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53년 5월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로 고착화된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전선을 7사단으로부터 인계받은 국군 20사단이 1953년 6월 10일 ~ 22일 동안 중공 33사단과 벌인 고지전으로, 이 또한 고지 주인이 16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로 난전이었다.2. 전투 경과
참고자료1 참고자료21953년 6월 10일 밤 9시, M-1 고지[1]를 지키던 61연대 6중대는 중공군 1개 대대급 병력을 맞이해 싸웠으나,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2대대 측은 수색중대를 5중대 위치로 보내 임무교대를 시킨 뒤 5중대에게 M-1 고지 탈환을 지시한다.
6월 11일 6시 5중대가 탈환을 시도했으나, 적들이 각종 화기들을 배치해 놓고 완강히 저항해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연대에선 예비대인 1대대에게 탈환을 준비시킨다.
6월 12일 새벽 3시 2,3중대가 수류탄을 한가득 결속하고 M-1 고지를 향해 기어올랐고, 한용택 일병의 맹활약으로 탈환에 성공하나 오후 1시에 포격을 벗삼은 중공군 1개 중대에게 다시 뺏긴다.
6월 13일 새벽 3시 1중대가 재점령에 성공하나, 이를 되찾으려는 중공군과 난전을 펼치던 중 저항이 거세고 중대장이 중상을 입자 고지로부터 물러나야 했다. 이에 1대대장 조재훈 중령은 오후 2시 30분경 2중대를 이끌고 재탈환을 시도해 재점령에 성공한다.
6월 14일 새벽 1시 중공군의 역습에 또다시 빼앗기나, 일출 무렵 사단 수색대를 동원해 다시 점령한다.
6월 15일 자정 무렵 중공군의 역습으로 M-1 고지에 이어 크리스마스(1090(북)) 고지까지 빼앗긴다.
6월 16일 3중대가 크리스마스 고지 탈환을 시도해 4시간만에 재탈환하나, 또 다시 물러나야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10군단장은 후방으로 물러난 국군 7사단 8연대에게 62연대 3대대가 지키던 938 고지[2]를 맡기게 한다. 이에 62연대는 연이은 전투로 피로해진 1대대를 물린 뒤 3대대에게 크리스마스 고지 탈환 임무를 맡긴다.
6월 17일 새벽 10,11중대가 점령에 성공하나 오후에 적들이 또 몰려오자 1090(남) 고지로 물러나야 했다.
6월 18일 쌍방의 포격이 빗발칠 정도로 난전을 펼친 끝에 10중대가 송강섭 상병의 특공조를 앞세워 크리스마스 고지를 탈환했다.[3]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입은 피해도 만만찮아 직후 62연대는 7사단 5연대에게 크리스마스 고지를 인계한 뒤 방산리로 물러났고, 20사단 61연대는 M-1 고지에서, 7사단 8,5연대는 938, 크리스마스 고지에서 이를 사수하기 위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6월 22일 61연대는 60연대와 임무교대를 했고, 포격과 항공지원을 벗삼은 우주방어로 중공군의 공세 의지를 꺾어놓는다.
3. 후속 전투, 선우고지(혹은 비석고지) 전투
출처6월 26일 밤 9시 45분 경 8연대 2대대가 사수중인 938 고지를 향해 공격준비사격이 실시되었고, 직후 중공 189사단 1개 연대급 병력들이 기어올라와 백병전이 시작됐다. 게다가 대대지휘소까지 습격당해 2대대장이 적의 수류탄에 의해 전사한다.
6월 27일 자정 적의 파상공세를 버틸 수 없었던 2대대는 938고지에서 철수하였고, 중공군은 고지 일대에 진지공사를 실시한다.
6월 30일 새벽 2시 사단장은 938고지의 탈환을 8연대에 하달했고, 이에 2대대는 고지 탈환을 위한 소대급의 특공대를 조직한 뒤 1조는 938고지 전방 능선의 기관총 진지를, 2,3조는 938고지 좌측방의 기관총 진지들을 각각 파괴하고 고지로 올라오기로 한다.
새벽 3시 30분경, 1조장 최득수[4] 이등상사 일행은 철모보다 가벼운 작업모에, 6개의 수류탄들을 각자 휴대하고 아군이 피워놓은 연막탄 사이로 기어올라 적의 총,포탄을 뚫고 기관총 진지 안에 수류탄을 던저 파괴했다. 그리고는 능선 중간의 또다른 기관총 진지도 파괴하고 고지 정상까지 돌진해 신호탄 3발로 연대지휘소에 점령을 알렸다. 이후 밑에서 대기중이던 9, 10중대가 새벽 2시 30분경 후속 돌격을 감행해 4시 30분경에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특공대원들 중 최득수 이등상사를 비롯한 5명을 제외한 나머지 25명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이후 최득수 이등상사를 포함한 생존 대원 5명은 고지 탈환 전공을 인정받아 1954년 6월 25일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177호)을 수여받았으며, 938 고지는 난전 중에 전사한 2대대장을 기리기 위해 선우고지로 개명되었고, 이를 두고 벌어진 쟁탈전은 선우고지 혹은 비석고지 전투로 이름붙여졌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최득수 이등상사는 사병 출신으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은 6.25 전쟁 참전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고, 2020년 3월에 별세했다.#
4. 여담
- 국군 20사단은 1953년 2월에 창설된 신생 사단이었던 만큼 당시 구성원 대다수가 신병들이었다고 한다.
- M-1 고지는 이 전투 이전엔 크리스마스 고지 동쪽 능선 한켠에 살짝 솟아난 무명고지로, 고지대로부터 감제되기 쉬운 불리함이 있었다.
- 20사단은 1953년 7월 4일 미 45사단에 인수인계를 한 뒤 해안분지(펀치볼) 전선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