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이명주
1. 개요
이명주의 선수 커리어를 정리한 문서.2. 클럽 경력
2.1. 유소년 시절
대구화원초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학교에 축구부가 창설하자마자 축구부에 가입하며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중학교도 대구에 위치한 대륜중학교로 진학했지만, 축구부 코치의 권유를 받고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스팀인 포철중으로 전학을 갔다.중학교 3학년때부터 포철공고 2학년 시절까지는 수비수로 주로 뛰다가, 이후 미드필더로 복귀했다. 해당 포지션에서 두각을 보인 덕분에 포항의 우선지명을 받고 영남대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2009년 대입 수학능력시험 중 휴대폰을 소지한 이유로 부정 행위자로 몰려 대입에 실패했다. 결국, 2009년 1년 동안 영남대학교에서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1년 동안 훈련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은 다 봤는데 끝나고 나가다가 휴대폰이 탐지되어서 시험 성적이 무효가 되어버린 것.
이후 10학번으로 입학해 자신의 대학생 신분 첫 대회인 춘계대학연맹전에서 전 경기를 뛰며 팀 우승에 일조했다. 2011 선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도 참가했고, 팀의 8강 진출에 일조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2.2. 포항 스틸러스
대학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을 보인 덕분에 2012 K리그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을 통해 포항 스틸러스 입단이 확정되었다.2.2.1. 2012년
포철공고 - 영남대 2년 선배인 신진호가 달았던 등번호 29번을 배정받았다.입단 초기에는 2군 리그인 R리그에서 출전했다. R리그 개막전에서 1득점 1도움을 기록하고, 다음 경기에도 득점을 기록하면서 굉장한 페이스를 보여줬다. 덕분에 시즌 시작 후 한 달만에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4월 초 주전 미드필더인 황진성이 경고 누적으로 빠지고, 김태수도 부상을 당하자 이명주에게 데뷔 기회가 찾아왔다. 6라운드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며 첫 경기를 소화했고, 아사모아의 득점을 어시스트하면서 화려하게 1군에 데뷔했다.
성남전의 활약 덕분에 해당 경기 이후로도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어느새 주전으로 도약하였다. 김재성의 위치를 메워주면서 황진성(김태수)-이명주(신진호)-신형민(or 황지수)로 구성된 중원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포항 팬들도 우리 유스에 이런 물건이 있다는걸 늦게 알았다면서 감탄하는 중.
17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프로 데뷔골을 터뜨렸고, 이후 18라운드 울산 현대전과 19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 연달아 어시스트를 올리면서 세 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런 맹활약에 2012시즌 중반 시점에서는 이미 독보적인 신인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다른 팀에서 이렇다할 신인이 나오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데뷔 시즌에 주전을 꿰차고 클래스가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미 신인상 확정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후반기에 신형민이 이적하여 팀에 수비형 미드필더가 황지수 하나만 남게 되자 이명주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가서 뛰고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 황진성이 플레이가 편해졌다고 말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황선홍 감독도 수비력이 최대 강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후술하듯이 활동량과 볼배급, 중거리슛도 뛰어나고 골도 잘 넣는지라, 황선홍 감독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황지수랑 짝을 맞춰 수비를 강화하거나, 아니면 황진성, 신진호와 짝을 맞춰 공격을 강화하는 등 다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공격형, 수비형, 중앙 미드필더 중 어떤 역할을 줘도 평균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는 포항 전술의 핵으로 여겨지고 있다.
2012시즌 초반에는 체력 문제를 종종 지적받았지만, 시즌이 진행되면서 괴물같은 체력을 보여주면서 체력보다는 리그 적응 문제라는 해석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스플릿 라운드 진입 후에는 미친듯한 득점력을 선보였는데, 정규 라운드에서는 1득점에 그쳤지만 스플릿에서 4득점을 추가하였다. 거기에 도움도 엄청 쌓아서 데뷔 시즌부터 5득점 6도움,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결국 압도적인 표차이로 2012 K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신인왕은 2012시즌을 끝으로 폐지되었으며 23세 이하 최우수 선수상인 영플레이어상이 신설되었다. 즉, 이명주가 K리그의 마지막 신인왕인 셈. 그리고 2013년 초대 영 플레이어상을 포철공고 동기인 고무열이 수상하면서 2013 K리그 어워드에서 2012 시즌 신인왕 수상자인 이명주가 고무열에게 트로피를 건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동시에 2012시즌 베스트 11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주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같은 포항 소속인 황진성이 있는 바람에 왼쪽 미드필더 후보가 되기도. 포지션을 바꾸어가면서까지 후보에 넣은 것만 봐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시즌 기록은 리그 35경기 5득점 6도움, FA컵 5경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2경기 출전.
2.2.2. 2013년
프로 2년차에 진입했지만 아무런 흔들림 없이 시즌 초반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개막전 FC 서울 원정 경기에서 후반전 막판 극적인 동점을 만드는 중거리포를 작렬, 빠르게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이어서 4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전에도 천금같은 역전골을 터뜨려 팀을 단독 선두에 올려놓았다. 3라운드 베스트 11 선정에 이어 4라운드에는 MOM을 차지하는 등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후로도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잊을 만하면 공격포인트까지 올리는 등 포항 전력의 핵심으로 활약했다.시즌 시작 후 신진호와 함께 휴식도 없이 거의 노예 수준으로 구르고 있다. 거기에 포지션을 감안하면 엄청난 득점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완전체에 가까운 모습. 여름에 신진호가 카타르로 임대를 떠나고 황진성마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자 이명주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이제는 그 둘이 전담하던 코너킥, 프리킥까지 본인이 차면서 김재성, 황진성을 잇는 포항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잡았다. 결국 시즌 내내 혹사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했지만, 막판에 김승대가 프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김재성까지 전역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에도 연속으로 풀타임 출전을 이어가는 등 휴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포항이 우승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34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 35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막판 연승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기어이 마지막 경기에서 팀이 울산을 꺾으면서 데뷔 후 첫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치면서 데뷔 2년만에 K리그 MVP 후보에도 올랐으나, 경쟁자인 울산 김신욱에 비해서 저조한 스탯이 발목을 잡았고 주목도 역시 전반기에는 황진성, 후반기에는 김승대에게 나눠지면서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떨어지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MVP 수상은 불발됐지만, 리그 베스트 11에 들면서 활약을 인정받았다.
2013시즌 기록은 리그 34경기 7득점 4도움, FA컵 5경기 1득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6경기 1득점 1도움. 데뷔 후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2.2.3. 2014년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부동의 주전으로 나서고 있다. 다만, 이전 시즌까지 뛰던 중앙 미드필더가 아니라 황진성이 뛰던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로 올라갔다. 대신 그 위치에서 뛰던 김승대는 원톱으로 이동했다. 같은 포지션에 김승대가 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국가대표팀 주전 경쟁을 위해서 일부러 포지션 변경을 시킨 듯하다.새 포지션에 적응이 안된지라 시즌 초반에는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K리그 클래식 3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종료 직전 절묘한 스루패스로 유창현의 역전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 서서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4라운드 전북전에는 유창현의 절묘한 로빙패스를 받아 드리블을 한 후 득점까지 기록하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줬다. 5라운드 상주전에는 2도움을 기록하면서 경기당 공격포인트가 1을 넘어버렸다. 8라운드까지 3골 6도움으로 공격포인트 1위를 질주중이며 11라운드에서는 K리그 클래식 9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타이 기록을 세웠다.
포항 경기를 보다보면 이명주의 패스가 김승대와 골키퍼의 1 : 1 상황으로 연결되는 경우를 한번은 꼭 보게 된다. 김승대의 리그 골 5골 중에 헤딩슛이나 중거리 슛이 없고 전부 다 1 : 1 상황에서 넣었는데, 그 장면을 만든게 바로 이명주의 킬패스였다.
그리고 5월 10일에 열린 리그 12라운드 전남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 K리그 최다 연속 공격 포인트 기록을 세웠다.[1] 마침 이틀 전 발표된 2014 브라질 월드컵 대표에서 탈락한 한을 풀듯이 이 날 1득점 2도움으로 분노의 대활약을 보여주었다. 리그 11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게 된다. 이처럼 반시즌만에 K리그를 정복하면서 리그 최고의 선수로 꼽히던 도중...
2.2.3.1. 이적 사가
6월 9일, 포항 구단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해외이적 추진 선수에 대한 기자회견을 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긴급 발표했다. 그리고 그 선수는 이명주라는 것이 밝혀졌다. 시즌 중이었지만 포항의 리그와 아챔에서의 활약의 중심점이 되는 선수를 이적시키고 기자회견까지 여는것을 보았을 때 해외팀이 유럽이 아닐까 예측이 나오고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UAE 아라비안 걸프 리그 알 아인 FC 이었다. 3년 계약이며 연봉 15억원에 이적료는 500만 달러(50억)으로 알려졌다. 이 이적료는 이청용이 보유한 350만달러(당시 환율로 계산시 44억)의 이적료 기록을 경신한 당시 K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이다. 국내축구 커뮤니티와 포항 공식 홈페이지는 헬게이트가 열렸으며 팬들의 반응은 중동이라 아쉽긴 하지만 이적료가 너무 달달했다고는 인정하는 중이다.그리고 50억에 이명주를 판 포항은 그 댓가로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추락했다. #관련기사 이명주를 팔아버리면서 미들이 붕괴된 걸로 모자라, 최고의 호흡을 보이던 김승대에게 패스를 찔러줄 선수가 없어 득점력이 수직 하락해버렸고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시즌 트레블을 노리던 팀이 이명주를 팔고 나서 대안을 찾지 못하면서 ACL, 컵 대회 모두 탈락했으며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리그도 4위로 끝마치고 말았다.
2014시즌 K리그 기록은 11경기 5득점 9도움. 그가 알 아인으로 이적한지 꽤 시간이 지난 11월 9일 기준으로도 공격포인트 종합 5위, 도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이승기가 어시스트 10개로 공동 1위가 되어 도움왕을 차지했지만 그래도 이명주가 여전히 도움 3위에 들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활약을 보였던 시즌.
리그 외 다른 대회 기록은 FA컵 1경기,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7경기 1득점 2도움.
2.3. 알 아인 FC
2.3.1. 2014-15 시즌
등번호는 포항에서의 번호인 29번을 선택했다.입단 후 7월에 열린 '알 아인 인터내셔널 친선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 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프리시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3라운드 아지만 클럽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며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일정도 동시에 소화했는데, 9월 30일에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알힐랄과의 경기에서 전반 10분 선제골을 기록하며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 득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나, 1, 2차전 합계 2 : 4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초반에는 리그 적응 문제가 있었는지 포항 시절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10라운드 이티하드 칼바전에 도움을 올려 첫 공격포인트를 쌓았고 11라운드 알 와흐다전에도 1도움을 올렸다.
그리고 13라운드 샤르자 FC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비어 있는 틈을 넣치지 않고, 공중에 뜬 볼을 그대로 발리 슛으로 집어 넣으며 여전한 센스를 보여주었다. 적응을 마친 후에는 중동에서는 공격포인트를 쓸어담으면서 상당한 포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 아시안컵에 차출되어 국가대표 일정을 소화했고, 2월부터 복귀하였다. 복귀전인 14라운드 알 샤밥전에 바로 득점을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을 보여줬고, 남은 시즌동안 도움을 계속 쌓으면서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당시 알 아인은 이명주와 '중동의 지단'으로 불리던 오마르 압둘라흐만을 앞세워 엄청난 중원을 구성했고, 결국 2014-15 시즌 아라비안 걸프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4-15 시즌 기록은 리그 23경기 2득점 6도움, 2014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경기 1득점, 2015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경기 출전.
2.3.2. 2015-16 시즌
새 시즌에도 변함없이 주전으로 활약했다. 개막전 알 다프라전에 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난하게 활약했다. UAE 프레지던트컵 4강에서는 결승골을 넣어 팀을 결승에 보냈지만, 알 아인은 결승에서 연장 혈투 및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의 여파로 피로가 누적되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편, 리그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2015-16 시즌 기록은 리그 23경기 3득점 3도움, 2016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7경기 1득점 1도움.
2.3.3. 2016-17 시즌
여전히 개막전부터 선발로 나서며 주전으로 활약. 리그 및 챔피언스리그에서 딱 두 경기만을 결장했고 이 역시도 경고누적으로 인한 결장이었다. 팀 내에서의 두터운 위상이 엿보이는 대목. 오마르와 더불어 리그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군 문제로 인해 작별이 확정되었다. 알 아인 소속으로 뛴 마지막 경기였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16강 에스테그랄전에 1득점 1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고별전을 치렀다. 특히 감독의 배려로 후반 44분 교체 아웃됐는데, 구장이 떠나갈 정도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이별했다.
2016-17 시즌 기록은 리그 24경기 3도움, 2016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6경기 1득점, 2017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8경기 1득점 1도움.
2.3.3.1. 이적 사가
이명주는 2014 아시안게임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 문제 해결이 필수적인 상황이고, 이때문에 2017년부터 K리그 복귀가 유력한 상황이다. 당초 언론 보도에 따르면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와 스승인 황선홍 감독이 부임하고 있는 FC 서울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고 한다.이명주 본인은 2016시즌 종료 후 서울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자금 사정이 어느 정도 나아진 포항에서 무려 단장이 직접 UAE까지 날아가는 초강수를 두며 포항 복귀를 부탁하자 마음이 흔들려 다시 고민했다고 한다. 포항은 친정팀이었고 서울은 스승 황선홍 감독이 있었기에 이명주 입장에서는 두 팀 모두 고민할만한 선택지였던 셈. 특히 이명주와 황선홍은 에이전트가 동일 인물이라는 접점도 있었다.
2.4. FC 서울
한동안 고민이 이어졌지만, 최종적으로 2016년 6월 19일 FC 서울 입단이 확정되었다. 기사이적 전에 포항으로 마음이 기울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황선홍이 직접 전화 찬스를 사용해서 이명주를 잡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명주와 더불어 황선홍 감독 역시 포항 팬들의 호감도를 상당히 까먹었고 이제는 다른 팀 감독이시네요[2]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포항 팬덤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게다가 이후 데려올 수 있으면 김승대도 데려오고 싶다고 기름을 붓는 바람에...[3]
2.4.1. 2017년
팀에 입단한 후 18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 선발로 출전하여 K리그 무대에 복귀했다. 후반 추가시간 박주영의 골을 도우면서 본인의 K리그 연속 공격 포인트 기록을 11경기로 늘리는 한편, 여전한 클래스까지 증명했다. 서울 미드필더진이 붕괴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이 되리라 예상됐던 선수.그러나 19라운드 광주전을 치르던 도중 여봉훈의 태클에 발목 부상을 당하며 3개월 아웃 판정이 나왔다. 복귀 후 2경기만에 시즌 계획이 위태로워졌고, 계약도 입대 전까지 6개월 단기 계약을 체결했기에 전역 후에 바로 팀을 떠날 가능성도 높다. 입대 전의 마지막 커리어를 비극으로 장식할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
그래도 생각보다는 빠르게 회복하여 29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교체로 투입되며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그 후로도 한동안 교체로 나오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33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전부터는 다시 선발로 기용됐다. 과거만큼의 포스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차츰 폼이 올라오면서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스플릿 돌입 이후 36라운드 울산 현대전에 상대 수비수의 롱패스를 차단하고 중거리 슛으로 서울에서의 데뷔골을 신고했다. 팀도 3 : 0으로 이기면서 이래저래 의미있는 경기를 치렀다. 이후 최종전 제주 유나이티드전에도 골을 넣으면서 좋은 마무리에 성공했다. 경기 후 내년에 함께 아산 무궁화에 입대하는 주세종의 인터뷰 영상과 같이 자신의 영상도 FC 서울 SNS에 올라왔는데, 서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주세종이 그동안 감사했고 영광이었다며 떠나는 선수처럼 이야기한 반면 이명주는 "2년 뒤에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며 포항, 서울서 모두 선배인 신진호의 길을 따라갈 여지를 남겼다.
서호정 기자의 기사 내용에 따르면 입대 직전에 재계약했다는 소문과 달리 실제로는 이명주는 재계약을 하지 않고 아산 무궁화에 입대했다고 한다.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 팬들은 엄태진 사장을 사퇴하는 여론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2017시즌 기록은 리그 13경기 2득점 1도움.
2.4.2. 아산 무궁화 FC (군 입대)
2017시즌이 끝나고 아산 무궁화의 합격자 명단에 들면서 2018년부터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자신의 개인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2부리그를 경험하게 됐다.3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을 통해 아산 데뷔전을 치렀고, 차츰 몸을 끌어올려 주세종, 김도혁과 함께 주전급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특히 4월부터는 공격포인트를 쓸어담으며 자신의 클래스를 유감 없이 보여줬다. 17라운드 광주전에 아산 데뷔골을 넣었고, 18라운드 안산전에도 득점하면서 두 경기 연속으로 골맛을 봤다. 시즌 내내 무시무시한 폼을 보여주며 아산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18시즌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2018시즌 기록은 리그 30경기 5득점 5도움, FA컵 2경기 1도움.
2019시즌에는 주장으로 선임되어 팀을 이끌게 됐다. 의경 폐지의 연장선상으로 팀이 해체의 위기에 빠지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팀을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최종적으로 팀도 시민구단으로 전환하여 살아남으면서 나름 좋은 결말을 맺었다.
팀의 마지막 기수 멤버이자 일반 선수와 의경 선수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제 몫을 다했고, 부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기에 선발로 나서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019시즌 기록은 리그 19경기 2득점 1도움.
2.4.3. 2019년
2019년 9월 6일, 아산 무궁화에서의 군복무를 마치고 주세종과 함께 FC 서울로 돌아왔다. 등번호는 그대로 79번을 배정받았다. 다만 위에서 서술했듯이 아직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올해를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서울의 스쿼드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기에 시즌 막판 큰 보탬이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29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복귀전을 가졌고, 여전히 활발한 볼 배급을 선보이는 등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아직은 팀의 플레이와 다소 겉도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보완되리라 여겨지는 중.
복귀 후 선발로 나오며 적응기를 가지다가 33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슈퍼매치 원정경기에서 고요한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
시즌 종료 후 예상대로 계약이 만료되어 이적설이 나오는 중. 2019년 12월 12일 아랍에미리트의 알 와흐다 FC로 이적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알 와흐다는 이미 4명의 외국인 선수가 있어서 한 명을 정리하는 모양.
2.5. 알 와흐다 FC
2.5.1. 2019-20 시즌
2019년 12월 24일 아랍에미리트 리그의 알 와흐다 FC로 이적한다는 오피셜이 나왔다. 계약기간은 2년 반이다.합류 후 리그에서 곧바로 주전으로 나섰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일정도 소화했다. 조별예선 알 쇼르타전에 1도움을 올려 입단 후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19라운드 알 다프라전에 도움을 올리며 리그에서도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시즌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애매하게 마무리됐다.
2019-20 시즌 기록은 리그 7경기 1도움, 리그컵 1경기, 2020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2경기 1도움.
2.5.2. 2020-21 시즌
2020년 10월이 돼서야 리그가 시작되면서 다시 경기장에 복귀했다. 붙박이 주전으로 경기를 소화하고 있으며, 12라운드 알 나스르전에 알 와흐다 입단 후 첫 골을 기록했다. 당시 훗날 인천에서 재회하게 되는 폴조세 음포쿠와 더불어 주전으로 나서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2020-21 시즌 기록은 리그 25경기 3득점 2도움, 리그컵 1경기, 2021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예선 1경기, 2021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6경기 1도움.
2.5.3. 2021-22 시즌
새 시즌에도 초반에는 주전으로 출전했으나, 2021년 9월 27일 다른 선수를 대신 등록하기 위한 팀의 결정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 복귀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시해보는 축구팬들도 있는 상황. 우선 루머를 종합해보면 리그에서는 못 나오지만 아직 챔피언스리그 일정은 소화하고 있고, 계약은 이듬해 여름 종료된다고 한다. 특히 포항 출신 선수들이 이명주를 설득하고 있어서 포항으로의 복귀 가능성도 종종 점쳐지는 중.2021-22 시즌 기록은 리그 5경기, 2021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2경기 출전.
2.6. 인천 유나이티드 FC
알 와흐다에서의 상황이 애매해져서 국내 복귀를 추진하는 듯했으나, 초반에는 큰 소식이 없었다. 사실 12월까지는 팀에서도 이명주를 기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서 연락이 온 팀들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상황이 급변했고 그 사이 K리그 대부분의 팀들이 영입을 마무리하면서 약간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2022년 1월 15일,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인천이 예전과 다르게 대형 선수 영입도 시도하고 성적도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충격적인 이적이라는 평. 에이전트 측에서 무고사 거래 등의 건으로 인천과 사이가 좋았기에 다른 팀보다 먼저 제의를 했고, 인천이 빠르게 결단을 내리면서 속전속결로 영입이 확정되었다.
결국 2022년 1월 30일, 자가격리 종료와 함께 인천 합류 오피셜이 나왔다. 2년만의 K리그 복귀. 팀에 포항 시절 함께 했던 김재성 코치와 김광석이 있고, 아산에서 함께 군 생활을 했던 김도혁도 있기에 적응에는 큰 문제가 없을 듯. 특히 김도혁은 꾸준히 이명주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
2.6.1. 2022년
첫 시즌 등번호는 5번으로 결정했다. 오랫동안 사용한 29번도 염두에 두었지만, 베테랑다운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앞 번호면서도 헌신적인 인상을 주는 5번을 선택했다고 한다. 알 와흐다에서 막판에 경기를 뛰지 못해 감각을 올리는 데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인천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아직 몸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개막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 선발로 출전하며 인천 데뷔전을 치렀다. 파트너로 나선 여름과 함께 탄탄한 활약으로 팀을 지켜줬는데, 아직 체력 문제가 있어서 후반 중순에 교체로 빠졌다. 경기력은 역시 이명주다운 모습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몸만 끌어올린다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
2라운드 서울전에도 선발로 나섰고, 개막전과 비슷한 타이밍에 교체로 빠졌다. 그러가다 3라운드 강원 FC 원정 경기에 선발로 나섰고, 이번에는 교체되지 않고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리고 경기 막판 침투하던 김준엽을 향해 엄청난 롱패스를 찔러주며 인천 입단 후 첫 도움을 기록했다. 팀은 이 득점을 통해 승리를 거뒀고, 이명주는 합류하자마자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 후로도 선발로 주로 나서고 있는데, 체력 문제로 인해 적당한 타이밍에 교체로 빠지면서 관리를 받는 중. 여름과 함께 초반 리그 최고 수준의 중원을 구성해서 안정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9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인천 데뷔골을 터뜨렸고, 10라운드 수원 FC전에도 골을 기록했다. 아쉽게 두 경기 모두 무승부로 끝났지만, 슬슬 팀 적응이 완료되는 중.
이어서 12라운드 울산 현대전에는 이용재의 골을 도우면서 강호 울산에게 무승부를 거둘 수 있도록 팀을 이끌었다. 체력이 올라오면서 본격적으로 풀차임을 소화하고 있는데, 역시 그에 걸맞은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미친 체력과 활동량, 센스, 킥, 패스를 모두 갖춘 완벽한 미드필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17라운드 강원전에 무고사의 득점을 도왔고, 팀은 물꼬가 터져 4 : 1 대승을 거뒀다. 바로 다음 경기인 18라운드 서울전에는 동점골을 터뜨려 30-30 클럽에 가입했고, 빗셀 고베 이적을 앞둔 무고사를 상징하는 스트롱맨 세레머니를 원정석 앞에서 펼쳤다. 이 모습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는 지지도가 하늘을 뚫을 정도로 올라갔다.
주장단 선수들이 부상 등으로 결장하면서 7월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21라운드 전북전에는 교체멤버로 시작했지만 팀이 위기에 빠지자 빠르게 교체로 투입됐고, 김성민의 골을 도우면서 무승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27라운드 대구 FC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전 34분 하프발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고, 팀은 3 : 2 역전승을 거두면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어서 28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는 크로스를 올려 송시우의 역전골을 도왔다. 여전히 강렬한 기세를 이어가며 공격포인트도 많이 생산했고, 경기력 자체도 상당한 수준. 인천에서 제일 중요한 선수로 꼽히고 있다.
좋은 페이스를 보여줬으나 29라운드 강원전 이후 부상을 당해 2경기에 결장했다. 32라운드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교체로 투입되며 복귀전을 치렀고, 다시 선발로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아 파이널 라운드를 치르던 도중 잠시 명단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시즌 전체로 보면 부상도 거의 없이 튼튼하게 팀을 지탱하였고, 플레이오프 이후 시대인 2012년 이후 인천의 최고 성적인 리그 4위에 기여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K리그 대상 리그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 후보에 들었지만 세징야와 신진호에게 밀려 수상엔 실패했다. 신진호야 올 시즌 MVP 후보에 들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선보여서 그렇다쳐도, 세징야에게 밀린 건 다소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2022시즌 기록은 리그 34경기 4득점 5도움.
2.6.2. 2023년
시즌이 끝난 뒤 2023년 1월 4일, 인천은 이명주와의 2년 재계약 체결을 공식 발표했다. 이후 부주장으로도 선임됐다. 새 시즌을 앞두고 알 와흐다 시절의 동료인 폴조제 음포쿠와 포항 유스 시절부터 함께 했던 신진호가 팀에 합류하면서 이들 사이에서의 시너지가 기대를 모았다.개막전 FC 서울전에 신진호와 함께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생각보다 합이 맞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팀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결국 1 : 2 패배를 당했다. 아직까지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아보인다.
2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과의 홈 개막전에도 선발로 출전. 경기 초반에 상대의 실수를 포착해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넣으며 포문을 열었다. 팀은 난타전 끝에 3 : 3 무승부를 거뒀는데, 그래도 이명주의 폼이 개막전보다 상당히 올라와서 팬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이후 3라운드 제주전에 첫 승을 거두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4라운드 광주 FC전에서 충격의 5 : 0 패배를 당했고, 경기 후 이명주도 부상을 당하면서 한동안 결장하게 됐다. 이명주가 빠진 사이 대체자로 출전한 문지환이 맹활약을 펼치면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치르게 됐다.
12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복귀했으나, 시즌 초 경기력이 나빴던 라인업을 그대로 들고 나와서 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졸전을 펼치다가 패배하면서 이래저래 위기에 놓였다. 시즌 초의 모습으로 보면 신진호와의 미드필더 조합은 기대 이하. 두 선수가 모두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합쳐서 마이너스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문지환이 들어왔을 때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지라 둘 중 하나를 제외하고 문지환을 세우거나 아예 세 명의 미드필더를 기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다.
13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는 변칙적으로 윙어 자리에 놓였는데, 실제로는 중원과 측면을 오가며 메짤라로 활약했다. 사실상 세 미드필더를 동시에 기용한 그림이었는데 팀 전체의 경기력은 전보다 훨씬 나아진 모양새. 이후 다양한 중원 조합을 실험하는 가운데 꾸준히 선발로 나섰고, 15라운드 대구전에는 신진호의 부상으로 인해 음포쿠와 3선에서 합을 맞추기도 했다.
16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원정경기에서 주세종의 파울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었고, 음포쿠가 성공시키면서 선제골의 기점 역할을 수행했다. 시즌 초보다는 개인 폼이 확실히 살아났다만, 공격포인트는 전 시즌과 달리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 개인 폼 자체가 2022년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하는지라 아쉬움도 사는 중. 신진호가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에는 주로 김도혁과 호흡을 맞추는 중인데, 두 선수의 조합이 생각보다 상당히 잘 맞아서 주전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30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선제골을 만들어냈고 후반전 팀은 동점골을 내주었지만 90분 극장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파이널라운드 첫 경기인 포항 스틸러스전에서는 전반 종료 직전 부상으로 교체아웃되었다. 인천은 안 그래도 ACL과 FA컵, 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빡쌘 일정이라 선수 한 명이 아쉬운데, 신진호, 델브리지, 이명주 등 핵심 선수들을 부상으로 잃으면서 전력 누수가 불가비해졌다.
2.6.3. 2024년
2024년 1월 24일, 인천의 제 20대 주장에 선임되었다. 기사10라운드 전북 현대 와의 홈경기에서 정우재와 충돌하면서 부상으로 교체아웃 되었는데 경기끝난이후 쇄골쪽 부상이라 조만간 못나올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21라운드 김천 상무 FC 와의 홈경기에서 교체명단에 들었지만 경기이는 출전하지 못하였다.
22라운드 대구 FC 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출장하면서 복귀하였지만 팀은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시즌이 끝난 현재, FC 서울과 대구 FC에서 관심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선수 본인은 이미 서울에서 뛴 적이 있고 더 많은 출전 시간을 위해서 대구로 갈 확률이 커 보인다.[4] 물론 서울에서 뛸 때 아쉬운 활약을 보여줬어서 서울로 복귀할 확률도 적진 읺다
3. 국가대표 경력
3.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3.1.1.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출전 불발
A대표팀 이외에도 2014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와 관련해서 말이 많았다. 가뜩이나 U-23 멤버들 중에 중원을 담당할 자원이 많고, 타 포지션에 시급한 구멍이 있어서 와일드 카드로 뽑지 않을 확률도 높았다. 더구나 이광종 감독은 "월드컵 참가 A대표팀 멤버중에서 와일드 카드를 뽑을 것"이라 발언해 여러모로 이명주의 군번줄이 꼬였다. 그나마 아시안 게임 출전이 거의 확실시 되었던 손흥민이 소속팀인 레버쿠젠의 차출 거부로 참가하지 못해 공격 2선에서 활약해줄 미드필더가 필요해짐으로서 이명주에게 기회가 오나 싶었으나 손흥민에 이어 이명주마저 소속팀인 알 아인 FC의 차출거부로 아시안 게임 출전이 불발됐다.이광종 감독 본인도 생각이 바뀌어서 이명주의 차출을 알 아인에 요청했으나, 이적료 포함 100억에 가까운 배팅을 때린 알 아인 FC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이명주는 월드컵에 이어 아시안게임 마저 출전이 불가능해졌다. 아깝게 된게 이명주가 포항에 계속 남았더라면 자연스레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 있었겠으나, 이광종 감독의 인터뷰로 합류 가능성이 요원해보이자 내린 이적 선택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본의 아니게 손흥민과 더불어 아시안 게임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손흥민은 그나마 4년 뒤 아시안 게임에 금메달을 땄지만 이명주는..
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3.2.1. 최강희호
2013년 5월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3연전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원정경기였던 레바논전에서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김남일의 부상으로 2013년 6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공수에서 모두 200% 활약을 보였다. 특히 이 날 K리그 성남 일화 천마에서 뛰고 있는 세르베르 제파로프를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팀의 무실점 승리에 공헌했고 A매치 데뷔전이었음에도 MOM으로 뽑히는 경사를 누렸다. 경기 도중 실시간으로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은 덤. 아시아 올해의 선수 상까지 탄 제파로프(실제로 본 경기에서 지켜보는 국대팬들을 식겁하게 만드는 패스를 여러 차례 날렸다), 거스 히딩크가 사령탑에 앉아 있으면서 좋은 선수들을 팀에 끌여 들이고 있는 안지의 주전 미드필더인 오딜 아흐메도프, 인천의 활약으로 국내팬들에게도 잘 알려졌으며 오래 전부터 우즈벡 국대에서 활약해온 실력파 선수인 카파제와 같은 좋은 선수들이 미드필더진에 많이 있었기에 이들을 아는 팬들을 더욱 환호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활약이였다.3.2.2. 홍명보호
홍명보호 출범이후 열린 2013 동아시안컵 대회와 이후의 평가전에도 연이어 발탁되며 국대 레귤러 멤버로 자리잡았다. FC 서울의 하대성과 주로 호흡을 맞췄는데 뛰어난 조율 능력과 오프 더 볼 무브를 가진 하대성과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이명주의 조합은 대표팀이 연이은 졸전으로 질타를 받는 와중에도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홍명보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리그에서도 꾸준히 활약을 이어가며 포항의 2013 시즌 더블(리그 우승 + FA컵 우승)에도 크게 일조했다. 다만 이명주에게 가장 맞는 중앙 미드필더 자리는 이미 국대에서 기성용이라는 장벽이 버티고 있어 국대에서 뛰려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로 가야 하는데 리그에서는 또 같은 팀의 황지수, 김태수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다 보니 익숙한 자리가 아니라서 국대에서 기용하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하다는 게 문제.결국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최종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대표팀 승선 가능성이 점쳐졌던 K리그 소속 선수들 가운데[5] 근자에 절정의 기량을 보인 선수가 바로 이명주였던만큼 발탁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이때 이명주를 지지하던 팬들 중심으로 기성용은 말 그대로 잘근잘근 물어뜯겼다. 기성용은 수비형 미드필더 한명을 무조건으로 붙여서 받쳐줘야 하는 반쪽 선수이며 대표팀 전술이 그로인해 제한되고 있다는게 주된 골자였다. 그래도 기성용은 그나마 총체적 난국의 월드컵 선수단중에선 그나마 활약이 준수한 편이었고 14년 연말부터 프리미어 리그에서 맹활약을 보인 뒤론 이런 말도 쏙 들어가게 되었다.
3.2.3. 슈틸리케호
2014년 9월 5일 브라질 월드컵 대참사 이후 국내에서 열린 첫 친선 A매치인 베네수엘라전에서 전반 33분에 동점골을 기록 하였다. 후반 18분에는 상대진영 왼쪽에서 개인기로 벗어 나려는 상대에게서 공을 강탈, 그대로 크로스를 올려 역전 골을 넣고도 굶주린 사자왕에게 연결해 1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슈틸리케호 2기에서는 신화용과 함께 예비 명단에 들어가 사실상 국대 탈락. 구자철이 국대에 돌아오면서 이명주의 자리에 구자철을 시험해 보려는 듯 하다. 그리고 구자철이 경기 뛰는 내내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적어도 구자철과의 경쟁에서는 승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 정성룡 · 2 김창수 · 3 김진수 · 4 김주영 · 5 곽태휘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김민우 9 조영철 · 10 남태희 · 11 이근호 · 12 한교원 · 13 구자철 · 14 한국영 · 15 이명주 · 16 기성용 C 17 이청용 · 18 이정협 · 19 김영권 · 20 장현수 · 21 김승규 · 22 차두리 · 23 김진현 |
울리 슈틸리케 코치 박건하 · 신태용· 카를로스 아르무아 · 김봉수 |
2015 AFC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 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교체로 출전하여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무난히 소화하며 아시안컵에서의 주전 경쟁에 청신호를 켜는 듯 했다
2015년 1월 13일 쿠웨이트와의 아시안컵[6] 2차전에서 선발출장해 전반전 소화 후,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교체됐다. 전반적인 팀의 경기력이좋지 않았고, 이명주의 경기력에 대해서도 꽤 엇갈리는 편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시각은 높은 활동량과 이를 바탕으로한 적극적인 압박능력에 점수를 줬다.[7] 반면 부정적으로 평가한 시각은 팀원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고, 잔실수를 남발해 공격의 맥을 끊었다고 봤다. 후반전 칼같은 교체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무난했지만, 그가 맡은 역할이 공격형 미드필더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팬이나 본인 모두 실망스러운 결과로 봐야할 것이다.
쿠웨이트전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찍는데 실패했고, 결국 결승전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엔 소집되지 않았다. 기성용을 필두로 권창훈, 이재성, 장현수, 정우영같은 미드필더 자원들이 빼곡하기에, 한동안은 대표팀에서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3.3. 신태용호 이후
2017년 12월 9일부터 열리는 동아시아컵 경기대회에 오랜만에 국가대표로 이름을 올렸다.이후,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하고 있다.
벤투호 이후에는 기성용 은퇴 이후 치고 올라온 황인범이 주전으로 자리잡고, 벤치에는 김진규, 고승범 등이 중용되면서 이명주는 승선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모로 시대적으로 경쟁자들의 폼이 좋아서 국가대표 승선에 실패한 안타까운 케이스다.
[1] 기존 기록은 마니치(1997년),까보레(2007년),에닝요(2008년)의 9경기.[2] 하지만 이 말은 어불성설인 것이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다만 이러한 감독과 선수의 행동에 서운함과 실망감을 가지는 것 또한 팬들의 권리다.[3] 그리고 김승대는 이후 자신의 의지로 포항 복귀를 선택하며 포항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다.[4] 고향이 대구이기도 하고 대구에서 이명주FC를 운영중이다.[5] 상술햇듯 무려 더블이나 달성했던 포항 스틸러스였지만 정작 최종 엔트리에 승선한 포항 소속 선수들은 이명주가 아니더라도 단 한명도 없었다. 주역이었던 황지수, 김승대 조차. 홍명보의 노골적인 K리그 무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6] 16개국 본선 대회[7] 전반전과 후반전을 비교해보면 후반전 쿠웨이트의 빌드업 과정이 압박으로 허둥대던 전반전에 비해 훨씬 매끄럽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