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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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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lhambra-Tickets.jpg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그라나다
―알람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영어 Alhambra,
Generalife and Albayzín, Granada
스페인어 Alhambra,
Generalife y Albaicín de Granada
프랑스어 Alhambra,
Generalife et Albaicin, Grenade
국가·위치 스페인 안달루시아 그라나다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4년[1]
등재기준 (i)[2], (iii)[3], (iv)[4]
지정번호 314

파일:attachment/court_of_the_lions_alhambra_granada_spain.jpg

[5]

1. 개요2. 역사3. 건축4. 관광5. 기타6. 각종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스페인어: Alhambra[6]
아랍어: القلعة الحمراء (Al-Qalat al-Ḥamrā)[7]
영어: Alhambra Palace

스페인어로는 알람브라로 읽는데 h가 묵음이기도 하고 발음상 혀위치가 ㄹ연속으로 발음이 현지식 발음에 가깝다.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했던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극도로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어 높이 평가받는 건물이며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건축이 절충된 예이기도 하다. 지금은 전형적인 기독교 문화권이 된 도시에서 이슬람의 흔적이 듬뿍 담긴 궁궐을 보는 기분이 묘하다. 정반대 사례가 바로 과거에는 동방 정교회 예술의 정수이자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이슬람 문화권의 도시가 된 이스탄불성 소피아 성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크게 4개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처음 지어진 건축물이자 가장 전망 좋은 요새인 알 카사바, 아라베스크 양식의 꽃인 나사리 궁전, 아름다운 정원과 분수의 헤네랄리페, 스페인 르네상스 시기의 건물인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산타 마리아 성당과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다.

세계의 건축 장식을 연구했던 <Grammer of Ornament>의 저자 오웬 존스는 알람브라, 무어인의 장식을 최상으로 꼽기도 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와 종유석 모양의 세밀하고 방대한 장식을 가진 아치와 기둥, , 각종 수로와 수변, 담담한 벽의 대비 등을 볼 수 있다.

파일:mapa-alhambra.png

2. 역사

이미 로마 시대에 조그만 요새가 있었고 9세기에 그라나다의 에미르가 성벽과 토대를 올렸다. 1238년에 그라나다의 술탄 무함마드 1세가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100년에 걸쳐 점차 화려한 궁궐로 변모시켰다. 이 시기에는 이미 나스르 왕조 외의 모든 이슬람 왕국은 이베리아반도에서 휩쓸려 나가 버렸고 유일하게 남은 그라나다도 카스티야에 막대한 상납금을 지불하는 대가로 겨우 국체를 유지하는 상태였다. 무어인 최고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알람브라 궁전은 '알 안달루스'의 황혼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워졌다.

여길 빼앗기고 북아프리카로 가야 했던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 마지막 에미르[8]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게 슬프구나.' 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9] 그렇지만 패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이 "남자처럼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기라도 해야지." 라며 툭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결국 여길 잊지 못하던 보압딜은 북아프리카에 알람브라보단 못해도 대충 비슷한 궁궐을 만들어 거기서 살다가 죽었다.

이사벨라 1세가 인근에 신도시이자 그라나다 포위망의 완성인 산타페를 건설하고 결국 1492년에 이슬람 세력의 항복을 받아낸 뒤 기독교 세력은 이 궁전도 접수했다. 이교도 상징이 빼곡한 공간이었음에도 스페인 국왕이나 귀족들은 이 곳을 궁궐로 쓰길 원했다. 이사벨라 1세의 손자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스페인에선 카를로스 1세)는 이 궁전에서 거주하기 위해 새로운 카를로스 5세 궁전을 알람브라 한가운데에 지었지만 양식이 이질적이었고 오랜기간 완성되지도 못했다. 그는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이교도 상징을 지우기 위해[10] 궁궐의 일부분인 모스크성당으로 개축하고 성당에 딸린 수도원도 짓고 궁궐의 일부도 기독교식으로 새롭게 만들었는데 그 와중에 이전에 있던 아름다운 여러 건물들과 장식이 훼손되었다.

이후 알람브라 궁전을 왕궁으로 쓴다던 계획도 흐지부지되어 중앙 정부에서는 슬슬 이 궁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18세기 초에 펠리페 5세가 며칠 들렀던 것이 마지막 왕실의 방문이었다. 이후에도 알함브라는 계속 훼손되었는데 계속적인 개수공사가 있었음에도 이베리아 반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말미인 1812년에 프랑스의 세바스티앵에 의해서 탑들이 철거되어 피해를 입고 1821년에는 지진 피해까지 입었으며 이후에는 지역 총독마저 알함브라 맞은편의 헤네랄리페에서 거주하면서 궁전을 완전히 방치하는 바람에 집시와 강도들의 무단거주지로까지 퇴락했다.

이 궁전이 다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미국인 작가이자 외교관인 워싱턴 어빙에 의해 1829년 알람브라의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가 출판되면서부터였다.[11] 1828년부터 호세 콘트레라스에 의해 원형을 찾기 위한 공사 및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1830년에 페르난도 7세의 기부로 지속적으로 공사를 할 수 있었으며 1847년 호세가 사망했으나 그 아들이 물려받아 계속 공사하였다. 1870년에는 국보로 지정하였고 1984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21세기에도 계속해서 원형 회복을 위한 공사나 보수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로 천장과 기둥 사이 레이스를 묘사한 부분들을 복원하고 있다. 지금은 세월의 풍파로 색이 바랬으나 원래대로 복원하면 알록달록 색이 입혀져서 아름다울 거라고 한다. 이외에도 약해진 구조 때문에 기둥과 건물 사이에 쇠파이프로 지탱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건축

파일:그라나다 알하므라.jpg

4. 관광

알람브라 궁전의 핵심인 나스르 궁전은 동시 입장 인원 제한을 두고 공개하고 있어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만 입장 가능하다.

기대거나 만지는 것도 내부에서 엄격하게 금지할 정도로 훼손에 민감하다.

바코드가 찍힌 입장표를 최초입장시 신분증과 함께 보여주고 이후 신분증이 티켓 역할을 한다.

단 나사리 궁전 입장 시 예약시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예약시간을 확인을 위해 예약서류를 제시해야 한다. 여권에서 사용하는 MRZ 형식으로 기록되어야 신분증으로 인정 되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은 여권만이 유일한 신분증으로 인정된다. 그러므로 여권이 없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

국제운전면허증, 영문표기운전면허증 등등 일체의 다른 신분증은 신분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궁전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수 있는데 가격은 2019년 1월 기준 6유로다. 한국어도 있으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차라리 영어가 더 낫다는 평가도 있다. 갤러리

5. 기타

밤이 되면 건물 외벽에 불이 켜져서 아름답다. 알바이신 지구에서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함께 볼 수 있다.

주변 학교에서 소풍 장소로 선정을 자주 하는 듯하며 어린 학생들이 관광객들 사이로 떼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이 궁전을 여행한 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곳을 여행하면 버스커들이 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파일:알함브라 벽화.jpg

정원과 분수 외에도 벽화와 천장 등 내부 장식도 매우 아름답다. 왕의 전당에 있는 금박 벽화는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카를 5세가 알람브라에 유럽식 건물을 지어 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안 어울려서 탄식했다는 야사는 알람브라 궁전의 것이 아니라 코르도바의 이슬람 성전인 메스키타의 일부를 부수고 가톨릭 성당을 지은 것과 관련된 것이다. 상황이 비슷하니 혼동되는 듯하다.[12]

6. 각종 매체에서


[1] 1994년 등록확장[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5] 사자의 중정, 기둥 사이 폭포수처럼 묘사된 것은 레이스다.[6] 스페인어에서 h는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고 읽는다.[7] '붉은 요새'이라는 뜻이다.[8] 기록상 에미르로 칭하고 있다. 사실 나스르 왕조의 군주는 술탄, 아미르 등 여러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9] 사실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여기에 남는 걸 허락했지만 보압딜은 그냥 자기가 떠났다고 하는 야사도 있다.[10] 카를 5세의 가톨릭 신앙은 매우 충실하였고 그런 성향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영향을 주었다.[11] 그는 알람브라에 거주하면서 책을 집필하였고 그 덕분에 다시 빛을 본 궁전에 그를 기념하는 명패도 새겨 놓았다.[12] 그 야사는 막상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이 기존의 이슬람 양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자 카를 5세가 이렇게 탄식했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을 지으려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을 부수어 버렸구나!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13] 스페인의 상당수의 대성당이 이런 식으로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