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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9:23:29

윤요섭/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윤요섭

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시절
2.1. SK 와이번스 시절2.2. LG 트윈스 시절
2.2.1. 2011 시즌2.2.2. 2012 시즌2.2.3. 2013 시즌2.2.4. 2014 시즌
2.3. kt wiz 시절
2.3.1. 2015 시즌2.3.2. 2016 시즌2.3.3. 2017 시즌

1. 아마추어 시절

충암고등학교단국대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리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아니라서[1], 고교 졸업과 대학 졸업 무렵에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졸업하고도 지명을 못 받자, 야구 인생의 기로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현역 입대. 그것도 대한민국 해병대에 입대한다.

해병대 복무 시절, 우연히 TV에서 단국대학교 동창인 오승환이 등판하는 모습을 본 그는 자신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각하고, 분발해서 다시 야구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2. 프로 시절

2.1.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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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한 후 SK 와이번스의 서울 원정 숙소 김성근 감독의 방 호수를 알아내서 무작정 김 감독을 찾아가 야구를 하고 싶다며,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조른다. 그 모습에 김성근 감독이 기회를 주기로 결정,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2008년부터 활동한다. 신고선수로 묵묵히 성실하게 임한 결과, 정식선수로 승격하는데 이르고, 2008년에 감격적인 1군 데뷔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백업 포수로 괜찮은 방망이 실력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 수비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지만, 대타로 나와 0.397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1군에서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2010년에도 백업 포수와 대타로서 1군과 2군을 오가다가 7월 28일 SK와 LG의 3:4 트레이드 당시 트레이드 멤버에 끼면서 LG 트윈스로 팀을 옮기게 된다. 8월 4일 광주 KIA전에서 5:5로 맞선 8회초 2사만루에서 대타로 나와 2타점 2루타로 결승타를 기록했다. 다만, SK에서의 모습과 달리 LG에서는 다소 부진했던 모습. 이는 조인성이 워낙 든든하게 포수를 지키고 있어서 기회가 잘 나지 않았던 측면이 컸다.

2.2. LG 트윈스 시절

2.2.1.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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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즌 초반 괜찮은 활약을 하면서, 팀에 필요한 존재로 다시 거듭났다. 5월 20일까지 홈런 3개를 치면서[2] 지명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하였다. 그리고 5월 21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패색이 짙던 9회말 극적인 동점 투런포를 작렬시켜서 11회에 기어이 역전승을 일구는데 큰 공헌을 한다. 타격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진퉁이었다.

6월 1일 기준으로 21경기 36타석에 나와 31타수 10안타 .323/.389/.871를 기록하였다. 당시까지 친 10안타 중 5개가 홈런이었고 2개가 2루타였다. 그야말로 파워히터의 진수. 이 때부터 그는 KBO 대표 킬러요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주전보다 더 무지막지한 대타요원으로 거듭난다.

포지션 논란이 일었는데, 이렇게 공격력 좋은 선수를 선발로 못쓰는 것에 LG팬들이 외야수나 1루수로 중용해서라도 주전으로 기용하자고 할 정도였다. 현역 입대까지 했다가 타격 연습만 죽어라해서 공격력은 물이 올랐으나 주 포지션인 포수쪽은 조인성이 건제했던데다 미래의 주전 포수로 LG 트윈스가 키우고 있던 유강남[3] 있고, 박종훈 당시 LG 감독도 윤요섭(당시 이름은 윤상균)을 포수 보다는 타자쪽에 올인하게 하는 상황이었는데, 윤요섭의 나이가 28세였음을 감안했을 때 내년 시즌을 위해서라도 1루와 외야쪽 수비훈련에 올인케해서 주전라인업에 꾸준히 나오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역 입대로 인해서 포수로서의 능력은 발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2011 시즌이 끝나면 이택근FA대상자가 되고 그 후에도 줄줄이 FA가 되는 선수들이 많았던데다 시즌 중 마운드 보강을 위한 트레이드의 가능성 또한 존재했으므로 그때를 대비해서도 윤요섭의 1루 & 외야 수비 훈련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박종훈 前 감독은 윤요섭의 1루수나 외야수 기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었는데 2011 시즌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좀더 유연한 기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박종훈 前 감독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고정 포지션을 고집하면서 잘맞는 타자들을 벤치에 앉힌다는 게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 박빙의 승부에서 더더욱 드러났다. 당장 윤요섭을 1루수나 외야수로 기용하긴 어렵겠지만, 내년 시즌을 위해서라도 윤요섭의 1루 & 외야 수비 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박종훈 前 감독이 윤요섭에게 1루수 수비훈련을 시켰다.

훌륭한 타격 능력을 갖춘 윤요섭을 대타로만 쓰기에는 아깝다고 인지한 모양인데 SK 와이번스 시절에도 1루수로 출장한 경험이 있는터라 가장 적응할 가능성이 높았다. 1루수 수비만 중간정도 해줄 수준이 된다면 이택근이 좌익수로 갈 가능성이 높았다.

7월 12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4번 타자로 출장해 결승타를 때려냈고, 이후 정의윤의 안타로 두 득점에 모두 관여했다.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박용택보다 낫다며 찬양하였다. 그러나 윤요섭도 타율이 2할대 초반까지 떨어진터라 분발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내년 시즌을 위해서라도 1루든 외야든 수비포지션을 갖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그러나 결국 2012 시즌은 LG 트윈스 2군에서 맞게 되었다. 포수진에서 심광호유강남을 넘지 못한 탓인 듯했다.

2.2.2. 2012 시즌

2월 8일, 윤상균에서 윤요섭으로 개명했다. 윤요섭이라는 새 이름으로 첫 시즌.

2군에서 좋은 타격을 보이며 5월 25일부터 1군에서 대타로 출장하기 시작. 김기태 감독의 대타 작전과 맞물려 좋은 모습을 보였다.

5월 31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8차전에서 스코어 1:1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유지되던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 김태군을 대신해 대타로 나서서 2타점 2루타를 때려냈고 팀이 스코어 3:1로 승리하면서 이 2루타가 결승타가 되었다.

6월에는 대타로만 나왔던 것이 아니라 선발 출장도 했으며 간간히 포수 마스크를 쓰기도 하였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lgtwins&no=3564724&page=1&bbs
6월 21일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6:2로 앞서던 9회초 1사 2, 3루에서 이병규의 대타로 출전하여 볼넷으로 출루한 후 오지환의 유격수 땅볼 때 재치있는 플레이로 한화 내야 수비의 실책을 틈타 득점에 성공하는 등 엄청난 대타 성공률을 보였다. 팀은 이날 스코어 11:2로 대승을 거두었다.

7월 15일, 잘못된 주루플레이를 했다는 다소 뜬금없는 이유로 2군으로 떨어졌다. 대다수 LG 팬들은 그나마 허슬플레이를 하던 몇 안되는 선수를 내려보냈다고 김기태 감독을 닳도록 깠지만 일각에서는 윤요섭이 룸살롱을 갔다가 적발되어서 그것에 대한 징계로 내려보냈다는 루머도 있었다.

그러나 8월부터 다시 출장을 시작하더니 김태군을 백업으로 밀어내고 LG의 1호기 포수로 꾸준히 출장하였다. 선수 생활 하다보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으니만큼 약간의 루머가 있었다고 해도 해결된 듯했다. 김기태 감독도 윤요섭을 8회까지 스타팅으로 내세우고 9회 수비굳히기때 김태군을 내면 된다면서 최소한 2012 시즌 끝날 때까지는 윤요섭을 밀어주고 있다.

여담이지만 김태군, 심광호 등등과는 달리 윤요섭이 스타팅 포수로 출장할 때는 김정민 배터리코치가 바쁘게 움직이는 편인데 타격은 좋지만 포수로써는 많이 부족한 윤요섭이 스타팅으로 나설 땐 김정민 배터리코치가 사인을 내고 전달받는 방식으로 하는 듯했다.

2.2.3. 2013 시즌

현재윤이 오면서 주전포수 비중은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LG 포수진의 중심이며, 오른손 대타 롤도 수행하기 때문에 활용 가치는 여전한 편. 현재윤이 부상을 당하며 당분간 경기에 출장할 수 없게 되자 넥센에서 트레이드로 온 최경철의 백업을 맡게 되었다.

5월부터 1군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해 포수마스크를 자주 쓰지만 1할도 안되는 답이 없는 타격으로 전혀 공격형 포수다운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5월까지의 타율이 30타수 2안타로 무려 6푼 7리(...).. 다행히 6월부터 타격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해 6월 16일 현재 18타수 6안타 4타점으로 6월 타율 0.333, 시즌 타율을 1할 6푼까지 끌어올렸다. 현재윤이 복귀한 뒤에도 체력관리를 위해 선발로 포수 마스크를 쓰기도 하며, 포수로서의 능력도 많이 성장한 듯했다.

7월, 주전 포수였던 현재윤과 2군에 가 있던 최경철이 줄줄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주전 포수가 되었다. 타격도 0할대에서 무려 1할대로 올랐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빈타는 여전히 비난받았으며 조인성 시즌2 마냥 바깥쪽으로 공을 요구하는 모습과 불안한 블로킹은 차라리 신인 김재민을 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포수가 워낙 없어서 계속 주전 맡아서 지친다고 해도, 앉아서 송구 실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8월 4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6회 2타점 적시타와 8회 2점홈런[4]을 때려내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7월부터 계속되는 선발 기용으로 체력이 한계점까지 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8월 초반 이후 갑자기 타격감과 리드의 안정감 그리고 도루저지 성공률까지 급상승하면서 일취월장하였다. 타격도 1할대에서 무려 2할대로 올랐다!!! 윤요섭을 미칠듯이 까던 여론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오히려 복귀 후 타격 감이 떨어진 현재윤보다도 낫다는 여론까지 형성되었다. 득점권 타율을 보면 8, 9월 지친 타자들을 대신해 적시타를 몰아친 흔적이 보인다. 실제로 9월 LG 타자 중 타점 1위. 10월 5일 마지막 경기에서는 6회초 류제국의 바운드볼에 급소를 맞아 한동안 경기가 중단됐고 6회말 선두타자로 안타를 치고 나가 이날 역전극의 효시를 날렸다.

사실 2013년 타격 부진은 다른 포수가 다 부상으로 나가리가 되는 도중에 자신도 왼손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을 정도로 엄지손가락을 다쳤지만 남은 포수가 없어서 생긴 일이다.

2013 시즌 원래 자신이 보여주던 타격은 많이 보이지 못했지만 포수로 계속 나서면서 점차 포수로서 실력도 나아졌고 타격도 올라왔기 때문에 결국 시즌 마지막까지 주전 포수를 꿰찼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3년 10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앞선 3회말 무사 만루에서 나온 김현수의 투수 땅볼을 선발 투수 신재웅이 잡았고, 포수 윤요섭이 신재웅의 송구를 받아 3루주자 김재호를 홈에서 포스아웃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1루로 던지지 말아야할 타이밍에 1루로 던져 송구 실책+2실점+신재웅&김현수의 충돌을 유발하여 LG팬들은 물론 타 팀 팬들에게 엄청나게 까였다. 사실 김재호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송구 동작중인 윤요섭의 다리를 잡는 바람에 1루 송구가 빗나갔다.영상 그리고 팀이 스코어 2:4로 뒤진 5회말에 선두 타자이자 9번타자인 김재호 타석 때 2스트라이크에서 원 바운드로 온 제 3구를 빠뜨려(공식 기록은 폭투) 김재호를 스트라이크 낫아웃으로 출루시켜 쥐갤에서 분뇨섭이라고 미친듯이 까였다. 이날 윤요섭은 선발 포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5로 패했다.

2013년 10월 20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0:1로 지던 3회말에 2사, 1볼2스트라이크에서 낫아웃된 공을 심판에게 파울이라고 우기며 산책하듯이 뒤로 빠지는 공을 주우러 가서 쥐갤에서 다시 한 번 까였다. 이날 선발 포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5로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포수 겸 7번타자, 2, 3, 4차전은 선발 포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8타수 2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타점, 타율&장타율 .250, 출루율 .364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2.2.4. 2014 시즌

시범경기 중반부터 경미한 부상으로 약 일주일 정도 2군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LG 팬들은 개막전부터 작년 윤요섭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깨달았으니(...), 최경철-조윤준의 조합은 윤요섭을 그립게 하고 있다. 윤요섭은 최소한 '이번에는 설마?'라는 기대를 갖게 했던 공격력을 갖고 있었지만 최경철조윤준은 다음 타자가 누구지?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수비에서도 두 포수 모두 헛점을 보이면서 진심으로 하루빨리 그가 올라오기를 비는 중. 다행히 첫번째 휴식기가 끝나고 올라올 예정이다.

408 대첩이 일어난 경기에서 안타 2개를 치며 타격감이 좋음을 보여주었고, 블로킹 미스와 수비 실책으로 만루 위기가 2번 있었으나 잘 막아내었다. 다음날 경기에서도 6회말 1사 1, 2루 역전 위기에서 박종윤을 홈에서 잡아내며 실점을 막았다.

4월 1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라이벌전에서 코리 리오단 투수의 사인을 받지 않고 땅을 보며 멍을 때리다가(...) 결국 그 투구가 결승타가 되며 팀의 패배에 일조했다. 타격에서도 3타수 무안타 1삼진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다.

4월 29일 NC 다이노스전에서 무려 7개의 도루를 헌납하며 자동문의 위업을 보여줬다. 더 짜증나는 것은 윤요섭과 교체된 최경철은 교체되자마자 도루저지를 성공했다는 것이다. 결국 기사까지 나왔다. ‘1G 7도루 허용’ LG 윤요섭, 21년 만에 진기록

5월초 최경철과 번갈아서 나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영 좋지 못한 모습만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5월 11일, 새로 부임한 양상문 감독이 LG의 현 문제는 투수쪽이 아닐 포수쪽이라 진단하면서 김정민 2군 배터리코치를 1군으로 올렸다. 그 동안 팀을 말아먹는 모습을 보인 윤요섭에게도 후폭풍이 갈 예정.

윤요섭이 빠진 동안, 최경철이 홈런까지 치고 도루저지에서도 활약하는 등 점점 윤요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LG 팬들은 윤요섭이 그동안 현재윤의 부상, 조윤준의 2군행 등 철밥통을 맛보더니 나태한 플레이를 보이는 것에 매우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야말로 윤요섭이 그동안의 나사빠진 플레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5월 20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팀이 패배하였는데 윤요섭은 이날 피치아웃을 잘 시켜놓고도 도루를 허용하는 정말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하였다.

결국 5월 26일, 이병규와 함께 1군에서 말소되며 2군으로 내려갔다. 그 후 재활을 거쳐 2군 경기에 출전중이긴 하지만 언제 1군에 올리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 이후에는 1군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 최경철의 활약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엘펜 사이에서는 나오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게 하는 금지어수준으로 몰락해 버렸다.

2.3. kt wiz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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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2015 시즌

결국 2015 시즌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된 4월 20일에 1:2 트레이드[5]를 통해 박용근과 함께 신생 팀 kt wiz로 이적하였다. 협상 과정에서 박용근을 달라는 kt에게 LG가 이준형을 요구하면서 덤으로(...) 온 듯한 모양새. 조범현 감독은 당장은 지명타자로 활용할 계획이며 포수 수비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하니 포수 출장은 요원할 듯(...).

이적 후 4월 30일까지 타율은 .174에 불과하나 득타율이 5할로 깝깝했던 kt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덕아웃에서도 파이팅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돌격머리와 생김새, 기운넘치는 행동이 엮여 kt 팬들에게 오랑캐로 불리며 예쁨받고 있다.

6월 1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패색이 짙던 9회초 극적인 동점을 만든 후 장시환과 함께 배터리를 이루어 1사 1, 3루 위기상황에서 박종윤을 상대로 고의사구로도 보일 만한 바깥쪽 빠지는 볼 세 개를 연속으로 던지게 한 후 스트라이크를 하나 잡고 떨어지는 변화구를 연속으로 던져 범타처리하는 볼배합을 선보였다. 이 리드를 앞세워 무실점으로 이닝을 넘긴 후 역전승을 거두면서 6월의 팀 상승세에 공헌했다.

8월 1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5번 지명타자로 출장, 5타수 4안타 3타점을 올리며 본인의 첫 번째 4안타 경기를 펼쳤다. 다만 이날 경기가 시원한 타격전이었던 관계로(...) MVP는 되지 못했다.

8월 5일 팀배팅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범현 감독한테 호되게 까이고 2군도 아닌 3군으로 내려갔다.(이왕이면 선수를 옹호해주는 조범현 감독이 이정도로 까는 걸 보면 심각한 모양;;) 이후 22일 1군에 복귀하였고 7회말 유희관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쳤다.

8월 28일 KIA와의 경기에서 0:8로 앞선 8회 무사 1루에서 문경찬을 상대로 친 타구가 왼쪽 폴대 근처로 넘어가면서 홈런콜을 받았는데, KIA에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해서 자세히 보니 살짝 바깥쪽으로 넘어가서 파울로 번복되자 곧바로 중견수 뒤로 넘어가는 홈런을 만들어냈다. 시즌 8호. 혼자서 그라운드를 두 번 도는 묘한 장면이 그려졌고 팬들은 셀프 백투백 홈런이라며 즐거워했다.

9월 16일 NC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시즌 9호 솔로 홈런을 쏘아올렸다. 그러나 팀은 상대팀에게 팀 싸이클링 홈런을 헌납한 상태라서...

10월 경에 장성우의 장비를 써서 장성우가 싫어한다는 SNS 카더라가 돌았다. 모 선수가 훈련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 확실해진 가운데 2016년 시즌에는 주전포수로 뛸 가능성이 높아졌다.

2.3.2. 2016 시즌

조범현 감독이 경험 많은 베테랑으로서 활약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중. 일단 시범경기가 진행되는 3월 초 현재는 김종민이 포수를 포는 중이지만 정규시즌이 되면 주전으로 출장할 것으로 보인다.

4월 1일 개막전 경기에서 5회초 4:4 동점 상황에서 결승 투런을 쳤다. 팀은 8:4로 승리.

하지만 4월 한달동안 타율 0.146이라는 끔찍한 수치를 기록하며 4월 20일 경부터 김종민에게 밀렸고 결국 5월 2일에 말소되었다. 사실상 주전으로 무혈입성 할수 있던 기회를 놓쳤다고 봐야할 듯.

그리고 알게 모르게 1군에 조용히 콜업되었고, 8월 20일 한화전에서 기어이 장민재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쳐 kt의 한화 상대 시즌 우위를 확정지어 버렸다! 더군다나 5-9에서 9-9까지 쫓겨온 상황에서 나온 끝내기라 더욱 뜻깊었다.[6] 요란한 배트 플립이나 세레모니없이 조용히 마운드를 빠르게 밟았고 이후 팬들과 2군 감독에 대한 감사, 상대 팀 투수에 대한 배려, 당시 부상을 당한 최재원에 대한 사과와 장시환에 대한 변호까지 곁들인 겸손한 인터뷰로 많은 야구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10월 7일 NC전에서 8회 유민상의 대타로 나와 구창모에게 볼넷을 얻어내 출루한 뒤 대주자 정주후와 교체되었다. 그러나 심우준의 경기 2번째 병살타로 대주자는 득점하지 못했다.

2.3.3. 2017 시즌

장성우가 복귀하면서 자리가 없을 줄 알았으나, 시즌 초부터 허리 통증으로 출전이 어려워지면서 백업 포수 자리가 났다.

4월 12일 넥센전에서 3루수 정현의 대타로 나왔으나 귀신같이 병살타를 쳐 3대 5로 추격하던 흐름을 다 끊어먹었다. 팀도 결국 2연패를 기록.

13일 이해창이 포수 마스크를 쓴 넥센과의 원정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전하였고 4회 앤디 밴 헤켄을 상대로 팀의 첫 득점이 된 1타점 2루타를 뽑아냈고, 6회 바뀐 투수 양훈에 안타를 친 뒤 이진영, 심우준의 안타로 홈을 밟더니 9회 김세현을 상대로 결승타까지 치며 맹활약했다. 경기 기록은 5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 이 타점으로 팀의 2연패, 대 넥센 11연패까지 끊어주었다.

22일 수원 한화전에서 2회 송은범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기록했다.

5월 2~4일 수원에서 열린 롯데와의 3연전에 모두 출장했고, 3일 8회 강동호에게서 시즌 2호 홈런을 솔로포로 뽑아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안타를 치지 못했다.

5월 7일 부진을 겪는 모넬에게 송은범과 비슷하게(...) 배팅볼을 던져주고 통역을 불러 격려까지 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7일 출장은 못했으나 그 덕분인지 9회 1타점 2루타를 쳐내며 팀의 10번째 득점을 만들어냈다.

5월 7일 기준 시즌 타율은 0.219, OPS 0.724를 기록 중이다. 딱 백업 수준의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 17시즌 kt가 심각한 물빠따 기질을 보이는지라 간혹 포수가 아닌 지명타자, 1루수 포지션의 상위권 타선을 맡기도 하였다.

그러나 트레이드로 넘어온 오태곤, 윤석민에 코너 내야 자리가 생기고, 지타에는 이진영, 포수진은 이해창, 장성우가 확고한 주전인지라 도무지 출전 기회가 오지 않았고, 결국 김연훈과 시즌을 마치고 은퇴했다. 이후로는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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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지션이 원래부터 포수이긴 했지만, 단국대학교에서는 동기인 송산에게 밀려 1루수나 지명타자로 출전했다.[2] 그것도 각각 류현진, 차우찬, 트레비스에게 친 홈런들이다.[3] 2011년 고졸신인에 포수임에도 2군에서 중심타자를 맡을 정도로 타격엔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다고 한다. 박종훈 당시 LG 트윈스 감독 역시 공격형 포수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었다.[4] 투수는 권혁이었는데 자그마치 페이크 번트 슬래시 홈런이었다.[5] LG : 박용근, 윤요섭 ↔ kt : 이준형[6] 팀 창단 첫 끝내기 솔로 홈런이자 첫번째 상대전적 우세를 확정짓는 홈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