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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db1><tablebgcolor=#004db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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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4db1> 몽골 제국의 한인세후 노무혜공(魯武惠公) 엄실(嚴實) | ||
| 작호 | 노국공(魯國公)[1] | |
| 시호 | 무혜(武惠) | |
| 성 | 엄(嚴) | |
| 이름 | 실(實) | |
| 생몰년 | 1182년 ~ 1240년 | |
| 출신 | 태안군(泰安郡) 장청현(長淸縣) | |
1. 개요
몽골 제국의 한족 출신 군벌로 자(字)는 무숙(武叔)이다. 그는 원래 금나라의 지방관이었으나 전란에 휘말려서 국적을 여러번 바꾸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몽골 제국에 귀순하여 제후가 된다. 그는 오랜 근거지인 동평부(東平府)에서 일족의 세력권을 굳건하게 형성하여 한인세후의 반열에 올랐다. 몽골 제국의 한인세후들 중에서 덕장(德將)의 면모가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이기도 하다.2. 생애
2.1. 초기 생애
엄실은 평민이었음에도 서책을 즐겨읽어서 학문적 소양이 있었고,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의지와 기개가 호방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데 능하였다. 때문에 그가 여러번 감옥에 갇히게 되었어도 그를 따르는 협객들이 힘을 다해서 번번이 구출해내었다고 전해진다.1213년, 칭기즈 칸이 금나라를 침공해와서 산동(山東), 하북(河北), 하동(河東) 등지를 휩쓸자 동평행대(東平行臺)[2]에서 몽골군을 막기 위해 의용군을 모집했는데, 엄실이 이에 지원하여 백부장(百夫長, 백호(百戶))에 임명되었다. 그 후 엄실은 홍오군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1218년에는 현령으로 승진한다.
2.2. 남송으로의 투항
엄실이 장청현령이 되던 무렵에 남송군이 금나라를 침공하여 익도(益都)를 탈취하는 일이 벌어졌고, 동평행대에서는 엄실에게 군량을 비축할 것과 남송군을 막을 계책을 낼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엄실이 세금 징수를 감독하고 돌아왔을 때는 장청현이 이미 남송군에 함락당한 뒤였고, 설상가상으로 동평행대에서 엄실이 남송과 내통하였다고 모함하는 자가 있었다. 결국 동평행대에서 보낸 병사들의 추격을 받게 된 엄실은 청애(青崖)로 달아난다.한편 엄실의 소식은 남송에도 전해졌고, 남송 측에서는 조공(趙珙)을 사신으로 보내와서 엄실에게 제남부치중(濟南府治中)의 관직을 제안하였다. 결국 엄실은 청애를 남송에 바치면서 투항한다.
2.3. 몽골 제국으로의 투항
남송에서는 금나라에서 투항해온 사람들로 네 개의 군대를 편성하여 산동 지역을 공격하였는데, 엄실이 그 중 한 군대를 이끌게 되었다. 그는 금나라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여 태행산(太行山) 동쪽 지역을 석권하니 태행산 동부 지역의 고을들이 대부분 엄실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1220년 봄, 금나라군이 남송군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창덕(彰德)을 공격해와서 포위하자 엄실은 그의 주장(主將) 장림(張林)에게 창덕을 구원해야 한다고 힘껏 말하였지만 장림은 머뭇거리면서 따르지 않았고, 결국 엄실은 단독으로 군대를 이끌고 창덕을 공격하여 탈환한다. 비록 금나라군을 이겨서 잃은 영토를 되찾기는 하였지만 엄실은 이 일을 계기로 남송군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로부터 4달 후, 엄실은 몽골군의 대장인 태사(太師) 무칼리에게 그가 다스리던 아홉 주(州)와 30여만 호(戶)를 바치면서 몽골 제국으로 귀순하였다.
2.4. 투항 초창기의 수난
엄실이 항복해오자 매우 기뻐한 무칼리는 그에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행상서성사(行尚書省事)의 관직을 승제(承制)[3]한다. 그 직후에 엄실은 장수가 되어서 금나라의 영토를 공격하였고, 조주(曹州), 복주(濮州), 단주(單州)의 세 성을 함락시켰다.그러나 이때 자리를 비운 엄실을 대신하여 청애를 지키던 그의 부하 장수 이신(李信)이 청애에 남아있던 엄실의 가솔들을 모두 죽이고 남송에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비록 1221년에 엄실이 청애를 탈환하고 이신을 처단하였지만 잃은 것들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엄실은 동평을 공격하여 무너뜨리고 그곳을 새로운 근거지로 삼는다.
그 후로도 엄실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1222년에는 남송의 장수 팽의빈(彭義斌)이 군대를 이끌고 엄실이 다스리는 경동(京東) 지역을 침략해왔으며, 청애에서는 또 엄실의 부하 장수 조해(晁海)가 반란을 일으켜서 청애를 다시 남송에 바쳤다. 특히 조해는 엄실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서 청애에 남아있던 엄실 일가의 저택을 파손하고 재물을 약탈하기까지 하였다.
1223년, 몽골군의 주장 사천예(史天倪)가 군대를 이끌고 금나라의 수도 변량(汴梁)에까지 육박하자 엄실은 재빨리 군대를 이끌고 사천예에게 합류한 후 그에게 금나라군을 같이 공격하자고 청하였다. 정작 변량의 수비태세가 굳건한 것을 본 사천예는 엄실을 만류했지만 엄실이 듣지 않고 단독으로 군대를 이끌고 금나라군과 싸우기 위해 출전하였다. 그러나 엄실은 이랄포아(移刺蒲阿)의 군대와 싸우던 도중에 그의 측면을 노린 완안합달(完顔合達)의 기습에 참패하였고, 결국 완안합달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당한다. 그나마 사천예가 군대를 파견해서 완안합달의 군대를 기습하였기에 엄실은 겨우 탈출하여 동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4]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동 지역의 성들을 지키는 엄실의 장수들은 대부분 팽의빈에게 투항해버렸고, 결국 1225년에 이르렀을 때 엄실의 세력권은 동평 한 곳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2.5. 세력을 회복하다
1225년 4월 여름, 팽의빈이 마침내 동평을 포위하자 엄실은 구원군도 오지 않고 식량도 고갈되어서 팽의빈에게 화친을 청하였다. 팽의빈은 엄실의 위세를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었으므로 겉으로는 엄실을 형님으로 예우하였지만, 배반한 옛 부하 조해를 붙잡아서 끌고 와달라는 엄실의 요구조건을 묵살하고 동평성을 차지해버린다.동년 7월, 팽의빈이 서산(西山) 지역을 침범하면서 엄실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팽의빈을 도울 생각이 없던 엄실은 몰래 몽골군의 주장 패리해(孛里海)에게로 달아나서 그의 밑으로 들어간다. 결국 팽의빈은 몽골군과 격돌하나 사천택(史天澤)에게 패배하여 군대가 궤멸당하였고, 본인 또한 사천택에게 죽임을 당하니 한순간에 경동 지역의 주인이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엄실은 팽의빈에게 빼앗겼던 경동 지역의 성들을 전부 되찾게 된다.
동년 겨울, 엄실은 무칼리의 동생 다이손을 따라 창덕을 공격하여 되찾았고, 1226년에는 복주와 동평을 탈환하였다. 또 1227년에는 익도를 포위하니 그곳에 웅거하던 홍오군의 수령 이전(李全)이 성을 바치면서 항복해왔다.
2.6. 말년과 죽음
1230년, 엄실은 오고타이 칸으로부터 호부(虎符)를 하사받았다.금나라가 망한 후 엄실은 동평로행군만호(東平路行軍萬戶)로 임명되었다. 원래 엄실이 다스리던 성은 54곳에 달했으나 그가 만호가 되면서 덕주(德州), 연주(兖州)[5], 제주(濟州), 단주의 네 성이 동평부에 더하여졌다.
1239년, 오고타이 칸은 엄실이 지병으로 몸이 불편하여 말을 타기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더 이상 그에게 외정의 임무를 맡기지 않았다.
엄실이 앓는 지병은 풍비(風痹)[6]였는데, 이 병이 오래되니 사람들 중에서 뛰어난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으라고 권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엄실은 초연한 태도로 웃으면서 유언을 남긴다.
사람이 어떻게 죽지 않을 수 있겠소. 나는 잇따른 질병을 맞이하여 죽게 되는 것이니, 그것으로 족하오.
《신원사》엄실전
1240년 4월, 엄실은 5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신원사》엄실전
3. 일화
3.1. 몽골군의 학살을 막고 백성들을 구제하다
엄실이 다이손의 휘하에 있으면서 창덕과 복주를 함락시켰을 때, 다이손은 격렬한 저항에 분노한 나머지 두 곳의 백성들까지 모두 학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이손이 학살을 결심할 때마다 엄실이 강한 어조로 힘껏 말리면서 막으니 다이손은 뜻을 꺾었고, 결국 두 곳의 백성들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 후 다이손은 더 나아가 조주, 초구(楚丘), 정도(定陶)[7], 상당(上黨) 등지를 공격하여 무너뜨렸지만 백성들을 해치지 않았다.한편 금나라가 멸망한 후에 몽골군이 남송을 공격하면서 하남(河南) 지역에 거주하던 수많은 백성들이 학살당하였다. 이때 회수(淮水) 일대에 주둔하고 있었던 엄실은 금과 비단을 싣고 하남으로 달려가서 살아남은 백성들에게 베풀었으며, 몽골군의 악행을 사죄하고 그의 부하들에게 함부로 백성들을 상대로 살육과 약탈을 자행하지 말 것을 약속하도록 하였다. 이 무렵에 영벽현(靈壁縣)[8]에서는 5만여 명의 백성들이 처형될 예정이었으나 엄실이 그들을 모두 구원하여 죽임을 당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몽골 제국과 남송이 한창 전쟁을 벌일 때, 몽골 제국에서는 심한 기근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궁핍하였지만 나라의 법은 엄하였다. 결국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백성들 중에서 달아나다가 죽는 자들이 매우 많았으므로 엄실은 휘하의 장병들에게 죽을 쑤도록 명령하였고, 그렇게 만든 죽들을 백성들에게 베풀었다. 이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살아날 수 있었다.
3.2. 배반한 부하에게 자비를 베풀다
처음에 엄실의 부곡(部曲)에 속했지만 탈영하여 익도로 들어간 자들이 수십여 명 있었는데, 몽골군이 익도를 함락시키자 그들은 모두 붙잡히게 되었다. 그들은 법에 의하면 마땅히 처단되어야 했지만 엄실은 불문에 부쳐서 그들을 용서하고 살려주었다.왕의심(王義深)이라는 자는 원래 팽의빈의 별장(別將)이었다가 엄실의 부하가 되었는데, 그는 팽의빈이 패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하남으로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왕의심은 하남으로 달아나면서 동평성 안에 있는 엄실의 족속(族屬)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몽골군이 하남을 함락시켰을 때, 엄실은 왕의심의 처자식을 포로로 잡게 되었지만 그들의 속박을 풀고 따뜻하게 대해준 뒤 고향으로 돌려보내었다. 그러고는 죽는 날까지 왕의심에게 앙갚음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원한을 품는 태도를 가지는 것을 경계하여 몸과 마음을 삼가면서 지냈다.
4. 평가
엄실이 죽자 가깝고 먼 곳을 막론하고 부고를 접한 모든 이들이 애도하였으며, 민간에서는 슬피 울고 거리에서 엄실의 제사를 지낸 것이 한 달 동안 그치지 않았다.
《원사》엄실전
항복하지 않거나 끝까지 저항하는 적에게 잔혹하고 무자비했던 13세기 몽골군의 악랄함을 비추어볼 때, 점령지의 백성들을 최대한 구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던 엄실은 당대에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더구나 엄실은 배반한 부하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어서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까지 분노에 잠식되지 않으려고 통제하는 성인군자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러한 엄실의 덕행은 결과적으로 엄실 본인의 명성을 높였을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산동 서부지역의 대제후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지지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원사》엄실전
5. 가족 관계
- 엄충정(忠貞)
엄실의 장남으로 금자광록대부를 역임했지만 엄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엄충제(忠濟)(? ~ 1293)
엄실의 차남이자 사자(嗣子)로서 엄실이 죽은 후 동평만호의 관직을 물려받고 산동 서부지역을 다스린다. 동평만호를 지낼 때 회수, 한수(漢水) 일대를 공격하였으며, 숙주(宿州)와 기현(蘄縣)에 성을 축조하고 잠저 시절의 쿠빌라이 칸을 따라 악주(鄂州)를 공격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동평을 다스리면서 사당과 학교를 증축하고 학자들을 초빙하는 등 내치에도 힘을 기울여 내정과 외정에서 모두 공적을 올렸다.
- 엄충사(忠嗣)(? ~ 1273)
엄실의 삼남으로 형 엄충제의 만호 관직을 이어받고 무장으로 활약한다. 그는 특히 회수, 악주 공격과 이단(李璮) 토벌에 참전하여 모든 전투들에서 전공을 올렸다. 그러나 이단의 반란을 경계한 몽골 조정에 의해 한인 제후들이 대거 실각하게 되면서 그 또한 병권을 박탈당하였고, 10년 가까이 자택에서 지내다가 죽었다.
- 엄충범(忠範)(? ~ 1275)
엄실의 사남으로 어려서부터 볼모가 되어 잠저 시절의 쿠빌라이 칸을 숙위(宿衛)하였다. 1262년에 이단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동평을 지키는 한편 숙주, 기현에도 수비병력을 증파하지만 두 곳을 지켜내지 못한다. 이후 여러 패전과 실책에도 불구하고 쿠빌라이 칸의 총애에 힘입어 중용되었고, 병부상서(兵部尙書), 형부상서(刑部尙書), 섬서사천행중서성사(陝西四川行中書省事) 등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1275년에는 국신부사(國信副使)로서 국신사 염희현[9]과 함께 남송에 사신으로 파견되지만 독송관에 이르렀을 때 그곳의 수장(守將) 장유(張濡)에게 살해당한다.
[1] 1261년에 추증됨[2] 행대는 중앙 관청의 분사기관으로 수도 이외의 지방을 다스리던 통치기구를 의미한다.[3] 지방을 다스리는 제후나 통치자가 군주로부터 관리 임용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거나 임의로 관직을 부여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한다.[4] 이 굴욕적인 일화는 엄실의 열전에 당연하게도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사천예의 열전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패배는 최대한 감추고 승리나 성취를 위주로 기록하는 열전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다.[5] 오늘날의 산둥성 지닝시 옌저우구(兖州區)[6] 중풍의 일종으로 뇌와 척수에 장애가 생겨 팔다리가 마비되고 감각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다.[7] 오늘날의 산둥성 허쩌시 딩타오구(定陶區)[8] 오늘날의 안후이성 쑤저우시 링비현(靈壁縣)[9] 위구르인 출신 재상 염희헌의 종제(사촌 아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