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내전 | |
<colbgcolor=#536349> 배경 |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거 |
2021년 미얀마 쿠데타 | |
경과 | 2월ㆍ3월ㆍ4월ㆍ5월ㆍ6월ㆍ7월ㆍ8월ㆍ9월ㆍ10월ㆍ11월ㆍ12월ㆍ2022년ㆍ2023년ㆍ2024년 |
관련 인물 및 단체 | 민 아웅 흘라잉ㆍ아웅 산 수 치ㆍ윈 민 카렌 민족해방군ㆍ미얀마 국민통합정부ㆍ미얀마 시민방위군 · 민주주의민족동맹 · 버마 공산당 |
1. 개요2. 상세
2.1. 3월 1일2.2. 3월 2일2.3. 3월 3일2.4. 3월 4일2.5. 3월 5일2.6. 3월 6일2.7. 3월 7일2.8. 3월 8일2.9. 3월 10일2.10. 3월 11일2.11. 3월 12일2.12. 3월 13일2.13. 3월 14일2.14. 3월 15일2.15. 3월 16일2.16. 3월 17일2.17. 3월 18일2.18. 3월 19일2.19. 3월 22일2.20. 3월 23일2.21. 3월 24일2.22. 3월 26일2.23. 3월 27일2.24. 3월 28일2.25. 3월 29일2.26. 3월 30일2.27. 3월 31일
1. 개요
미얀마 내전의 3월 경과를 나열한 문서.2. 상세
2.1. 3월 1일
2.2. 3월 2일
- 이양희 전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유엔 로힝야 사태 진상조사단의 마르주키 다루스만 전 단장 및 크리스토퍼 시도티 전 조사단원과 함께 '미얀마 특별자문위원회'(SAC-M)를 결성했다. #
- 깔레이에서 경찰이 실탄을 발사하여 3명이 중상을 입었다. #
- 미얀마 군부정부에 의해 강제해임된 초 모 툰 주유엔 미얀마 대사는 “내가 합법적인 주유엔(UN) 미얀마 대사다.”라며 미얀마 군부를 인정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 또한 3월 5일 영국의 요청으로 미얀마 사태에 대한 미공개 논의가 있을 예정이다.
2.3. 3월 3일
- 만달레이에서 군경이 실탄을 발사해 30대 여성이 가슴에, 10대 남성과 여성이 머리에 총을 맞아 총 3명이 사망하고 최소 30명이 중상을 입었다.
- '치알 신' 이라는 19세 소녀가 민주화 운동 참여 중 군경의 실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이날 하루 동안 최소 34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일부 현지 언론은 사망자를 38명으로 추산하고 있다.[2] 총격에 의한 중상자가 40명 이상으로 확인되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양곤의 북 오칼라파 마을에서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기관총과 저격수가 동원되어 잔혹한 학살이 벌어졌고, 군대가 바리케이드와 민가에 방화를 저지르기까지 하였다. 확인된 사망자만 6명에 수십 명이 중상을 입었고, 소규모 마을의 특성 상 확인되지 못한 인명 피해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관총이 100회 이상 발사되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 만달레이에서 구급대원들이 구급차 옆에서 군경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당하는 영상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양곤에서도 군경이 구급차 창문을 깨고 의료진 3명을 폭행하는 등 시위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의료진을 향한 폭력적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 세이브 더 칠드런은 사망자들 중에 아동 4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 자유아시아방송은 군용 트럭을 타고 가던 군인이 14세 소년을 총으로 쏴 살해한 후 시신을 트럭에 싣고 현장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 미얀마 군부는 현재까지 아웅산 수치 전 국가고문과 윈 민 전 대통령을 포함한 장관급 이상 관료 5명을 기소했고, 공무원 150여 명을 해임하거나 직무 정지시켰다.
- 미얀마 군부가 AP통신 소속 기자 테인 조를 포함한 기자 6명을 기소했다. 나머지 5명은 미얀마 국내 언론 소속이거나 프리랜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테인 조의 변호사 틴 조우는 "그는 언론자유법에 따라 취재 및 보도를 하고 있었다"며 "시위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반발했다. AP통신 국제부장 이안 필립스는 "독립 언론인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뉴스를 보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미얀마 군부가 테인 조를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34명의 기자를 불법적으로 체포했고, 이들 중 19명이 현재 구금된 상태다. AAPP는 "이번 언론 탄압은 정확한 정보를 담은 뉴스 보도를 방해하고 있다"며 "기자들은 확실한 신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고 미얀마 군부를 규탄했다. 한편 미얀마 군부는 기자들에게 적용한 혐의 관련 법을 지난달 개정해 최고 형량을 징역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며 언론 탄압을 강화했다.
2.4. 3월 4일
- 미얀마군이 시위 진압에 저격수를 동원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는 유독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하는 시위대가 많았는데, 저격수가 높은 건물이나 엄폐물에서 시위대를 저격하는 모습들이 다수 포착되었다.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
- 미얀마군이 집에서 군인들을 촬영하는 시민에게 경고 없이 조준 사격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
- 경찰관 3명이 군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인도로 망명했다. 해당 경찰관들은 모두 순경으로, 군부로부터 '따를 수 없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을 포함해 쿠데타 이후 현재까지 미얀마에서 인도로 19명의 경찰관이 망명했다고 한다. #
- 공군 전투기 5대가 만달레이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 군경의 실탄에 사망한 치알 신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2.5. 3월 5일
- 미얀마 군부가 미국에 있는 10억 달러를 빼내려 했으나 행정명령에 의해 동결되었다. #
- 만달레이의 한 공동묘지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지난 3일 경찰이 쏜 실탄에 머리를 맞아 숨진 치알 신의 무덤을 무단으로 개장하고 검시한 후 시멘트를 부어버렸다'[3] 치알 신의 장례식 다음 날 벌어진 일이다. #
- 군인들과 경찰이 시위대는 물론 의료 봉사자들까지 폭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미얀마 군경은 이들을 구급차에서 끌어내려 구급차에 총을 난사하고 무릎을 꿇은 의료 봉사자들을 무차별 폭행했다.[4] #
- 만달레이 시위 현장에서 20대 남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5] #
2.6. 3월 6일
- 유튜브가 미얀마 군부 및 국영방송 MRTV 등 군부와 연계된 계정 다섯 개를 모두 차단했다.[6] #
- 문재인 대통령은 '미얀마 국민들을 향한 폭력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군경의 폭력적 진압을 규탄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
- 한편, 민주화 운동과 군부의 폭력적 시위 진압이 격해지자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미얀마 국제항공 전세기편을 통해 교민 30여명이 인천국제공항으로 긴급귀국했다. 미얀마 교민들은 제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미얀마 국민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 또한 외교부는 귀국을 희망하는 한인들의 수요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2.7. 3월 7일
2.8. 3월 8일
- 미얀마 북부의 미치나에서 시위대와 군경이 대치하는 중에 안 누 따웅이라는 한 수녀복을 입은 수녀가 나타나 무릎을 꿇고 폭력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모습이 애원하자 일부 군경이 무릎을 끓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SNS에 공개되었다. #
- 하지만 위에 일이 일어난 미치나에서는 군경의 총격에 2명이 숨졌다. #
-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72명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1980년대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과 그에 따른 군사적 폭력 경험을 바탕으로 미얀마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다"며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난한다"는 서한을 보내 미얀마 군부의 시위대 유혈진압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
2.9. 3월 10일
- 군부의 만행들이 SNS로 퍼지자 군부는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휴대폰을 불심검문하고 있다. #
-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가족들의 모임인 오월어머니집이 군부의 쿠데타와 시위 탄압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얀마인들을 지지하며 작은 성금을 전했다. #
2.10. 3월 11일
- 군부의 실탄 발사로 최소 9명이 사망했다. #
- 민 아웅 흘라잉의 가족도 미국의 제재에 들어갔다. 영국도 추가 제재 검토 중이다. #
- 3월 8일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에게 미얀마 군부 폭력진압 사태 해결 촉구 서한을 보낸 것이 미얀마 현지에 알려지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감사 인사가 잇따르고 있다고 헤럴드경제가 보도하였다. #
- 수원시의회가 임시회 본회의를 열어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및 민주질서 회복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 경남도의회도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및 민주화 원상회복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
2.11. 3월 12일
- 대한민국 법무부는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에게 비자 기한이 만료되어도 미얀마 현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계속 한국서 머물 수 있게 인도적 체류허가를 허용했다.[8]
- 대한민국이 미얀마에 대한 독자제재를 실행하였다. 외교부를 포함한 7개 정부부처는 군수품[9] 및 산업용 전략물자[10] 수출 금지와 함께 국방·치안 교류 중단[11]과 미얀마에 대한 9천만 달러 규모의 ODA 사업 재검토를 실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한국이 외국에 독자 제재를 실행하는 첫 번째 사례이다. #[12] 정부는 이번이 1차 대응조치라고 밝혔기 때문에 추가로 제재가 더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3]
- 인권보장을 위한 비정부기구인 앰네스티에서 미얀마 내부에서 촬영된 50여개의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미얀마 군부가 전쟁무기와 군사작전을 통해 시위대를 조직적 학살하였다고 비판하였다.
2.12. 3월 13일
- 미얀마 양곤·만달레이에서 군부의 실탄 진압으로 최소 8명이 사망했다. #
- 지난 8일에 미치나에서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애원했던 수녀인 안 누 따웅이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쏘면 기꺼이 죽으려 했다."고 말했다. #
2.13. 3월 14일
- 전날 시위에서 최소 3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 1명도 사망했다. #
- 미얀마 연방의회 대표위원회(CRPH)에 의해 임명된 만 윈 카잉 딴 부통령 권한대행은 처음으로 한 대중연설에서 "군부를 뒤집을 혁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 미얀마에서 그 동안 쿠데타 규탄 시위의 유혈진압으로 최소 9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
2.14. 3월 15일
- 시위대가 양곤 지역의 중국 소유의 공장 32곳을 습격해 불을 질렀다. 이 시위대가 민주화 시위대를 폭도로 몰기 위해 군부(혹은 중국) 측이 조직한 가짜 시위대라는 주장도 있다.
-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중국 소유 공장 습격 사태에 대해 '미얀마 국민은 선동, 이용당하지 말라'라고 시위대를 비난했다. #
- CRPH(문민정부)가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의 대표들과 회담을 가졌고 군부에 대항할 무장단체 결집을 추진한다고 한다.
2.15. 3월 16일
2.16. 3월 17일
- 박정현 부여군수는 군청 브리핑실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과 발전을 기원했다. #
- 미얀마 군부가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열린사회재단'(OSF)의 시민불복종운동 지원 여부를 조사하는 동시에 현지 은행에 예치된 자금을 압수하였다. #
- 유럽연합도 미얀마 군부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
- CRPH(연방의회 대표위원회)가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의 연대를 선언하며 그동안 미얀마에서 불법/테러단체로 지정된 소수민족 무장단체를 목록에서 삭제했다고 밝혔다. #
- 카렌 민족해방군 등 소수민족 무장반군 단체들이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 정부와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사실 소수민족들과 소수민족 반군들의 경우 본인들을 탄압하는 군부보다는 그나마 협상이라도 했던 민주주의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다.[14]
- 시위대가 대형새총, 화염병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거리가 황폐화되었다.[15]
2.17. 3월 18일
- 미얀마 군부가 "미얀마 국민들의 은행 예금 몰수"를 엄포했다. #
- 사가잉 지역에서 시위대의 공격으로 경찰관 2명이 사망하고 총기 3정이 탈취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6]
2.18. 3월 19일
2.19. 3월 22일
2.20. 3월 23일
- 만달레이에서 7세 소녀가 총격에 맞아 숨졌다. #
2.21. 3월 24일
- 광주 서구는 군부 쿠데타에 맞서고 있는 미얀마인들을 돕기 위한 후원금 1,605만 8천원을 관련 단체 2곳에 전달했다. #
- 군부가 이례적으로 체포돼 구금 중이었던 시위대 600여명을 석방했다. #
2.22. 3월 26일
- 김제시의회는 본회의를 열어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및 민주주의 회복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
2.23. 3월 27일
-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온 비무장 시민들에게 군경이 무차별 총격을 가해 현지시각 21시 30분까지 무려 114명이 사망했다. 이 중에 5세, 7세, 10세, 13세 등 어린이 사망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군부 쿠데타 이후 하루에 가장 많은 시민이 이 날 사망했다. #1 #2 #3 #4 사진
- 양곤 주재 미국 문화원을 겨냥한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18]
- 한국 주요 도시에서 미얀마 민주화 시위 중 숨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집회가 진행됐다. #
- 미얀마의 소수민족 반군인 샨족복원협의회(RCSS)와 카렌민족연합(KNU)가 군부를 비난하며 군부의 민간인 학살이 계속되면 소수민족 반군이 가만 있지 않겠다고 밝혔다. #
- 미얀마 국영방송[19]인 MRTV에서 ‘여러분도 머리와 등에 총을 맞을 수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라며 대놓고 시위에 나서지 말라며 시위대를 협박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일기예보에나 나올 법한 평화로운 배경음악을 깔아놓고 나긋나긋한 나레이션으로 시민들을 죽이겠다는 내용을 방송하는 작태에 소름끼친다는 반응이 많다. #
- 미얀마군은 '미얀마군의 날'을 맞아 대대적인 축하 열병식을 하며 무력을 과시했고 여기에서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안정을 해치는 폭력적 행위를 용서하지 않겠다[20]고 밝혔다. #
- 미얀마 군부의 열병식에 참여한 국가는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라오스, 태국이였다. 이중 러시아는 장차관급 인사를 파견했다. #
- 열병식 당일 미얀마 군부에서 폭죽까지 터뜨려가며 파티를 열어 만찬을 즐겼다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트위터 등 SNS에서 당일 시민들의 참상과 호화 파티의 사진을 비교하며 올려지는 등 비난을 받았다. #
- 미국 합참이 주도하여 총 12개국에서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외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영국,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캐나다, 그리스이다. #
- 미얀마군과 소수민족 반군과의 교전이 벌어져 미얀마군 10명과 반군 1명이 전사했다. #
- 군부도 가만있지 않아 미얀마군 전투기가 KNU 관할 지역의 카렌족 마을을 공격했다.[21][22]
2.24. 3월 28일
-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명의의 담화에서 "평화적으로 이뤄지는 시위 활동에 대해 실탄이 사용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밝혔다. #
- 새벽에 만달레이 시내에서 군부가 건물들에 방화를 하고 다니고 시민의 몸에 불을 붙여 분살하기까지 했다.
분살 희생자의 유골 사진이 모자이크 없이 게시되어 있으므로 열람에 주의할 것. - 미안먀 인권단체 정치범지원협회 집계 결과 3월 26일 기준 누적 사망자 수는 32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사망자 수를 합치면 지금까지 군부의 유혈진압으로 숨진 시민은 450명에 육박한다. #
- 미얀마군이 카렌족 마을을 공격하면서 3000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
2.25. 3월 29일
- 미얀마의 시민단체인 민족 총파업위원회(GCSN)가 16개 소수민족 반군 무장단체들에게 국민을 보호해달라고 공개서한을 보냈고 이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
2.26. 3월 30일
- 전국적으로 13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 이날까지의 누적 사망자수는 521명이다.
- 시위대 수백여 명이 반군에게 군사교육을 받기 위해 국경지대로 이동했다. #
- 미얀마 반군 카렌민족연합(KNU)는 미얀마 군부가 반군을 공격하려고 수천 명의 병력을 보냈다고 주장하며 항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제사회에 인도주의적 지원과 난민 보호를 요청했다. #
- 미얀마 소수민족 무장단체인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 아라칸군(AA), 타앙민족해방군(TNLA)은 미얀마 군부에게 시위대에 대한 학살을 멈추지 않으면 반군부 세력으로 연합하겠다고 경고했다. #
- 시민들이 군경의 총격에 대한 항의 표시로 쓰레기를 길거리에 투척하고 있다. #
- 미얀마군이 마그웨 지역의 Gangaw township을 습격해서 4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1만여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라이플로 무장한 주민들과 군경사이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
2.27. 3월 31일
- 이 날까지의 누적 사망자는 536명이다.
- 미얀마 임시정부인 연방정부 대표위원회(CRPH)가 4월 1일에 국민통합정부를 출범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 몬 카웅 틴 띳 임시정부 대변인에 따르면 국민통합정부는 2008년 군부가 채택한 헌법을 폐기하고 '연방민주주의헌장'을 채택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
- CNN 소속 종군 특파원인 클라리사 워드의 취재팀이 미얀마 군부가 고용한 로비스트를 통해 초청을 받고 미얀마에 입국했다. ‘세계가 미얀마의 상황을 잘못 알고있다. 그걸 바로 잡고 싶다.’ 라는 것이 이번 초청의 주요 이유. #[24]
-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은 교민들에게 긴급식량확보와 휴대폰이나 카메라, 컴퓨터의 시위영상 촬영영상이나 사진을 삭제하라고 긴급공지했다. 또한 창문을 열지말고 베란다로 나오지 말것도 요청했다. 또한 외교부는 상황이 계속 악화될경우 군 수송기를 투입해 교민들을 전부 긴급귀국 시킬것이라 밝혔다. 미국은 필수 대사관인원들 제외한 모든 미국인들을 미얀마에서 철수할것을 긴급명령 하였다. 독일과 노르웨이도 자국민들 에게 미얀마 철수를 권고하고있다.#
- 미얀마 공군이 이날도 카렌족과 카친족 마을을 공습했다.
[1] 다만 이는 2월 28일의 사망자를 26명으로 집계한 결과로 보인다.[2] 문민정부 측에서 파견한 유엔 특사 역시 38명 사망설을 주장했다.[3] 치알 신은 19세 태권소녀로 알려진 미얀마 민주화 운동 참여자이다.[4] 심지어 무차별 구타로 의료 봉사자의 보호헬멧이 벗겨지자, 그 상태로 후두부를 가격했다. 정확히는 총을 휘두르기 좋게 거꾸로 잡은 다음, 풀 스윙으로 내려쳤다. 다행히 겉보기에는 정타를 맞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3kg짜리 아령을 사람 머리 위에 망치질한 셈이다.[5] 수천 명이 참여한 시위를 구경하던 중 총에 맞은 것이다.[6] 지난달 1일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는 이유에서다.[7] 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에게 승리하기 위해 이란 세력과 짜고 미국인 인질을 석방하지 않기로 모의했다고 폭로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8]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은 약 25,000명이며 이들 상당수가 한국내 반 쿠데타 시위에 참여하고 미얀마 현지 反쿠데타 시위대에게 돈을 보냈기에 미얀마 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군부는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 신원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수배령를 내렸다. 즉, 한국에 체류하는 미얀마인들의 귀국이라는 것은 곧 미얀마 군부에게 즉결처분이라는 뜻이다.[9] 주로 최루탄.[10] 무기로 전용하기 쉬운 화학물질들은 전부 포함된다.[11] 이에 따라 양국 정부가 추진해오던 한국·미얀마 국방 협의체 설립과 한국에서 시행되기로 합의되었던 미얀마군 장교와 경찰관의 교육훈련이 백지화되었다.[12] 또한 아시아 국가중 최초로 직접적인 제재에 들어갔다.[13] 한국은 민주화운동으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결과를 보았던 나라이고, 이 때문에 시민운동 탄압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다.[14] 무엇보다 미얀마 정부도 소수민족에 대한 처우개선을 하려 했지만 소수민족을 싫어하는 군부의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특히 군사력을 전부 장악한 군부에 맞서 싸울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세력들이 소수민족 반군들밖에 없다보니 군사력이 없는 민주주의 정부로서는 이들과의 연대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15] 즉, 시위대가 자체적인 무장을 개시했다는 뜻이다. 군부가 시위대에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시위대가 알게 되었기에 민주화 운동이 지금보다도 더더욱 격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경우에 따라 내전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16] 사가잉 지역에서는 3월 16일에도 총기가 탈취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17] 상당히 위험한 사건인데, 이런 행위는 그 국가를 외교적으로 적대시하는 행위로서, 이는 정사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18] # 이것은 친중 성향의 군부가 반중 성향을 가진 세계 최강국 미국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며 타국 개입을 망설이지 않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 특성상 이런 식의 도발은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개인주의가 핵심 사상인 미국 특성상, 국가는 개인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으며, 이 때문에 한두 명의 피해만 일어나도 나라 하나 없애려고 드는 게 미국이다. 당장 3천 명의 피해를 입은 미국이 중동에 얼마나 끈질기고 강력하게 응징을 했는지 기억해보자. 만약 미얀마가 지속적으로 미국에 대한 적대행위를 저지른다면 군부가 끝장날 수도 있다(...).[19] 미얀마 정보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군부 세력의 일부이다.[20] 웃긴 것은 미얀마군은 현재 흉악범들을 석방하고 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까지 산채로 태워 죽이며 외국 회사에 테러리즘을 자행하는 등 국가안정을 크게 해치고 있으며 이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반란 행위로 수괴는 물론 지도부 전체가 사형-무기징역을 받을 중죄이다.[21] 정확한 사상자와 사망자는 집계되지 않았다.[22] 사실 미얀마군이 소수민족 마을에 폭격을 하는 건 거의 일상이다. 2015년엔 미얀마군 전투기가 중국 국경을 넘어 원난의 소수민족 난민들을 폭격하는 일도 있었다. 카렌 민족해방군은 2018년부터 미얀마 정부와 평화협정을 시작하여 그동안 무력충돌이 거의 없었으나 이 폭격으로 미얀마와 카렌 간의 내전이 재개되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23] 지난 28일 미얀마 중부 사가잉 지역의 칼레리와 만달레이주 몽콕에서도 군인들이 로켓추진탄(RPG)을 들고 있다는 사진과 영상도 SNS에 게시되었다.[24] 미얀마 군부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미국의 언론인을, 그것도 세계적으로 방송을 내보내는 대형 언론을 직접 초청해 대체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미얀마 군부의 고도한 여론조작 설계로, 실상은 특파원을 사실상 끌고다니며 군부의 통제 아래에서 보여주고 싶은 조작된 평화의 모습만 뉴스에 담으려는 것이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북한이 외국인들 상대로 하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