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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0 00:18:41

리토리오급 전함

리토리오급에서 넘어옴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제2차 세계 대전의 이탈리아 왕립 해군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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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리오급 전함
리토리오비토리오 베네토로마임페로
파일:1401847872_1-VittorioVeneto.jpg.7cd3058ddb2fd6cc1f301c44f9601c55.jpg
Classe Littorio

1. 개요2. 제원
2.1. 명칭 문제
3. 개발4. 특징
4.1. 강력한 무장4.2. 튼튼한 방어력4.3. 빠른 속도
5. 문제점
5.1. 화력의 허실5.2. 방어력의 한계5.3. 짧은 항속거리
6. 평가7. 동형함 목록8.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9. 관련 링크

1. 개요

리토리오급 전함의 운용 모습[1]

리토리오급 전함(Classe Littorio)은 이탈리아 왕립 해군에서 운용했던 고속전함이다. 총 4척이 계획되었으며 3척이 취역했고, 4번함 임페로는 미완성 상태로 폐기된다. 전쟁 중 로마는 독일군의 Fritz X에 의한 폭격으로 격침당했다.

나머지 2척은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나 배상함 문제가 걸려서 계류된 상태에 놓였다가 이탈리아에게 돌려주기로 한 후 폐기처분된다. 특히 이탈리아가 최신형 전함을 돌려받자마자 폐기처분하고 그보다 낡은 전함을 한동안 운용한 이유가 상당히 불명확한 편이다. 리토리오급 전함을 유지하기에는 높은 비용문제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불충분했다.

일단 배상함 분배는 형식적으로는 리토리오는 미국에, 비토리오 베네토는 영국에 넘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배상함 문제를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 원주인에게 돌려주지만 돌려받은 즉시 폐기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인정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리토리오급 전함을 배상함으로 받기를 적극적으로 요청하던 소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해당 문제는 리벤지급 전함 로열 소버린을 1944년에 소련에 대여하는 형식으로 일단 봉합했으나 그 후에도 소련의 요구가 지속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소련에게 최신형 고속전함을 배상함으로 주고 싶지 않았던 영국과 미국의 입장과 자국의 최신형 전함을 빼앗기기 싫은 이탈리아의 입장이 맞추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소련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 2번함 줄리오 체자레가 1948년에 소련에 배상함으로 넘어갔다.

이탈리아도 어지간하면 리토리오급 전함을 살려놓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연합국이 리토리오급 전함을 폐기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처음에는 주포의 포신을 자르고 폐쇄기를 손상시켜서 전투력을 제거하는 선에서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배상함 문제가 겹쳐버리자 결국에는 이탈리아는 2차대전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약의 조건에 따라 완전히 폐기처분하게 된다.

2. 제원

파일:attachment/Littorio_class_battleship.png
리토리오급 전함의 상부구조도 출처
이전 함급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2]
다음 함급 없음
구분상세
설계배수량[3]35,000t
기준배수량41,377t (비토리오 베네토 41,167t, 로마 41,650t)
상비배수량43,835t (비토리오 베네토 43,624t, 로마 44,050t)
만재배수량45,963t (비토리오 베네토 45,752t, 로마 46,215t)
전장237.7m(로마 238.8m)
전폭32.9m
흘수선9.8m(상비배수량 이하) - 10.5m(만재배수량시)
기관 출력130,000 마력[4][5]
보일러Yarrow 중유전소보일러 8기
터빈Belluzzo 기어드 증기터빈 4축 4기
연료중유 4,140t
속도30knot (56㎞/h) (통상시), 31.4knot (58.2km/h)
(가벼운 적재상태에서 시험항해시. 비토리오 베네토)
항속거리16knot (30㎞/h)로 4,580해리 (8,480㎞)
승조원1,830명 (정규인원), 기함 지정시 80명 추가 승함
주포381㎜ 50구경장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
부포152㎜ 55구경장 3연장 부포탑 4기 (총 12문)
대구경 대공포90㎜ 53구경장 단장 대공포탑 12기 (총 12문)
소구경 대공포37㎜ 54구경장 2연장 대공포좌 8기 (총 16문)
37㎜ 54구경장 단장 대공포좌 4기 (총 4문)
대공기관포20㎜ 65구경장 2연장 기관포좌 14기 (총 28문)
대공기관총13.2㎜ 75구경장 단장 기관총좌 5기 (총 5문)
예포120㎜ 40구경장 단장포좌 4기 (총 4문)
주포탑 장갑포탑전면 350㎜, 측면 200㎜, 후면 200㎜, 천정 200㎜
바벳 갑판장갑 상부 350㎜ 갑판장갑 하부 280㎜
부포탑 장갑포탑전면 280㎜, 전방 측면 130㎜, 후방 측면과 후면 80㎜, 전방 천정 150㎜, 후방 천정 105㎜
바벳 갑판장갑 상부 150㎜ 갑판장갑 하부 100㎜
대공포탑 장갑포탑전면 40㎜, 측면 40㎜, 후면 40㎜, 천정 40㎜
장갑함교 장갑전면 260㎜, 측면 200㎜, 천정 200㎜
현측장갑현측 주장갑 350㎜[6]
갑판장갑갑판 탄약고 162㎜, 기관부 112mm, 추진부 102mm, 상갑판 45㎜. 중갑판 12mm, 합계 최대 219mm[7]
함재기IMAM Ro.43(수상기) 또는 Reggiane Re. 2000[8] 2 - 3대, 캐터펄트 1기 장착

2.1. 명칭 문제

리토리오급 전함은 비토리오 베네토급 전함으로도 알려진 전함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리토리오와 비토리오 베네토가 모두 건조 시작은 모두 1934년 10월 28일이며, 진수는 비토리오 베네토가 1937년 7월 25일로 리토리오의 1937년 8월 22일보다 앞서지만, 취역은 리토리오가 1940년 5월 6일로 비토리오 베네토의 1940년 5월 15일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일반론적으로는 취역을 먼저 한 리토리오급으로 불리나 극소수 몇몇 국가, 특히 일본에서는 비토리오 베네토급으로 부르고 있다.[9] 게다가 같은 이유로 미완성함인 임페로를 3번함으로 두고 멀쩡하게 완성된 로마를 4번함으로 둔다.

미국의 렉싱턴급 항공모함 1번함인 렉싱턴보다 2번함인 새러토가의 진수일, 취역일이 더 빠르고, 콜로라도급 전함 1번함인 콜로라도보다 2번함인 메릴랜드의 진수일, 취역일이 더 빠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임쉽이 변하지는 않는다. 진수일, 취역일과 무관하게 해당 군함을 만들어서 운용한 국가의 작명법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당장 미국의 경우 보통 헐 넘버 순으로 따진다. 렉싱턴급 항공모함 렉싱턴은 CV-2, 새러토가는 CV-3이다. 마찬가지로 콜로라도급 전함 콜로라도의 경우 BB-45, 매릴랜드의 경우 BB-46이다. 진수일이나 취역일과는 무관하게 인가가 난 순으로 정하기 때문에 심지어 건조 시작일부터 해당 급에서 가장 빠른 매릴랜드가 콜로라도보다 헐 넘버에서 뒤지게 된다. 그래서 네임쉽도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국가마다 네임쉽의 기준이 다르므로 해당 국가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원래대로라면 리토리오급 전함의 명칭 문제는 사실 논쟁의 여지조차 없다.[10]

나무위키에서는 해당 함급의 건조국가인 이탈리아의 이탈리아어 위키백과영문 위키백과의 표기에 따라 리토리오급 전함을 항목의 명칭으로 한다.

여담으로 기존의 이탈리아 전함들은 함명을 인명에서 따 왔지만 리토리오급은 이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리토리오급의 명명 규칙은 상당히 뒤죽박죽인데, 리토리오는 이탈리아어로 집정관이라는 뜻이며 비토리오 베네토는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를 기리는 뜻이다 로마는 도시의 이름구 공화정 구 제국의 명칭을 노리고 중의적으로 지은 것으로 보이며, 임페로는 이탈리아어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식민 제국을 뜻한다.

3. 개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따라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주력함 건조에 사용할 수 있는 7만톤의 배수량 쿼터를 받아냈다. 이는 군축조약상 가장 적은 숫자의 배수량 비율만 인정받은 양국에 대한 보상이었다. 당시 조약 참여 국가는 당시 해군력 5대 강국인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였으며, 이 중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영미일보다 해군력이 상대적으로 빈약했었기 때문에 조약상의 배수량 비율도 하락했으므로 반대급부로 이러한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1928년에 15인치 2연장 주포탑 3기로 무장하고 시속 28 ~ 29노트로 기동하며 배수량 23,000t을 가지는 전함을 설계했다. 이 전함은 배수량 쿼터 한도 아래에서 3척을 건조할 수 있으므로 이탈리아의 계산으로는 항시 2척은 전투가능상태로 유지가능했다. 이 전함은 중무장과 속도 위주로 만들어졌으므로 방어력 및 항속거리는 희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말이 전함이지 순양전함의 성격을 가지며 그나마 항속거리도 순양(巡洋)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어정쩡한 함선이었다. 이런 배를 설계한 이유는 해당 군함은 이탈리아와 주변 바다를 지키기 위해 지중해 안에서만 활동할 예정이므로 속도는 빨라야 하지만 항속거리는 짧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리토리오급 전함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와는 별도로 역시 같은 시기인 1928년에 이탈리아는 다른 전함의 설계안을 만들었다. 해당 설계안은 6문의 16인치 주포로 무장하고 대응방어를 달성하며 속도는 시속 29 ~ 30노트, 배수량이 35,000t인 전함이었다. 당시의 군축조약상 주포 덕분에 건조가 불가능한 전함을 설계한 이유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만료된 후 새로운 군축 조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의 대비용이며, 실제 적용할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23,000t의 전함 중 마지막으로 건조되는 전함 대신 이 전함을 건조할 예정이었다.

이 시기까지는 이탈리아는 돈 문제 등으로 인해 스스로 군축을 하고 있던 형편상 자기가 앞서서 해군 군비경쟁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당장 이탈리아의 몇 안되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단테 알리기에리도 돈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알아서 해체할 정도였다. 그래서 23,000t 설계안이나 35,000t 설계안이나 준비만 해놓고 실제로 실행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보조함의 제한규정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미 촉발된 보조함 경쟁이 양국간에 더욱 강력하게 진행되었으며, 독일이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을 건조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방책으로 프랑스가 됭케르크급 전함을 만들어내자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되었다. 이에 따라 1932년에는 13.5인치 3연장 주포탑 2기를 장비한 18,000t의 주력함 설계안을 만들어내지만, 적은 배수량으로 만드는 함선은 됭케르크급 전함을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는 즉시 사장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3년 말 ~ 1934년 초반에 논의되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자간 해군력 협상이 무산되었는데, 사전 협의에서 합의된 내용은 26,500톤 이하의 배수량을 가진 이탈리아의 신형 전함 1척을 만들고 끝내자는 것이었다.(됭케르크와 이탈리아 신형 전함 한 척 씩 1:1 비율) 그런데 정작 나중에 프랑스 측의 특사가 가지고 온 조약 내용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한 척씩 전함을 건조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어져 있었다.(됭케르크 + 됭케르크급 2번함 - 이후 스트라스부르/이탈리아 신형 전함 한척으로 2:1) 당연하지만 이런 조항은 이탈리아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1934년 1월 최종적으로 결렬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탈리아의 설계안은 중후장대(重厚長大)하게 변한다. 15인치 2연장 주포탑 4기를 탑재하는 26,900t 설계안이 나왔으나 역시 화력과 방어력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16인치 주포로 무장한 35,000t 설계안에 밀려버렸다. 그러나 16인치 주포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전혀 만들어본 적이 없는 함포라서 설계 및 제작, 생산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으므로 화력에서 약간의 타협을 해서 최종적으로는 15인치 3연장 주포탑 3기를 장착한 41,000t의 배수량을 가진 전함 설계안이 만들어진다.[11] 이 설계안을 다듬은 것이 바로 리토리오급 전함이며, 배수량에서 군축조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15인치 주포를 장착한 35,000t의 배수량을 가진 전함이라고 공표한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리토리오급 전함은 1934년 10월 28일에 2척을 건조를 시작했다. 두 척의 건조 개시 일자가 동일한 것은 어느 정도 정치적 과시의 목적이 있었다. 로마 진군을 통해 무솔리니가 권력을 얻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4. 특징

1930년대, 제노바 조선소에서 건조 시작되는 1번함 리토리오의 모습
1937년, 진수되는 1번함 리토리오

주력함의 공격, 방어, 주행을 모두 잡은 대표적인 고속전함으로 이탈리아 왕국의 해군 기술력의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군함이다.

4.1. 강력한 무장

스펙상으로 본다면 주포는 15인치이면서 현측 관통력의 경우 18인치급 주포 또는 미국의 초중량탄(SHS) 16인치 주포의 관통력에 근접하는 강력한 함포였으며 부포인 152mm 3연장포도 가상 적군인 프랑스군의 대형 구축함은 물론이거니와 경순양함, 심지어 거리에 따라서는 프랑스 최후의 중순양함인 알제리급 중순양함을 제외한 다른 중순양함도 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상당했다. 대공화기면에서도 대구경 대공포, 소구경 대공포, 대공기관포, 대공기관총을 골고루 설치했으며, 수량도 2차대전 개전 이전 시점으로 봤을 때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종합적인 화력은 스펙상에서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할 수 있다.

리토리오급 전함의 주포는 OTO(Odero-Terni-Orlando)사의 OTO 1934년식 381mm 50구경장 포로 3연장 주포탑 3기를 탑재해서 총 9문을 장착한다.# 해당 주포는 중량 885kg의 철갑탄을 최대 앙각 36도에서 42,800m까지 날릴 수 있고, 824.3kg의 고폭탄은 앙각 35도에서 44,640m까지 도달시킬 수 있다. 관통력의 경우에는 이론상 영거리 사격시 현측장갑 814mm를 관통하며, 사정거리 18,000m에서 현측장갑 510mm와 갑판장갑 73mm를 뚫고, 28,000m의 거리에서는 현측장갑 380mm와 갑판장갑 130mm를 관통가능하다. 포신의 부앙능력은 -5도에서 +35도인데 조정을 통해서 -5.5도에서 +36도까지 가능하며 부앙속도는 초당 6도다. 포탑은 기본적으로는 360도 선회가 가능하지만 장착위치 및 구조물의 간섭상 실제선회각도는 1번 포탑이 함수쪽을 기준으로 해서 좌우 145도, 2번 포탑이 좌우 141도, 후방의 3번 포탑은 함미쪽를 기준으로 해서 좌우 160도의 선회각도를 가진다. 포탑의 선회속도는 분당 6도다. 포탄의 발사속도는 분당 1.3발이며 장전각도는 +15도인데, 주장전장치가 고장나면 보조장전장치로 장전이 가능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2도로 장전한다. 포신의 수명은 110발에서 130발이다.

부포는 OTO 1936년식 152mm 55구경장 3연장 부포탑으로 4기를 탑재해서 총 12문을 장착한다.# 해당 부포는 중량 50kg의 철갑탄을 최대 앙각 45도에서 25,740m까지 날릴 수 있다. 관통력은 거리 14,000m에서 현측장갑 86mm를 뚫고, 거리 18,000m에서 현측장갑 40mm를 관통한다. 포신의 부앙각도는 -5도에서 +45도이며 포탑은 기본적으로는 360도 선회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장착위치 및 구조물의 간섭상 선회각도는 좌우 120도 수준이었으며, 전함의 부포탑으로 탑재될 경우에는 상부구조물과 주포탑, 대공포와의 간섭현상으로 인해 각도가 더 줄어든다. 포탄의 발사속도는 분당 4-5발이며 장전각도는 -5도에서 +20도 사이에서 자유롭게 장전이 가능하다.

대구경 대공포는 Ansaldo and OTO 1939년식 90mm 50구경장 단장 대공포탑으로 12기를 탑재해서 총 12문을 장착한다.# 해당 대구경 대공포는 중량 10kg의 대공포탄을 수평사격시에는 45도 각도에서 13,000m 거리까지 날리며 대공사격시에는 최대 앙각 75도에서 고도 10,800m까지 포탄을 도달시킬 수 있다. 포신의 부앙각도는 -3도에서 +75도이며 포탑은 기본적으로는 360도 선회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장착위치 및 구조물의 간섭상 선회각도는 양 측면을 기준으로 할 때 좌우 120도다. 포탄의 발사속도는 분당 12발이며 숙련병을 다수 동원하면 순간적으로 분당 16발의 사격이 가능하다.

소구경 대공포는 1938년식 37mm 54구경장 2연장 대공포좌와 1939년식 37mm 54구경장 단장 대공포좌를 사용한다.# 그리고 2연장 대공포좌는 8기를 장착하고 단장 대공포좌는 4기를 장착해서 총 20문을 보유한다. 해당 소구경 대공포는 0.83kg의 대공포탄을 수평사격으로는 45도 각도에서 유효사정거리는 4,000m, 최대사정거리는 7,800m이며, 대공사격으로는 80도에서 5,000m 고도까지 포탄을 도달시킬 수 있다. 포신의 부앙각도는 2연장 대공포좌는 -10도에서 +80도, 단장 대공포좌는 -5도에서 +90도까지 가능하다. 포좌는 기본적으로는 360도 선회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장착위치 및 구조물의 간섭상 선회각도는 양 측면을 기준으로 할 때 좌우 120도다. 포탄의 발사속도는 선택에 따라 분당 60발, 90발, 120발이 가능하다.

대공기관포는 1935년식 20mm 65구경장 2연장 기관포좌를 사용하며, 14기를 장착해서 총 28문을 보유한다.# 해당 대공기관포는 0.134kg의 기관포탄을 수평사격시 45도 각도에서 유효사정거리가 2,500m, 최대사정거리는 5,500m이며, 대공사격시에는 90도에서 2,900m 고도까지 기관총탄을 도달시킬 수 있다. 포신의 부앙각도는 -10도에서 +100도까지 가능하다. 포좌는 기본적으로는 360도 선회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장착위치 및 구조물의 간섭상 선회각도는 양 측면을 기준으로 할 때 좌우 120도다. 포탄의 발사속도는 분당 240발이지만 실용적으로는 분당 120발이 적당했다.

대공기관총은 1931년식 13.2mm 75.7구경장 단장 기관총좌를 사용하며, 5기를 장착해서 총 5정을 보유한다.# 해당 대공기관총은 0.051kg의 기관총탄을 45도 각도로 사격할 경우 유효사정거리는 2,000m, 최대사정거리는 6,000m다. 총신이 부앙각도는 -10도에서 +90도까지 가능하다. 총좌는 360도 회전이 가능하며 총탄의 발사속도는 분당 500발이다.

조명탄 발사 및 예포용으로 영국의 암스트롱사의 설계를 구입하여 국산화한 암스트롱 1892년식 12cm 40구경장 단장포좌를 사용한다. 4기를 배치해서 총 4문을 보유한다.# 기본적으로 공격용으로 사용할 물건은 아니지만 해당 함포는 중량 20.4kg의 포탄을 앙각 20도에서 9,050m까지 날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영거리 사격시 관통력이 297mm지만 균질압연장갑이 아니라 단철(Wrought Iron)이라서 실제 관통력은 없다시피했다. 포신의 부앙 능력은 -5도에서 +20도까지 가능하며, 포좌의 선회각도는 360도다. 포탄의 발사 속도는 분당 5-6발이다.

4.2. 튼튼한 방어력

장갑에 있어서도 최대한의 두께로 강력한 방어력을 추구하였으며 어뢰 방어용 시스템 또한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다.

현측장갑은 기본적으로 16,000m의 거리에서 15인치급 주포탄이 명중해도 방어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만들어졌다. 그래서 장갑이 가장 두꺼운 부위는 총계 350mm 이상의 장갑을 자랑했으며 경사장갑을 적용했다. 현측장갑의 구조는 경사 8도의 70mm의 균질압연장갑(이탈리아 O.D.강)이 가장 바깥의 벽을 만들고 그 뒤에 250mm의 완충재가 들어가며 그 뒤에는 경사 14도[12]의 280mm의 균질압연장갑(독일 크루프社 KC n/A강)이 설치되었다. 이렇게 분리된 구조는 외부의 표면경화장갑으로 당시 전함의 주포탄 중 철갑탄의 주종인 피모철갑탄의 피모를 벗겨낸 후, 내부의 균질압연장갑으로 주포탄을 막아낸다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일종의 복합장갑의 구조를 채용한 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독일에서 KC n/A강 350mm을 통짜로 수입해서 두를 계획이었으나 크루프 社가 난색을 표하고 이에 리토리오급을 설계하던 측에서 설계를 변경하면서 이런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 것. 과거 본 항목에서도 적혀 있던 70mm 1차 장갑 무용설은 1960 ~ 1970년대에 주장되었던 것인데,[13]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여러 연구가들의 후속 연구에 의해 부정된 상황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들어간 공간에 비해 효율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으로 연구가들은 실제 장갑 효율은 350mm보다 약간 좋은 정도로 계산되고 있다.[14]

갑판장갑의 경우에도 최대 207mm의 두께를 가지며, 탄약고 구역 갑판/기관부/추진부에 대해 최하단 갑판을 162mm/112mm/102mm, 상단 갑판에는 45mm의 장갑을 두름으로써 대낙각탄에 대해 유효한 방어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1935년 5월 라 스페치아에서 테스트한 결과로는 24,000m에서 16인치 포탄을, 250m/s(=900km/h)로 떨어지는 1,280kg의 일반 항공폭탄, 835kg의 철갑 항공폭탄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당연하게도 항공폭탄이 250m/s를 훨씬 넘는 속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저것보단 막을 수 있는 폭탄의 중량과 크기가 작았다. 다만 실험한 날짜가 1935년인 것을 봐서는 나름 당시 이탈리아의 항공기가 투하 할 수 있는 폭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방호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주포탑의 경우에는 전면 380mm, 후면 350mm에 측면과 천정은 200mm라는 장갑을 보유하는데, 주포탑 바벳도 갑판장갑 상부의 두께는 350mm, 갑판장갑 하부의 두께는 280mm로 양호했다. 장갑함교도 최대 260mm의 두께를 가진다. 부포탑의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강력한 장갑을 자랑한다. 타국의 전함들이 부포탑이나 양용포탑은 두꺼운 경우에도 간신히 부포탄을 막거나 대공포탄을 막을 수준으로 장갑을 붙이고, 일본의 경우처럼 25mm 수준의 파편방어용 장갑만 가지는 경우까지 있는데 반해 이탈리아의 리토리오급 전함만 부포탑에 순양전함의 주포탑 수준의 장갑을 붙인 것이다. 그래서 부포탑 전면은 공고급 순양전함의 주포탑과 동일한 두께인 280mm, 부포탑 측면 전방부는 130mm, 부포탑 측면 후방부와 후면은 80mm, 부포탑 천정 전반부는 150mm, 부포탑 천정 후반부는 105mm라는 엄청난 장갑을 보유하며, 부포탑 바벳도 갑판장갑 상부의 두께는 150mm며 갑판장갑 하부의 두께는 100mm였다. 그래서 부포탑은 자신의 포탄은 물론이거니와 중순양함이 발사하는 8인치 포탄을 맞더라도 방어가 가능하다는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했다. 대공포탑의 경우에도 대공포탑 전면, 측면, 후면, 상면 모두 40mm의 장갑을 부여해서 대공화기로 쓰는 소구경 화포의 사격을 충분히 막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어뢰방어대책으로는 설계자인 움베르토 프리에제(Umberto Pugliese)의 이름을 가진 특수한 시스템을 채용했다. 40mm 두께를 가지는 어뢰방어용 격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6mm 두께로 만들어진 지름 3.8m의 파이프를 넣고 파이프 내부는 공기로 채우고, 파이프 외부는 물이나 나프타같은 액체로 채운다. 이 구조는 어뢰가 명중하면 파이프의 탄성과 액체의 충격 흡수 등을 통해 어뢰의 위력을 감쇄시켜 함선을 보호하는 원리로 동작한다. 20년대 후반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해군성에서는 리토리오급의 프리에제 방뢰 시스템이 TNT 350 kg까지의 폭발력을 막을 수 있었다고 판단하였으며 이는 당시 기준으로썬 이론상 획기적인 수준의 방어력이었다. 그리고 다른 벌지처럼 함체 외부에 돌출부위를 만들 필요가 거의 없으므로 함선의 선형을 유선형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함선의 속도를 벌지에 비해 덜 감소시키는 부가적인 효과까지 노릴 수 있었다.

4.3. 빠른 속도

리토리오급 전함의 동력부는 Belluzzo 기어드 증기터빈 4기와 Yarrow 중유전소보일러 8기로 구성되며, 출력은 128,200shp를 달성했다. 이런 출력을 바탕으로 해서 30knot (56km/h)의 속도를 예상했다.

실제로 완성된 리토리오와 비토리오 베네토는 설계시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시험항해에서 리토리오는 137,649shp의 출력으로 31.3knot (58.0km/h)를 달성하고, 비토리오 베네토는 133,771shp의 출력으로 31.4knot (58.2km/h)를 달성한 것이다. 물론 이 기록은 측정을 위해서 대공포와 관련시설이 전혀 없고 부포의 포신을 모조리 제거했으며 함교의 시설을 상당수 설치하지 않는 등 평상시보다 매우 가볍게 하고 달성한 것이다.# 따라서 실제 전투배치시의 중량을 가정한 속도는 28knot (52km/h) 정도로 예상되었다.

설계상으로 리토리오급 전함의 기관부는 과부하시 최대 16만 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었으나 터빈 축에 과도한 힘이 걸려 고장을 낼 가능성이 높았고, 이 때문에 이탈리아 왕립 해군 쪽에서는 긴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 최대 출력을 13만 내외에서 억제할 것을 지시했다. 따라서 긴급시 잠깐동안은 동력기관에 과부하를 걸어서 속도를 잠시동안 더 높일 가능성도 있었다.

대신 항속거리는 매우 짧았다. 4,140t의 연료로 20knot (37km/h)에서 3,920해리 (7,300km)수준이며, 속력을 줄여도 16knot (30km/h)에서 4,580해리 (8,480km)며, 14knot (26km/h)까지 줄여도 4,700해리 (8,700km)다. 이렇게 매우 짧은 항속거리는 타국과 달리 이탈리아는 지중해 중앙부에 위치하므로 지중해라는 좁은 지역에서만 행동가능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설계 단계부터 화력과 방어력, 속도를 중시하다보니 연료탱크의 크기를 작게 만든 결과였다. 일단 이탈리아의 예상으로는 지중해 전역에서 작전을 펼친 후 라 스페치아 등 본토의 항구로 귀환이 넉넉히 가능한 수준이었다.

5. 문제점

리토리오급 전함은 세계에서 수준급에 오른 좋은 전함이었으나 이탈리아 왕국잘못된 해군 정책으로 인해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군함을 건조할 때 선택한 독트린이 지중해안에 있는 이탈리아 본토만 방위하는 목적으로 지중해의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단거리만 출격하고 다시 모항으로 되돌아오는 식의 운영을 하려고 했기에 포신수명이나 항속거리같은 것은 일단 뒷전으로 넘긴 것이다. 어차피 자주 모항으로 되돌아오니 신속하게 부품 교체하고 연료 보급하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엄연하게도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같이 원거리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만든 식민지가 있고 20여만명의 대군이 주둔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수세적인 운영을 할 경우에는 순식간에 이탈리아 왕국은 식민지를 구원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다가 모든 식민지를 다 상실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 국가는 자신들의 식민지에서 얻는 물자를 가지고 우월하게 전쟁을 이끌어가는데 이탈리아는 혼자서 지중해 안에 가두어진 본국의 힘만 가지고 싸워야 하니 점점 불리해지게 된다.

이는 가상적국으로 삼던 프랑스 제3공화국보다도 못한 결과인데 적어도 프랑스는 정치의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군함들의 항속거리는 자신들의 식민지를 보호하거나 통상항로를 보호할 수 있을 수준으로 적절하게 늘려놓은 것이다. 따라서 영국이 중립을 지키는 상황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1대 1로 전쟁을 한다는 이탈리아의 예상이 맞아떨어지더라도 프랑스가 지중해에서 견제를 하면서 나머지 함대를 해외로 파견할 경우에는 이탈리아는 도저히 대응할 수가 없어서 순식간에 이탈리아는 본국만 남고 지중해 안에 가두어지게 된다.[15]

게다가 이탈리아의 예상도 매우 안일한 예측이었다. 프랑스가 단독으로 싸울리가 없고 영국을 끌어들일텐데 그러면 대책이 안서는 것이다. 이미 1923년 8월에 일어난 코르푸 사건(Corfu incident)에 대한 영국의 대응으로 인해 베니토 무솔리니가 분노한 사건이 있을 정도로 영국도 서서히 이탈리아와 관계가 험악해지던 상황이었고 이탈리아 왕립 해군에서도 일부 인사들이 영국 해군에도 대항할 목적으로 고속을 가지는 군함을 건조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였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추축국이며 침략전쟁을 벌여야 하는 입장에서 기존의 수세적인 해군 군사 독트린을 변동없이 유지하면서 리토리오급 전함을 건조한 대가가 매우 커지게 되었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잘못된 정책은 아퀼라(항공모함)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군과 공군간의 알력다툼으로 인해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정찰기만을 운용가능했고 항공모함을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공군이 상호소통의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군함을 엄호하지 못함에 따라 타란토 공습이나 마타판곶 해전에서 영국 해군의 함재기들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 패배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이탈리아반도가 불침항모라는 말도 안되는 억지 독트린도 붕괴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항공모함을 패전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고 리토리오급 전함은 Reggiane Re. 2000라는 육상용 전투기를 캐터펄트에서 사출시킬 수 있도록 추가적인 개조를 한 후 전함에 탑재하는 궁여지책을 동원해야 했다. 해당 항공기는 전함에서 캐터펄트를 사용해서 이륙은 가능하지만 수상기가 아니었으므로 리토리오급 전함이 자체적으로는 회수할 방법이 없었으며 근방의 지상 항공기지에 착륙해야 했다. 그러므로 전장과 가까운 곳에 이탈리아군이 운용하는 비행장이 없으면 사실상 전투기를 1회용으로 써먹은 후 항공기는 바다에 불시착하고 조종사도 빨리 보트를 보내서 구원하지 않으면 바다에 빠져죽는 참사가 발생하는데 이런 단점을 각오하고 육상용 전투기를 리토리오급 전함에 탑재한 이유는 자체적으로 몇 대라도 전투기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상공엄호를 해야 페어리 소드피시같은 영국의 함재기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5.1. 화력의 허실

현측 관통력은 동급 주포보다 우수하고 16인치 주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으나 갑판타격에 있어서는 불리했다. 탄도가 너무 평탄하며 +35도에 불과한 포신 앙각한도로 인해 포탄이 장거리에서도 저각도로 낙하하므로 갑판타격에 유리한 SHS를 사용하는 미국 군함은 제외하더라도 영국의 구식 15인치와 비교해도 현측 타격은 압도하지만 갑판타격에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수준이다.

또한 빠른 탄속을 얻은 대가로 주포의 포신수명이 110발에서 130발 수준까지 줄어들었는데, 이 문제는 사실상 고치기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고치려면 포탄의 중량을 좀 줄이고 장약의 양을 줄여서 탄속을 낮춰야 하는데 이렇게 할 경우 화력을 포기해야 한다.

이런 수준의 포신 수명은 훈련을 좀 빡세게 하면 반드시 모항으로 되돌아와서 포신을 몽땅 교체해야 할 수준이며, 신품 주포라도 1회의 대규모 해전을 겪고 나면 즉시 포신을 교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애써서 탄착범위를 좁히더라도 명중이 안되거나 다시 포탄이 산탄현상을 일으키면서 흩뿌려지니 전혀 소용이 없다. 그나마 포신의 수명이 짧기는 해도 포문당 탄약 수가 74발정도라 포신만 적시에 교체해주면 전투 도중에 포신 수명이 다되는 문제는 발생하기 어렵다는 것이 다행이다.[16] 결국 이 문제는 이탈리아 본국에서는 안그래도 값비싸고 제조하기 어려운 전함의 주포 포신을 대량으로 확보해야 하며, 리토리오급 전함이 본국에서 멀리 나갈 수 없는 족쇄가 되고 만다.

그리고 타국의 주포에 비해서 느린 연사속도도 만만치 않게 심각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분당 2.2 ~ 2.3발의 연사속도를 가진 반면 리토리오급의 경우 분당 1.3발의 느린 연사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독일 주포야 속사에 유리한 경량탄을 사용하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비슷한 중량을 가진 프랑스제와 비교해도 많이 연사속도가 느린 편이다.

부포의 경우에는 화력 자체는 큰 문제점이 없었으나 방어력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해당 사항은 후술한다.

대공화기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레이더도 없고 대공사격관제 측면도 신통치 않아서 수량에 비해 위력을 살리기 곤란했으며, 대공화기의 전체적인 수량도 그리 넉넉하지는 못했고 대공화기 자체에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문제점이 있었다.

대구경 대공포인 90mm의 경우에는 타국의 전함들이 대부분 100mm 이상 구경의 대구경 대공포를 사용했던 것에 비하면 구경이 좀 작았다. 타국과 비교하자면 전함의 경우 프랑스가 100mm, 독일이 105mm, 미국과 일본이 127mm 구경의 함상 대구경 대공포를 사용하였다. 그렇다고 이 90mm 대공포가 성능이 특출나게 좋았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았고 해상의 주력함에서 쓰기에는 약간 성능이 모자라는 수준인 8,8cm FlaK 정도의 성능을 가졌다. 여기에 더해서 무려 11개의 자이로스코프를 요구할 정도로 안정장치가 지나치게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탄도의 정확성은 매우 높았지만 비용 및 유지문제가 상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초기형 대공포탄이 폭발시 파편이 너무 잘게 나누어져서 항공기에 명중해도 별 타격을 못입히는 바람에 대공 화력이 하락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 문제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모두 해결되었으며 리토리오급 전함에는 적용하지 못했지만 전후 해당 대공포를 탑재한 다른 함선에는 도움을 줬다.

소구경 대공포인 37mm의 경우에는 포신이 완전고정식이라 발사시 반동을 모조리 포좌가 감당해야 하므로 사격시 진동문제가 상당했다. 덕분에 포축 안정화 및 급탄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포축 안정화 장치와 급탄장치 자체에도 약간의 문제점이 있어서 유사시 작동불능이 되기도 했다. 보탄판의 용량이 고작 6발이라 지속사격시 숙련병에 의한 재장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장애물로 작용하기 딱 좋았다. 당장 이 문서 상단의 운용 모습을 담은 동영상 초반에 이 37mm 대공포로 대공사격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포방패도 갖춰지지 않은 대공포에 다수의 인원이 달라붙어서 미리 준비해둔 6발 들이 보탄판을 쉴새없이 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 이것은 당시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만들어졌던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나 리슐리외급 전함의 37mm 대공포들이 전부 단발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대공기관포인 20mm의 경우에는 보탄판 용량이 12발이라 역시 지속사격시 숙련병에 의한 재장전의 도움을 못 받으면 속사가 곤란해졌다. 게다가 리토리오급 전함의 20mm는 2연장이라 동력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포구를 목표에 조준하는 민첩성에서 오히려 단장보다 느릴 수 있었다.

전반적인 대공화기의 포신 부앙속도, 포좌 선회속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대공기관총을 제외하고는 다 동력을 사용하고 인력으로 보조하지만, 동력만 사용할 경우에는 포신 상하조절과 포좌 선회가 느려지므로 실제로는 제대로 사용하려면 인력이 많이 요구된다. 이 문제에서 그나마 많이 자유로운 것은 대구경 대공포인 90mm 뿐이다.

5.2. 방어력의 한계

부포탑의 경우 장갑강화한 것은 좋았는데, 주포탑과 함교에 바짝 붙여서 장착한 것이 문제점이었다. 리토리오급 전함의 이전 함인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의 경우에는 2번 주포탑과 함교 옆에 부포탑을 적층식으로 한쪽 측면당 2기씩 총 4기를 장착했고, 당연하게도 이 부위에 적 전함의 주포탄이 명중하면 부포탑 폭발은 기본인데다가 인접 부포탑이 연쇄폭발할 수 있으며, 전함의 2번 주포탑 탄약고에도 불길이 인화될 수 있고, 함교가 불바다와 연기에 휩싸여서 제대로 전투지휘를 할 수 없다는 방어상의 약점을 가진다.

그래서 리토리오급 전함에서는 부포탑을 분산해서 2번 주포탑의 양 옆에 1기씩 2기를 배치하고, 3번 주포탑의 양 옆에 1기씩 2기를 배치했으며, 최대한 갑판장갑의 보호를 받기 위해 위치를 낮추고 장갑도 두껍게 발라서 끔찍한 사태를 막으려고 했다. 그래서 위의 설명과 같이 부포탑의 장갑이 거의 순양전합급의 장갑두께까지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주포탑 옆에 부포탑을 붙였다는 점은 개선하지 못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렇게 된 결과 리토리오급 전함은 실전에서 피박을 쓴다. 3번함인 로마가 독일군의 프리츠 X 공격을 받았을 때, 2번째로 명중한 폭탄이 2번 주포탑과 부포탑 사이를 관통한 후 내부에서 폭발했다. 부포 탄약고와 주포 탄약고가 동시에 손상을 받은데다가 화재가 발생하면서 상대적으로 약한 부포 탄약고가 터지는 바람에 인접한 주포 탄약고도 부포 탄약고의 유폭 충격을 받고 거의 동시에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굉침했으며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1번함인 리토리오도 프리츠 X 2발을 맞았으나 명중부위가 함수와 1번 주포탑 바벳 사이 부위였으므로 폭발력이 비장갑구획으로 쉽게 빠져나가서 유폭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중파상태지만 항행이 가능한 상태라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뢰 방어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움베르토 프리에제식 방뢰 체계는 이론적으로는 최고의 성능을 보였어야 했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어뢰에 맞으면 피해를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결함의 원인은 어뢰방어장치를 연결하는 리벳부위가 어뢰 명중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파손되는 바람에 어뢰 방어 부위 전체에 누수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해당 상황은 이론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론을 실현할 기술력의 문제였으며 당시 이탈리아의 기술력 문제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어느 국가도 1930년대에는 예상치를 만족시킬 공업 기술 수준이 되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또한 Navweaps의 설명에 따르면 내부의 원통형 구조가 압력을 분산시키지 못하고 한군데에 집중시켜 격벽등이 버티지 못하고 피해가 가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런 견해도 있다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또한 어뢰 방어 장치가 커버하는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타란토 공습에서의 리토리오의 경우인데, 파이프가 커버하는 범위에 맞은 어뢰의 경우 시스템이 어뢰의 데미지를 효과적으로 받아내었으나 파이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선체 - 선미 부분에 각각 1발씩 2발을 추가적으로 맞았고 이 때문에 침수가 진행, 결국 항구 내에 착저하게 되었다.

5.3. 짧은 항속거리

리토리오급은 동급의 전함과 비교해도 항속 거리가 짧은 편이었다. 물론 이탈리아 본토를 방위하는 방식인 수세적인 운용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걸 넘어서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탈리아가 자신의 경제력과 국력을 보고 선택한 제1 가상적국은 프랑스였고 그외 지중해에서 패권을 다투게 될 영국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영국 해군과 전면전을 고려하진 않았다. 이런 생각이 매우 안일했음은 이미 1923년 8월에 일어난 코르푸 사건(Corfu incident)에 대한 영국의 대응으로 나타난지 오래라서 전략 독트린을 개선해야 했으나 그러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영국이 적이 될 것이 확실해진 순간 지중해의 양쪽 출구인 지브롤터와 수에즈 운하가 막히게 되는데 두 곳의 방어태세가 만만치 않았다. 대서양으로 나가는 입구인 지브롤터는 당시 시점으로는 완전히 요새화 되어있었고, 불침항모인 지브롤터 공군 기지까지 있었으니 이곳을 손실없이 통과하거나 점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도양으로 가려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했는데, 이곳을 추축군 전함이 통과하려면 알렉산드리아를 공략해야 했다. 물론 이곳은 영국 해군의 지중해 최대 거점이었고, 지브롤터, 몰타와 함께 사력을 다해 지키던 지중해 항로의 요충지였다.

그러므로 독일처럼 대서양 등 넓은 대해로 진출해서 통상파괴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전력을 생각해보았을 때 작전이 최고로 잘 풀리는 상황이래봐야 지브롤터와 알렉산드리아를 공략하는데 성공해서 지중해 항로를 끊고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를 이탈리아 것으로 날름하는게 전부였으니 여기까지라면 리토리오급 전함의 항속거리는 충분했다. 계산을 해보자면 이탈리아 해군기지인 타란토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는 1,500km 가량 떨어져 있고, 리토리오급 전함의 항속 거리는 20노트로 7,300km, 16노트로 8,700km이니, 전투까지 한다고 해도 무보급으로 충분히 왕복 가능하고도 남는 거리였다.

하지만 애초부터 고속전함같은 최신예 1급인 전략적 군사유닛이 지중해 안에 가두어진 것 자체가 문제였다. 타국의 전함같으면 항속거리가 충분하니 개전 전에 미리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같은 지역에 호위함과 같이 배치해놓았다가 이탈리아 본토의 함대와 같이 협공을 가하거나 독자적으로 통상파괴전에 나서거나 인도 제국같은 영국의 심장부급 식민지를 직접 공격한다던지 하는 다양한 대응이 가능한데 그걸 못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전략적인 열세에 놓이게 된다.

당장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막시밀리안 폰 슈페 제독이 이끄는 독일 제국의 태평양전대는 전력도 빈약했고 목표도 본국으로의 귀환이었으나 영국 해군이 대처하기가 힘들어서 코로넬 해전에서 대참패한 끝에 포클랜드 해전에서 본토함대에서 빼온 순양전함 2척까지 투입한 끝에서야 해결을 보았다. 설상가상으로 본대에서 분리된 SMS 엠덴이 인도양에서 통상파괴전을 펼쳐서 벌어진 대혼란상황은 상당한 피해를 영국에게 주었다. 그러므로 고작 장갑순양함 2척과 호위함으로 구성된 미약한 전력이 밖으로 나온 것에도 이렇게 방어하는 일이 매우 힘들어질 정도이므로 해군전력을 미리 외부로 배치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해군전력을 미리 외부로 배치하려면 항속거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항속거리가 짧으면 배치된 곳의 항구를 멀리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을 곳이 뻔해서 포위당하기 딱 좋으며 유사시 탈출하기도 힘들어진다. 공격적으로 운영하려고 해도 항속거리 문제로 인해 공격할만한 곳이 한정되며 우회로를 택하기도 곤란해진다. 그래서 항속거리가 짧은 장비들은 운용의 묘를 살리기가 어려워진다.[17]

따라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주력함이 구식이며 1척 수준의 소수라도 일단 지중해 밖에 나와있을 수 있다면 그렇게 허무할 정도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가 순식간에 함락당하면서 20만의 대군이 괴멸하지 않았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라도 뭔가 제대로 싸워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굳이 지브롤터나 수에즈 운하를 직공하지 않아도 추축군에게 석유 산지인 중동을 공략할 기회가 생기고, 인도의 반영 세력의 협조도 기대해볼 수 있으니, 전략적인 관점에서도 비용이 덜 들어가면서도 효과도 충분하다. 만일 수세에 몰리더라도 일본 제국같이 이탈리아 왕국과 우호적인 곳으로 탈출을 시도할 수도 있고 이런 식으로 지중해 밖에서 얼쩡거리는 세력이 늘어날수록 연합국이 매우 골치아파진다.

하지만 리토리오급 전함을 비롯하여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이나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같은 주력함은 말할 것도 없고 순양함과 구축함같은 보조함들의 항속거리가 모두 짧으니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해군전력이 지중해 안에 가두어지는 바람에 수세적인 작전만 하다가 결국에는 밀려버리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세계 5위의 해군 열강국이며 상당한 수준의 해군전력을 보유한 국가가 잘못된 해군정책을 고수한 결과가 이렇게 참담한 것이다.

원래 병기의 항속 거리는 상정되는 전장에서의 요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평균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 애초에 소요군의 전략전술이 잘못된 상황이라면 요구도 잘못될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에는 뒤늦게라도 전략전술을 바꾸려도 해도 이미 장비가 특화된 상태라서 답이 없어진다. 당장 점감요격작전에 특화한 일본 제국 해군의 장비들이 진주만 공습이나 남방작전같은 공세작전에 투입될 때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에 연료가 담긴 드럼통을 적재하고 가는 식의 위험천만한 방법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일이 힘들어진 전례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국의 상황과 독트린을 감안하면서도 세계적인 평균과 범용성도 동시에 생각해서 각국의 병기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당장 이탈리아가 연합국으로 돌아선 후에는 리토리오급 전함의 짧은 항속거리가 큰 문제가 되었다. 연합국 측에서는 해당 군함들의 빠른 속도를 살려 항공모함 호위에 쓰려고 했으나 짧은 항속거리 때문에 결국 사용되지 못했다. 방치하기에는 아까운 군함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다.

이에 비해서 리슐리외급 전함은 항속거리가 충분했으므로 태평양까지 진출해서 일본 제국과의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리슐리외급 전함만의 일은 아니라서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가 패배하기 전까지는 베아른급 항공모함이나 됭케르크급 전함이 영국 해군과 협동작전을 벌이면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3번함 아트미랄 그라프 슈페를 추적하거나 통상항로를 보호하는 작전에 협조하고 있었고 성과도 있었다.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리토리오급 전함 뿐 아니라 다른 군함들의 항속거리도 짧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로 호위받을 주력함과 호위할 보조함간의 항속거리 차이 문제도 만들어냈다. 특히 구축함. 오리아니급 구축함, 솔다티급 구축함같은 신형 구축함들은 2,000해리대가 많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구축함이 식민지에 배치된 사례는 있으나 개전시에는 너무 짧은 항속거리 때문에 본국으로 탈출하거나 최소한 중립국으로 갈 수도 없어서 전투 한번 못해보고 현지에서 자침하는 처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이런 식으로 날려먹은 구축함만 5척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데 타국과 비교하면 짧은 항속거리지만 정작 리토리오급 전함은 호위함이 못 따라올 정도의 항속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여유가 있는 자신의 연료탱크에서 연료를 뽑아서 구축함에 공급해주는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리토리오급 전함의 연료적재량도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니 함대 전체의 작전반경이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잠수함중 상당수는 의외로 항속거리가 길어서 지중해를 빠져나가서 활동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U보트와 협동해서 대서양 전투를 치르기도 했고 일부 잠수함들은 일본 제국까지 건너가서 중요 물자를 수송하고 인도양에서 합동작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대서양 전투만 살펴봐도 이탈리아군의 잠수함은 대양작전능력이 떨어지고 울프팩 전술에 적합하지도 않아 카를 되니츠로부터 혹평을 듣기도 했으나 나름대로 전과를 많이 올려서 1940년 8월에 27척의 이탈리아 잠수함대가 보르도에 전개하여 작전을 개시했다. 이들은 이탈리아가 항복하는 1943년 5월까지 109척 593,864톤을 격침시키고 잠수함 17척을 잃었다. 대표적인 수훈함으로는 17척, 120,243톤을 격침시킨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18척, 96,165톤을 격침시킨 엔리코 타촐리가 있다. 두 배 모두 지중해가 아닌 대서양에서 작전했고, 독일 잠수함들처럼 카리브해나 남미 일대까지 진출하여 전과를 올렸다. 엔리코 타촐리의 함장 카를로 카사토는 이 전공으로 인해 외국인으로서는 받기 힘든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따라서 이탈리아군의 잠수함들은 항속거리가 충분했기 때문에 다른 조건들이 불충분해도 지중해 밖에 나가서 공적을 세우고 연합군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해군의 잘못된 독트린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자국 군함들의 운용에 안좋은 영향을 주었는지 스스로 입증해주었다.

6. 평가

요약하자면 바다의 판터[18]. 공격, 방어, 주행을 모두 만족시켰어도 사소한 것들도 잘 챙기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교훈을 보여준 전함이다.

스펙상으로는 공격력도 근접하면 16인치급 주포의 위력을 발휘하는 15인치 주포를 탑재했고, 방어력도 기존의 이탈리아군 전함보다 크게 강화했으며, 속도도 고속전함 소리를 들을 정도로 빨랐으므로 여기까지만 따지자면 우수한 군함이었네 하는 평가를 받기 충분했던 것이 리토리오급 전함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이탈리아가 건조한 유일한 신예전함이라는 점을 따지면 평가가 더 올라갈 수도 있었다. 타국의 경우에는 전함 건조의 종류 및 숫자가 많았고, 가장 비슷한 처지인 프랑스 해군도 됭케르크급 전함에 이어서 리슐리외급 전함을 건조함으로서 이전의 함급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수정할 수 있었다는 이점이 있는데 리토리오급 전함은 유일한 신조전함이라서 그런 피드백을 받기 어려운 처지였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짧은 포신 수명, 부포탑의 배치 문제 및 어뢰방어장치 부실 등으로 인한 방어력 약화나 항속거리 문제등 얼핏 보면 부수적으로 보기 쉬운 약점은 리토리오급 전함이 원래 받았어야 할 평가를 크게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실제 전장에서도 이탈리아군 자체의 운용상 문제점이 합해지자 스펙에 비해 별로 좋은 활동을 못한 채 망신을 당하다가 전쟁에 패배한 후 배상함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어쩡쩡한 위치에 놓인 끝에 건조국가 스스로 폐기처분하는 불운을 맞은 것이다. 당장 2차 세계대전 중 패전국이 자신들이 건조한 함선들, 그것도 스스로 폐기한 경우는 이탈리아가 유일하다. (애초에 중요전력이었던 전함은 그 전에 격침된 경우가 많으니.) 예를 들어 같은 추축국이었던 독일이나 일본은 전쟁 말기에 들어서는 여러 전투를 걸치며 전함 전력이 아예 소멸되었으며 남은 것들도 승전국들이 가져가 표적으로 사용하여 격침시켰다.

이런 저평가가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상술했듯 리토리오급 전함은 실제로 영국에게 끝까지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은 타란토 공습이나 케이프 마타판 해전 등 여러 차례 기를 써서 이탈리아의 중요 전력이었던 리토리오급을 1척이라도 격침시키려고 시도했었고, 실제로 여러 차례 피해를 입히는데는 성공하나 격침에는 번번히 실패하였다. 당장 지중해 전역 내내 영국도 '저 망할 전함 좀 안 만날 수 없나?'라고 생각했고 이탈리아 함대가 녹아내린 케이프 마타판 해전에서조차 영국군은 정말 경미한 피해만 받고 차라급 중순양함 3척을 격침시켰지만 리토리오급 전함은 격침시키지 못했다. 북아프리카 전역기간 동안 영국은 초기에 후드를 상실한 후 30노트대의 속도를 가지는 고속전함의 부재로 이탈리아의 홈 어드벤티지였던 지상 항공지원을 받고 활동하는 리토리오급과 이탈리아 함대를 상대로 크게 유리해본 적이 별로 없다.

또한 결국 리토리오급 전함 로마를 격침시킨 것은 동맹이었던 나치 독일이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또한 리토리오급 전함들은 전쟁 내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영국 지중해 함대와 아프리카 수송선단의 신경을 마구마구 긁었다는 점에서 전함 티르피츠와 매우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티르피츠는 마침내 영국 공군의 톨보이 폭탄을 맞고 격침되었으나, 리토리오급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같은 추축국인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 소속의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설계상의 한계가 명확한 1차대전기 전함의 강화확대형의 전함이었으나 대서양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던 후드를 굉침시키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고, 침몰마저도 매우 강렬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2차대전 당시 유럽에서 전함의 활약을 떠올릴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비스마르크와 후드일 정도의 인상을 남겼고 실제로 당시 전황과 사기에도 영향을 많이 줄 정도였다.

따라서 비스마르크급 전함보다는 당연하게도 완성도가 매우 높은 리토리오급 전함이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얼마나 큰 활약을 했을 지 기대가 되고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 별로 한 일이 없다는 평가도 사라졌을 것이다. 당장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에 배치라도 되었다면 그걸 잡으려고 영국 해군이 엄청난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본다면 리토리오급 전함은 초호화 명품전함임은 사실이지만[19] 여러가지 결점으로 인해 간신히 수작 반열에 이름을 걸었고, 여기에 이탈리아 왕립 해군의 열악한 사정이 겹쳐서 전쟁 내내 크게 주목받을 만한 활약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전함이기도 하다.

7. 동형함 목록

파일:3db38628-s.jpg 파일:external/resize.blogsys.jp/be04ab61.jpg
리토리오급 전함 2번함 비토리오 베네토 리토리오급 전함 3번함 로마[20]
함명 건조 비고
리토리오[21] 기공 1934-10-28
1952년 해체
진수 1937-08-22
완공 1940-05-06
비토리오 베네토 기공 1934-10-28
1951년 해체
진수 1937-07-25
완공 1940-05-15
로마 기공 1938-09-18
1943년 9월 9일 격침[22]
진수 1940-06-09
완공 1942-07-14
임페로 기공 1938-05-14
1948년 해체
진수 1939-11-15
완공 미완공

8.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파일:WoW 로마.jpg
파일:Naval Creed 비토리오 베네토.png

9. 관련 링크



[1] 모든 장면이 리토리오급을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장면에서 리토리오급 전함의 주포사격 모습 등을 볼 수 있다.[2] 이전 프란체스코 카라치올로급 전함프로젝트 UP.41형 전함 초기 계획이 있었지만 둘다 취소됨.[3] 공식적으로 당시 주장했던 배수량.[4] 테스트 상황에서 리토리오/비토리오 베네토 각각 139,561 마력/134,616 마력 기록.[5] 리토리오급의 기관부는 과부하시 최대 16만 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었으나 터빈 축에 과도한 힘이 걸려 고장을 낼 가능성이 높았고, 이 때문에 이탈리아 해군 쪽에서는 긴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 최대 출력을 13만 내외에서 억제할 것을 지시했다.[6] 일반적인 장갑 구조는 아니며 크게 280mm + 70mm 복합 장갑으로 분류한다. 하단 후술.[7] 단, 후세 연구가들은 중갑의 경우 일반적인 방호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8] 캐터펄트에서 사출시킬 수 있도록 추가적인 개조가 가해졌다. 단, Ro.43과 달리 Re.2000은 수상기가 아니었으므로 리토리오가 자체적으로는 회수할 방법이 없었으며 근방의 지상 기지에 착륙해야 했다.[9] 위키백과의 경우 한국어 위키백과, 일본어 위키백과, 중국어 위키백과는 비토리오 베네토급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전부 리토리오급으로 되어 있다.[10] 다만 운용한 국가의 작명법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서 100% 지켜지는 것만은 아니다. 가령 러시아의 디아나급 방호순양함은 영어권에서는 팔라다급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11]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는 '최대' 16인치이며, 에스컬레이터 조항 비적용시 전함의 최대 주포 구경을 14인치로 규정한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경우 이탈리아는 서명하지 않았다.[12] 11도 설도 있음[13] 북미 위키피디아에서도 이 설을 차용하고 있다.[14] 문헌에 따라서는 375mm급 경사장갑 효율을 내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질적 장갑 증가 효과는 10% 미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5] 다만 지중해 자체가 출입구가 정해진 바다인점, 그 출입구를 적국인 영국이 가지고있다는점을 생각해봤을때 애시당초 이탈리아가 영국을 상대로 출입구인 지브롤터나 수에즈를 점령해서 유지한다는 도박같은 전제조건이 통과되었을때에만 이탈리아의 항속거리 부족이 크게 느껴졌을것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이탈리아는 그걸 해낼 능력도, 의지도 없었기에 이탈리아 해군은 전쟁 내내 지중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않았다.[16] 비슷하게 장포신에 고속, 고관통 탄을 쓴 프랑스와 독일은 포문당 100발, 교체주기는 200 ~ 250여발 사이 정도. 미국의 16인치 함포도 최대 290발, 평균 200발 정도가 교체주기였으며, 이것도 당시 쩔어주던 미국의 건함기술력과 SHS 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17] A6M같이 과도한 항속거리를 가지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경우도 항속거리가 길지만 기체의 내구도가 매우 낮다는 것 때문이므로 기체의 내구도를 올리고 항속거리를 줄이는 식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조종사의 비행시간을 줄이는 대응이 가능하다.[18] 실제로 판터와 리토리오급은 정말 놀랄 정도로 장단점이 비슷하다. 둘 다 표면상의 공수주는 모두 우수했으나, 상대하는 쪽에서는 알 수 없고 운용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단점들이 매우 많았다.[19] 괜히 독일이 연합국이 가져가려 했던 로마를 신무기 프리츠 X까지 동원해가며 격침시킨것이 아니다. 당시 독일 입장에서의 리토리오급은 여러모로 자국의 대표전함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훨씬 뛰어넘는 전함이었다. 비스마르크보다 전장이 짧으나, 이는 리토리오급의 넓은 함형에 의한것으로 기본 배수량은 비스마르크보다 뛰어나다.[20] 출처[21] 연합국에 항복한 이후 "이탈리아"로 함명 변경[22] 독일공군의 활강폭탄인 프리츠 X에 의한 격침[23] 당장 소련을 보면 사실상 리토리오급의 방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이 5차 전함으로 들어가 있다.[24] 사실 워게이가 정규트리에 1번함을 스킵하고 2번함을 넣어준게 한두번이 아니긴 하다. 당장 2티어 아래만 봐도 네임쉽 카이오 두일리오 대신 안드레아 도리아가 들어가있고. 독일 전함 트리에도 7티어에 네임쉽 샤른호르스트 대신 그나이제나우가 들어가고 독일 순양함 6티어에는 네임쉽 라이프치히 대신 뉘른베르크가 들어가니.