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존 힝클리 주니어 John Hinckley Jr. | |
본명 | John Warnock Hinckley Jr. 존 워녹 힝클리 주니어 |
출생 | 1955년 5월 29일 ([age(1955-05-29)]세) |
미국 오클라호마 아드모어 | |
국적 | 미국 |
가족 | 아버지 존 워녹 힝클리 (1925~2008) 어머니 조 앤 힝클리 (1925~2021) |
학력 | 텍사스 공과대학교 (1974년~1980년 / 중퇴)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아티스트, 사진작가, 영화 제작자 |
링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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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가수.2. 생애
아버지 존 힝클리 시니어는 월드비전 미국의 대표였으며 밴더빌트 에너지 코퍼레이션[1]의 이사장이었다. 그의 형제 스콧 힝클리는 밴더빌트 대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의 회사에서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힝클리 본인은 고등학교까지 댈러스에서 다녔는데 학생회장을 두 번 맡는 등 학창 시절을 원만하게 보냈으며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아버지의 회사가 새로 진출한 콜로라도 주의 에버그린으로 옮겼고 1974년부터 1980년까지 텍사스 공과대학교를 다니다 말다 했다. 1975년에는 가수가 되겠다며 로스앤젤레스로 갔지만 당시엔 실패로 끝나고 집의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무기를 구입하고 항우울제를 복용했다.2.1. 조디 포스터에 대한 스토킹 범죄
1976년 개봉한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그는 조디 포스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1980년 포스터가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자 그는 거처를 예일 대학교가 있는 코네티컷의 뉴헤이븐으로 옮겼고 본격적으로 포스터를 스토킹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포스터가 듣는 예일 대학의 글짓기 수업을 청강했고 포스터의 방문 앞에 시와 편지를 남겨놓는가 하면 직접 포스터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접촉은 포스터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고[2] 그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비행기 하이재킹을 하거나 포스터의 거처 앞에서 자살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그 결과 그는 대통령을 암살해야 그녀와 같은 급이 될 거라는 망상에 빠졌고 지미 카터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그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는데 결국 테네시에서 무기 소지로 체포되었다. 돈이 없던 그는 풀려난 뒤 집으로 돌아가 우울증 치료를 받지만 진전이 없었고 1981년에 새로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으로 암살 타겟을 바꿨다. 이후 그는 대통령 암살을 성공시키기 위해 존 F. 케네디를 암살했던 리 하비 오스왈드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다.
지난 7개월 동안 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와 편지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 보냈어. 내가 몇 번 전화를 하긴 했지만 난 너에게 다가가 내 자신을 소개할 만큼 강심장은 아니었어.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건 너에게 뭔가를 보여주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어서야.(Over the past seven months I've left you dozens of poems, letters and love messages in the faint hope that you could develop an interest in me. Although we talked on the phone a couple of times I never had the nerve to simply approach you and introduce myself.... The reason I'm going ahead with this attempt now is because I cannot wait any longer to impress you.)
레이건 암살 기도 직전에 포스터에게 보낸 메시지.
레이건 암살 기도 직전에 포스터에게 보낸 메시지.
2.2.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
1981년 3월 30일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을 일으켰다. 암살 미수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재판에서 살인미수를 비롯한 13개 항목의 죄로 기소됐지만 정신이상이 참작되어 형사책임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3] 이때 그의 부모는 아들을 정말 사랑했는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당대 최고 변호사인 빈센트 풀러[4]와 파크 디츠를 비롯한 정신과학의 권위 있는 의사들, 심리학자들을 총동원해 아들의 정신병에 대해 집중적으로 밝혀냈는데 그 결과 형사처벌 대신 3년 이상의 치료감호형을 선고받았다.[5] 이후 정신병이 완치되었다며 석방시켜 줄 것을 여러 차례 요구하였으나# 모두 거절되었고, 사건을 일으키고 36년만인 2016년 보호관찰 처분 상태로 석방되었다.#2.3. 석방 이후
출소 후에는 가수로 활동 중이다.본인 이름으로 여러 SNS 계정을 개설하였으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22년 6월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모든 보호관찰이 끝났음을 알렸다. 최종적으로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2022년 6월 27일 그간의 침묵을 깨고 CBS와 인터뷰를 했는데 예전 일에 대해 후회하고 사죄한다고 말했다.한국 기사
2022년 7월 5일에는 ABC 뉴스의 나이트라인과 인터뷰를 했다. 역시 과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후회하고 사죄한다고 밝혔다.
3. 창작물에서의 힝클리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암살범을 한 자리에 모은다는 발상의 뮤지컬 어쌔신(Assassins)에서는 조디 포스터에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리넷 프롬[6]과 함께 부르는 러브송 'Unworthy of Your Love'가 유명한 편이다.[7]2016년 1월 10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의 이야기가 나왔다.
포레스트 검프에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 현장이 찍힌 영상이 나온다.
[1] 미국의 석유 회사.[2] 훗날 조디 포스터가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을 함으로써 존 힝클리 주니어의 헛된 짝사랑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게 되었다.[3] 이 판결은 당시 미국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정신이상자 범죄에 대해 좀 더 까다롭게 입증해야 무죄 판결이 되도록 법안이 개선됐으며 아이다호, 유타, 캔자스, 몬태나는 정신이상자의 범죄에 대한 면책조치를 모두 폐지했다. 여담으로 캔자스는 2009년 제임스 크레이그 칼러가 자기 일가족을 몰살시키고 정신이상을 주장했을 때 1995년 폐지한 정신이상자 면책 폐지를 두고 위헌이라고 주장하여 미국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재판을 벌였는데 대법원이 캔자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정신이상자 면책 폐지는 유지되고 있다.[4] 그 유명한 마피아와 연루된 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를 변호했고 훗날 마이크 타이슨을 변호하기도 했던 유명한 변호사였다.[5] 힝클리의 부모는 1985년 아들의 정신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Breaking Points란 책을 썼다. 힝클리는 심각한 정신병을 앓은 것으로 보이며 감정결과 조현병과 자기애성 성격장애, 조현성 성격장애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6]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이다.[7] '러브송'이지만 다른 뮤지컬들과 달리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힝클리는 포스터에게, 프롬은 찰스 맨슨에게 자신의 사랑을 바친다는 내용인데 멜로디는 아름답지만 가사에서 다소 섬뜩할 정도의 집착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