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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4 13:54:10

비트 경쟁

비트 전쟁에서 넘어옴
1. 개요2. 상세
2.1. 8비트16비트 시대 (1987~1994)2.2. 32비트64비트 시대 (1994~1998)2.3. 실상
3. 기타4. 관련 문서

1. 개요

1980년대 말 ~ 90년대 후반까지 게임기 시장에서 일어난 괴상한 경쟁으로 후술되어 있듯 일부 컴퓨터 시장에서도 일어났다.

이 경쟁에 대해 AVGN아타리 재규어 리뷰에서 비트 전쟁(Bit Wars)이라고 표현했다.

2. 상세

2.1. 8비트16비트 시대 (1987~1994)

최초의 성공한 가정용 게임기였던 아타리 2600부터 아타리 쇼크로 인해 미국 게임계가 망하고 난 뒤(1979년에 발매된 인텔리비전처럼 일찌감치 16비트 CPU를 사용한 게임기도 있기는 했다) 들어와 미국 게임 시장 중흥의 주인공이 되었던 NES까지 80년대 초중반의 게임기 시장을 선도한 것은 8비트 게임기였다. NES의 원산지인 일본 시장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1] 물론 당시에도 16비트 하드웨어가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업무용 PC 시장에서는 이미 대표적인 16비트 PC인 IBM PC Model 5150만 해도 1981년에 첫 등장을 했고 이듬해엔 NEC PC-9801이 일본에서 등장했다. 업무용 시장이 아니더라도 토미 퓨타처럼 16비트 CPU를 채용한 가정용 컴퓨터가 이미 등장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PC 시장과 가정용 콘솔 시장은 가격과 성능이 적절했던 8비트가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 1980년대 후반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랬던 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신호탄은 1988년, 메가 드라이브의 등장이었다. 이미 아케이드에서 검증된 16비트 설계를 도입하여 제작된 메가 드라이브는 아예 본체에도 대놓고 황금색으로 박혀 있는 '16-BIT'를 내세운 마케팅과 그에 걸맞게 기존의 8비트 콘솔을 압도하는 성능으로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2] 그로부터 2년 후인 1990년에 발매된 16비트 게임기 슈퍼 패미컴 역시 메가 드라이브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3] 메가드라이브는 광고에서도 "요즘 게임이 재미없는 이유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 때문이다"라면서 하드웨어 성능의 우월성을 강조했는데, 물론 마케팅 차원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후술하듯 일견 사실인 측면도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메가 드라이브와 슈퍼 패미컴의 게임은 기존의 패미컴이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의 게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화려하고 빠르고 재미있었다. 이러면서 생긴 소비자들의 묘한 고정관념이 아, 16비트면 패미컴(8비트)의 2배니까 패미컴보다 2배는 더 재밌구나!하는 것이다. 거기에 콘솔 제조사들의 비트 마케팅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부채질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대부분 비트 높은 게임기 = 빠른 게임기 = 좋은 게임기 = 게임도 재밌다! 하는 식의 단순한 사고를 했고, 이러한 사고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오늘날의 사용자들은 알고있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옳은 말이였다.

현대의 게임기와 컴퓨터 산업에서는 컴퓨터의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컴퓨터의 성능 한계로 게임의 한계가 정해지는 것 보다 프로그래머의 실력 또는 규모의 차이로 게임의 질과 한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현대에 게이머들은 게임기의 성능 역시 게임기 구매선택에 여전히 크게 영향을 주긴하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것은 게임기의 어떤 게임이 돌아가느냐에 더 중점을 둔다. 극단적인 예로 IBM Power 10 CPU를 탑재한 가상의 게임기와 닌텐도 DS 게임기와 비교하면 성능은 IBM Power 10 게임기가 압도적으로 높지만 돌아가는 게임이 거의 없으니 소비자들은 닌텐도 DS를 선택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80년대는 현대와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컴퓨터 성능이 크게 발달하지 못해서[4] 하드웨어적인 한계가 게임 퀄러티의 영향을 크게 주던 시대였고 따라서 더 좋은 하드웨어가 있으면 더 높은 품질의 게임을 만들수있고 아케이드 게임 같은 다른 플랫폼의 게임까지 쉽게 포팅할 수 있어서 더 다양한 게임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실제로 메가 드라이브슈퍼 패미컴에는 전 세대의 패미컴이나 마스터 시스템보다 화려해진 표현 능력과 커진 용량을 충분히 활용해 전 세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비주얼과 재미를 제공한 좋은 게임이 많았다. 8비트 게임기 역시 16비트 시대가 온 이후에도 기존의 소프트웨어 풀과 가성비 등을 이점으로 꽤 오래 수명을 유지했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8비트와 16비트 게임기의 신작 게임이 비교가 될 수 있었고, 한눈에 보기부터 차이가 났으므로 그러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 수도 있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게임기 성능에 따른 게임 소프트웨어 차이는 사실 컴퓨터 성능이 크게 발달한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비트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교묘한 과장광고를 일삼게 되면서 비트 전쟁은 사그라들게 된다.

게임기를 제조하는 기업은 높은 비트의 게임기는 성능이 높다는 사실에 편승하여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우며 경쟁을 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비트 수가 높은 게임기를 선호했고, 악순환으로 무조건 게임기의 비트만 강조해서 판매하는 비트 경쟁 마케팅이 점점 기승을 부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성능에 상관없이 부품에 높은 비트 연산기나 소수의 처리 기능이 있으면 그것을 기준으로 광고하는 과장 광고가 판을 치게된다.[5]

메가 드라이브처럼 게임기 표면에다가 대문짝만하게 비트 수를 강조하는 문자를 새겨넣는 것으로 시작해서 닌텐도 64처럼 게임 패키지, 게임 타이틀에 XX(대개 비트 숫자)라는 걸 강조한다든가 하는 식의 마케팅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상화가 되었다. 아미가 CD32처럼 둘 다 한 사례도 있다.[6] 비트 마케팅의 절정을 찍었다고 할 만한 기기는 1993년에 등장한 아타리 재규어였는데, 잘 쓰지도 않는 보조프로세서가 64비트인데다가 메인 칩 2개가 32비트이니깐 32비트+32비트=64비트라는 워즈맨스러운 논리로 64비트 게임기라는 타이틀을 붙여놓고 계산해 보세요! (Do the MATH!)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밀어붙이는, 다른 건 다 제껴두고 그냥 대놓고 '64비트'라는 숫자만 전면에 내세운 광고를 해댔다. 기존의 16비트 게임기의 2배도 아닌 4배나 되는 비트 수를 들고 나왔으니 발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보조프로세서를 비트 수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으니 훌륭한 과장광고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강조하던 64비트 보조 프로세서 성능을 제대로 활용한 게임은 하나도 안 나왔고, 콘솔 판매를 견인할 만큼 재미있는 게임도 거의 나오지 않았으며 실제 성능도 2배, 4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폭망의 길을 걸었다. 비판 문단에서 후술하는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게임이 재미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아주 좋은 사례다.[7]

상술되었듯 가정용 컴퓨터 시장에서도 잠깐 비트를 강조하기도 했다. 애플 리사 같은 MC68k 기종이나 인텔 286을 쓰는 AT 호환기종처럼 일부만 32비트여도 32비트 컴퓨터라고 광고했다. 그러나 가정용 컴퓨터 시장에서 비트 전쟁은 금방 끝나고 공정 미세화를 통한 클럭 전쟁으로 넘어간다. 4 GHz의 벽 문서 참조. 이 덕분에 가정용 컴퓨터는 한동안 높은 클럭을 통해 게임기에 대해 성능 우위를 점했지만 64비트로의 전환은 2000년대 초중반에 들어서야 이루어진다.

2.2. 32비트64비트 시대 (1994~1998)

1990년대 중반, 세가 새턴플레이스테이션의 등장 이후에는 이러한 비트 마케팅이 점점 내리막길을 걷는다. 새턴의 경우에는 32비트인 SH-2 CPU를 2개 달았다고 해서 64비트'급'이라는 마케팅을 살짝 밀어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능이 경쟁기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뻔히 뒤쳐졌던지라 사용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다. 듀얼코어를 모두 활용했으면 PS보다 좋았겠지만 현대에도 어려운 멀티코어 프로그래밍을 당시의 낮은수준의 개발 환경에서 하긴 어려웠고 결국 게임의 품질이 떨어졌던 것이다.

시장을 선도했던 것은 '32비트'인 플레이스테이션이었고 그나마도 소니는 비트 수로 마케팅을 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다.[8] 아타리 재규어가 '64비트'를 내세웠음에도 '32비트'인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새턴에 크게 못 미치는 성능을 보여주며 참패했던 것도 소비자의 인식 변화에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비트 수=성능=게임의 재미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소비자들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1996년 약간 뒤늦게 시장에 선보인 '진짜 64비트' 머신인 닌텐도 64가 32비트 시장이 주류였던 당시의 게임기 시장에 다시 한번 비트 경쟁의 불을 붙이려고 시도했지만 폭망의 길을 걸으며 일본 내 판매량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은 고사하고 새턴에도 발렸다. 그나마 북미시장에서는 선방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2위. 다만 닌텐도 64의 경우는 과장광고는 아니라서 비트=성능이라는 등식까지는 만족했다. 64비트를 가지고 뻥카를 친 아타리 재규어와는 달리 닌텐도 64는 진짜로 64비트 CPU(MIPS R4300i[9])와 보조 프로세서를 달고 있었으며[10] PS에선 불가능했던 안티 에일리어싱, 트리 리니어 필터링 같은 기술을 적용해 훨씬 고급스러운 3D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64bit로 무리하게 갈아타면서 발생한 발매연기(PS는 1994년에 발매, 닌텐도 64는 2년이나 뒤진 1996년)와 더불어, 롬팩을 고집하는 데에서 온 용량 제한 등의 한계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서드파티와의 라이센스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하나하나의 타이틀은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뒤지지 않는 양질의 게임들[11]이었지만 서드파티의 수, 곧 발매 타이틀의 수가 너무 적다는 문제를 안게 되어 결국 패미컴, 슈퍼 패미컴으로 이어온 닌텐도의 황금기는 막을 내리고 만다. 이러한 병림픽을 지켜봐온 소비자들 역시 비트 수를 내세운 마케팅이라는 게 실질적으로는 매우 하잘 것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의미 없는 비트 경쟁은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닌텐도 또한 2017년 Nintendo Switch 발매 전까지 20년 동안 32비트(IBM PowerPC 계열)로 회귀했다.

마지막으로 비트 마케팅을 시도한 것은 세가의 드림캐스트128비트 300만 폴리곤을 캐치 프레이즈로 삼았지만 역시 폭망. 기기의 성능은 확실히 우수했고 설계도 합리적인 좋은 머신이었긴 하지만, 이쪽은 악재가 너무 많이 겹치는 바람에 망했다. 닌텐도 64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12] 여담으로 드림캐스트의 128비트 운운은 아타리 재규어의 Do the MATH!에 비견할만한 뻥카인데 FPU가 32비트 벡터 연산을 동시에 4개 처리 가능하다는 이유로 32bit*4=128bit!! 라고 우기는 말 그대로 견강부회였던 마케팅이었다. SH-4는 레지스터, CPU 내부 버스와 메모리 주소 버스[13]가 모두 32비트인 32비트 CPU다. 이미 새턴 때 '64비트 급' 운운하는 마케팅을 했던지라 그 이상의 성능이라는 사실을 수치로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그 시대에는 이미 하등 의미없는 삽질이었다. 드림캐스트의 성능은 그런 마케팅을 하지 않았더라도 한눈에 기존 5세대 기기와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도 했고 소비자들도 기기 성능에 주목할망정 128비트 운운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후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2도 CPU인 이모션 엔진을 128비트라고 소개하며 비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했지만 드림캐스트가 그랬듯이 큰 반응은 얻지 못했다. PS2는 그나마 레지스터가 128비트라 그렇게까지 억지스러운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들보다 성능이 좋았던 게임큐브엑스박스는 32비트 CPU 였기도 했고... 사실 이 모두를 압도하는 동세대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던 엑스박스SSE XMM 명령어를 지원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128bit 게임기라고 광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과장된 비트 광고가 없어도 포팅된 게임[14]만으로도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할 수 있어서 굳이 그런 광고는 하지 않았고 결국 6세대 기종부터 비트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후 콘솔의 비트 수를 마케팅에 사용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7세대 게임기 시절에는 동 시대의 PC처럼 CPU의 코어 수를 하드웨어의 성능 우위를 나타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가 현재는 FP32 연산 성능이 해당 포지션을 차지했다. 상기된 드림캐스트가 포함된 6세대 게임기 시기에도 당연히 존재하였으나 스펙시트상의 한 성능 요소 정도로만 취급되었다가 8세대 게임기인 PS4엑스박스 원의 성능 비교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되어 현재까지도 게임기의 대표적인 성능 지표로서 활용되고 있다.[15] 특히 엑스박스 원 X는 6 TFLOPS라는 FP32 연산 성능 수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비트 경쟁 당시와 같이 이 수치에서 앞서는 쪽이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크다.[16] 비트 경쟁과는 달리 실제 체감 성능과 상당한 연관이 있기는 하다. 아키텍처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아키텍처라면 거의 FP32 성능 차이와 동등한 성능 차이를 보여준다. PC GPU와의 비교가 용이한 것 또한 장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주로 CPU의 것인 비트 경쟁[17]과는 달리 부동소수점 연산 성능은 보통 GPU의 것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CPU의 아키텍처나 성능은 현 시점에서는 선택지가 APU뿐이라 다 고만고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3. 실상

게임기 스펙을 언급할 때 말하는 'xx 비트'라는 것은 결국 게임기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CPU가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 정확히 말하면 CPU의 레지스터의 크기를 의미한다. 대체로 비트 수가 높은 CPU가 낮은 CPU보다 고성능인 경향은 있지만(한번에 처리 가능한 데이터가 많으니 당연하다) CPU의 성능 척도는 비트 수, 즉 레지스터의 크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냥 레지스터의 크기를 늘린다고 고성능이 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게다가 이 '비트'라는 건 게임기의 CPU 처리 능력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CPU 성능이 좋아서 손해볼 건 없지만, 그보다 게임의 모양새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건 대체로 GPU사운드 칩셋 같은 부수적인 성능 쪽이다.

일례로 PC 엔진의 경우에는 CPU는 패미컴과 같은 MOS 6502 계통(당연히 8비트다)이지만 그래픽 칩셋의 성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16비트 콘솔인 메가드라이브, 슈퍼패미컴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었다. 심지어 북미에선 TurboGrafx-16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해서 16비트 게임기인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높은 비트 수=CPU 성능 향상만으로 더 좋은 게임기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 이전으로 보면 인텔리비전은 무려 1979년에 16비트 CPU를 달고 출시되었지만 클럭이 낮고 다른 부분의 성능이 따라오지 못해 콜레코비전과 같은 동 세대의 고성능 게임기보다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 좀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성공한 가정용 게임기 중 하나인 아타리 2600은 별도의 그래픽 칩셋이 없고 CPU가 직접 화면을 뿌려 주는 방식이라 같은 MOS 6502 CPU를 사용하는 시스템들보다 그래픽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18] 현재의 경우에 비유하자면 CPU는 하이엔드급이라도 엔트리급 그래픽 카드를 단 컴퓨터보다 CPU는 엔트리급이지만 메인스트림급 그래픽 카드를 단 컴퓨터가 게임 성능이 대체로 우월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같은 16비트 콘솔이지만 메가 드라이브의 그래픽이나 사운드는 2년이나 먼저 나온 덕에 경쟁 기종인 슈퍼 패미컴보다 상당히 떨어졌는데, 정작 CPU는 메가드라이브의 MC68000이 슈퍼패미컴의 5A22보다 배 이상은 빠른 물건이었다.[19] 덕분에 연산 성능이 중요한 전략 시뮬레이션 같은 장르에서는 메가드라이브가 우월한 면도 있었고 소닉 더 헤지호그 처럼 슈퍼 패미컴의 속도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고속 액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표현력은 CPU 성능은 뒤져도 다른 성능에서 앞서는 슈퍼 패미컴 쪽의 판정승이었다.

거기에 더해 게임기의 성능이 높다고 게임이 저절로 재미있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게임기의 성능이 좋아지면 게임 개발자들의 아이디어가 좀 더 자유롭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게임이 나올 가능성은 높아지긴 한다. 예를 들면 8비트 시대의 하드웨어로는 소닉 더 헤지호그 같은 속도감 있는 표현은 불가능했을 것이며[20] 소닉은 메가 드라이브라는 하드웨어가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나올 수 있었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세가 새턴 시대 이후에 일반화되기 시작한 3D 그래픽스와 그에 따라 나올 수 있었던 수많은 새로운 표현도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하드웨어의 성능 향상으로 인한 포텐셜일 뿐이지,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제대로 못 만들면 당연히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90년대 게임기 사업에 뛰어들었던 PC 회사들이 게임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게임의 질 문제로 일제히 리타이어했던 것, 그리고 그와 반대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임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이 좋은 예시이다. 플랫폼 제조사들이 서드파티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당연히 이 때문이며, 이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능을 지닌 21세기의 플랫폼으로도 쿠소게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반대로 8비트라고 하더라도 하드웨어 성능 안에서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으며, 16비트 콘솔이 히트를 치는 와중에도 기존의 8비트 기기에도 끝물이지만 명작 게임들은 다수가 나오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젠 비슷한 경쟁이 다른 매체로 옮겨 가면서 폴리곤 표시 개수, CPU 클럭, RAM 용량, 해상도, 초당 프레임 수 등으로 이름만 바꾸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동세대기 사이에서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예전 비트 경쟁 시대나 똑같다. 단지 비트 경쟁에서 폴리곤 경쟁으로 이름만 바뀌어서 이루어질 뿐. 사실 소비자를 유혹하기엔 객관적인 '숫자'만큼 쉬우면서도 확실한 홍보 요소도 없는 만큼, 명칭만 다른 것으로 바뀔 뿐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특히 그래픽과 연출에 강점이 있는 메이저 제작사들의 플래그십 시리즈인 AAA 게임들이 2010년대 후반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비트 경쟁과 맥락이 닿는 병림픽의 결과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했듯 게임기의 하드웨어 스펙은 그 기기에서 구동되는 게임의 재미와도, 그 기기의 성공과도 절대로 정비례하지 않는다. 게임보이의 경우, 게임 기어아타리 링스와는 달리 흑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잘 팔리고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며, 경쟁기보다 한 세대는 뒤쳐진 스펙(이전 세대 기기를 재탕했기 때문)이었던 닌텐도 Wii는 판매량에서 PS3엑스박스 360을 앞섰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전세계 총 판매 대수가 Wii 1억대, PS3과 360이 각각 8천만대 팔렸다. 시기를 감안하면 고성능 기종이었던 Wii가 재탕한 대상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실적이다. 스펙상 Wii U를 제외한 닌텐도의 어떤 기기도 대적할 수 없는 휴대용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비타는 닌텐도의 3DS에게 압도적으로 발렸다. 3DS의 전세계 판매량은 2015년 기준으로 약 5천 4백만대. 그에 비해 비타는 1200만대를 막 돌파하였다. 게임기에 있어 '하드웨어의 성능'보다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의 수(=선택의 폭)와 품질'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여담이지만 이런 비트 경쟁 따위가 별 의미가 없는 PC 시장에서는 16, 32비트는 게임 콘솔에 비해 훨씬 이른 시기에 등장했으나 64비트로의 이행이 콘솔보다 훨씬 늦었다. PC의 CPU인 인텔 x86(IA32) CPU는 32비트로도 충분한 성능을 냈기 때문에 인텔의 64비트 CPU인 IA64, 즉 아이태니엄 쪽이 폭망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며 꿋꿋하게 팔려나갔다. PowerPC 등의 경쟁 아키텍처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물론 장래적으로는 64비트로의 이행은 어쩔 수 없이 다가올 미래였다. 32비트 주소 레지스터로 한번에 접근 가능한 메모리는 232byte=4GByte이기 때문에 4기가 바이트 이상의 메모리를 사용하려면 64비트 CPU가 필요해지는데, 메모리 가격이 점점 싸지고 소프트웨어의 용량이 커지면서 사용자의 메모리에 대한 요구는 늦건 이르건 4기가를 넘어서는 날이 이미 21세기 들어 가시권에 들어와 있었다. 인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IA64를 런칭한 것이지만 결과는 거대한 삽질이었고 차선책으로 AMDAMD64 아키텍처를 라이센싱해 x86-64를 2004년에 인텔 펜티엄4 시리즈(프레스캇)에 적용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시장이 64비트로 완전히 이행한 것은 4GB를 초과하는 메모리가 일반화되는 2010년 이후였다. 2000년대에는 CPU는 64비트일지라도 운영 체제나 EFI는 32비트인 경우, 심지어 BIOS를 사용하는 경우가 흔했다. 즉, 마케팅이 아닌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시장이 움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기타

게임기뿐만 아니라 아케이드 게임시장에서도 비트 단위를 판촉에 내세운 사례가 있었다. SNK는 자사의 기판 네오지오로 초창기 히트작인 용호의 권, 아랑전설 2, 사무라이 스피리츠 등을 제작했을 때 당시로서는 100메가비트(12.5MB) 이상의 유례없던 고용량을 활용하였다. 동시대의 최대 히트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2가 56메가비트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도 당시엔 캡콤이 단 한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용량이었다니 당시 게이머들에게 100메가라는 용량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을지는 짐작할 만 하다. SNK는 이를 100메가 쇼크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마케팅하였고 100메가 쇼크의 슬로건을 회사 로고가 나온 이후에 붙이기도 하였다. 단, SNK의 경우는 소프트웨어의 '용량'을 마케팅에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약간 경우가 다르기는 하며 무엇보다 이걸로 다른 회사와 병림픽을 벌이지도 않았다. 다만 몇년이 지난 후 1997년에는 제목부터 비트 경쟁의 잔재가 느껴지는 하이퍼 네오지오 64라는 기판을 출시했다.[21] 그러나 기판 자체의 문제점이 매우 많아 단 2년만에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이 밖에도 버추어 파이터의 등장 이후 폴리곤을 이용한 3D격투게임들이 나오던 시기엔 '몇천', '몇만'단위의 폴리곤 수를 내세워 판촉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22] 당시 업계 탑클래스였던 세가와 남코보다 기술력이 밑에 있던 업체들이 이런 판촉을 자주 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투신전 시리즈의 타카라. 하지만 폴리곤이 많이 쓰였다고 해서 좋은 게임이 아니란 것이 이후 3D게임의 발전과 함께 유저들에게도 깊이 인식되면서 이런 판촉 방식은 20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4. 관련 문서


[1] 패미컴 이전 일본의 게임기 시장의 지배자였던 카세트 비전은 예외적으로 4비트 게임기였지만 동 시대의 경쟁자였던 게임 퍼스컴들(토미 퓨타, 반다이 RX-78, MSX 등, 여담으로 토미 퓨타는 일찌감치 비트 경쟁에 편승하여 16비트라고 홍보하기도 했다.)은 전부 8비트 이상이었다.[2] 여담으로 애플은 메가 드라이브와 똑같은 MC68000 CPU를 사용하는 리사를 발매하며 32비트 시스템이라고 광고하기도 했다.[3] 메가 드라이브는 북미에서는 슈퍼 패미컴을 상대로 대등히 맞서 싸웠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일방적으로 밀렸다. 특히 일본에서는 판매량이 1천만 대도 되지 않는 후속기인 새턴보다도 존재감이 낮다.[4] 당장 비트워 발발 30년전인 1950년대만 해도 어셈블리어 같은 잔꾀를 부려 컴퓨터의 성능을 낭비한다고 폰 노이만 교수가 제자들을 타박하던 시대였고, 20년전인 1960년대에는 NASA 같은 거대 기술기관도 전자 컴퓨터보다 싼 인간 컴퓨터를 수백명씩 사용했다. 10년 전인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웬만한 프로그래머보다 컴퓨터 한 대가 더 귀하던 시대여서 사람이 컴퓨터에 맞추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5] 물론 교묘하게 탈출구를 만들어 놓은다. 32비트 CPU 2개를 달고 64비트 이라고 광고한다던자..,[6] TV 광고에서도 모델이 게임기 위의 32bit라는 글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이 나온다. MC68020 시리즈 CPU를 사용하여 기술적으로 진짜 32비트 기기이기는 했다.[7] 아타리 재규어, 아미가 CD32, 애플 피핀, FM 타운즈 마티처럼 90년대 게임기 시장에 진출한 컴퓨터 회사들이 만든 게임기들은 주로 소프트의 질이 나빠 실패한 사례가 많다. 또한 게임기에 적합하지 않은 가격과 내구성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8] 물론 소니가 현명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단지 당시 게임기 업계의 관행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지나 (과장된)폴리곤 처리 능력을 들어 마케팅을 했으며 후속기인 PS2를 출시할 때엔 비트 마케팅에 동참했다.[9] 계보상으로는 R4000 기반 CPU/GPU를 탑재한 PSP보다도 뒤의 것이다.[10] 물론 전용 롬팩의 게임 코드 자체는 32비트로 작성되었다.[11] 게임의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게임인 슈퍼 마리오 64, 최고의 명작 게임 중 하나로 평가받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등 퍼스트 파티는 물론이고 HAL 연구소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레어골든아이 007 등 세컨드 파티와 서드 파티에서도 걸작 게임이 상당수 발매되었다.[12] 차이점이라면 닌텐도 64는 서드파티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것이 성패를 갈랐지만, 드림캐스트는 서드파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음에도 세가의 방만한 경영 등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닌텐도는 게임큐브에서 쓴맛을 보았지만 기본적인 재정 상태가 견실해 재정적으로 큰 피해는 보지 않았다.[13] 이 쪽은 메모리 대역폭을 위해 높은 비트를 채용하는 일이 잦다.[14] 엑스박스는 하프라이프 2, 둠 3, 파크라이 같은 동세대 게임기들이 도저히 포팅할수 없었던 게임들을 이식할만큼 성능이 뛰어났다.[15] GPU의 코어 수의 차이로(1152개 vs. 768개) 엑스박스 원 쪽이 CPU와 GPU 클럭이 더 높았음에도 결과물은 PS4에 비해 대체로 떨어졌다. 아키텍처도 GCN으로 같다. 정확한 FP32 연산 성능은 PS4가 1.84 TFLOPS에 엑스박스 원이 1.31 TFLOPS이다.[16] 그 결과로 엑스박스 원 X의 6 TFLOPS, 엑스박스 시리즈 X의 12 TFLOPS는 상당히 유명하지만 PS4 Pro의 4.2 TFLOPS, PS5의 10.28 TFLOPS는 그리 유명하지 않다.[17] 비트 경쟁이 과열되었을 때는 보조 프로세서의 수치를 가져다 붙이기도 했다.[18] 패미컴과 코모도어 VIC-20/64와는 비교 불가 수준이고 비슷한 연식의 구식 시스템인 애플 II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메모리 용량이 적은 것도 한몫했다.[19] MC68000은 당대의 워크스테이션아케이드 시스템에 널리 사용되었던 고성능 CPU지만(애초에 메가드라이브가 같은 세가의 아케이드 시스템이었던 SYSTEM 16의 가정용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다.) 5A22의 기반인 WDC 65C8168비트 세대의 인기 CPU였던 MOS 6502와 하위 호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 IIGS 정도에나 사용되었으며 그마저도 CPU 성능이 너무 낮아 성공하지 못했다.[20] 세가의 8비트 콘솔인 마스터 시스템용으로도 소닉은 나왔지만 메가 드라이브 버전보다 당연히 속도감이나 그래픽은 떨어진다.[21] 같은 '64 계열'인 닌텐도 64와 같은 MIPS R4300 계열 CPU를 사용한다.[22] 콘솔도 하긴 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처리 능력은 초당 백만 폴리곤'이 유명한 예시이다. 3D 모델링에 사용된 폴리곤 수가 모델링 품질을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지만 하드웨어의 처리 능력은 실제 그 하드웨어의 것인 만큼 이쪽이 더 정확한 면은 있지만 처리 가능 폴리곤 수에 변수가 워낙 많기에 3D 그래픽 게임의 태동기가 지나가며 이러한 비교 방법은 사장되었다. 예시로 세가의 3D 아케이드 기판인 MODEL3도 PS와 마찬가지로 초당 백만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실제 성능은 이 쪽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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