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시아의 문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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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의 문화에 대해 다루는 문서.2. 상세
이란을 얘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란은 아랍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래 내용에도 아랍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지만 이란과 아랍권은 오랫동안 대립하는 문명권이었다.[1] 이란은 한때 페르시아 제국의 지위를 누렸고 인종도 언어도 문화도 산업도 다르다. 이란을 아랍권이라고 부르는 건 마치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중화권 민족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은 실례이고 이란인은 화를 낸다. 이란은 아리아인 계통의 농경민족이고 이란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는 인도이란어파 계통이다. 반면 아랍인은 셈족 계통의 인종이고 전통적으로 유목민족이었고 아랍어는 셈어파 계통이다. 또한 아랍인은 주로 아프리카 북부, 아라비아반도 주변에 한정돼 분포하지만 이란인종은 페르시아인 외에도 터키의 쿠르드족,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파미르 고원의 파미르인과 같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종교와 사용 문자에 있어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긴 하나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고 (시아파는 그외 이라크에도 많고 아프간, 예멘 등에 일부 흩어져 있다) 아랍의 수니파(이란, 이라크 외 대부분의 아랍 이슬람국 들)와 크게 대립을 하고 있다. 즉 이란은 이슬람국이지만 아랍국은 아니다. 이란과 아랍의 관계는 터키와 아랍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문명권이라고 보면 된다.이란에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만날 때마다 안부인사를 몇 차례나 주고받고, 처이(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은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 것.
이란인들의 차 사랑은 각별하다. 어디를 가든 차는 빠지지 않는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마시고, 가게에 물건 사러 갔다가 마시고, 버스 운전하면서도 마시고, 짬이 나면 설탕이나 사탕을 듬뿍 넣은 차를 시도때도 없이 마신다.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으면 차장이 차 같이 마시자고 주기도 한다. 택시에서도 준다. 심지어 여자를 꼬실 때도 차 마시고 갈래?라니 말 다했다.
손님 대접에 큰 신경을 쓰며, 아직도 시골동네에 놀러가면 나를 초대한 친구의 가족들은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 근처에 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몰려와 함께 밥을 먹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2][3] 외부인에게 뭔가 베푸는 일에 주저함이 없는 편인데, 돌아다니다가 곤란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생면부지의 현지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날이 갈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될 정도의 호의가 일상적으로 오고간다. 몇 번 받다 보면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
물론 지역에 따라 온도차는 조금씩 있다. 또한 우리나라도 과거에 길손들에게 일상적으로 호의를 베풀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자면, 이란의 이런 문화도 도시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조금씩 약해질 듯 하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도 강한데, 우리나라의 빈말과 유사한 '터로프'가 대화에 일상적으로 묻어난다. 가면을 쓰고 자기의 본심과는 다르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 진심으로 편의를 봐주는 줄 알고 덥썩 물었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즉 "우리집에서 편하게 있어~"라고 하길래 정말로 남의 집에 드러눕고 편하게 있다가는 집주인의 뚜껑이 열릴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와 유사한 구석이 꽤 있어 흠칫 놀랄 때가 많다. 물론 이러한 정서는 2020년대에 들어선 현재는 중장년층 이상의 이란인에게서 한정적으로 나타난다.
3. 문학
페르시아어 및 페르시아 문자는 중동 지역의 유구한 전통 링구아 프랑카(국제어)로 이슬람 세계의 지식인의 언어와 문자로 쓰였다. 특히 이란 사람들은 시와 수필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가끔 뉴스 아나운서가 시를 한 수 읊는다든가,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유명한 시인의 생가가 무사한지의 소식을 꼭 전하거나 시인의 묘에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을 지경. 실제로 피르다우시, 하페즈, 오마르 하이염, 사디, 잘랄 웃 딘 루미 등 전통적으로 유명한 시인을 수없이 배출해낸 나라.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오마르 하이염의 시집 <로버이여트>는 19세기에 서구에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루미의 시집은 페르시아어로 된 쿠란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란의 영화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시선(詩仙) 이태백이 이란계라는 설마저 있다.[4] 그 외에도 중동인들은 시를 매우 사랑하여 시 낭송으로만 이루어진 오디션 프로그램도 있다.4. 영화
자세한 내용은 이란 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이란은 아시아에서 영화산업이 강세를 보이는 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국 영화시장이 그리 크지않고, 검열이 심한 가운데서도 굵직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란 영화를 세계에 알린 이란 뉴 웨이브의 기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5],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아쉬가르 파라디,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20년간 영화 창작금지와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던[6] 것으로도 유명한 자파르 파나히, 그리고 모흐센 마흐말바프[7]등의 감독들이 대표적이다.[8] 배우로는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유명하다.
5. 스포츠
자세한 내용은 이란/스포츠 문서 참고하십시오.5.1. 실용적인 건축
냉방시설로 바드기르 (بادگیر), 영어로는 Wind catcher 로 표현되는 시설이 있다. 야즈드 같은 옛 도시마다 건물에 세로로 길게 구멍이 뚫린 굴뚝 형태의 구조물이며, 하단의 물과 만나 증발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춰준다 한다. 이란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걸프 아랍 국가들의 구도심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바드기르의 도시로 유명한 야즈드에는 무려 34m 높이의 바드기르도 있다.
난방시설은 일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바로 '코르시'(کرسی)인데 겨울이 되면 탁자 밑에 불을 때는 장치를 설치하고 그 위를 카페트로 덮은 뒤, 그 안에 다리를 집어넣고 석류를 까먹는다는 것이다. 고타쓰와 아주 비슷하다.(사진)
의외로 유럽 전원 풍경의 상징 중 하나인 풍차가 본래 중세 이란에서 발명된 것이다. 이란 동부 레자비 호라산 주의 나쉬티반에 가면 10세기부터 내려오는 현존하는 최고의 풍차가 있다. 지금까지도 기능하고 있어 경탄을 자아낸다. 이란어로 풍차는 아스바드라 불린다.
6. 요리
자세한 내용은 이란 요리 문서 참고하십시오.[1] 심지어 그 서구적이던 팔라비 왕조 시절에도 대내적인 눈치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랬다.[2] 영국남자 채널에 출연한 이란인 자파가 밝힌 일화로, 자신이 영국으로 이민 왔을 때 돌봐줬던 유모를 모시고 이란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새벽에 도착했음에도 6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환영해줬다고 한다.[3] 채널의 메인 프로듀서인 세피의 아버지다.[4] 정확히는 페르시아계 소그드인, 이건 어디까지나 그냥 설이지만 중국 역사, 특히 당나라 시대에는 많은 민족들이 뒤엉켰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예 신빙성이 0%인 건 아니다.[5] 한국에서도 개봉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 향기 등이 유명하다. 그 시절엔 키아로스타미 작품 외에도 천국의 아이들 등 이란 뉴 웨이브 영화가 시네필들 사이에서 나름 유행을 했던지라, 90년대 중후반 영화 프로그램에서도 몇 번 소개가 되곤 했었었다.[6] 물론 이 상황에서도 파나히 감독은 자신의 재판 중 가택연금 기간의 삶을 iPhone과 캠코더로 찍어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는 이름의 영화로 만들었고, 편집본을 컵케익에 쑤셔박은 다음 그걸 프랑스행 항공편으로 보내서 기어이 칸 영화제에 출품, 개봉시켰다. 이후에도 아들을 외국에 보내 영화를 만들게 하거나 아니면 후속작 택시처럼 블랙매직 포켓 시네마 카메라만으로 찍어대는 거 보면 이란 정부에서도 거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7] 칸다하르, 그리고 최근작인 대통령 등이 유명하다.[8] 다만 이란 뉴 웨이브의 기수들은 대부분 타국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자국에 남아있는 파나히 등에 대한 탄압도 생각처럼 심하지는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