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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5 19:13:02

토드 런그렌

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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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토드 런그렌
Todd Rundgren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 자격)
입성 연도 2021년
후보자격 연도 1996년
후보선정 연도 2019년, 2020년, 2021년 }}}}}}}}}
파일:NME.png 선정 가장 위대한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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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음악 잡지 NME가 2012년 "50 Of The Greatest Producers Ever"를 선정한 순위다.
<rowcolor=#fff,#000> 1위 2위 3위 4위 5위
조 믹 조지 마틴 퀸시 존스 나일 로저스 필 스펙터
<rowcolor=#fff,#000> 6위 7위 8위 9위 10위
릭 루빈 브라이언 이노 브라이언 윌슨 부치 빅 닥터 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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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000>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리 스크레치 페리 아리프 말딘 팀발랜드 나이젤 고드리치 티 본 버닛
<rowcolor=#fff,#000>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넵튠스 스티픈 스트리트 토드 런그렌 다니엘 라누아 앤드루 웨더럴
<rowcolor=#fff,#000>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크리스 토마스 베이비페이스 짐 스타인먼 DJ 프리미어 존 레키
<rowcolor=#fff,#000>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테오 마세로 로버트 존 머트 랭 제이 딜라 베리 골디 샘 필립스
<rowcolor=#fff,#000>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톰 다우드 지미 로바인 데인저 마우스 비두 제프 린
<rowcolor=#fff,#000>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맥스 마틴 마크 론슨 프린스 트렌트 레즈너 스티비 릴리화이트
<rowcolor=#fff,#000>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트레버 혼 스티브 알비니 지미 밀러 제리 웩슬러 로이 토마스 베이커
<rowcolor=#fff,#000>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RZA 피트 록 조지 클린턴 폴 에버스 DJ 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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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NME 선정 500대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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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토드 런그렌
Todd Rundgren
파일:Todd-Rundgren-2017-cr-lynn-goldsmith-billboard-1548.jpg
본명 토드 해리 런그렌 (Todd Harry Rundgren)
출생 1948년 6월 22일 ([age(1948-06-22)]세)
미국 펜실베이니아필라델피아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가수, 기타리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학력 버클리 음악대학 명예 박사
활동 1966년 – 현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사생활4.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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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스웨덴계 미국인이다. 정확히는 오스트리아-독일 혈통이랑 하프. 증조대가 미국으로 넘어와 정착했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TR-I라는 명의로 활동하기도 했다.

2. 생애

필라델피아로 상경해 활동했던 'Paul Butterfield Blues Band'의 카피 밴드인 'Woody's Truck Stop'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지만 룬드그렌과 베이시스트 'Carson Van Osten'은 음악적인 방향을 거라지 록 스타일로 바꾸기 위해서 1967년 밴드를 탈퇴한 후 'Nazz'를 새롭게 결성한다. 활동 당시 그렇게 주목받는 밴드는 아니였지만 비틀즈더 후, 무브 같은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절 밴드들과 비치 보이스의 하모니를 결합한 런그렌 특유의 센스 때문에 컬트적인 호평을 들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계를 느꼈는지 세 장의 앨범을 내놓고 1969년 탈퇴한다. 다만 이때 만들어 내즈 이름으로 발표한 'Hello It's Me'는 소폭 히트를 기록했고 이는 훗날의 영광과 연결된다.

이후 로라 니로 같은 소울 뮤지션들을 팬질하며 음향/프로듀서 공부를 하던 그는 Albert Grossman Management랑 계약하게 되면서 프로듀서 개업을 한다. 여러 뮤지션들을 프로듀싱해왔지만 하지만 솔로 작업에도 욕심이 있었던 런그렌은 1970년 첫번째 앨범인 Runt를 내놓게 된다. 블루스부터 파워 팝, 소울 음악까지 자신이 다루는 스타일이 광범위하다는걸 선언한 이 앨범은 당시 평은 엇갈렸지만 지금은 괜찮은 데뷔 앨범으로 평가받고, 그 가능성을 알아본 베어즈빌 레코드랑 계약하게 된다. 그리고 1971년 두번째 앨범인 피아노 위주의 발라드 앨범 Runt. The Ballad of Todd Rundgren를 내놓으면서 최초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Runt. The Ballad of Todd Rundgren의 성공과 그동안 프로듀싱한 노하우를 통해 그는 1972년 그렇게 바라마지 않았던 더블 앨범을 기획하게 되는데, 지금도 토드 런그렌의 대표작으로 꼽힌 Something/Anything?이었다. 그야말로 런그렌의 능력을 보여주는 앨범으로, 직접 프로듀싱하고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25곡 가운데 19곡의 보컬을 맡았으며, 메들리로 연주한 두 곡과 ‘Dust In The Wind’를 제외한 모든 곡을 작곡했다. 신시사이저와 혼 섹션, 현악 섹션을 동원한 풍성한 악기와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편곡이 Runt에서 꿈꿔왔던 백화점 구성의 팝/록 더블 앨범과 만나 본격적으로 포텐을 터트렸다는 격찬을 받으며 'Hello It's Me' 같은 곡이 싱글로 발매되면서 그동안 누리지 못해왔던 성공도 맛보게 된다. 이때부터 친구 소개로 마약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973년, Wizard, a True Star 우주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또다른 걸작을 내놓은 런그렌은 두번째 더블 앨범 Todd 발매 후 유토피아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시절부터 프랭크 자파와 마하비슈뉴 오케스트라에 영향을 받으며 프로그레시브 록에 가까워지는 성향을 보이면서 차트 성적은 Something/Anything?만큼 미치지 못하게 된다. 라이브에 쿼드라포닉 시스템을 도입하다던가, 조지 클린턴과 휭카델릭에 관심을 기울이는 혁신을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Faithful와 Hermit of Mink Hollow로 다시 팝에 관심을 두게 되며 1980년대엔 뉴 웨이브를 탐사하다던가 필리 소울를 다시 탐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기술적인 혁신에도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1981년 'Time Heals'는 MTV에서 8번째로 방영된 그의 비디오가 되었으며 1991년 'Change Myself'는 아미가 컴퓨터에서 재생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프로그램 방식으로 제작되어 팔려나갔다. 마찬가지로 1993년에는 포맷 자체가 흑역이라 묻혔지만 CD-i용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제작했다. 이후 1995년의 <The Individualist>도 이러한 인터랙티브 프로그램형태의 앨범인듯 하다.[1]

2000년대부턴 카스 멤버들과 뉴 카스라는 프로젝트성 밴드를 만들기도 했고, 솔로 앨범도 꾸준히 내고 있으며 프랭크 오션스크릴렉스 같은 젊은 뮤지션들에게서 영감을 받는등 정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활동중이다.

앞서 말했듯이 프로듀서로도 활발히 활동했는데, 프로듀서로써 대표작은 Badfinger의 Straight Up, 더 밴드의 Stage Fright.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의 We're an American Band, 미트 로프Bat Out of Hell, 뉴욕 돌스 데뷔앨범, 스파크스의 데뷔 앨범[2], 홀 앤 오츠의 War Babies, XTCSkylarking가 있다. 다들 음악사에 한 끝발 날리는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그의 위상이 어땠는지 알수 있는 부분. 다만 2000년대 이후로는 뜸한 편이다.

작업 현장에서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독종이라 평가받는다. 음악적으로 만족 못해 내즈를 탈퇴했다는 일화라던가 Badfinger 프로듀서로 일했다가 밴드 멤버들과 싸워서 밴드 멤버들이 셀프 프로듀싱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게 되고 XTCSkylarking 만들땐 그야말로 독설과 육탄전 직전의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다는 일화를 보면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뭐든지 할 수 있는 인물인듯 하다. 하지만 그런 완벽주의가 재능과 결합되어 일정 퀄리티 이상의 음반을 만들어내서 현지에서는 레전드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리브 타일러대부로만 유명하다. 사실 현지에서도 Something/Anything? 이후론 컬트 뮤지션 이미지가 강한 편이긴 하다.


항목 작성시 참조.

2016년 링고 스타 올스타 밴드의 투어 과정에서 내한이 성사되며 최초로 내한 공연을 가졌다.

2017년도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

3. 사생활

리브 타일러와 관계가 다소 복잡한 편인데, 당시 여친 베베 뷰엘이 에어로스미스스티븐 타일러와 짧은 불장난을 했다가 [3]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얻은 리브를 토드 런그렌을 리브의 친부라고 거짓말하고 런그렌 호적에 입적시켰다. 그래서 한땐 리브 타일러의 본명은 리브 런그렌이였던 적도 있었다. 워낙 그 시절 스티븐 타일러가 마약 중독으로 엉망이였기 때문에 베베 쪽도 어쩔수 없이 한 선택이었지만, 본인은 언짢게 생각했는지 리브가 태어난 직후 헤어졌다. 하지만 리브 타일러에겐 거짓말을 지켜 여전히 친부처럼 대했고 리브가 런그렌이 친부가 아니라는걸 안 뒤에도 사립 학교 학비도 지원해주고 1년에도 몇 번이나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리브 타일러하고는 사이가 매우 좋다고 한다. 리브 본인도 존경하는 대부라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

이후 오랫 동안 사귄 다른 여친 카렌 다빈과 렉스와 랜디라는 아들 둘을 얻었고 [4] 튜브스 멤버였던 미셸 그레이와 1998년 결혼해 리밥이란 아들을 또 두었다.

4. 음반 목록



[1] 이 프로그램은 Ion이란 회사에서 나왓는데, 이 회사는 데이빗 보위의 1993년도 <Jump that say>를 소재로 한 인터랙티브 CD를 출시한 전적이 있다.[2] 당시에는 그룹의 이름이 Halfnelson이었다.[3] 참고로 잘 사귀고 있는데 베베 쪽이 바람난건 아니다. 이들은 오랜 기간동안 결별과 재결합을 반복했고, 스티븐 타일러는 런그렌과 잠시 결별한 동안 만난 사이였다.[4] 이중 렉스 런그렌은 마이너 리그 선수로 뛰고 있으며, 툴사 드릴러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