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織田長益(1547 ~ 1621)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이자 승려, 다도가.
전국시대 격동의 중심이었던 오다 가문에서 천수를 누린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우라쿠사이 죠안(有楽斎如庵)이란 불교식 법호로도 알려져 있으며 설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센노 리큐의 수제자들인 리큐 십철의 일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오와리의 다이묘인 오다 노부히데의 11남으로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와는 13살 터울 동생이자 그의 아들인 오다 노부타다에게는 숙부가 된다. 어렸을 때는 겐고로(源五郎)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장성한 후에 나가마스로 개명하였다. 조카인 노부타다의 휘하에서 나가시노 전투에 종군했고, 이후 1581년에는 노부나가가 교토에서 벌인 열병식에 참가했다.2.2. 혼노지의 변 이후
1582년 6월 2일, 혼노지의 변이 발발했을 때도 노부타다와 함께 니죠 성에서 주둔하고 있던 중 아케치 미츠히데 군의 공격을 받아 그곳에서 농성하다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여 아즈치 성을 경유해 기후로 피신했다. 이후 노부나가의 차남 노부카츠 아래로 들어갔다.이후 1584년에 미츠히데와 시바타 카츠이에를 연파한 하시바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코마키(小牧), 나가쿠테(長久手) 전투에서 대치하자 나가마스는 노부카츠를 따라 이에야스를 지원하며 사절로 활약했으나 히데요시 측의 우위가 굳어지자 이후 두 진영 사이의 화친을 중재하고, 히데요시의 대군세에 포위당한 삿사 나리마사를 항복시키는 데도 공을 세웠다.
오다와라 원정 후 노부카츠가 히데요시에 의해 개역을 당한 후 나가마스는 별도로 셋츠 국의 2천 석 다이묘가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하며 '유라쿠사이(有楽斎)'라고 자칭하고 센노 리큐 아래에서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후 나가마스의 다도는 '유라쿠류(有楽流)'라고 하는 일파를 이룬다.
2.3.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히데요시 사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으로 참전했고, 전투 중 이시다 미츠나리의 가신 가모 요리사토에게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전후 야마토국에 3만 2천 석 영지를 받았다. 하지만 조카인 요도도노의 후견인을 자처한 나가마스는 오사카 성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그녀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 측에 남아 있었다. 겨울 전투 때 이에야스 쪽에 인질을 보내면서 양측의 화의에 진력했지만,[1] 여름 전투를 앞두고 더 이상 오사카 성 안에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여 히데요리의 허락을 받고 성에서 나왔다. 이후에는 영지를 자식들에게 나눠준 채 교토에서 은거하며 다도에만 전념하다 1621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동군에 가담했지만, 종손[2]인 오다 히데노부[3]는 서군에 가담했다. 물론 임진왜란까지 끝난 판국이라 오다 노부나가 가문은 이미 망한 지 한 참 되었으니 별 의미는 없다.
3. 여담
- 도쿄 지요다 구의 지명인 유라쿠초(有楽町)는 나가마스의 저택이 있던 곳이었으며, 그의 법호인 우라쿠사이(有楽斎)을 따서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으나, 해당 지역은 메이지 초기에 처음으로 유라쿠초(有楽町), 에이라쿠초(永楽町)라고 명명되었으니, 어디까지나 민간의 설화일 뿐이다.[4]
- 후계자이자 조카인 노부타다는 할복했는데 본인만 도망쳐 나온 행동이 '조카는 깨끗이 죽으라고 부추겨서 죽여 놓고 자기는 도망쳤다'라며 후일 두고두고 서민들에게 조롱거리가 된 모양이다. '오다의 겐고[5]는 사람도 아니야. 배를 갈라라 갈라라 해서 가르게 만들어 놓고 자기는 아즈치로 도망간 겐고. 유월 2일[6]에 홍수가 나서 오다의 벌판을 쓸어버렸구나.' 라는 조롱 섞인 노래가 시중에 떠돌았다고 한다.
4. 대중매체에서
- 히라노 코우타의 만화 드리프터즈에서는 이계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만난 주인공 시마즈 토요히사가 오다 가문은 현재 히데요시의 차나 타주는 신세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정황상 나가마스로 추정된다. 이 말을 들은 노부나가가 큰 충격에 빠진 것은 덤.
- 효게모노에선 파격적인 센스를 보여주며 주인공인 후루타 사스케를 좌절하게 만드는 초반 라이벌 취급을 받았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일관하며, '후루타 사스케'를 줄여서 '후루사'라고 부른다. 혼노지의 변 시점에선 실제와 마찬가지로 니죠 성에서 노부타다와 함께 농성하다가 중과부적에 처하게 되자 노부타다에게 할복할 것을 권했다. 나가마스 자신은 조카가 할복하는 것을 본 뒤에 이어서 할복하겠다고 했지만, 사세구를 읊다가 갑자기 목숨이 아까워져 가이샤쿠 역을 맡은 병사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궁녀로 변장해서 도주한다. 이후 불타버린 혼노지 터에서 사스케와 함께 명물을 찾으려고 추태를 벌이다가 야스케와 사스케의 도움을 받아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기후로 무사히 피신했다. 이후에는 완전 양아치 화(...) 놀고 먹으면서 살아남아 문화생활을 즐길 궁리밖에 안 하며 이 파벌 저 파벌에 붙는다. 본가인 오다 가문의 재흥을 꾀하는 차차히메가 무력을 너무 경시한다고 판단하고 오다 가문의 친척들과는 거의 연을 끊는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아디오스 아미고라고 한 마디 하면서 후루타를 투석기로 날려버린다.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
노부나가의 야망 신생 |
-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오다 우라쿠사이란 이름으로 등장, 교양인을 푸대접하는 시리즈 전통에 따라 최신작인 천도 기준 통솔 24. 무용 7, 지략 5, 정치 68이란 답없는 D급 무장. 후방에 처박아두고 내정셔틀로 부려먹는 게 속 편하다. 교양 능력치가 있는 시리즈에서는(무장풍운록 등) 그나마 취급이 낫다.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합전 72 정치 89로 지나치게 높아졌다.
- 태합입지전에서도 역시 답이 없는 능력치를 자랑. 여기서의 이름은 초기 시나리오에선 '오다 나가마스'이며 1580년대 중반에 이름을 '오다 우라쿠'로 바꾼다. 가장 높은 능력치가 정무인데 50이다. 리큐칠철 답게 다도는 4지만 무사신분에선 다도는 주인공 카드 얻을 때랑 전술 카드 얻을 때 빼고는 어디 써먹을 곳이 없다. 족경과 기마가2지만 통솔이 48이라 역시 전장에서 굴릴 레벨은 아니고, 예법이 3이지만 예법을 잘 써먹으려면 직급이 부장정도는 되어야하는데 나가마스는 거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직급이 아시가루 조장이라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한 세월이다.
[1] 이에야스의 밀명을 받고 오사카 성 안에서 내부공작을 벌였다는 설도 있지만 확증은 없다.[2] 형이나 아우의 손자[3] 형인 오다 노부나가의 손자다.[4] 그러나 재밌는 것은 유라쿠, 에이라쿠 둘 다 오다와 연관이 있는 네이밍이라는 것. 유라쿠는 본인의 이름이니 말할 것도 없고, 에이라쿠는 오다 노부나가의 하타지루시였던 영락통보의 그 영락이다.[5] 나가마스의 통칭인 겐고로를 뜻한다.[6] 음력 날짜로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