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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db1><tablebgcolor=#004db1> ||
1. 개요
史天祥, 1191 ~ 1258몽골 제국의 한족 출신 무장으로 영청현(永淸縣)[1] 사람이며, 영청 사씨 가문의 수장이던 호족 사병직(史秉直)의 족질(族侄, 집안 조카)이다. 그는 몽골 제국의 개국공신인 무칼리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대표적인 용장(勇將)으로서 금나라와의 전투에서 맹활약하였지만 젊은 나이에 재기불능의 부상을 입게 되는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사천상은 1213년에 그의 숙부 사병직이 금나라를 침공해온 몽골군의 주장(主將) 무칼리를 찾아가서 투항하자 그와 함께 무칼리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는 부친 사회덕(史懷德)과 함께 투항 직후부터 장수로 기용되었고, 200여 명의 건졸(健卒)들을 모집한 후 줄곧 몽골군의 앞장을 서서 싸웠다.사천상은 처음에 무칼리를 따라 패주(覇州)[2] 일대를 장악했으며, 동쪽으로 나아가서는 치주(淄州), 기주(沂州), 밀주(密州)[3]를 함락시키는 데 모두 공을 세웠다. 이로써 그는 만여 명의 가병(家兵)들을 거느린 종형제 사천예(史天倪)와 함께 무칼리가 이끄는 금나라 정벌군의 주요 장수가 된다.
2.2. 금나라의 북경을 장악하다
1214년, 무칼리는 고주(高州)[4]를 공격하여 일대를 대부분 장악하였지만 금나라의 북경(北京)을 공격했을 때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칼리는 처음에 북경성을 무너뜨리지 못하자 군대를 정돈하고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였는데, 이 전투에서 사회덕이 선봉에 섰으나 그는 금나라 군사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무칼리는 사회덕이 이끌던 정예부대인 흑군(黑軍)을 사천상에게 물려주었고, 사천상은 울분에 찬 나머지 힘을 다하여 북경성을 공격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가 되자 무칼리 휘하의 대장 오야아(烏野兒)와 함께 북경의 수장(守將)들을 굴복시키고 성을 점령하였다.
북경을 무너뜨린 사천상은 북경 주변에 세워진 요새들을 점령하였고, 포로로 잡은 금나라 장수들이 순순히 투항하도록 후하게 대접하면서 좋은 말로 회유하였다. 이로 인해 그들이 아직 몽골군에 항복하지 않은 다른 장수들을 설득하니 요새 20여 곳이 몽골군에 항복해오게 되었다. 사천상은 투항해온 사람들 중 정예한 군사 8천여 명을 자신이 이끄는 흑군에 편입시켰다.
다만 서건채(西乾寨, 요새 이름)의 수장 하답로와 오지산(五指山)에 웅거하던 금나라의 장수 양조노 두 사람만이 끝까지 항복해오지 않으니 사천상이 군대를 이끌고 그들과 싸움을 벌인 끝에 두 사람을 패배시키고 양조노를 죽였다. 이로써 북경 일대가 평정되자 사천상은 무칼리에게 공을 인정받고 서산병마총수(西山兵馬總帥)로 승진한다.
2.3. 금나라 정벌군의 용장
장치(張致)라는 자는 몽골군의 주의가 북경에 쏠려있는 틈을 타서 금주(錦州)를 장악하고 황제를 참칭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사천상은 무칼리를 따라서 장치를 신속하게 토벌하였다. 그는 또 거란군과 한군(漢軍)을 통솔하여 이주(利州), 은치(銀治)에서 각각 금나라군을 깨뜨렸으며, 두 곳에서 모두 적장을 붙잡거나 참살하였다.그 후 사천상이 인근의 여러 요새들을 격파하고 금나라 군사 1만여 명과 그들의 주장 두절(杜節)을 포로로 잡으니 무칼리는 포로들 중 5백 명을 뽑아서 사천상에게 넘겨주고 이끌게 하였다.
1216년, 사천상이 칭기즈 칸을 알현하자 칭기즈 칸이 그에게 금부(金符)를 하사하고 제공원수(提控元帥)의 관직도 직접 내려주었다. 이 해에 사천상은 요녕(遼寧) 일대를 정벌하고 싸움 중에 금나라의 장수 두 사람을 사로잡았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서 진국상장군(鎭國上將軍)으로 승진하고 절도사(節度使), 도총관(都總管), 병마원수(兵馬元帥)의 관직들도 겸하게 되었다.
그 이듬해에 그는 무평(武平), 흥주(興州) 등지에서 반란군과 금나라군을 격파하였는데, 그는 매 전투마다 적군의 장수를 붙잡거나 참살하여 위세를 떨쳤다.
1219년, 사천상이 권병마도원수(權兵馬都元帥)로 승진함에 따라 몽골군, 한군, 흑군이 모두 그의 통제를 따르게 되었다. 이 해에 사천상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무칼리를 따라 산서(山西) 지역을 공격하여 80여 곳의 성들을 무너뜨렸다.
2.4. 무씨 형제를 제압하다
1220년, 사천상이 진정(眞定)에 도착하자 무칼리가 성을 공격할 것을 명령하였는데, 사천상이 공격하기 전에 설득을 시도해 보자고 권하니 무칼리가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이에 사천상은 진정의 수장 무선(武仙)을 만나서 항복에 관한 이해득실을 논하였고, 결국 사천상에게 설득된 무선이 성을 바치면서 투항해왔다.무칼리가 진정을 얻게 되자 오야아는 사천상을 남겨서 그 성을 지키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사천상을 총애했던 무칼리는 오야아의 청을 듣지 않았고, 그 대신 사천예를 진정의 수장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사천예가 도원수(都元帥)에 임명되었고, 사천상은 좌부도원수(左副都元帥)가 되어서 군대를 이끌고 형서(邢西)에 주둔하였다.
한편 형서 지역은 무선의 형 무귀(武貴)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가 요수산(遙水山)의 위에 요새를 쌓고 굳게 지키니 몽골군이 그를 여러 차례 공격했음에도 지세가 험하고 방비가 삼엄하여 그의 요새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에 요수산의 아래에 진을 치고 있던 사천상이 흑군 1백 명을 선발한 후 그들과 함께 밤중에 암벽을 타서 산의 위로 올라갔고, 곧바로 요새를 기습해서 무귀를 사로잡으니 이로써 형주(邢州)가 평정되었다.
그는 형주를 무너뜨린 뒤에 자주(慈州)와 상주(相州)까지 점령하였고, 그 후 무칼리를 따라 산동(山東)으로 진격한다.
2.5. 산동 전역
산동에 도착한 사천상은 무칼리와 함께 황룡강(黃龍岡)에서 금나라군과 큰 싸움을 벌였고, 그 직후에 단주(單州), 승주(勝州), 연주(兗州)를 차례대로 무너뜨렸다.한편 몽골군의 또 다른 주장인 오야아가 동평(東平)을 오랫동안 포위하고 공격했음에도 성을 무너뜨리지 못하자 무칼리는 오야아가 힘을 다해 싸우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무칼리가 분노한 나머지 오야아를 직접 베어 죽이려고 하니 사천상이 말리면서 자기가 대신 동평을 공격하겠다고 청하였고, 이에 무칼리가 기뻐하며 허락하니 오야아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사천상 또한 동평을 무너뜨리지 못하니 금나라군과의 치열한 싸움은 계속되었고, 이에 깨달음을 얻은 무칼리가 사천상에게 사자를 보내서 싸움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로써 산동의 전투는 일단락되었다.
2.6. 섬서 전역과 불의의 부상
1221년, 사천상은 무칼리를 따라 섬서(陝西)로 군대를 옮겼고, 수덕주(綏德州), 부주(鄜州), 방주(坊州) 등 50여 곳의 성들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1222년, 무칼리가 청룡보(靑龍堡), 금승보(金勝堡) 등의 여러 성들을 공격했지만 수비자들의 저항이 거세어 쉽게 무너뜨리지 못하였다.
결국 무칼리는 성들을 모두 무너뜨린 뒤에 성을 지켰던 자들을 모조리 도륙하려고 했지만 사천상이 살상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하자 뜻을 꺾었다.
이 해에 사천상은 금나라의 장사(壯士) 5천여 명을 포로로 붙잡았다.
1223년, 사천상은 하중(河中)[5]으로 회군하였고, 무칼리는 사천상이 그간에 세웠던 전공들을 칭기즈 칸에게 보고하였다. 칭기즈 칸은 사천상의 금부를 금호부(金虎符)로 바꿔주는 한편 그의 관직을 몽고한군병마도원수(蒙古漢軍兵馬都元帥)로 높였고, 하중에 계속 주둔하면서 20만 호(戶)의 군민들을 이끌게 하였다.
이 해 겨울, 사천상이 서하를 공격하여 하란산(賀蘭山, 허란산맥)에서 서하군을 격파하였지만 그는 회군하다가 서하의 군사들에게 야습을 당하였고, 얼굴에 화살을 맞아서 큰 부상을 입었다. 결국 그는 이 부상으로 인해 다시는 전장을 누비지 못하게 된다.
1224년, 사천상이 북경으로 귀환하자 칭기즈칸이 그의 관직을 우부도원수로 고쳤다.
2.7. 툴루이 섭정기 및 오고타이 칸 시절
처음에 사천상이 화살을 맞았을 때 화살촉이 그의 뺨뼈에 깊숙이 박혀버리는 바람에 빼내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사천상의 금창(金瘡)이 심해지면서 환부가 곪아 터지게 되었고, 이로써 화살촉도 저절로 빠져나오게 되었다.이 무렵에는 칭기즈 칸이 이미 죽고 없었으므로 툴루이가 섭정을 맡으면서 대칸(大汗)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었는데, 그는 사천상의 소식을 듣고 몹시 가여워하였다. 결국 툴루이는 사천상에게 총관(總管)과 달로화적(達魯花赤)의 관직을 더해주었고, 도원수의 관직도 회복시켰다.
1230년, 여구하(廬胊河, 케룰렌 강)에서 오고타이 칸을 알현한 사천상은 그 자리에서 은퇴를 청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그 이듬해에 오고타이 칸이 하남(河南)으로 가면서 사천상에게 종군을 강권하자 그는 군량선을 타고 하상(河上) 일대를 선회하면서 몽골군 부대들에 식량을 배급하였다.
1232년, 금나라의 수도 변량(汴梁)이 무너지자 사천상은 오고타이 칸의 명령에 따라 변량에서 포로로 잡힌 백공(百工) 수천 명을 이끌고 패주에 주둔하였다. 오고타이 칸은 사천상이 명령을 수행하자 그에게 비단옷 한 벌을 하사하였고, 그의 관직을 행원수부사(行元帥府事)로 고쳤다.
1235년, 오고타이 칸이 호적에 등록되지 않은 가구들을 조사하였다. 이 당시에 사천상이 거느린 노비들은 그 수가 천여 명에 달했지만 사천상은 그의 노비들을 모두 해방시켜서 평민으로 살아가게 하였다.
2.8. 말년과 최후
1251년, 몽케 칸은 대칸으로 등극하게 되자 사천상의 옛 관직들을 모두 복구시켰다. 그러나 말년의 사천상은 금창으로 인한 병을 심하게 앓아온 나머지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맹인이 되었으므로 업무들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젊었을 때처럼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한 번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1258년 음력 9월, 사천상은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3. 평가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도 않았는데 지략과 용맹함을 겸비한 재사(才士)를 어떻게 내 곁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겠는가!"
무칼리가 그의 부하 장수 오야아에게 한 말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칼리군 제1의 선봉장으로 칭할 만한 인물이다.무칼리가 그의 부하 장수 오야아에게 한 말
사천상은 용맹과감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용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고, 상관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동료를 구명하고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는 덕장의 면모도 갖추었다. 또한 적정을 정확히 간파하고 시의직절하게 적의 장수들에게 항복을 권하였던 그에게서 지장(智將)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즉, 사천상은 양장(良將, 뛰어난 장수)의 요건을 모두 갖춘 걸출한 장수였다.
그가 이른 나이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만 않았다면 그는 금나라뿐 아니라 남송과의 전투들에서도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였을 것이고, 같은 일족의 다른 명장들을 뛰어넘는 최고의 한족 출신 몽골군 장군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점에서 젊은 시절에 끝나버린 그의 군사 커리어가 깊은 아쉬움을 남긴다고 하겠다.
[1] 오늘날의 허베이성(河北省) 랑팡시(廊坊市) 융칭현(永淸縣)[2] 오늘날의 허베이성 바저우시(覇州市)[3] 오늘날의 산둥성(山東省) 주청시(諸城市)[4] 중국의 고대 행정구역으로 요나라가 여요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고려인들을 이곳에 거주하게 하여 고주라고 명명되었다. 이후 고주는 원나라 때까지 존속하다가 명나라 초기에 폐지되었다. 성과 치소(治所)가 있던 중심지는 오늘날의 내몽골 자치구 츠펑시(赤峰市) 쑹산구(松山區) 동북부 지역이다.[5] 중국의 고대 행정구역인 하중부(河中府)를 일컫는다. 성과 치소(治所)가 있던 중심지는 오늘날의 산시성(山西省) 융지시(永濟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