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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22:23:20

조향숙

<colbgcolor=#f4ecd5><colcolor=#015566> 조향숙
趙香淑 | Jo Hyang Sook
출생 1949년 6월 13일 ([age(1949-06-13)]세)
경상북도 성주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분야 회화 판화
주요작품 To Find Lost Time(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웹사이트 조향숙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조향숙 인스타그램

1. 개요2. 생애3. 년대별 작품영상4. 작품세계 발자취5. 개인전·단체전·미술관소장6. 조향숙 화론(畵論)7.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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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향숙(趙香淑, Jo Hyang Sook, 1949년 6월13일~)은 회화판화를 통해 불교세계관의 정신을 표현하는 대한민국의 화가이다.

2. 생애

파일:2=조향숙 작가 생애=사진제공 조향숙.jpg
(왼쪽부터)성주여자중학교시절로 왼쪽에서 세 번째 조향숙 1963. 대학3학년 미술실기실에서 김창락 교수와 회화과 친구들. 실기실에서 작업 중인 조향숙 1969. 조향숙 작품의 발문을 쓰고 있는 서울정릉 석도륜 선생 작업실 2003. 사진제공=조향숙.
조향숙은 1949년 6월13일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서 아버지 함안 조씨(咸安趙氏) 동계공파(東溪公派) 16세손 조래희(趙來希), 어머니 평산 신씨(平山申氏) 제정공파(齊靖公派) 31세손 신주이(申朱伊)사이에 1녀로 출생했다. 독서를 좋아하셨던 어머니 영향으로 유년의 감성을 키웠고 할머니를 따라 다녔던 사찰벽화에서 충격을 받았다. 대가족시대였던 1950년대 할머니를 비롯하여 삼촌과 숙모 모두 한 집에서 살았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조향숙은 지사초등학교(志士初等學校)를 졸업하고 읍내에 있는 성주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2학년 때 이선희 교생이 와서 처음으로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려 칭찬받았다. 이후 3학년 때 정식으로 이선희 선생이 부임하여 그의 첫 제자가 된다.

고등학교재학시절 일본유학을 한 박인채(朴仁彩), 주경(朱慶)미술선생에게 지도받으며 화가의 큰 꿈을 키워 나갔다. 박인채 선생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967년 수도여자사범대학 미술과에 입학하게 된다. 박인채 선생은 경북성주출신인 김창락(金昌洛)교수와 서로 잘 아는 사이였고 중학시절 스승 이선희 선생은 김창락 교수의 제자로 귀한 3대(代)의 인연을 갖게 된다. 이후 조향숙은 첫 개인전인 1986년 박인채, 석도륜, 김창락, 이선희 네 스승을 한자리에서 조우하는 사랑을 받게 된다.

조향숙은 대학시절 박고석(朴古石), 남관(南寬), 류경채(柳景埰), 김원(金源), 최영림(崔榮林), 손일봉(孫一峰), 이동훈(李東勳), 최덕휴(崔德休), 장리석(張利錫), 이병규(李昞圭), 박래경(朴來卿), 석도륜(昔度輪), 임영방(林英芳)교수 등 일제강점기 일본과 유럽에서 미술공부를 하여 한국현대미술의 초석을 놓은 당대 기라성 같은 화가들에게 다양한 화법과 이론을 배웠다. 특히 조향숙 판화작업의 단초를 제공한 최영림 교수의 판화작품, 김창락 교수에게 서양화, 석도륜 교수에게 한국불교판각과 한국전통불교목판화를 집중사사 받았다. 1974년 동 대학원 석사 졸업했다. 이후 2007년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판화과에 입학하여 임영길(林英吉)교수에게 논문 지도받았고 ‘尋牛圖로 표현된 자아 발견’으로 석사(2009), ‘비의도적 기억을 통해 나타난 시공간 표현:연구작품-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미술학 박사(2013) 학위를 수여받았다.

교육자로서 2011~2017년 사이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미술대학원에서 강사 역임했다. 조향숙은 1977년 반려자 정제택(鄭濟澤,1947~)과 결혼했고 슬하에 2남을 두었다. 2014~17년 한국판화연구회 회장 역임했다. 2022년 (사)한국여성소비자연합주최 ‘제54대 신사임당’상(像)에 선정추대 되었다.

3. 년대별 작품영상

4. 작품세계 발자취

파일:4-1=조향숙 작가 작품세계 발자취=1969-1980, 1971-현재.jpg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서정, 162.2×112.1㎝ oil on canvas 1973(국전 입선작). 옛정, 162.2×130.3㎝ oil on canvas 1976(국전25회 입선작). 석굴암 10대제자상(부분), oil on canvas 1980. 보살상, 모시 위 석채 1983. 뢰차 2002. 충주황룡사벽화, 250×370㎝ 1996~97. 충주황룡사벽화, 250×370㎝ 1996~97. 기원정사, 79×75㎝ 장지에 석채 1993. 비천, 72.7×60.6㎝ oil on canvas 2003. 사진제공=조향숙.
◇한국적 정체성 찾기와 불교미술 첫걸음(1969~1980)=학부시절 김창락 교수의 영향을 받아 서정적인 한국의 풍경을 그렸다. 경주 서출지(書出池) 앞집토담을 타고 오르는 호박꽃을 그리는 등 몇 년 동안 해마다 그곳을 찾아 작품을 제작 했다. 경기양주 장흥면 삼상리에서 초가지붕에 올라 간 박꽃을 그리는 등 유화작업을 통하여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때 작품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에 1969~76년 동안 4차례(18, 22, 23, 25회)입선했다. 이어 경주석굴암 10대 제자 스케치를 통해서 제작하고 경주박물관 내 현장에서 불두작업을 했다. 이러한 경험으로 韓國佛畵硏究(한국불화연구,1973)로 수도여자사범대학 대학원논문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불교미술에 매료되어 일생 화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전통불교목판화와 불교회화의 정신성(1971~현재)=1971년 대학원 때 팔만대장경, 불교도상 등 판각작업을 시작한다. 전각서예에 뛰어난 작품성을 발휘했고 그림에서도 독창적 회화세계를 갖고 있었던 석도륜(昔度輪)교수의 영향이 컸다. 특히 논문이론지도교수로 한국불화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불교회화에 대한 관심을 이끄는 가르침을 받았다. 조향숙은 70년대 중반기 이후 구체화 되고 형상화 된 본격적인 판각작업에 매진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1979년 석도륜(昔度輪)교수를 중심으로 ‘뢰차(Roe Cha)’동인 창립멤버가 된다. 불교정신과 이미지를 담은 판화 및 회화작품에 전념하게 되어 이후 연속적으로 판각작업과 불교회화작업을 발표한다.

목판에 이미지를 제외한 나머지 면들을 소멸(消滅)시켜가는 과정이 선사상(禪思想)과 일치한다하여, 그 담백함을 따르는 작가는 장지와 목판의 강렬하고 단조로운 선을 융합해 동양적인 맛을 우려낸다.[1]” “목판화는 불교라는 당시의 유산을 현재로 옮기는데 적합한 매체이다.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타자에 대한 자신의 상(象)에서 벗어나야 하고, 불행과 행복은 두 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친다.‥이렇게 조향숙의 목판화는 동양사상을 반영한다.[2]

파일:4-2=조향숙 작가 작품세계발자취=1979-현재, 2007-현재.jpg
(위 왼쪽부터)주악천인도, 70×68㎝ 반절, 2000. 지장보살, 60×145㎝ 목판, 2002. 사대보살, 60×145㎝(each) 목판, 2002~200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0×60㎝ 목판, 201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0×60㎝ 목판, 201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0×30㎝, 목판, 2011. (아래) 심우도, 90×60㎝(each) 아크릴 위 실크와 목판, 2008~2009. 사진제공=조향숙.
삼베 등 한국적 재료와 한국전통불교작품(1979~현재)=1985년 일본의 법륭사(法隆寺)와 동대사(東大寺) 등을 답사하고 동경(新井畵廊)과 오사카(三彩工藝店)에서 ‘뢰차’동인초대전을 갖는다. 이때 조향숙은 삼베, 모시, 노방 등 천위에 석채를 사용하고 처음으로 한지를 재료로 작업한 한국전통불교작품을 발표하여 현지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 시기만 해도 조향숙은 서양화, 판각, 한국전통불교작업을 병행하였는데 1986년 ‘동방프라자미술관’에서 불화(佛畫)로만 첫 개인전 열게 된다.

이후 지속적으로 사찰현장에서 스케치하고 촬영하며 여러 자료를 학습하면서 한국불교의 정신적인 맥락을 연결 짓는 것에 탐구하게 된다. 1993년 인도아잔타석굴(Ajanta Caves), 2004년 중국 돈황(敦煌)을 답사하는 등 한국전통불교 작업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한다. 그리고 1990년대 초부터 작업해 온 10대 제자, 천인도, 사대보살 보살상, 비천상 등 한국불교판화를 뢰차 동인전을 통해서 발표하기 시작한다. “여류작가 서급당(西汲當) 조향숙씨의 동방플라자 미술관에서 갖는 첫 개인전에는 주로 불교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을 선보인다. 석탑, 기마도(騎馬圖), 보살상, 단청 등 다양한 세계를 보여 주는 조씨의 작품을 통해 현대와 고전(古典)이 함께 숨 쉬는 동양화의 새로운 전형(典型)을 읽을 수 있다.[3]

◇동·서판화기법의 융합 바렌과 이면 채색법(2007~현재)=2007년 한국전통의 먹과 한지를 주재료로 작업해 오면서 홍익대학교 대학원 판화과에 입학한다. 서양의 판화기법과 한국전통 불화판화와의 접목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이라한 조향숙의 정신성을 존중해 준 임영길(林英吉,1958~)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서양의 세리그래프(Serigraph)기법과 동양의 목판화를 접목시키게 된다. “나의 심우도(尋牛圖)작품은, 대중 속에서 자성을 찾아가는 ‘참 나’의 모습을 한 판 한 판 찍어 겹쳐가는 판화과정에 대입시켰다. 평면적이 아닌 병렬식(竝列式)으로 구성함으로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판화적인 레이어(layer)개념과 합치시켰다.[4]

또 이것은 서로 다른 이미지를 한 작품 속에 배치시킴으로써 동시간성을 표현하는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의 이중적 구조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이 어떤 계기로 현재화 됐을 때, 과거 그대로가 아닌, 과거에 현재가 중첩되면서 이전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의미를 지닌 현재화된 과거를 갖게 되는데, 이것은 데이비드 살르의 ‘거듭 쓴 양피지(palimpsest)’와 의미상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5]

“손에 붓을 든 여인이 등장하는 일련의 판화들에서는 불교의 십우도를 테마로서 도입한다. 여기서 여인이 손에 든 붓은 남성주체의 창을 연상시키며, 이로써 일종의 여성주의의 시각을 반영한다.[6]” “이미지의 구체적 재현으로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동시에 목판과 실크스크린기법의 혼합, 그리고 이등분된 화면구조를 통해 작가는 형이상학의 회화적 표현으로 내용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중구조나 공간의 변화는 우리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물론,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7]

“바렌은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상징성이 큰 판화 용구이다. 머리카락은 인간 삶의 체계에서 여러 의미들을 포함하고 있다. 기억, 정신, 욕망, 인종, 힘의 문제 등에 머리카락이 관여하기도 한다.‥조향숙 작가는 거의 10년에 걸쳐 집요하게 판각하고, 최근에 집중적으로 인출한 것들을 모아 전시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행복한 기억들’연작에서 우리 고유의 목판화기법의 정수들 을 잘 보여주고 있다.[8]

5. 개인전·단체전·미술관소장

△개인전=2020 선화랑, 2017 유나이티드갤러리, 2016 한옥갤러리, 2015 예술의전당-서울모던아트쇼, 2015 하이서울유스호스텔 아트월, 2013 최정아 갤러리, 2011 인사아트센터-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박사학위 청구전, 2010 스콜라아트센터(베이징), 2009 스페이스 함, 2008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홍익대학교 판화과 석사학위 청구전, 2008 인사아트프라자-월간 미술문화 초대전, 2006 코엑스 프리미엄 아트페어 특별초대전, 2004 코엑스 특설전시장–플러스 아트페스티벌 특별초대전, 2004 코엑스 특설전시장-월간 미술문화 초대전, 1986 동방플라자미술관.

△주요단체전=1979~2010 뢰차 동인전, 2011 한국현대목판화의 흐름-목판화연감제작 2005~2010(나무화랑), 2015 한국판화연구회창립전(생거진천판화미술관), 2018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소장작품전, 2019 Salon 2019 SNBA(카루젤 뒤 루브르), 2020 Grand-Palais ART CAPITAL-SALON DESSIN PEINTURE(파리), 2020 한국현대판화전(사마라 국립미술관,러시아), 2023 LE SALON(ART CAPITAL,파리), 2023 홍익판화작가초대전-홍익대학교 판화과 30년(토탈미술관), 2023 제50회 (사)한국여류화가협회 정기전(인사아트프라자).

△미술관 소장=프리모르스키 국립미술관(러시아,2021), 진천판화미술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6. 조향숙 화론(畵論)

파일:6=조향숙 작가 화론.jpg
(왼쪽)To Find Lost Time-Happy memories-화이부동, 180×630㎝(60×90㎝=21점), 2020.
나는 경북성주의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1950년대 그 시절 할머니가 정화수 떠놓고 손녀의 앞길을 염원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년시절 고향의 조그마한 절에 초팔일이거나 초하루 보름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절을 들어설 때 특유의 향냄새와 사천왕의 무서움 가운데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바라본 황금색 부처님 뒤, 비취와 백록색 후불탱화의 찬란한 색깔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지만 나는 대웅전 바깥에 있는 이야기가 있고 친숙한 느낌의 벽화(壁畫)에 자꾸만 마음이 끌렸다. 그때는 뭔지 몰라도 그렇게 불화를, 불교를 만났던 것 같다.

◇안식을 선사하는 집안의 불화
나의 불교미술지향점은 명확했다. 절에만 있는 불화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걸 수 있는 그런 불화를 하고 싶었다. 집에 들어왔을 때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쓰다듬어 줄 수 있는 그런 하나의 따뜻한 안식을 선사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불교도상에 장식성과 정신성을 운용하고 기법과 버전을 달리해가면서 현대적으로 풀어가려고 무던히도 연구해 왔다. 나의 그림이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한 집안의 불화를 그리기 위하여 내가 끝끝내 붙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애’라는 화두이다. 모나지 않음을 동경하는 자비스러운 보살 곧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려는 것이다. 나는 불교미술 외길을 걸어왔다. 내가 좋아서 그 길을 걸었지만 돌아보니 외로운 길이었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그럼에도 나를 지탱해주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할머니의 그 간절한 기원이 나를 일생동안 불교미술로 인도했다고 믿는다. 할머니의 그 마음이 나를 지켜준다는 느낌과 믿음이 언제나 나의 가슴 속에 생명의 호흡으로 동행하고 있다. 인간애는 그렇게 할머니가 나에게 준 가장 커다란 선물이었다.

◇꿈꾼다, 나의 작품은 영원하기를!
예술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다만 다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길 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힘들고 험한 길이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기도 한다. 영원히 간다는 것은 없다. 가는 만큼 가는 길이다. 언제 멈춰질지 모르는 유한한 인생이다. 그러나 나의 작품은 영원하기를 꿈꾼다. [조향숙 화백 작업실에서. 대담정리=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2024.5]

7. 외부링크

화가 조향숙‥본성의 소리 근원의 파동

(인터뷰)화가 조향숙 나의 심우도

(르포:화가 조향숙 아틀리에①) 無我!

화가 조향숙‥TO FIND LOST TIME

바렌 제작과정④=프린팅 과정


[1] 김정현 미술평론가, 같고도 다른 하루아침, 2011.[2] 임영길 홍익대학교 교수, 조향숙의 목판화에 대한 단상들, 2020.[3] 주간조선, 趙香淑 작품전, 제897호, 1986.[4] 조향숙, 尋牛圖로 표현된 자아 발견, 홍익대학교대학원 석사논문, 2008.[5] 조향숙, 비의도적 기억을 통해 나타난 시공간 표현, 홍익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6] 고충환 미술평론가, 조향숙의 불교도상, 2008.[7] 유재길 미술평론­비의도적 기억의 시공간 표현, 2011.[8] 임영길 홍익대학교 교수, 조향숙의 목판화에 대한 단상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