로 시골에서는 아직도 두통약='뇌신' (천혜당에서 나온 백색 가루형 진통제)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고, 약국에서도 팔리고 있다. 하지만 아스피린이나 게보린 등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꼭 가루약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12] 7, 8화가 덕선이보다 보라의 남편찾기 쪽에 더 기울어진 편이긴 하다.[13] 결국 남편은 택이었다![14] 준희의 경우 빼박 게이가 맞고 빙그레의 경우 바이 내지는 퀘스쳐너리로 볼 소지가 많다.[15] 마오타이주 시음날 등 선우 팔짱을 끼고 있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16] 실제 박보검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다.[17] 그런데 정환이가 공군에 들어가면서 공군은 담배를 금한다는 이야기가 퍼져 택이가 남편일 가능성이 올라가는 듯했으나 사실 공군이 전체적으로 금연을 시행한 건 2013년부터이다. 전 참모총장의 정책 중 하나로 한 때 흡연하면 조종사 못 한다는 말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현대 2015년에 정환의 나이를 고려해본다면 실제로 조종사를 한다기보다는 그 위에서 조종 관련 통제를 하는 직위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흡연과 남편 가능성은 딱히 관계가 없다고 본다.[18] 택의 고향은 경상남도 김해, 덕선의 고향은 서울 추정.[19] 윤윤제쓰레기와 고향이 같다.[20] 경상남도 김해 출신이지만 아주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와 살아서인지 서울말을 쓴다.[21] 응답하라 시리즈 역대 남편들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역대 남편들의 출생지를 보면 응칠=부산, 응사=마산이다. 다만, 전작의 경우도 집에서는 사투리를 쓰지만 밖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는 서울말을 쓴다.[22] 엄밀히 따지면 택이도 김해 출신이라 경상도 출신이긴 하나 어렸을 때 이사해서 태어난 곳만 경상도인 서울 사람이다.[23] 쓰레기는 형이 두명, 윤윤제는 형이 한명 있다.[24] 쌍문동 5인방 중에서도 유일하게 외동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재혼으로 선우진주가 의붓형제가 되었다.[25] 윤윤제는 서울대 법대 출신, 쓰레기는 연세대 의대 출신이다.[26] 윤윤재는 윤재, 쓰레기의 본명은 김재준 재준이다. 반면에 최택은 택 외자이다.[27] 윤태웅이 현재는 기업가 출신의 대통령 후보, 칠봉이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국보급 투수인 것처럼 역대 남편들의 라이벌이 가지고 있던 특징을 남편인 택이가 가져왔다.[28] 사실 이창호 9단은 10대 시절에는 편안한 옷을 많이 입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장을 많이 입는다. 일본은 주로 넥타이까지 풀로 해서 입는데, 한국과 중국은 넥타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29] 이창호는 만 9살 때부터 조훈현 집에서 내제자로 들어가 살았다.[30] 국회의원들이 이창호를 군대에 보낼 수 없다고 해서 규정을 새로 만들어가며 4주 훈련 이후 바둑을 둘 수 있게 해준 상황이었다.[31] 1위는 9살에 프로 입단한 조훈현 九단.[32] 다만, 90년에는 국제기전 성적을 공식대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즉 41연승은 국내기전 한정이라는 뜻.[33] 이게 어느정도로 대단하다면, 1995년도에 홍명보가 연봉 1억을 넘겼고, 1999년 당시에 김병지, 이상민이 연봉 2억2천원을 벌었다. 프로야구는 2000년에 정민태가 3억1천, 홈런왕 이승엽이 3억을 기록했다. 지금은 프로야구 선수가 FA(이대호, 김현수, 양의지 등)도 있고 해서 더 잘벌지만 이창호 전성기때는 한해 상금으로만 9억을 벌었으니, 대단하다고 봐야 한다. 이창호 말고도 조훈현, 유창혁도 그당시엔 세계대회 우승을 해서 많이 벌었다. 그러니깐, 1990년대는 상위권 프로기사는 웬만한 국내 프로스포츠 선수보다도 잘 번 시기다.[34] 물론, 어렸을 때부터 바둑 승부를 하다 보니 학교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참고로, 1년 후배가 조성환이고 2년 후배가 장성호다. KBS 이광용 아나운서랑 동창이다. 김명민, 이휘재는 3년 선배.[35] 이창호의 아버지는 2023년 5월 6일 별세했다.[36] 이창호급 바둑기사 중에 흡연자로 유명했던 사람은 조훈현 9단과 이세돌 9단이다. 90년대까진 대국장에서 흡연이 허용되어서 비흡연자들이 대국을 할 때 상당히 힘들었다고 한다. 조훈현 9단은 제자 이창호와 대국 할때 장미를 5갑씩 피워대기도 했다. 한국기원이 2001년부터 대국장 내에서 전면 금연을 추진하면서 현재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중국 커제 9단도 흡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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