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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DA00><colcolor=#000> 벨기에 왕조 Maison de Belgique | Huis van België | |
창립일 | 1920년 |
창립자 | 알베르 1세 |
現 수장 | 필리프 |
국가 | 벨기에 왕국 |
본가 |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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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기에의 왕조.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는 왕조이다.현재 필리프 국왕이 벨기에 국왕으로 재위 중이다.
2. 역사
벨기에 왕조의 역사는 독일의 작센을 통치한 베틴 가문의 방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레오폴트가 1831년에 독립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1세로 즉위하면서 시작된다. 벨기에를 건국한 벨기에 혁명 세력은 입헌군주제를 선호하여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필리프 1세의 차남 느무르(Nemours) 공 루이[1]를 벨기에 국왕으로 추대했으나 나폴레옹의 전쟁이 아직 기억에 생생했던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벨기에 혁명 세력은 그 대신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 출신이자 루이필리프 1세의 맏사위인 레오폴드를 국왕으로 추대했다. 벨기에는 건국 직후부터 입헌군주제를 택해 레오폴드 1세의 권한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는 뛰어난 외교술로 위태로운 벨기에의 독립을 유지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유럽 대륙을 휩쓴 혁명의 물결 속에서도 벨기에의 입헌군주제를 공고히 했다.
원래 왕조명/가문명은 작센코부르크고타였으나, 알베르 1세 재위 시절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 제국이 벨기에를 공격해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전국에 반독 감정이 크게 일어났다. 이에 따라 알베르 1세는 1920년에 독일식이었던 왕실명을 벨기에로 변경했고, 성씨도 '벨기에의 ~~' 라는 의미의 'de Belgique'로 바꾸었다.[2]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왕가도 큰 위기를 맞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처럼 나치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자 당시 국왕 레오폴드 3세는 독일이 이긴다고 여기고 독일에 항복을 선언했지만 총리 이하의 정부 각료들은 연합군이 이긴다고 판단하여 런던에 망명정부를 꾸렸다. 레오폴드 3세는 나치 독일의 의도와 달리 비시 프랑스처럼 독일에 협조적인 중립 정도로 머무르려 했기에, 나치 독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를 유폐했다.
전쟁은 독일의 패전으로 끝났고, 한편 벨기에 망명정부는 무력하게 항복한 국왕에게 책임을 물어 그를 폐위하려고 했다. 벨기에가 해방된 1944년에 벨기에 망명정부는 레오폴드 3세를 복위시키는 대신 그의 동생 플랑드르 백작 샤를(Charles de Belgique/Karel van België 1903~1983)을 섭정으로 추대했고, 레오폴드 3세는 스위스로 망명을 가야 했다.
아예 좌파 진영에서는 국왕에 국가 파탄의 책임을 물어 군주제를 폐지하려고 했지만, 1950년 국민투표에서 레오폴드 3세의 복위 찬성파가 반대파를 이겨 복위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군주제 찬반과 상관없이 레오폴드 3세만큼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왈롱을 중심으로 팽배해, 1951년에 아들 보두앵에게 양위하고 물러나야했다.
2017년에는 국왕 및 그의 직계가족 이외 모든 왕족에 예전 성씨인 작센코부르크고타를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고 2019년에는 왕가 문장에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문장을 다시 추가했다.기사 성씨가 '드삭스코부르'라고 적힌 엘리자베트 왕세녀의 신분증
3. 역대 국왕 목록
<rowcolor=#000> 이름 | 재위 기간 | 권리 | 비고 |
레오폴드 1세 Léopold I (1790 ~ 1865) | 1831년 7월 21일 ~ 1865년 12월 10일 (34년 142일) | 벨기에 의회의 추대 | |
레오폴드 2세 Léopold II (1835 ~ 1909) | 1865년 12월 17일 ~ 1909년 12월 17일 (44년) | 레오폴드 1세의 차남[3] | |
알베르 1세 Albert I (1875 ~ 1934) | 1909년 12월 23일 ~ 1934년 2월 17일 (24년 55일) | 레오폴드 1세의 손자[4] | |
레오폴드 3세 Léopold III (1901 ~ 1983) | 1934년 2월 23일 ~ 1951년 7월 16일 (13년 24일) | 알베르 1세의 장남 | [5] |
보두앵 Baudouin (1930 ~ 1993) | 1951년 7월 17일 ~ 1993년 7월 31일 (42년 13일) | 레오폴드 3세의 장남 | |
알베르 2세 Albert II (1934 ~ 현재) | 1993년 7월 31일 ~ 2013년 7월 21일 (19년 346일) | 레오폴드 3세의 차남 | [6] |
필리프 Philippe (1960 ~ 현재) | 2013년 7월 21일 ~ 현재 (재위중) | 알베르 2세의 장남 |
[1] 느무르 공작 루이의 장남이 브라질의 페드루 2세의 장녀 이사베우 공주와 혼인하였고 페드루 2세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 느무르 공작 루이의 직계 후손들은 브라질 제위 요구자이다.[2] 영국에서도 비슷한 시기 같은 이유로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가 윈저 왕조로 이름을 바꿨다.[3] 형인 루이 필리프가 생후 1년만에 요절한지라 사실상 장남이다.[4] 레오폴드 2세의 동생인 플란데런 백작 필리프의 차남이다.[5]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내각이 런던으로 망명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독일에 항복하면서 전후 왕실 문제(Koningskwestie, question royale)를 초래하는 바람에 1951년 7월 16일 생전퇴위했다.[6] 여성 편력과 혼외자 논란으로 2013년 7월 21일 생전퇴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