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비지(比智)?~?
삼국시대 신라에서 혼인동맹으로 백제 동성왕에게 시집간 왕비의 아버지인 왕족.
2. 개설
백제 동성왕의 신라인 왕비의 아버지이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이 가열되니 이를 막고자 신라와 백제는 나제동맹(羅濟同盟)을 체결하였다.백제와 신라는 이 군사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왕실 가문 사이의 결혼동맹을 맺었다. 493년(소지마립간 15)에 백제 동성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자 신라왕(소지 마립간)이 이벌찬(伊伐飡)[1] 비지의 딸을 동성왕의 왕비로 시집 보냈다. 그리하여 두 나라의 친선과 동맹은 더욱 굳어졌다.
동성왕은 이름이 모대(牟大) 혹은 말다(末多)·마제(摩帝)라 하는 바, 이 동성왕의 국제혼인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진평왕의 선화공주(善花公主)와 백제 무왕 마동(薯童)의 연담설화(緣談說話)로 굴절되어 내려왔다는 설도 있다[2]. 다만 학계에서는 마동/서동의 정체를 무왕 본인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확한 가계는 알 수 없지만 소지 마립간이 신라의 대표로 비지의 딸을 선택한 것과 이벌찬 또는 이찬으로 사서에 기록에 남은 것을 보아 당대 신라에서 제법 위세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이었던 걸로 추정된다.[3] 신라에서 성씨를 제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가 진흥왕 대에 가서이기 때문에 정확한 성씨도 불명이나 대체로 김씨 족단 출신으로 추정한다.
3.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신라의 화랑이었던 사다함과 문노의 증조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다만 두 화랑의 증조할머니가 다른데,으로, 별개의 두 가문을 다루는 두 계보도에서현대 학계에서는 필사본 화랑세기는 위서라고 추정하기 때문에 비지의 계보도 마냥 취신할 수는 없다.
[1] 신라 쪽 소지 마립간 15년조 기준. 백제 동성왕 15년조에는 이벌찬보다 한 단계 낮은 이찬(伊飡)으로 등장해서 양국 기록간 차이가 있다.[2] 이병도, 1976, 서동설화의 신고찰,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3] 삼국사기에서 신라 출신 외국 왕후라 명시된 인물은 백제 동성왕의 처인 비지의 딸과 반파국 이뇌왕의 처인 이찬 비조부의 누이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비조부의 누이는 신라와 반파국의 외교 갈등으로 인해 신라로 귀국했고 그 아들인 월광태자도 정확한 시기는 불명이나 즉위 전에 신라로 건너가 신라 장수가 된 것이 금석문에서 확인된다.[4] 지증왕의 장인이었던 모량부 상공 박등흔의 누나/여동생[5] 가야의 이뇌왕에게 시집 간 양화(兩花)공주의 남동생(삼국사기), 혹은 아버지(동국여지승람)[6] 1세 위화랑조에선 묘양(妙陽)으로도 나온다.[7] 비처왕(毗處王)의 마복칠성 중 한 사람.[8] 삼국사기 사다함 열전[9] 시조를 1세로 삼으면 세손(世孫), 시조의 아들을 1대로 삼으면 대손(代孫)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시조의 아들은 2세손이자 1대손이므로, N대손 = N+1 세손에 해당한다.[10] 법흥왕의 부친인 지증왕이 내물왕의 증손이다. (출처: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 마립간)[11] 내물 마립간의 5세손=4대손 (출처: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