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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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
<colbgcolor=#000><colcolor=#fff> 존 윌크스 부스 John Wilkes Booth | |
이명 | J.B. 윌크스 J.B. Wilkes |
출생 | 1838년 5월 10일 |
미국 메릴랜드 주 하퍼드 카운티 벨 에어 | |
사망 | 1865년 4월 26일 (향년 26세) |
미국 버지니아 주 포트 로열 | |
직업 | 배우 |
활동 | 1855년 ~ 1865년 |
가족 | 아버지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1796 ~ 1852) 어머니 매리 앤 홈즈 부스 (1802 ~ 1885) 형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주니어 (1821 ~ 1883) 형 에드윈 토마스 부스 (1833 ~ 1893) 누나 아시아 프리지아 부스 (1835 ~ 1888) |
종교 | 개신교 (성공회) |
범죄 | 국가 지도자 암살 |
정당 | 미국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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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배우.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한 주범이다.2. 생애
존 윌크스 부스는 미국 메릴랜드 주 벨에어에서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시니어와 그 아내의 셋째 아들로 출생했다. 부스의 아버지는 영국 런던 팬크라스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 가서 부스를 낳은지라 부스는 곧 영국계 미국인 2세가 된다. 부스의 아버지와 두 형, 누나와 매형 모두 유명한 연극인이었는데 따라서 그도 이런 집안의 영향을 받아 배우로 성장했다.1855년 부스는 마침내 첫 연기를 선보이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리처드 3세>라는 연극에 나서게 되면서 배우로써 활동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도 없고, 녹음기도 없는 1850년대에는 사람들(물론 상류층들 기준에서)이 연극을 보며 즐겼다. 그 외에 <햄릿>, <Carte de Visite> 등을 연기하여 큰 인기에 올랐다. 1864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시저> 등을 연기하여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윌크스 부스는 항상 아버지와 두 형의 그늘에 사로잡혀 있었다. 윌크스의 아버지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1796년 ~ 1852년)는 당대 미국 최고의 연극배우였다. 윌크스는 무대 앞에서 말을 더듬고 소심해서 아버지나 두 형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주니어(1821년 ~ 1883년)와 에드윈 부스(1833년 ~ 1893년)에 비해 연기실력이 떨어졌다는 평을 받았고 그 결과 열등감이 쌓였다. 특히 에드윈 부스는 19세기 최고의 햄릿으로 여겨지고 있다.[1]
그러던 중 1861년 미국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노예제의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남부의 탈퇴를 영웅적 행동이라며 칭송했다. 그러나 전세는 막바지에 들어 북부의 우세로 기울었고 결국 전쟁은 1865년 북부의 승전으로 끝났다. 본래 부스는 링컨을 납치해 항복을 받아내거나 남부군 포로와 교환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남부가 항복해버리는 바람에 계획으로만 끝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이후 링컨이 의회에서 흑인 남성의 참정권 보장에 관한 발언을 하자 부스는 6명의 남부연합 지지자들과 함께 링컨의 암살을 논의하였고, 1865년 4월 14일 대통령의 암살을 결행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링컨 대통령은 포드 극장에서 <우리 미국인 사촌>이라는 연극을 영부인과 함께 관람했다. 오후 10시 15분 부스는 조용히 링컨이 관람 중이던 귀빈석으로 걸어갔다.
그 자리에서 부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머리에 총을 쏘고 무대로 뛰어들어 라틴어로 연설하고 도망쳤다.[2]
폭군은 언제나 이렇게 될 것이다! (Sic semper tyrannis!)[3]
직후 부스는 미리 준비해 둔 말을 타고 도망쳤다.링컨 대통령은 총을 맞은 직후엔 살아있었지만 곧 상태가 악화되어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메릴랜드의 광활한 숲속에 숨어지내며 연방군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부스는 1865년 4월 24일부터 4월 26일까지 리처드 개럿이라는 농부의 집에 머물렀다. 부스의 정체를 몰랐던 농부는 부스를 손님으로 대접해 주었으나 도피를 도와준 이들을 심문한 수사관들에 의해 4월 26일 도피처가 발각되었다. 출동한 연방군에게 포위된 부스는 항복을 거부하고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총격전을 벌이다가 사살당했다.[4] 사망 당시 부스의 나이는 26살이었다.
3. 가족
- 아버지: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1796 ~ 1852)
- 어머니: 매리 앤 홈즈 (1802 ~ 1885)
- 첫째 형: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 주니어 (1821 ~ 1883)
- 둘째 형: 에드윈 부스 (Edwin Booth, 1833 ~ 1893). 우연찮게도 링컨이 동생에게 암살되기 몇 달 전에 뉴저지에서 기차가 들어오고 있는 선로에 떨어진 링컨의 장남 로버트 토드 링컨 (Robert Todd Lincoln, 1843 ~ 1926)을 끌어올려[5]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 이 인연으로 로버트 링컨에게 감사 편지도 받았으며 링컨이 암살당한 이후로도 부스 일가가 연극계에 복귀할 수 있었다.[6]
- 누나: 아리아 프리지아 부스 (Asia Friggia Booth, 1835 ~ 1888)
4. 암살 공범
- 조지 에체롯 (George Atzerodt, 1835년 6월 12일 ~ 1865년 7월 7일) - 사형.
- 데이비드 헤럴드 (David Harold, 1842년 6월 16일 ~ 1865년 7월 7일) - 사형.
- 루이스 파월 (Lewis Powell, 1844년 4월 22일 ~ 1865년 7월 7일) - 사형.
- 새뮤얼 아놀드 (Samuel Arnold, 1834년 9월 6일 ~ 1906년 9월 21일) - 무기징역.
- 마이클 오래플린 (Michael O'Laughlen, 1840년 6월 3일 ~ 1867년 9월 23일) - 무기징역.
- 매리 수랏 (Mary Surratt, 1820/1823년 ~ 1865년 7월 7일) - 사형. 미합중국 설립 이후 최초의 여성 사형수가 됐다. 다른 암살자들과 친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불고지죄가 있는지에 대해선 이론이 있다. 영화 음모자 문서 참고.
- 존 수랏 (John Surratt, 1844년 4월 13일 ~ 1916년 4월 21일) - 암살 직후 해외로 도주했다가 16개월 만에 잡혀 돌아왔으나 어머니와 달리 군법회의에 소집되지 않았다. 덕분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메리 수랏의 아들.
5. 평가
노예제를 옹호하고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일로 존 부스는 지금도 인종차별주의자로 평가받으며, 존 부스가 링컨을 살해한 바람에 링컨이 준비한 전후 인종차별금지 정책도 취소되고 앤드루 존슨을 비롯한 후임자들의 태업[7]과 삽질이 겹치면서 흑인을 비롯한 미국의 유색인종들은 미국내전이 끝나고 노예제가 금지된지 100년뒤까지도 참정권등의 억압을 받으며 미국시민으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미국은 21세기 지금도 흑백갈등으로 인하여 분열을 겪고있는 만큼 미국에서도 부스의 평가가 나쁘다. 오히려 링컨은 노예해방과 미국 통합의 상징의 순교자가 된 것에 비해 부스는 위대한 순교자를 죽인 인종차별의 상징이 되었다. 링컨을 죽이면서 남긴 말과 달리 지금은 오히려 존 부스가 더 나쁜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미국 극우세력(특히 대안우파) 사이에서는 반대로 존 부스 쪽이 순교자 대접을 받고 있다.6. 창작물에서
- 영화 음모자가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만 암살 공범인 메리 수랏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부스는 조연에 가깝다.
-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도시국가인 컬럼비아에서 성인으로 숭배한다.
[1] 에드윈 부스는 링컨 암살 사건 이후 연극계로 돌아와 커리어를 이어갔지만 평생 링컨 암살범의 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큰 부침을 겪어야 했다. 이런 에드윈 부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훗날 <The Prince of Players>(1955) 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2] 무장한 권총은 퍼커션 캡 방식의 소형 권총이다. #[3]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암살하고 말했다고 알려진 말로 버지니아주의 표어로도 사용되었으며 부스도 암살 직후 버지니아 주로 도망쳤다. 버지니아 주가 이를 표어로 사용한 것은 미국이 왕정국가인 영국의 압제에서 독립했음을 상징하는 의미였다.[4] 당시 북부인들은 남부 사람들은 그놈 편 들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남부에서조차 그를 미치광이로 간주했다. 사실 당연한 게 내전 일으킨 본인들이 연방군의 군정 밑에서 몸 사리고 있는데 대통령을 죽인 살인범을 옹호할 수 있을 리 없다.[5] 기차 타고 있다가 열려있는 문밖으로 떨어졌는데 뒷목 옷깃을 잡아채서 살렸다는 판본도 있다.[6] 사실 미국은 연좌제 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범죄자의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무는 것은 드물다.[7] 링컨의 서거로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의 태업이 제일 심각했는데 링컨 시절 실시된 흑인 복지정책 등을 되돌리고 토지개혁같은 문제도 방기해 흑인들이 다시 남부 농장주들의 밑에서 억압받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 때문에 공화당 급진파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