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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2:27:49

마크 채프먼

파일:markchapman_medeiason.jpg
이름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
Mark David Chapman
출생 1955년 5월 10일 ([age(1955-05-10)]세)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직업 경비원
신체 178cm
종교 개신교[1]

1. 개요2. 생애
2.1. 사건 이전의 삶2.2. 존 레논 암살
2.2.1. 살해 동기
2.3. 사건 이후
3. 인터뷰 영상4. 기타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범죄자. 존 레논을 암살했으며, 그로 인해 비틀즈의 완전체 재결합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2. 생애

2.1. 사건 이전의 삶

1955년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 시에서 태어나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 근교의 조용한 지역에서 생활했다. 9살 때 처음으로 비틀즈를 보고 비틀즈의 팬이 되었다. 1975년 선교사로 레바논에 파견되었고 베트남 난민을 돕기도 했다.

1976년에 커버넌트 대학을 중퇴하고 애틀랜타에서 경비원으로 취직했다가 1977년에 하와이로 이주, 이후 정신병 증세로 2차례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로 끝났다.

1978년에는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영향을 받아 세계를 여행했다. 6주 동안 그는 도쿄, 서울, 홍콩, 싱가포르동아시아 지역과 런던, 파리유럽을 주로 방문했다.

여행 도중 만난 일본계 미국인 여성 글로리아 아베와 1979년 6월에 결혼했고 사건 이전까지 하와이 호놀룰루의 경비원으로 지냈다.

2.2. 존 레논 암살

파일:GN8ZCPs.png
[2]
1980년 12월 8일 월요일, 마크 채프먼은 존 레논의 자택 앞에서 그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존 레논은 Double Fantasy를 제작하고 활동을 재기하려던 찰나였고 녹음 스튜디오에서 오노 요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는데, 차터 암즈 사의 38구경 리볼버에 암살당했다. 할로 포인트 4발을 맞았고,[3]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날 과다출혈로 절명했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심장에는 총을 맞지 않았지만, 할로 포인트가 워낙 파괴력이 높은 총알이라서 수술실에서 총을 맞고 즉각 수술에 들어갔더라도 과다출혈로 즉사했을 것이라고 한다.

래리 킹과의 인터뷰에서, 마크 채프먼은 그를 죽이기 위해서 총을 직접 구매했다고 실토했다. 계획 범행인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영향을 받아 저질렀다.[4][5] 존 레논이 쓰러지자 곁에 있던 오노 요코는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와, 마크 채프먼을 상대로 저항하고 존 레논을 부둥켜안고 울었고 이후 경찰차가 와서 그를 연행하였다.

2.2.1. 살해 동기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즐겨 읽었기 때문에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또한 채프먼이 존 레논의 광적인 팬이었고, 급기야는 자신이 존 레논이라고 생각해서 "이 세상에 존 레논이 두 명일 수는 없다."라고 판단하여 살해했다는 썰도 있으나 사실무근이다. 참고로 채프먼의 자택에서 발견된 비틀즈의 앨범은 그의 아내가 구입한 것으로, 채프먼이 비틀즈, 특히 레논의 광적인 팬이었다는 주장의 근거로는 적당하지 않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뮤지션은 토드 런그렌이었다.[6]

실제로 채프먼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듭난 기독교인'임을 선언했기 때문에 레논을 살해하기 훨씬 전부터 안티로 돌아선 상황이었다. 레논을 살해한 이유도 처음에는 "스스로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말한 신성모독꾼에다 노래 가사에는 소유가 필요없는 세상을 꿈꾼다면서 정작 본인은 수천억짜리 호화 아파트에 사는 위선자라서 죽였다"고 말했다.[7]

그런데 가석방 심의에서는 이 말을 번복하며 "아버지에게 받은 애정결핍 때문에 레논을 죽였습니다. 그래도 레논은 하늘나라에서 제가 석방되길 바라고 있겠죠"라며 고인드립을 치기도 했다.[8]

2.3. 사건 이후

이 사건으로 마크 채프먼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으나, 2심에서 정신병으로 인하여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였고, 이 주장을 받아들인 재판부로 부터 감형받아 현재 종신형을 선고 받은 후 40년 넘게 계속 교도소에 갇혀있다.[9] 20년간 복역하여 가석방 신청이 가능해진 2000년부터 2년마다 가석방 신청을 내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는 2022년 9월 그의 12번째 가석방 신청이 거부되었다.# 11번째 가석방 신청이 거부되었던 이유는 유가족과 고인을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 사실 석방되어도 채프먼 입장에선 불안한 것이, 존 레논의 팬들이 그에게 보복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사실상 위에 말한 이유는 명목일 뿐이고 이것이 진짜 이유일 수도 있다.[10]

2015년 그의 아내 글로리아 아베는 영국 데일리 메일리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폴 매카트니도 그와 만나게 된다면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11]라는 망언을 하여 비틀즈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2020년에는 자신이 사형당해야 했다고 주장했다.#[12]

여담으로 마크 채프먼은 존 레논에게 총을 쏘기 직전, 유명한 호러 소설가 스티븐 킹에게도 끈질기게 사인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인을 거의 해주지 않는 스티븐 킹도 그 끈질김에 질려 결국 사인을 해주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2007년에 개봉한 자레드 레토 주연의 챕터 27이란 영화가 있다.

공교롭게도 여기서 존 레논 역할을 맡은 배우의 이름도 마크 채프먼이다. 물론 동명이인이지만, 이 부분을 고려하고 캐스팅을 했는지는 불명. 만약 일부러 노린 것이라면 고인모독도 이런 고인모독이 따로 없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해체해 버린 아일랜드의 혼성밴드 크랜베리스가 이 사건을 다룬 노래를 낸 적이 있다.
파일:마크채프먼2018.jpg
2018년의 모습. 오랜 세월을 혹독한 감옥에서 보낸 탓인지 상당히 마른 것을 알 수 있다.

3. 인터뷰 영상

래리 킹과의 인터뷰
바바라 월터스와의 인터뷰

4. 기타

마크 채프먼이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악명을 얻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비틀즈 팬들 사이에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채프먼의 이름을 언급하면 그가 범행을 저지른 목적이 달성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1] 채프먼이 존 레논을 죽인 이유가 존레논이 본인이 예수보다 유명하다고 발언을 했기에 채프먼이 죽였다고 채프먼 본인이 발언했다. 근데 아직까지도 기독교 신자인지는 불명.[2] 존 레논 생전 마지막 사진으로 잘 알려진 사진. 여기서 마크 체프먼에게 싸인을 해 주고 있다. 사진 뒤에서 웃고 있는 사나이가 바로 마크 채프먼이다. 이 사진이 찍히고 불과 5시간 후, 존은 마크 채프먼에게 살해당한다.[3] 채프먼은 총 5발의 총알을 쐈는데 첫 발은 빗나갔지만, 3발이 몸을 완전히 관통했으며 나머지 한 발은 가슴에 박혔다.[4] 암살자의 책으로 유명하다. 3개월 후 대통령 당선인 로널드 레이건을 암살 시도한 존 힝클리 주니어도 이 책의 애독자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리 하비 오스왈드도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오스왈드의 경우 조지 오웰1984의 애독자로서 사실과 다르다.[5] 래리 킹이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다른 멤버가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나라고 묻자 마크 채프먼은 오로지 존 레논을 죽이고자 했다고 말했다.[6] 여담이지만 런그렌은 비틀즈 멤버랑 친분이 있다. 2016년엔 링고 스타 백밴드 멤버로 내한했을 정도이다.[7] 주간조선 2010-10-18 《존 레넌 탄생 70년·암살 30년 아직도 눈물 흘리는 뉴욕!》[8] 중앙일보 2002-02-23 《존레넌 살해범 '범행 이유는 애정결핍'》[9] 2012년까진 쭉 미국 아티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그 해 5월 15일에 인근의 웬든 교도소로 이감.[10] 물론 감옥에도 존 레논의 팬들이 없을 리 없지만 최소한 교도관들이 감시해 바깥보다는 낫다.[11] 생전 사이가 나빴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은 2015년 영국 토크쇼와의 인터뷰에서 채프먼을 "씹새끼 중의 씹새끼"(the Jerk of all jerks)라며 직설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물론 폴과 존은 예전에 화해했다.[12] 그러나 과거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때 어떻게든 사형을 피하고 감형받으려 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인모독이거나 정말로 심각한 정신이상자라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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