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내전 | |
<colbgcolor=#536349> 배경 |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거 |
2021년 미얀마 쿠데타 | |
경과 | 2월ㆍ3월ㆍ4월ㆍ5월ㆍ6월ㆍ7월ㆍ8월ㆍ9월ㆍ10월ㆍ11월ㆍ12월ㆍ2022년ㆍ2023년ㆍ2024년 |
관련 인물 및 단체 | 민 아웅 흘라잉ㆍ아웅 산 수 치ㆍ윈 민 카렌 민족해방군ㆍ미얀마 국민통합정부ㆍ미얀마 시민방위군 · 민주주의민족동맹 · 버마 공산당 |
1. 개요
미얀마 내전의 4월 경과를 나열한 문서.2. 상세
2.1. 4월 1일
- 신한은행 양곤 지점 현지 직원이 군경으로부터 총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전을 위해 차량으로 퇴근하던 도중, 퇴근 차량의 운전기사가 미얀마 군경의 정차 신호를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가려 하자 곧바로 총격이 일어났다고 한다. 해당 직원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고 전해졌다. ###
- 광주 동구의회에서 쿠데타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
- 미얀마 민주진영은 소수민족 반군들과 연대하여 독자적인 정부를 선언했고 세력화에 나섰다. #
- 미얀마 군부는 소수민족 반군들과 한 달간 휴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반정부 시위 진압은 예외없이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
- 사가잉주 인도 접경 타무(Tamu)마을에서 시위대와 경찰간의 교전이 발생해 경찰관 6명이 사망했다. #
- 경찰과 시위대간의 포로교환이 일어났다. #
2.2. 4월 2일
-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한국에 체류 중인 미얀마인 유학생들과 간담회를 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
-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타무 시에서 근무 중 위치를 이탈해 시위대에 합류한 경찰관[2]이 이끈 공격으로 미얀마군 6명이 사망했다.
2.3. 4월 3일
- 카렌 민족해방군 샨족연합 아라칸군 같은 10개 소수민족 반군들은 미얀마군의 휴전을 거부하면서 군부에 다시 한 번 시민들과 수치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시 막대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또한 이들은 미얀마의 임시정부와 연대관계를 맺으므로서 미얀마 소수민족의 자치권 보장과 미얀마 연방군 창설에 대해 논의에 들어갔다. 좀 아이러니한게 군부의 주도에 의한 이간질로 싸우던 소수민족과 미얀마 민주정부가 군부에 의해 뭉치게 된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미얀마 군부의 자업자득인셈이다.
2.4. 4월 4일
- 군부의 초청을 받아 입국한 CNN의 종군 전문 특파원인 클라리사 워드 일행이 군부의 감시를 따돌리고 현지 시민들과 즉석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후 특파원들이 자리를 뜨자 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을 어디론가 연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 참고로 해당 특파원들은 미얀마 군부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평화로운 미얀마를 직접 보여주겠다며 로비스트를 통해 들여온 특파원이다.[3][4]
- 군부는 위 인터뷰에서 아웅 산이 살아있었다면 자기 딸이 얼마나 바보같은지(how stupid my daughter) 말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아웅 산은 미얀마인들에게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미얀마의 국부로 여겨지는 인물이기에[5] 차마 그를 비난하지는 못하고 그의 딸인 수치 여사를 표적으로 잡은 듯. 미얀마 짯에도 과거에는 모든 액수의 지폐에 아웅 산 장군의 초상이 들어가 있었다. #
- 태국-미얀마 국경에 미얀마 유력인사 6명을 입국 금지 대상으로 명시한 포스터가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
- 시위대가 던진 수류탄이 터지면서 진압군 4명이 폭사했다. #
- 미얀마의 10여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군부의 시위대 유혈 진압을 비난하며 미얀마 국민과 함께 할 것이며 군부와의 휴전 협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2.5. 4월 6일
- 미얀마 현지 SNS에서 미얀마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중국군이 미얀마 내부로 들어왔다는 영상이 퍼지자 일반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오성홍기를 불태우는 등 반중정서가 거세지고 있다. #
-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비판한 유명인 수배명단을 공개했다. #
2.6. 4월 7일
- 미얀마 민주진영이 유엔에 군부의 잔혹 행위들에 대한 증거를 대거 제출했다. #
-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비판해 온 영국 주재 대사관을 점거한 채 미얀마 대사 쪼 츠의 출입을 막고 있다. 대사가 퇴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사관 앞에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1 #2
- 중국이 CRPH와의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군부가 민주화를 지지하는 유명 모델 파잉 타곤을 체포했다. #
2.7. 4월 8일
- 미얀마 군경이 시위대에 박격포를 사용해 최소 82명이 사망하였다. #
2.8. 4월 9일
- 주미얀마 말레이시아 대사가 미얀마의 전기에너지부 장관과 회담한 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인정한 것이냐'는 비난에 휩싸이자 해명하고 나섰다. #
- 광주 서구의회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와 민주화 지지 광주연대에 성금 51만 8천 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
- 군부가 총선을 2년 뒤에 다시 치를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 #
- 미얀마 군사법원에서 장병을 살해한 혐의로 19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
2.9. 4월 10일
- 군부는 "정말 시민들을 죽이려 했다면 한 시간 내에 500명도 죽었을 수 있다"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
- 미얀마 반군인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 아라칸군, 타앙민족해방군이 경찰서를 습격하여 경찰 10여명이 사망했다. #
2.10. 4월 12일
- 한 의사가 군부의 어린이 살해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군경 자녀의 진료를 거부하자 체포되었다. #
2.11. 4월 14일
- 민간인 학살과 탄압에 동조하지 않는 군인들의 탈영이 잇따르고 있다. 군부에 의해 가족들이 영내에 묶여있는 데다 매일 낮과 밤마다 점호해 인원을 점검하는 등 사실상 인질로 잡혀서 불가능하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70% 정도가 군부의 잔인한 요구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
2.12. 4월 15일
- 반 쿠데타 거리 시위를 이끌던 3명의 리더 중 하나인 ‘웨이 모 나잉’이 군부에 체포되었다. #
- 30명이 넘는 주요 시위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 #
- 미얀마 군사학교의 사관생도들이 트위터에 축제를 즐기는 영상이 공개되자 미얀마 민주진영에서는 이를 비난했다. #
2.13. 4월 16일
- 미얀마 시위 지도자 중 한 명인 ‘타이자 산’이 한국의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
- 소수민족 인사들을 요직에 대거 포진시킨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를 구성했다. # 의원내각제 형태로 운용하기로 하고, 만 윈 카잉 딴 부통령 대행에게 임시 총리직을 맡겼다. 참고로 딴 총리는 카렌족이다. 대통령 대행 역할을 하게 되는 두와 라시 라 부통령도 카렌족이다.
- 군부가 4월 15일 체포한 웨이 모 나잉의 영상을 방송에 공개하였다. 영상 속 그는 심하게 맞아 퉁퉁 부은 모습으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
- 미얀마 민주 임시정부와 손을 잡은 카친 독립군(KIA)이 미얀마군을 상대로 치른 알로범 고지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알로범 고지는 군사적 요충지에 해당하고, 카친 독립군 본부 부근에 있는 곳이기에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 전투에서 미얀마군은 대대장을 포함하여 100명 이상이 전사하였고 38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미얀마 나우 등 현지 매체가 전했다. 다급해진 군부는 2017년 로힝야족 학살 당시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른 최정예병력인 77/88경보병사단을 카친주에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 #
2.14. 4월 17일
- 군부가 재소자 2만 3천 명에 대한 대규모 사면을 시행했다. 하지만 반군부 시위로 체포된 사람들은 제외했다. #
- 미얀마군 치안부대가 일본 대사관에 무단으로 칩입했다는 것이다.# 이예 일본이 항의했다.
2.15. 4월 19일
- 양곤에서 활동하던 니혼게이자이신문 출신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가 군부에 의해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일본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다. # 해당 기자는 앞선 2월 26일에도 취재 도중 체포되었다 풀려난 적이 있었다.
- 미얀마 반군이 잇달아 쿠데타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쿠데타군은 최소 8명의 사망자와 수십의 사망자를 냈다고 한다. #
2.16. 4월 23일
- 현지 SNS 등에 따르면 군정이 만달레이에서 거리 시위를 이끄는 타이자 산의 은신처를 알려주거나 그를 체포하는데 결정적 제보를 하는 이에게 1천만짯(약 800만원)을 지급하겠다며 전단을 배포했다. #
- 카친 독립군(KIA)이 최소 10곳의 미얀마군 기지를 점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얀마군은 대대장을 포함하여 수 백명이 전사했고 점령당한 기지를 한 곳도 재탈환하지 못했다고 한다. #
-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 군사정권 최고 권력자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을 체포해달라고 인터폴에 요청했다. #
- 민 아웅 흘라잉은 민주화 운동 지도자를 신고하면 노동자 월급의 50배와 동일한 금액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
- 미얀마 현지 소셜 미디어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해 준 대한민국에 감사를 표하는 운동이 #ThanksKoreaCampaign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진행되었다. 실제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한국 아이돌 관련 굿즈나 한국 상품과 함께 한국어와 버마어로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인증샷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
2.17. 4월 24일
-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5개 항은
▲ 미얀마의 즉각적 폭력 중단과 모든 당사자의 자제
▲ 국민을 위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건설적 대화
▲ 아세안 의장과 사무총장의 특사 형식 대화 중재
▲ 인도적 지원 제공
▲ 특사와 대표단의 미얀마 방문
위의 5가지이다. # 다만, 정치범 석방은 불발되었다. 당초 '정치범 석방'이 포함됐다가 마지막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
2.18. 4월 26일
- 포스코가 미얀마에서의 가스전 사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가스전 사업의 수익 배분금이 미얀마 정부 재무부로 지급되기 때문에 군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가스전 생산량의 20%가 미얀마 국내 전력 공급에 쓰이고 있어 국민 생활에도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미얀마 군부의 직접적인 자금줄 역할을 하는 미얀마경제지주사(MEHL)와의 합작 사업에 대해서는 지난 4월 16일 합작 관계 종료를 선언했다. # # #
2.19. 4월 27일
2.20. 4월 28일
- 미얀마 군부가 군부의 학살을 알린 해외의 인권단체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를 비난하며 강경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
- 시민군으로 투항해 군부에 맞서 싸웠던 군인이 교전 중 사망했다. #
2.21. 4월 29일
- 미얀마 민주진영이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가한 공무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
- 사가잉 지역의 타무마을에서 시민군과 미얀마군간의 교전으로 미얀마군 30명 이상이 사망했다. #
[1]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한국 관련 첫 사망자라고 한다.[2] 공격을 성공시키긴 했으나,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군의 총격에 숨졌다.[3] 물론 미얀마 군부가 직접 보여주겠다던 평화로운 모습은 당연히 조작된 100% 가짜이다. 즉, 이게 사실상 거의 북한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에서 파견한 인력이 특파원들을 사실상 강제로 끌고 다니며 군부의 통제 아래에 있는 억압된 가짜 평화 구역만 보여주고는 이게 미얀마라고 우기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커리어 내내 전쟁터를 뛰어다닌 엘리트 특파원이 북한에서도 안 먹히는 이런 멍청한 선전에 속을 리 없으니 이런 방식의 기습 인터뷰를 진행하며 진실된 정보를 모으고 있다.[4] 무엇보다도 CNN은 미국의 방송사다. 즉, CNN 특파원이 군부에 의해 체포되거나 실종된다면 미국에게는 완벽한 개입 명분이 되기 때문에, 미얀마 군부가 사실상 미국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5] 당장 북한이 그의 묘소에 폭탄 테러를 감행했을 때 미얀마 서민들은 물론이고 네 윈을 비롯한 군부 지도자들까지 발칵 뒤집어진 것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