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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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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역사
3.1. 근대 이전
3.1.1. 예외의 경우
3.2. 근대3.3. 현대
4.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진형 목록5. 관련 문서

1. 개요

진형(, formation)이란 군사들이 모여 진을 친 형태를 뜻하는 말이다. 부대의 병력을 배치하고 부대의 진형을 짜는 방법은 진법이라고 부른다. 현대 군사용어로는 진형보다는 대형(隊形)이 더 일반적으로 쓰인다.[1]

2. 내용

문명이 생겨난 이후, 일정 궤도에 오른 대부분의 문명권들은 타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진형과 진법을 거의 필수적으로 익히고 싸웠다. 문명 수준이 발달하지 않은 부족이나 소규모 국가들은 진형을 통한 집단전투보다는 개인의 무용에 의존하는 전투를 하기도 했으나, 세력이 커지고 문명 수준이 어느 정도 발달하면 이들도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진형을 통한 전투를 추구하게 되었다.

진형의 목적은 방어다. 많은 숫자로 적은 수의 적과 싸울수록 이길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는건 상식이다. 그러니 최대한 퍼져서 적을 포위공격 할수록 이길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는 적도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포위하기 위해 갖은 수를 동원하고, 너무 무리하게 포위를 시도하다 대열이 돌파당하는 순간 오히려 양쪽으로 분할되어 반대로 포위당하는 모양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에 대한 대처 역시 중요하다. 겉으로 보기엔 비효율적인것 같아 보여도 실제론 당대 지휘관들의 굉장히 합리적인 사상이 깃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병 돌격의 경우 그냥 일렬 대형으로 쭉 늘어서서 돌격하는 편이 순간 충격도 가장 크겠으나 대형의 끝은 측면을 보호해주는 자가 전혀 없고, 종심이 얇기 때문에 백병전 도충 측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거나 중앙에 위치한 아군이 쓰러져 적이 뒤로 침투하는 순간 앞뒤로 공격을 받고 전멸한다. 하지만 쐐기 대형의 경우 보호해줄 아군이 없는 가장자리에 위치한 아군은 가장 늦게 교전을 시작하기 때문에 측면 공격을 당한다고 해도 비교적 그 공격을 늦출 수 있고, 종심이 두터워 중앙의 기병이 죽어도 돌파당하지 않고 즉시 뒤의 기병이 대신하여 백병전을 치르기 때문에 적이 쉽사리 뒤로 침투할 수 없다. 다른 예시로, 일렬(l)로 포진한 적을 상대로 일(一)자로 돌격할 경우 돌파에 실패한다면 적에게 디귿자 모양으로 포위당해 선두는 뒤따라온 아군이 오히려 장애물이 되어 퇴각할 수가 없다. 하지만 평행사변형 꼴로 뱀의 꼬리를 물듯이 대열을 아루어 돌격한다면 선두가 돌파에 실패하더라도 그즉시 시옷자 모양으로 선두위 뒤를 후발대들이 보호해주며 퇴각할 수가 있다.

냉병기가 차츰 화기로 대체되고, 병사 개개인의 화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근대 이후의 전투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진형의 역할은 상당히 퇴색되었다. 진형은 필연적으로 진형 내 병사간의 높은 밀집도를 전제하는데, 개인의 화력이 강력해진 근대 이후에 이러한 밀집 진형은 오히려 적에게 있어 이러한 화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화기가 출현한 근세 이후에는 기존의 밀집도 높은 형태의 진형보다는 얇고 산개된 형태의 진형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개인화기의 발달이 진행될수록 진형의 밀집도는 낮아지는 상호 반비례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밀집진형은 유탄 한 방에 쓸려나가기 위한 자살행위로 보아 철저하게 지양하게 되었으며, 다만 주무장인 총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화력 집중과 사주경계, 유탄과 기관총 등의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느슨한 진형이 고안되었다.

근대 이전, 특히 창, 칼 따위의 냉병기를 통한 전투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형과 진형을 통한 전투를 가장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극에서는 이러한 진형을 짜고 싸우는 전투의 묘사가 사실상 없다시피하며, 회전이든 소규모 전투이든 진형 없이 양측 군대가 엉겨서 싸우는 난전만이 벌어짐은 물론 심지어는 그냥 주인공 장수의 무협활극 원맨쇼로 끝나기도 한다. 때문에 실제 당대 전투의 양상을 사극으로 이해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일단 진형이 유지된 상태에서의 전투 양상은 템포가 상당히 느리고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지루하며[2][3] 다른 한편으로는 병사로서 기용되는 엑스트라들을 진형을 재현하기 위해 별도로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한 시간과 비용 또한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거의 모든 국내 사극에선 진형의 존재를 사실상 무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인지라, 당대 전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진형의 존재를 시청자들은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3. 역사

3.1. 근대 이전

전근대 전투의 알파이자 오메가. 사실상 근대 이전의 전투는 전투에 참여한 양 측의 각 부대가 얼마나 진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갈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이는 특히 대규모의 군대가 맞부딪히는 회전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진형이 무너진 부대는 통제가 불가능하고, 거의 100%의 확률로 그 부대의 병사들은 모랄빵이 터져 전력 외가 되어버리며, 옆 부대가 무너지는걸 본 인근의 다른 아군 부대의 사기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전투에 있어서는 지휘관의 전술적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한 축이 사실상 사라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형 하나 때문에 전황 전체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 셈이다.

당대 전투에서 진형을 이룬다는 것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난전을 위시한 개인 전투와 비교했을 때 매우 많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 간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꼭 진형이 존재해야만 나타나는 효과는 아니지만, 진형이란 하나의 군대가 여러 번의 전투에서 항시 훈련받고 계획한 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전투 이외의 상황에서도 병사들을 하나의 부대라는 이름 하에 생활하도록 하고, 전투 시에는 이러한 병사들이 같은 부대에 소속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토대로 진형이라는 실질적인 단위를 통해 인지시킨다. 즉, 병사들의 공포감을 상쇄시키고, 사기 진작에 큰 효과를 가져온다. 나아가, 국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징집된 병사들 또한 서로간의 면식이 없는 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형의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여러 명의 병사들이 밀집해 한 몸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과 비교해 지휘관의 통제와 명령 수행이 매우 용이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병사들의 묶음은 굉장한 질량의 상승 효과를 갖는다. 개인 간의 전투에서도 어느 한 쪽의 질량은 전투력에 상당한 보너스로 작용하는데, 여럿이 밀집해서 나타난 질량의 상승 효과는 빈약한 진형을 갖추었거나 아예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강력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진형을 이루게 되면 진형을 이루고 있는 병사 개개인은 좌우와 후면을 아군 병사들이 메우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오로지 전방의 적만을 상대할 수 있어 상당히 안전하게 싸울 수 있다. 즉, 병사들의 전투력과 안전성, 사기 진작과 통제의 용이함을 모두 갖도록 하는 것이 진형의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근대 전투의 주요 목표는 바로 적의 진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진형을 무너뜨리기 위한 여러 수단이 고안되었는데, 대체로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서 진형의 사각을 공격해 무너뜨리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고전적인 팔랑크스 방진은 기병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발빠른 군단병들이 틈이 생긴 곳으로 돌진하여 포위하는 것만으로도 무너졌다. 팔랑크스 방진이 도태된 이후에는 기병이 포위 역할을 맡았다. 망치와 모루가 기병의 기동력을 이용한 기본적인 포위 전술이다. 기병의 강력함은 기동력을 이용해 적의 진형을 돌파하고 포위하는 것에 있었다.

전근대 전쟁에서 진형의 특징은 당대의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 간의 사상자 차이가 유독 큰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는데, 일단 당대의 전투는 갑옷과 방패 등으로 무장하고 밀집된 진형에서 제한된 움직임만으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전투 중에는 사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정면에서 적과 마주치는 경우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려 들기 때문에 어지간한 무장이나 전투력 차이로는 쉽게 적병 하나하나를 사살하기 어렵고, 양측의 전의가 충만하다면 이런 교착 상태는 쉽게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4] 그러나 사기 저하로 인해 진형이 무너지고 한 쪽이 패주하는 순간, 싸움은 전의를 갖춘 양측의 동등한 싸움이 아닌, 저항 의지를 상실한 한쪽을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살육하는 양상이 되며, 패주하는 쪽의 갑옷이나 방패 등의 무장은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된다.그냥 토탈워 시리즈 좀 해보면 알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대의 군대에게 후퇴나 패주는 가장 피해야 할 상황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를 막기 위해 함부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니는 자는 대부분 사형에 처해지는 엄격한 군율이 적용되었다. 마찬가지로 함부로 진형에서 이탈하거나 끼어들어서 진형을 흐트러지게 한 자는 대부분 사형에 처했다.[5]

3.1.1. 예외의 경우

이처럼 진형은 전근대 전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진형이라는 것이 당시 전투를 치르던 군대에게 지켜졌던 것은 아니다. 물론 진형이 전투 중에 무너져 난전이 되어버리거나 패주하게 되는 경우에도 진형이 없는 전투가 되곤 하지만, 정상적인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도 진형이 존재하지 않는 전투를 치르는 경우는 상당히 많았다.

가장 흔한 경우라면 군사 문화나 전술적으로 발전이 더디며 군대 자체가 하나의 집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다수의 부족이나 마을 등에서 징집된, 훈련도가 낮은 오합지졸이거나 전술적으로 열악한 상태일 경우이다. 진형이라는 것은 원래 충분한 훈련과 특정 진형을 이루는 목적을 숙지함으로서 때에 맞게 이루어야 하는 것인데, 이처럼 진형의 개념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훈련을 통해 이를 실행에 옮길 역량이 되지 않는 경우 진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가 없다. 필연적으로 이 경우 난전으로 이어지거나 개인의 무용에 의존하는 전투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군대의 경우 진형을 철저히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군율이나 전술적 능력이 뛰어난 군대를 상대할 경우 높은 확률로 손쉽게 패퇴하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는 급히 징집된 징집병이나 문명 수준이 낮고 중앙집권정도 또한 낮은 부족국가들의 군대이다.

다른 경우는, 환경적으로 진형을 이루기 까다로운 전장에서 전투를 벌일 경우이다. 원래 진형은 소수의 병력으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고, 대개의 경우 다수의 인원이 모여서 이루어야 큰 효과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진형을 이루기 가장 좋은 환경은 평지나 적어도 지형의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지역에서의 대규모 회전이다. 특히 팔랑크스와 같이 빽빽하고 빈틈없는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진형의 경우 이런 지형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평야에서의 전투가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진형이 깨지기 일쑤였다. 따라서 평지가 아닌 숲이나 산지 등에서 전투가 벌어질 경우 진형을 이루고 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높은 확률로 난전이 벌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상대적으로 전력이나 훈련도가 부실해 게릴라를 추구하는 군대는 평지에서 싸우기보다는 산지나 숲 등에 틀어박혀 적을 유인한 뒤 진형을 이루지 못하는 적의 헛점을 노리는 방법을 많이 썼으며, 이러한 지형에서는 적에게 발각되지 않게 매복전을 펼치기에도 용이했다.[6]

또 다른 진형이 존재하지 않는 전투는 공성전이다. 공성전의 경우 대개 성벽을 사이에 두고 기어오르는 공격군과 수비하는 방어군 간의 대결이 주된 전투 양상이 되며, 이 경우 사다리나 공성탑 등을 타고 기어오르는 공격군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자기 위치를 사수하고 적을 맞아야 하는 수비군 모두 진형을 만들 겨를이 없다. 성벽 위는 평지에 비해 매우 좁아 진형을 이루기도 마땅찮고, 특히 공격군의 경우 진형에 가장 적합한 무기인 을 들고 성벽을 오른다는 것은 몹시 어렵고 쓸모도 없기 때문에 다른 무기를 사용하게 되는 것도 진형을 이루는 전투를 하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성벽이 무너지거나 성문이 뚫리면서 직접적으로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경우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성문이나 무너진 성벽을 통해 싸우게 될 경우 좁은 통로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높은 밀집도와 좁은 전장으로 인해 난전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3.2. 근대

총기가 보급된 근대 이후에도 진형은 한동안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초기의 총기는 그저 쇠뇌의 강화판 정도의 위상에 불과했으며 현대와 같이 뛰어난 화력을 가진 자동소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화력은 제한되어 있었고, 냉병기와 비교했을 때 화력 자체는 크게 나을 것이 없었다. 게다가 근대에도 무전기 등의 통신 수단이 갖추어지기 전까지는 산개된 병사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고, 민족주의와 의무교육 등의 제도적 통합 수단도 충분히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형을 철저히 통제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하고 소속감을 높이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총기 보급 이후 진형의 밀집도는 대체로 총기의 발달 수준과 반비례했다고 보면 된다. 총기의 화력이 매우 낮았으며 무게또한 무거웠던 화승총 시기에는 총기를 든 보병은 근접보병 등과 연계해서 운용해야 했고, 이 때문에 총병이 지속적으로 화력을 발휘하고, 이를 적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파이크를 든 병사들과의 연계가 요점인 테르시오가 초기 근세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후 대포와 총기의 화력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17세기부터 테르시오와 장창병은 차츰 사라지고 오로지 머스킷을 든 보병만 운용하는 전열보병 시대가 19세기까지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부족한 총기의 화력을 보완하고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일렬로 선 대형을 유지하고 일제 사격을 통한 화망 구축을 주 전술로 삼았다. 당대에도 소총을 주력으로 하여 밀집진형을 이루지 않는 경보병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전장의 주역은 아니었으며 소규모 게릴라 수준으로 운용되었을 뿐, 대규모 전투에서 큰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병종은 아니었다. 이후 머스킷에 이어 후장식 소총, 볼트액션 소총 등이 등장했던 19세기 말에 이르면 강해진 화력에 의한 사상자 수를 줄이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느슨해진 진형이 만들어졌지만, 진형의 존재는 여전했고 가치도 유효했다.

전근대적 개념의 진형이 전쟁에서 완전히 사라진 계기는 대체로 제1 차 세계대전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는 볼트액션 소총이 보병의 제식 무기로 자리잡아 개개인의 화력이 크게 증대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참호전과 더불어 기관총의 존재로 인해 전열을 이루고 돌격하는 기존의 전열보병 방식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연하지만 기존의 어느 총기보다도 압도적인 연사력을 가진 기관총 앞에서 똘똘 뭉친 진형을 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고, 여기에 보병의 돌격을 방해하는 철조망이나 참호의 존재는 더 이상 기존의 진형이 전장에서 통하지 않는 전술임을 명확히 일깨워주었다. 여전히 구시대적 전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지휘관들에 의해 병사들이 떼로 죽어나가는 과도기적 현상이 간간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전근대적 진형은 완전히 사라지며 현대적인 개념의 진형으로 대체된다.

3.3. 현대

냉병기 시대의 밀집진형과 다를 뿐, 소부대 전술에서의 진형의 중요도는 현대전에서도 여전하다. 진형의 성격에 따라 소부대 지휘관, 무전병, 자동화기사수, 유탄수, 일반 소총수를 어디에 배치하느냐, 누가 어느 방향을 보느냐(사주경계)도 화기 시대 진형의 중요한 요소. 보병 뿐만 아니라 차량, 선박, 항공기 역시 진형을 이용해 단독 유닛에게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있다.

정말 특수한 상황(특수전 등)이 아니면 부대내 최고 화력을 가진 무기(보통은 포병)의 사정거리 내에서 진형을 짜야 한다. 진형 끝이라 아군 병력의 밀도가 낮다고 판단, 공격을 개시한 적군에게 팔하나를 선물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내전에서도 대형의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방과 통로, 장애물로 가득 들어찬 실내는 코너 하나를 돌아가고 방에 돌입할 때마다 적의 매복이 있을 수 있기에, 돌입 순서, 각자 사주경계하는 방향을 더더욱 신경써야 한다. SWAT 실내전 전술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4.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진형 목록

5. 관련 문서



[1] '24. 2. 11. 기준 국방일보에 사용된 '대형'은 9,854건, '진형'은 148건으로 대형을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2] 전근대 전투 대부분의 사상자는 전투를 치를 때가 아닌 한쪽의 군대가 무너져 패주할 때 나온다. 즉 진형이 유지된 상황에선 굉장히 적게 나온다는 것이다. 진행이 느릴 수밖에 없다.[3] 심지어 전투중에도 국지적으로 어느 한쪽이 밀려서 물러나거나 상호간에 잠시 물러설(눈치싸움) 경우 진형을 재정비하고 예비대와 교체해 다시 붙기도 했다.[4] 이 때문에 갑옷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갑옷이 있다면 최소한 진형이 유지된 상태에서의 싸움 중에는 사상자가 적게 나오지만, 갑옷을 입지 않는다면 이 상태에서도 사상자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5] 주위상은 싸우기 전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면 후퇴하는 것이다.[6] 이것이 가장 제대로 들어간 사례가 사비스 전투이다. 다만 이 경우는 예상외로 상대인 로마군이 난전에서도 강했기 때문에 이기지는 못했지만...[a] 이건 사람이나 전투기와는 달리 군함의 화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방향은 함선의 진행방향과 수직인 방향이기 때문이다. 다만 함포 대신 미사일이 군함의 주무장으로 사용되게 된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부터는 진행방향과 수평인 방향에서 군함의 화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범선시대의 전열함이나 거함거포시대의 전함 같은 경우는 함포의 일제사격을 위해서 함선의 측면이 적을 향하게 해야 화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었지만, 미사일을 주무장으로 사용하는 오늘날의 군함들은 냉전 무렵 소련 해군의 함선들처럼 반대로 함선의 정면이 적을 향하게 해야 화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경우도 종종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다. 근래에는 VLS에 주로 의존하여 미사일을 운용하기에 아예 함선의 방향과는 상관 없이 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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