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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18 20:17:27

션 레논

<colbgcolor=#593a32><colcolor=#fff> 션 레논
Sean Ono Lennon
파일:션 레논.jpg
본명 션 타로 오노 레논
Sean Taro Ono Lennon
일본명 小野太郎 (오노 타로)
출생 1975년 10월 9일 ([age(1975-10-09)]세)[1]
미국 뉴욕 주 뉴욕 시[2]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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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체 175cm
학력 르 로제
직업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가족 존 레논(아버지, 1940 ~ 1980)
오노 요코(어머니, 1933년생)
줄리안 레논(이복형, 1963년생)
쿄코 찬 콕스(이부누나, 1963년생)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진외당숙, 1944년생)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아티스트로서
2.1. 사용 악기
3. 음반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욱일기 옹호 발언4.2. 마리사 토메이와의 갈등
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존 레논오노 요코 소생의 외동 아들이자 줄리안 레논이복동생이다.[4]

부모님이 누구인지랑 황백혼혈 특유의 외모를 보면 알수있다시피 일본계 미국인이다.[5] 일본에서 잠깐 유치원 생활을 한 적이 있으나, 일본어는 그냥 단어를 조금 하는 수준이다. 이와 별개로 프랑스어는 구사한다.

비틀즈가 엄청난 인기를 거두자 존 레논은 그 인기에 취하여 가정에 소홀해졌고, 그 결과로 아버지 존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많던 줄리안과 달리 션은 태어날 때부터 존이 죽을 때까지 존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알려져 있다.[6] 그래서 존은 션이 불과 5살일 때 사망했지만, 션은 존에 대한 기억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이런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줄리안과 션은 사이가 좋은 편인데, 션이 태어났을 때 형으로서 잘 돌봐줬고, 기타도 가르쳐주기도 했거니와 2007년 션의 Friendly Fire 투어에도 게스트로 참여를 했을 정도이다.

다만 줄리안이 오노 요코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자 션이 일방적으로 줄리안과의 연락을 끊어버렸고, 결국 줄리안이 사과한 다음에는 서로 같이 잘 지내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7]
<nopad> 파일:sean lennon with his parents in 1975.jpg파일:sean with julian.jpg파일:sean lennon 1989.jpg
어린 시절의 션 레논[8]

이후에는 서로의 인스타에 같이 찍은 사진을 종종 올리거나 서로의 생일을 공개적으로 축하해주는 등 형제 간의 우애가 원만한 편이다. 줄리안은 션과 몇 주에 한 번씩 FaceTime이나 Zoom을 사용한다고 밝혔으며 심지어 2023년 인터뷰에서 "우리는 형제이고 그 수준에서 서로를 깊이 사랑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매일 이야기를 나눕니다." 라고 말했다.#

2. 아티스트로서

유명 가수의 자녀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도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후광은 못 벗어났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부모의 유명세에만 편승하려는 행보는 딱히 보이지 않았고, 음악적인 면에서 대중들에게 나름 호평을 듣는 축인데다가 여타 유명 뮤지션에 비해 꿀리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중에게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인정받았고, 나름 음반 판매량 플래티넘까지 따낸 줄리안과 달리[9] 션은 꾸준히 활동한게 아니었기에 비교적 평가가 박한 경향이 있다. 다만 앨범의 완성도에 있어서 평론가들의 평은 션 레논이 더 높은 편이다.[10]

솔로로 정규 앨범을 2장 낸 적도 있는 엄연한 싱어송라이터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그의 솔로곡은 싸이월드 브금으로도 꽤 쓰인 Parachute이다. 실제로도 유튜브의 커버 영상을 보면 영어로 된 곡임에도 은근 한국 계정의 비중이 있는 편이다.

2015년부터는 프라이머스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인 레스 클레이풀과 함께 'Claypool Lennon Delirium'으로 활동하고 있다.[11]

2020년 10월 9일, 존 레논의 80번째 생일을 기념으로 Isolation을 커버하였다. 이 날은 션의 45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원곡은 피아노 반주이지만 이 영상에서 션은 일렉트릭 기타로 알맞게 편곡하여 댓글은 대체로 호평일색이다.

2022년 6월 18일, 폴 매카트니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ere There and Everywhere커버해 업로드하였다.

2.1. 사용 악기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계의 대표격이자 넘사벽인 아빠의 절친만큼은 아니지만 션 본인도 꽤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개성있는 목소리에 기반한 보컬은 물론이고[12] 줄리안에게 기타를 배웠는데 나름 실력은 출중한 편이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가 노래할때 피아노반주를 한 적이 있으며 베이스드럼도 다루는 사진과 동영상이 본인의 인스타에 있다. 이 때문인지 본인 앨범을 포함한 주변 음악인들의 프로듀싱을 맡은 적도 있을 정도다.
<nopad> 파일:sean lennon 00-15m.jpg파일:sean lennon jaguar.jpg
기타를 연주하는 션 레논[13]

3. 음반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욱일기 옹호 발언

파일:ECqy8A_UcAAlqVm.jpg-large.jpg
욱일기 티셔츠를 입은 사진 #
2019년, 션 레논과 2005년부터 교제 중인 미국 여가수 샬럿 켐프 뮬(Charlotte Kemp Muhl)[14]이 일본군의 군기였던 욱일기가 그려진 티셔츠[15]를 입어 논란이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이러이러한 뜻이 있으니 쓰면 안 된다."라며 온건하게 설득했으나 이에 샬럿은 '원래는 좋은 뜻이고,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처럼 전쟁 때만 쓰인 게 아니라) 메이지 시대 때부터 쓰인 유구한 역사가 있으며[16],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문양은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반박하였다. 그 이후 논쟁이 격화되면서 작정하고 욱일기 사진을 도배하고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전쟁범죄로 본질을 호도하려 했다.

이후 애인 션 레논이 이를 두둔하면서 자신도 처음에 한국 문화, 한국 음식, 자신의 한국 팬들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다가 통하지를 않자 한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라며 비난하였다. 정작 자신도 흥분했는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며 태극기 따위는 다 없애버려라,[17] 한국인들에게는 내가 영어를 무료로 가르쳐 주겠다라고 모욕하거나, 불교만자문나치하켄크로이츠와 뭐가 다르냐, 끝내 하켄크로이츠도 못 쓰게 하는 독일은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는 발언[18]까지 늘어놓았다. 그러나 저 티셔츠의 원조인 더 클래시는 오히려 나치를 반대하는 밴드이다. 더 클래시 멤버들이 봤다면 격노할 일이다.[19]

응수하는 누리꾼들도 흥분했는지, 인스타그램 메시지에 아버지 존 레논을 암살한 마크 채프먼 사진을 보내는 패드립을 치거나 1970년대에 존 레논이 오노 요코를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일을 거론하기도 했다.[20]

참고로 션 레논의 어머니인 오노 요코는 반전주의 활동 이전에도 전쟁을 몸소 체험한 고위층 문민 집안이었기에 반극우주의자이긴 하다. 친척이 일본 제국 시절 외교관이었으며, 그 아들은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 때문에 한국에는 중립적인 의사를 드러낸 자기 어머니의 행보와는 상반되는 행동을 하고 있단 지적도 나왔다.
파일:9dfb919abf6c95a8a93938b7fcff31bb.jpg
유명 팝밴드 Maroon 5의 키보더 제시 카마이클도 위처럼 션 레논의 "누군가가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가 IQ에 반비례한다는 것이 내게 분명해지고 있다"라는 조롱 트윗을 캡처해 글을 올리고 "Sick burn (팩폭)"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같이 비난을 받고 있다.

션 레논이 욱일기를 국기라고 한 것과 '나치는 악마지만 일제는 아니었다'는 주장은 그이가 역사를 전혀 모른다는 것을 드러낸다.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의 '공식적인 동맹국'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저지른 난징 대학살충칭 대공습, 마닐라 대학살, 731 부대의 인권 유린 등으로 미루어 보면 션 레논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발인지 드러난다. 거기다 '한국인이 주장하는 위안부 문제 역시 내 잘못도, 내 알 바도 아니다', '지나간 전쟁을 계속 언급하지 말라' 라며 사실을 인지하고도 부정하는 듯한 억지 변명을 펼쳤다.

파일:cassette_boy.jpg 파일:Sean Lennon.jpg
이 댓글은 한국 팬이 단 것으로, 션 레논의 욱일기와 관련된 논란을 언급하고 있다. 이 한국 팬은 션이 평화를 사랑한다면, 인류 역사상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은 모든 피해자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전하였다. 또한 션 레논을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믿음을 언급하고 있다.[21]

이에 션 레논은 팬의 친절한 말에 사의를 나타내며 누구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공감한다고 말하였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맞서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다만 자기 자신과 여자친구에게 몰지각한 공격을 용납하지 않는 경계와 기준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자신은 평화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사람들이 넘어서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챙기기 위해서는 그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인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점은 제2차 세계대전에 기록된 역사, 특히 한국, 난징 대학살, 만주국에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며, 이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라 하였다.

하지만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무슨 티셔츠를 입을지 결정하는 권리를 지지하고 있다. 이 부분은 욱일기에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상징물이나 행동에 대한 개인들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면서 본인이 더 선을 넘는 모순을 보여줬다. 아울러 온갖 몰지각한 망발은 있는 대로 늘어놓고 이 부분은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해명이었다.

4.2. 마리사 토메이와의 갈등

그린위치 빌리지에 살던 토메이의 부모의 거주지 옆에 션 레논이 살고 있었는데, 한 때 션이 중국에서 사온 큰 나무를 들여온 온 일이 있었다.

하지만 토메이 부부의 집과 너무 가깝게 심었는지, 토메이 부부의 집 방에 나무가지가 계속 들어오고, 현관 계단을 파괴하는 등 피해를 끼치자 결국 션 레논에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끝까지 치우지 않아 둘 간의 소송전까지 갔고, 결국 1천만불(120억 원) 배상금으로 션 레논이 그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5. 여담

6. 관련 문서


[1] 아버지의 생일과 같다.[2] 그의 출생 당시 오노 요코가 뉴욕의 다코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3] 출생 당시에는 선천적으로 미국 국적만 보유하고 있었으나 2017년 아버지의 고향인 영국 국적을 취득했다. 존 레논도 미국 국적을 취득하려 했으나 취득 직전에 살해당했다.[4] 존 레논오노 요코 개개인에 있어서 유일한 자식은 아닌데, 각각 전 아내와 전 남편을 통해 줄리안 레논과 쿄코 찬 콕스가 이미 있었다.[5] 존 레논이 아일랜드계이며 션 본인은 영국 국적도 가지고 있으니 아일랜드계 미국인, 아일랜드계 영국인이라는 카테고리에도 묶이게 된다.[6] 이는 오노 요코가 42살의 나이에 난산을 겪고 힘들게 얻은 아들이었던 것도 큰 한몫을 한다는 추측이 있다. 실제로 션을 얻은 후, 존은 전업 주부를 선언하고, 1980년 사망할 때까지 5년 간 가정에 충실했다. Find a Grave 사이트에 가보면 존과 요코 사이에 1968년과 1969년에 유산한 자녀가 있다고 나왔으니 존-요코 부부에게 있어서 힘들게 얻은 아들이었으니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7] 여기에는 서로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줄리안 본인은 정서적으로 방치 수준으로 길러졌던데다가 존이 죽기 전 유언장에선 줄리안의 몫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기나긴 소송전을 통해 유산을 일부 되찾는 수고를 들여야했었다. 게다가 존 레논과 관련된 모임에서 의도적으로 제외되는 것에 오노 요코의 책임이 분명히 있었기에 정당히 비판했던 것이고, 션의 행동은 그저 자신의 어머니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비판하였기에 기분이 안 좋았을 것이다. 사실 존 잘못이 제일 크다.[8] 첫 번째 사진은 존 레논과 오노요코와 함께, 두 번째 사진은 그의 이복형 줄리안과 함께.[9] 줄리안은 가수에서 사진작가, 화가로 직업을 전향했다. 가수는 취미로 하는 중.[10] 실제로 영국 UK 차트를 게재하는 인터넷 음악사이트인 dot music에서는 동시기에 발매된 줄리안과 션의 앨범에 각각 3점, 4점을 매겼으며, 롤링 스톤 등의 각종 음악지에선 션이 더 환대받았던 것이 사실이다.[11] 솔로나 듀오로 곡을 부를땐 보통 통기타로 라이브했으나 밴드로 활동할 때의 포지션은 주로 메인 보컬, 일렉트릭 기타이다.[12] 목소리는 아버지인 존과 비슷하지만 좀 더 'smooth'(부드러운)하다는게 중론, 리버풀 사투리를 구사하던 존과 달리 션이 미국식 억양에 가까운 이유도 있을 것이다.[13] 첫 번째 사진은 Martin의 1947년식 00-17 모델 마틴 공식 sns에서 직접 설명, 과거 Friendly Fire 투어때 메인 기타였다. 두 번째 사진은 FenderJazzmaster, 션은 유독 일렉트릭 기타에서 재즈마스터 형태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14] 교제를 시작한 2005년 당시 나이가 17살로, 션 레논보다 나이가 적고 띠동갑이다.[15] 영국 펑크 밴드 더 클래시의 티셔츠이다. 다만 이 밴드는 반전주의자이며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으니 일본 제국을 풍자하는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16] 사쿠라이 마코토를 비롯한 극우들, 극우까지는 아닌 우익 사이에서도 이런 주장은 흔히 나온다.[17] 다만 이 발언은 샬럿이 했다. "너희 태극기 밑에서 강간과 살인이 저질러졌다는 것에 내 20달러 건다. 너희 태극기를 불로 태우면 나도 이 티셔츠를 불로 태울게."라고 하였다.[18] 아무리 와패니즈들이라 해도 그들 역시 대다수는 하켄크로이츠를 매우 나쁘게 여긴다. 독일의 강력한 방어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탈을 쓴 반민주주의,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비판하는 것은 비슷한 진영 내에서 상당히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19] 원래 펑크 록이 위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고, 더 클래시의 팬들이 문제의 티셔츠를 옹호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다만, 일부 밴드의 경우 정말로 나치를 진지하게 옹호하는 경우가 있어서 해외에서도 위악이냐 아니냐 논란이 있긴 하다.[20] 다만 이땐 야스쿠니 신사가 오늘날만큼 논란이 될 때가 아니라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저들이 방문한 건 1971년인데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며 논란이 본격화된 건 1978년부터이기 때문. 물론 그전에도 A급은 아니더라도 전범이 있긴 했으니 오노 요코는 알았을 거라는 주장도 있는데, 오랜 미국 생활로 오노도 몰랐을 거라는 주장도 있는 등 논쟁이 있다.[21] 하지만 라이따이한 물타기로 일본 극우들이 하는짓과 한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라 몰아가놓고 영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인종차별을 한 점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22] 서로 추구하고 있는 음악이 시끄럽다고 맨날 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